계명구도(鷄鳴狗盜)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鷄 : 닭 계(鳥/10)
鳴 : 울 명(鳥/3)
狗 : 개 구(犭/5)
盜 : 훔칠 도(皿/7)
(유의어)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
계명지객(鷄鳴之客)
함곡계명(函谷鷄鳴)
출전 : 사기(史記)의 맹상군전(孟嘗君傳)
이 성어는 작은 재주가 뜻밖에 큰 구실을 한다는 뜻이며, 사대부가 취하지 아니하는 천한 기예(技藝)를 가진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개 흉내를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여우 가죽옷을 훔쳐서 위기를 모면하고, 닭 우는소리를 흉내를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관문(關門)을 무사히 통과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때는 중국의 전국시대였다. 당시 중국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 齊나라에 맹상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맹상군은 당시 齊나라 선왕(宣王)의 막내 동생으로 대단히 현명한 사람이었다. 특히 맹상군은 뛰어난 인재를 자기 밑에 두기 좋아했다.
정치학에 뛰어난 사람, 경제학에 뛰어난 사람, 각종 기예가 출중한 사람 등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밑에 두었다.
그런 소문은 듣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자기 재주를 뽐냈는데 그러는 중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었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맹상군 밑에 있기를 원했다.
맹상군은 흔쾌히 그 사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맹상군의 부하들이 그 사람을 내쫓으라고 했으나 맹상군은 “나는 그 사람의 거짓말 기술을 산 것이다” 라며 거부했다.
이렇듯 맹상군이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받아주다 보니 그가 거느린 식객이 3000명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날 맹상군 앞에 한 특이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맹상군에게 좋은 팔찌가 있으니 사달라고 부탁했다. 황금으로 만든 아주 귀한 팔찌였다.
맹상군은 흔쾌히 그 팔찌를 천냥을 주고 샀다. 팔찌를 비밀 창고에 넣어 놓고 생각해 보니 예전에 어디선가 많이 본 팔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집을 나와 볼일을 보러 가는데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똑같이 생긴 팔찌를 가져와서 “아까 그 보물은 원래 쌍팔찌입니다. 아까 것은 수컷이고 이번 것은 암컷입니다. 같이 짝지어 놓으면 더욱 가치 있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다.
맹상군은 이번에도 역시 천냥을 주고 팔찌를 샀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좋은 보물을 얻었다 싶어서 좋아하며 비밀 창고를 여는 순간 맹상군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에 놓아두었던 팔찌가 없어진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볼일이 있어 나중에 찾아보기로 하고 다시 집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맹상군 앞에 나타났다. 아까와 똑같은 팔찌 하나를 더 사라고 하는 것이다.
맹상군은 이제야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맹상군 집에 있던 팔찌를 훔쳐 자신에게 되팔았다는 것을 알았다.
맹상군은 “2천냥을 돌려주면 그 팔찌를 사주겠네.” 하니 그 사람이 “제 몸값이 2천냥입니다. 저를 식객으로 받아 주십시오.” 하는 것이다. 맹상군은 껄걸 웃으며 그 사람을 식객으로 받아줬다.
또 어느날 맹상군이 길을 가는데 골목 뒤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렸다. 맹상군과 부하들은 놀라서 어서 피하자고 했다. 그런데 골목에서 나오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맹상군이 그 사람에게 다시 개짖는 소리를 내보라고 하니 정말 똑같이 내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쥐, 닭, 말, 고양이 등 모든 울음 소리를 다 똑같이 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맹상군은 그 사람도 역시 자신의 식객으로 받아줬다.
때는 전국시대 말엽이어서 전국 최고의 강국은 후에 통일 국가를 이루는 진(秦)나라였다.
秦나라의 소왕(昭王)은 맹상군이 재주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서 자신 밑에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맹상군에게 秦나라의 대신을 맡길 테니 자기 나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맹상군은 여러 번 거절했으나 강대국 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秦나라로 가게 되었다. 여러명의 식객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귀중한 여우 털 코트인 호백구(狐白裘)도 가지고 갔다. 암 여우 천 마리를 잡아야 하나가 만들어진다는 정말 귀한 물건이었다.
아무튼 BC 299년 맹상군은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秦나라에 도착했다.
秦나라 왕은 맹상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와 이야기해 보니 정말 뛰어난 인재이기에 승상으로 임명하고 나라의 국정을 맡겼다.
하지만 기존 秦나라 대신들이 그것을 좋아라 할 리가 없었다. 秦나라 대신들은 맹상군이 제(齊)나라 사람이니 분명 齊나라에 유리하도록 국정을 이끌 것이라 말하여 맹상군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했다.
진소왕도 결국 설득되어 맹상군을 승상에서 내치게 되었다. 하지만 맹상군이 다른 나라에 갈 경우 그 나라가 크게 번영하게 될 것이 뻔하니 집에 감금해 놓았다. 맹상군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맹상군 밑에는 별별 재주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염탐을 잘 하는 식객이 조정을 살피고 와 맹상군에게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것이니 빨리 피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하지만 갇혀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맹상군의 식객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모두 발휘해 맹상군이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알아낸 방법은 단 하나 진소왕이 아끼는 애첩인 연희(燕姬)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진소왕은 연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연희가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맹상군은 갖은 금은보화를 연희에게 보내어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연희는 들은 척도 안했다.
연희는 이런 보물은 나에게도 얼마든지 있다고 필요 없다고 했다. 다만 맹상군이 가져와 진소왕에게 선물했던 여우털 코트 호백구를 자신에게 준다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호백구는 암 여우 천마리를 잡아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우 천마리를 잡을 수도 없고 당시 최강대국 진소왕에게 선물한 것을 다시 달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자신이 호백구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는 팔찌를 훔쳐 팔았던 그 도둑이었다.
맹상군과 다른 부하들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秦나라 왕의 보물 창고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다고 하며 호백구를 찾아 나갔다.
하룻밤이 지나고 그 도둑은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호백구를 훔쳐오는 데 성공했다.
맹상군은 좋아라 하고 바로 연희에게 호백구를 보냈다. 연희는 기뻐서 맹상군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날 밤 여지없이 진소왕은 연희를 찾아왔다. 연희는 자신과 잠자리를 하고 싶으면 맹상군을 돌려보내라고 부탁했다. 진소왕은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맹상군과 그 부하들은 준비해 두었던 마차를 타고 최대한 빨리 秦나라 국경을 빠져나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秦나라는 철저한 법치국가였다. 어떠한 관문도 통행증이 없이 통과가 불가능 했다.
하지만 맹상군 밑에는 문서위조 전문가도 있었니다. 문서위조 전문가가 만든 가짜 통행증은 아무런 의심없이 관문을 통과하게 해주었다.
한편 진소왕은 잠자리에 들고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맹상군을 보내 주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진소왕은 바로 추격병을 보내 맹상군을 다시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맹상군을 확실히 잡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秦나라 밖으로 나가려면 함곡관(涵谷關)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하고 함곡관은 새벽닭이 울기 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맹상군 일행은 열심히 달려 함곡관에 도착했다. 하지만 때는 한밤 중 함곡관은 굳게 닫혀있었다.
어떻게 할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맹상군에게 갑자기 동물 소리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수많은 식객 중 동물소리 전문가를 찾아내 불러왔다. 동물소리 전문가는 자신 있게 나와서 꼬끼오~~~ 닭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함곡관 주변 모든 닭들이 새벽이 온 줄 알고 다같이 울었다. 함곡관 문지기도 깜짝 놀라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눈 비비면서 성문을 열었다.
역시 가짜 통행권을 보여주고 무사통과하여 결국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秦나라 밖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보통 군자가 배워서는 안 될 하찮은 기술쯤의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반대로 별 쓸모없이 보이는 기술도 필요할 때는 중요한 기술이 된다는 뜻도 된다.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재주란 재주가 있으면 누구든 받아들였던 맹상군이었기에 남들이 보았을 때 쓸데없는 재주도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재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염옹(冉雍)이 詩로 이를 찬탄했다.
明珠彈雀 不如泥丸.
명주탄작 불여니환.
아름다운 구슬로 새를 쏘느니 보다는, 진흙으로 만든 탄환으로 쏘아야 한다.
白璧療飢 不如壺餐.
백벽료기 불여호찬.
옥이 아무리 보배라고 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려면, 음식을 먹느니만 못하다.
狗吠裘得 鷄鳴關啓.
견폐구득 계명관계.
개소리를 내어 백호구 가지고 왔으며, 닭소리를 내어 함곡관 관문을 열게 했다.
雖爲聖賢 不如彼鄙.
수위성현 불여피비.
비록 성현이라 할지라도, 그 두 선비처럼 짐승소리는 내지 못했으리라.
細流納海 累塵成岡.
세류납해 누진성강.
그러므로 알라, 시냇물은 흘러서 바다가 되고, 티끌을 모여서 큰 언덕을 이루는도다.
用人惟器 勿陋孟嘗.
용인유기 물누맹상.
사람의 개성을 존중해야 사람을 쓸 줄 아는 것이니, 사람들이여 맹상군을 천하다고 하지 마라.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온다.
이렇게 닭 울음소리와 도둑질로 맹상군 일행을 위험에서 구해 준 사람들을 당시 다른 식객들은 학문도 없고 당당함도 없는 사람이라며 비웃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깊은 학문도 없이 비천한 잔재주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를 줄여 계명구도라 한다.
정치 비판적인 글을 많이 썼던 송(宋)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인이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에서 맹상군을 기껏해야 계명구도의 무리들이나 거느린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世皆稱孟嘗君能得士.
士以故歸之, 而卒賴其力,
以脫於虎豹之秦.
세상 사람들은 맹상군은 선비를 얻었으며, 선비들은 이 때문에 그에게 귀복하였고 마침내 그들의 힘에 의지하여 호랑이나 표범 같은 진나라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嗟乎. 孟嘗君特鷄鳴狗盜之雄耳. 豈足以言得士.
오호라! 맹상군은 다만 닭 울음소리나 내고 개처럼 개구멍으로 들어가 도둑질이나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였을 뿐이다. 어찌 선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不然擅齊之强得一士焉.
宜可以南面而制秦,
尙取鷄鳴狗盜之力哉.
그렇지 않았다면, 제나라의 강성함을 가지고 제대로 된 선비 한 사람을 얻어 남면(南面)하여(왕이 되어) 진나라를 제압했어야 마땅한 일이었을 텐데 오히려 닭 울음소리나 개처럼 개구멍으로 들어가 도둑질이나 하는 방법을 빌리다니.
鷄鳴狗盜之出其門,
此士之所以不至也.
닭 울음소리나 내고 개구멍으로 도둑질을 하는 자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참된 선비들이 그에게 오지 않은 까닭이었던 것이다.
계명구도(鷄鳴狗盜)
전국 시대의 제후들은 각기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하여 인재를 모으는 데 힘을 기울였지만 제후들뿐 아니라 당시의 유력한 귀족들도 그 신분에 따라 인재를 모으기에 광분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의 사군(四君)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공자 무기(無忌),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黃歇) 네 사람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맹상군이었다. 맹상군은 선왕의 막냇동생이며 위왕의 손자이다. 그의 문하에는 식객(食客)이 3천 명이나 되니 그의 명성은 제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경양군(涇陽君)을 인질로 보내놓고 맹상군 보기를 원하였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가려고 하자 그의 식객들은 모두 반대하여 가지 말라고 간하였으나 맹상군은 기어코 진나라에 가려 하였다.
식객 가운데 소대(蘇代)가 또 만류하며 말하였다. “오늘 아침 제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무로 만든 인형과 흙으로 빚은 인형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무인형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당신은 장차 부서지고 말 거야.’라고 하니 흙으로 빚은 인형이 말하기를 ‘나는 흙에서 태어났으니 부서지면 곧 흙으로 돌아갈 뿐이지, 이제 비가 내리면 당신은 떠내려가서 그칠 곳을 알지 못할 것이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 같은 나라이온데 군께서 가려고 하시니 만일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군께서는 흙인형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소대의 의미 깊은 말을 듣고 진나라로 가는 것을 중지하였다.
제나라 민왕 25년 다시 진나라에서 맹상군을 보내달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맹상군은 마침내 진나라에 들어갔다. 진의 소왕은 즉시 맹상군으로 진나라 정승을 삼으려고 하였다.
소왕의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맹상군은 현명하나 제나라의 일족(一族)입니다. 그가 진나라의 정승이 된다 해도 반드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뒤로 미룰 것이니 진나라로선 위태로운 일입니다.”
소왕은 그럴듯하게 생각하여 정승으로 삼으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맹상군을 가두었다. 어진 사람을 등용하지 않을 경우 죽여 없애는 것이 당시 제후들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우선 가둬 놓고 계략을 써서 죽이자는 것이 진나라의 계획이었다.
맹상군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맹상군은 서둘러 사람을 시켜 소왕이 가장 총애하는 여인에게 뇌물을 보내고 자신의 석방 운동을 벌이게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하였다. “석방해주는 대가로 맹상군이 가진 흰 여우 갖옷(狐白裘)을 나에게 주시오. 그렇게 한다면 맹상군을 석방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맹상군은 단 한 벌의 호백구(狐白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여우 겨드랑이의 흰털만을 모아 만든 가죽옷으로 한 벌 만드는 데 1천 마리의 여우가 필요하였다. 값이 천 금이나 되는 천하에 오직 하나뿐인 진기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진나라에 들어와서 이미 소왕에게 바쳤기 때문에 호백구는 다시 없었다.
맹상군은 크게 근심하여 널리 식객들에게 좋은 방법을 물었으나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제일 말석에 개의 흉내를 내어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나서며 말하였다. “제가 호백구를 구해오겠습니다.”
그는 드디어 밤에 개처럼 진나라 궁중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전날 소왕에게 바쳤던 호백구를 가지고 왔다.
그것을 진왕의 총희에게 바치자 그 여인은 맹상군의 일을 소왕에게 말하여 풀려나게 해주었다.
옥에서 풀려난 맹상군은 즉시 말을 달려 귀국길에 올랐다. 통행증을 고쳐 이름과 성을 변경하여 관소를 통과하려고 하였다. 맹상군이 말을 채찍질하여 국경 지대인 함곡관에 도착하니 그때는 밤중이었다.
이윽고 소왕은 맹상군을 석방한 것을 후회하여 그를 찾았으나 이미 떠나고 없었다. 즉시 사람을 시켜 역마를 달려 그를 뒤쫓아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다.
맹상군은 밤중에 관에 도착하였으나 진나라 법에 닭이 울어야 관을 통과시키게 되어 있었다.
맹상군은 뒤쫓아오는 자가 염려되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식객 가운데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내자 그 소리를 듣고 닭들이 모두 울었다.
이에 맹상군은 통행증을 보이고 무사히 관을 통과하였다. 통과한 지 잠시 뒤에 진나라의 뒤쫓는 자가 관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맹상군이 관을 통과한 뒤였기 때문에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맹상군은 이 두 사람들 때문에 위기일발의 죽을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일찍이 맹상군이 이 두 사람을 빈객으로 대우하자 다른 빈객들은 모두 이 두 사람과 함께 있기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위기에 부딪혔을 때에는 결국 이 두 사람이 그를 구출하였다. 그 뒤부터는 빈객들이 다 탄복하였다.
뒤에 제의 민왕은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더욱 교만해졌으며 진나라, 초나라 사람들의 헐뜯는 말을 듣고 맹상군을 제거하려 하였다.
이에 맹상군은 신변의 위험을 느껴 위나라로 갔다. 위의 소왕(昭王)은 그를 정승으로 삼으니 그는 진나라, 조나라와 연합하여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제의 민왕은 수도인 임치를 버리고 거(莒)로 도망하여 그곳에 있다가 죽으니 제의 양왕(襄王)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양왕이 즉위하자 맹상군은 스스로 제후의 한 사람으로 독립하여 중립을 지켰으며 그가 죽자 양왕은 그에게 맹상군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계명구도(鷄鳴狗盜)
닭의 울음소리와 개 도둑, 천한 능력을 소유한 자라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사마천의 사기 맹상군열전에 전하는 것으로 글자 그대로의 뜻은 닭의 울음소리와 개 도둑을 의미한다. 맹상군은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닭의 울음소리를 내는 자와 개 도둑의 재치로 그 상황을 모면한 고사를 들어 유래되었다. 닭 울음소리를 내는 자와 개 도둑은 본래 비열하게 남을 속이는 하찮은 재주를 가진 자들이다. 따라서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뜻하지만, 그 전체적은 맥락에서 보면 천한 능력을 소유한 자라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는 의미로 더욱 쓰인다.
1. 재주 그 자체는 다 쓸모 있지만
세상에 재주를 가진 자들은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 그 재주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재주는 쓸모 있는 재주가 되고 나쁜 재주가 된다. 전쟁 시에 도둑의 재주를 가진 자가 적군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해 와서 아군을 살려낼 수 있고 전쟁에 승리를 가져오게 한다면 그 재주는 쓸모 있는 재주가 된다. 그러나 그가 그 재주를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일에만 활용한다면 그 재주는 아무 쓸모 없는 재주가 된다. 언변이 뛰어난 자가 타인을 설득하고 외교에서 상대국을 설득하여 국익에 도움을 가져온다면 그의 재주는 매우 쓸모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한다면 그 재주는 쓸모없는 것이 된다.
모든 문제는 재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재주를 가진 자가 재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와 관계된다. 재주의 활용 문제는 바로 그 재주를 가진 자의 도덕성과 가치관의 문제 즉 인덕(人德)의 문제이다. 그 어떤 재주든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진다. 재주를 세상과 사람에게 유익하게 활용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게 사용한다면 상을 줄 일이지만 그 재주를 남을 속이고 남을 유린하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게 사용한다면 처벌과 지탄(指彈)의 대상이 된다. 국내의 중요 산업 기술을 돈을 받고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는 연구원(지식인)은 나쁜 재주꾼이다.
재주 그 자체는 따지고 보면 가치 중립적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재주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그런데 모든 재주는 상황이라는 현실에 부딪쳐 사용되게 되어 있는데 그 상황이 어떤 것이냐의 문제는 달라진다. 재주를 사용하는 자가 상황을 잘 판단하여 유익하고 바람직하게 상황에 적용한다면 그 재주는 늘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상황에 적용할 때 사리사욕이나 사악한 마음으로 적용한다면 그 재주는 가치 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재주 즉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능력을 사용하는 당사자의 인격적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재주는 능력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진화하고 문명화되면서 재주(능력)는 많이 거론하고 따지는데, 그 사람이 가진 도덕성(인격)은 거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들 사이에 능력과 도덕성의 우위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논란은 진행형이다. 그러면서 늘 능력을 우위에 두려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능력은 도적이든 명검(名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지도자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부르짖으며 도덕성에 흠결을 가진 사람을 기용하려 한다. 이처럼 어쩌면 현대 문명사회는 도덕성(인격)보다는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여파는 참으로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권력과 자본 만능의 천민자본주의하에서 더욱 많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를 돌아볼 일이다. 문제는 재주 자체는 다 쓸모가 있지만, 재주를 사용하는 자의 인격에 따라 그 재주는 가치를 달리한다.
2. 다양한 인재의 세상
옛날에 비해 오늘날은 다양성의 사회다. 그 다양성만큼 사람들의 재주도 다양하다. 사람들의 재주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재가 다양하고 많다는 말이 된다. 단지 그 다양한 인재의 인격과 가치관의 문제만 도사린다. 그런데 많은 정치 지도자들, 정치에선 인재가 다양하지 못하고 인재난을 겪는다. 이는 정치에서의 지도자들이 마음을 열고 다양한 인재를 맞아들일 마음과 행동의 여유를 갖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이유는 당리당략과 아집과 독선과 독점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와 결을 조금만 달리하는 사람은 기용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한다. 결과는 자기들만의 인재 무덤에 묻히게 된다.
특히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는 능력 있는 인재가 많고 다양할수록 좋다. 나라의 일은 하나의 직선상에 있지 아니하며 다양한 결에서 다양한 삶과 사건과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다양한 인재가 등용되어야 정치적 오류를 줄이고 올바른 의사결정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인재가 획일적일 때가 좋다. 의사결정도 빠르고 지도자의 철학과 신념에 복종심도 강하여 추진력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에 있어 중대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러나 인재가 다양할 때 지도자의 신념에 복종심이 다소 약하여 의사결정이 늦고 비효율적인 측면이 나타날지라도 충분한 논의와 심사숙고를 할 수 있기에 결과는 오히려 좋아진다. 그리고 문제 해결 또한 획일적이지 않고 상황에 맞게 해결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예로부터 인재의 다양성은 통치자의 기본덕목이라 하였다.
지금의 세상은 정말 인재가 다양하다. 나이별로도 특정 나이에 국한되지 않으며 계층별로도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재를 영입하고 활용하는 사람인 나라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다양한 인재를 어떻게 기용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뿐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는 그런 인재 활용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3. 맹산군과 인재 활용, 그리고 계명구도(鷄鳴狗盜)
사마천의 사기 맹상군열전에 의하면, 진(秦), 초(楚), 제(齊), 한(韓), 위(魏), 조(趙) 등 여러 나라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전국시대의 중엽 맹산군은 제나라 사람으로 많은 식객(食客)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하다. 식객(食客)은 학문과 재주를 가진 선비들로서 권세가의 집에서 살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권세가에게 지혜와 지략을 제공하며 때로는 목숨까지 바쳐 충성하는 자들의 통칭이다. 그들은 때로 군주에게 천거되어 나라의 중요한 자리에서 정치의 뜻을 펴는 자들도 많았다.
맹상군은 왕족이었다. 설(薛) 땅에 제(齊)나라의 재상을 지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이란 대부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40여 명이 넘는 자녀가 있었다. 맹상군 전문(田文)은 그의 지체가 낮은 첩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였다. 그는 5월 5일에 태어났는데 당시의 속설로 ‘5월 5일에 태어난 자식은 부모에게 해를 끼친다’하여 정곽군은 아이의 탄생을 기뻐하기는커녕 아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다. 맹상군 전문(田文)은 그 많은 자제 중에서도 어릴 적부터 특출한 재주를 보였기에 정곽군(靖郭君)은 맹상군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이를테면 능력으로 자기의 자리를 확고히 한 사람이었다. 그런 맹상군은 능력만 아니라 사람을 포용하는 인덕이 높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덕으로 선정을 베풀었으며, 자신이 가진 막대한 재산을 아낌없이 쓰면서 인덕을 베풀었다. 그래서 맹상군 휘하에 식객(인재)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수가 무려 3,0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세력이 얼마나 컷는가를 알 수 있다.
맹상군 휘하의 식객들은 하나같인 천하의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를 자랑하는 호걸들이었다. 그중에는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주인공이 된 구도(狗盜-개도둑-좀도둑)와 성대묘사의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자도 있었다. 그들은 맹상군 휘하의 동료들로부터 조롱받기도 했으나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맹상군은 그들도 무시하지 않고 거느리고 다니기도 했다.
이런 맹상군의 인물됨과 명성은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침 진(秦)나라의 소양왕은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었는데 맹상군의 이러한 소문을 듣고 진나라의 재상으로 초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맹상군은 진나라 재상의 자리를 승낙하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고뇌하고 있었다. 그런데 휘하의 사람들은 재상을 승낙하지 말 것을 극구 간언했다. 한참을 고뇌하고 있던 맹상군은 드디어 자신이 진나라의 재상으로 가는 것이 모국(母國)인 제나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 진나라 재상의 자리를 승낙하였다.
맹상군이 진나라로 떠날 때 식객 중에서 재주 있는 자를 고르고 골라 몇 명만 데리고 갔다. 진나라로 갈 때 그는 아주 값이 비싼 호백구(狐白裘-흰 여우가죽으로 만든 털옷)를 선물로 가져가 소양왕에게 바치며 상면(相面)했다. 이에 소양왕은 약속대로 맹상군을 재상에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맹상군은 제나라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진나라의 재상으로 임명하면 훗날 진나라에 이득이 되지 못합니다.”라며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소양왕은 맹상군을 재상에 임명하는 일을 잠시 보류하였다.
맹상군은 진나라에서 때(재상이냐. 돌아가야 하느냐)를 기다리며 잠시 머물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 소양왕은 맹상군을 그대로 돌려보내면 약속을 어긴 졸렬한 군구가 될 것이고 또 약속을 어겼기에 맹상군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때 산하들은 맹상군을 그대로 돌려보내면 뒷날 보복이 있을 것이라며 맹상군을 몰래 죽이기를 주청하였다. 소양왕도 그 의견에 동의하여 맹상군을 몰래 죽이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맹상군은 살아서 돌아가기 위하여 궁리 끝에 소양왕의 총희(寵姬-총애하는 비)를 찾아가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총희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야 내가 왕께 여쭙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오. 그러나 나에게 무슨 보답을 해야 내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소?”
“무엇으로 보답을 하면 되겠습니까?”
“내게도 왕께 진상한 것과 똑같은 호백구를 주시오. 다른 것은 싫소.”
어디서 왕께 진상한 것과 똑같은 호백구를 구한단 말인가? 맹상군은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이때 그 사실을 안 식객 중의 한 사내가 맹상군의 앞에 나왔다. 그는 바로 구도(狗盜-개도둑)였다. 그날 밤 그는 귀신도 모르게 궁중에 잠입하여 호백구를 훔쳐냈다. 그리고 맹상군은 그 호백구를 총희에게 바쳤다. 영문도 모르는 총희는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져 좋아하면서 바로 소양왕에게 가서 온갖 애교와 응석으로 조르며 맹상군은 두어야 쓸모가 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소양왕은 곧바로 맹상군의 귀국을 승낙하였다.
맹상군 일행은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만약 총희에게 바친 호백구가 궁중에서 훔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혹시 왕의 마음이 변하여 귀국을 철회할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짐을 챙겨 진나라 서울인 함양을 떠나 국경지대인 함곡관(函谷關)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난 후 소양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맹상군의 귀국을 얼떨결에 허락한 것 같아 후회하다가 군사들을 시켜 맹상군 일행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진나라 군사들은 급히 맹상군을 추격했다. 맹상군 일행이 함곡관에 도착하였을 때는 먼동이 트기 전의 한밤중이었다. 당시 이 나라의 법으로는 첫닭이 울기 전에는 관문(關門)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위기가 닥쳤다. 맹상군은 중얼거렸다. “큰일 났구나, 여기서 지체하다간 추격병들에게 목이 달아날 수 있을텐데...”
때는 한밤중이라 새벽이 되어 닭이 울려면 까마득히 남아 있었다. 모두 해결책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불쑥 나타났다. 그 사내는 어둠 속에서 아주 자신만만한 자세로 나와 거침없이 인가(人家)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꼬끼오.....” 하고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내가 내는 닭 우는 소리가 실제 닭들과 얼마나 같은지 주변의 모든 닭이 덩달아 울어대었다.
관문을 지키는 병졸들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모든 닭이 울어대는 바람에 새벽이 왔다고 여기고 관문을 활짝 열었다. 맹상군 일행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말에 채찍을 가하여 거침없이 도망을 쳤다. 소양왕이 보낸 추격군이 도착하였을 때는 그들이 떠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었기에 더 이상 추격할 수 없어 포기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맹상군 일행은 목숨을 건지고 무사히 고향인 제나라고 돌아갈 수 있었다. 맹상군 일행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이 아니라 평소에 하찮은 인물로 조롱받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하찮은 인물을 자신의 몇 안 되는 행렬에 동참하게 한 것도 맹상군의 인재 활용의 다양성에 있었다.
4. 지도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떤 인재를 모으고 있는가?
러시아의 푸틴 주변 인물 특히 푸틴을 보좌하는 중요 인물들 80% 이상은 KGB 출신들이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푸틴과 같은 사고와 철학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철저한 KGB 적인 사고로 뭉친 푸틴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푸틴은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정치적 행보를 할 수 있으며 영구 집권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침공도 서슴치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초기에는 승산이 있는 것 같으나 지금은 구렁텅이에 빠진 발을 빼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전쟁을 종식하자니 체면이 말이 아니고 계속하자니 문제가 많다. 그들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유럽과 서방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계기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심만 고취시켰다. 자국에선 전쟁 반대의 목소리만 높혔다. 장기전으로 갈 때 체면만 구기고 장기 집권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일들은 푸틴의 인재 등용이 획일적으로 자기와 결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만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의사결정의 합리성보다는 효율성에만 빠지고 말았다. 푸틴은 주변 인물들 대부분을 자기에게 충성하는 자기와 동일계열의 KGB 출신으로 채웠기에 권력의 자아도취에 쉽게 푹 빠졌다. 권력이 자아도취에 푹 빠져버리면 결말은 위태롭다.
의사결정이론에서 최상의 의사결정을 하려면 지도자는 ‘악마의 대변인’을 심어야 한다고 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건강하게 ‘아니오(NO)’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심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지도자의 의중보다는 오로지 합리적 결정을 위한 견해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현명한 지도자는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하거나 말을 막지 않고 존중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랬고 링컨도 그랬다. 그렇게 하려면 인재를 다양하게 등용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재들이 모이게 하는 덕(德)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와 그 주변의 핵심 인물들이 지도자의 능력과 덕망을 아무리 선전해도 인재를 다양하게 구하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것만 못하다. 인재를 다양하게 구하고 존중하고 소통하면 능력과 인덕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맹상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맹상군은 진나라로 갈 때 불과 몇 명의 인재를 데리고 가는데 3,000여 명이 넘는 인재 중에서 하찮은 개 도둑과 닭 우는 소리의 명수를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도 맹상군의 인재관이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은 체면이 서는 선비와 학자 등을 중심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지만 맹상군은 달랐다. 그랬기에 그는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능력 있고 다양한 인재는 지도자의 능력만 보고 모이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덕망을 보고 모인다. 그래서 덕(德) 있는 지도자는 인재를 모으고, 간사(奸詐)한 지도자는 인재를 떠나보낸다. 덕 있는 지도자에게는 덕 있는 인재가 모이고 간사한 지도자에게는 간사한 인재가 모인다. 덕 있는 지도자에게는 의리 있고 충성스런 인재가 모이지만 간사한 지도자에게는 간사한 인재가 모이기에 그들은 이익이 다하면 거침없이 떠나버린다. 따라서 지도자를 평가하려면 주변에 어떤 인재가 모이는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
국민은 덕과 재능이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지도자를 뽑으려면 그의 주변에 어떤 인물이 모이는가를 보아야 한다. 재주를 가진 자가 모두 쓸모 있는 것은 아니다. 재주를 가진 자가 그 재주를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르게 활용할 줄 알 때 그 재주는 빛이 난다. 거짓과 기만을 일삼고 말과 행위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재주는 흉기가 될 수 있다.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자가 모이는 지도자 역시 거짓과 기만으로 뭉친 자라 할 수 있다. 강도에게는 강도의 능력이 있는 자가 모이며 사기꾼에게는 사기꾼의 능력이 있는 자가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의 지도자들이여! 지도자를 자처하는 자들이여!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서 국민 앞에 유세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정말 덕과 재주가 있는 인재인가? 그리고 그대는 정말 덕과 재주가 있는 인재를 다양하게 모으고 있는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장 지도자의 꿈을 버려라. 그것이 진정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애국의 길이다. 오늘 맹상군의 고사에서 다시 배워라.
▶️ 鷄(닭 계)는 ❶형성문자로 鶏(계)는 통자(通字), 鸡(계)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奚(해, 계)로 이루어졌다. 새벽을 알리는 새(鳥)의 뜻이 합하였으며 닭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鷄자는 ‘닭’을 뜻하는 글자이다. 鷄자는 奚(어찌 해)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奚자는 상투를 손으로 잡은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닭 볏으로 응용되었다. 사실 갑골문에 나온 鷄자는 좀 더 직관적이었다. 닭 볏과 다리, 꽁지까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도 이것이 닭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닭의 볏은 奚자가 대신하게 되었고 隹(새 추)자가 더해지면서 볏이 있는 새를 뜻하는 雞(닭 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서에서는 隹자가 鳥자가 바뀌면서 지금은 鷄자가 ‘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鷄(계)는 ①닭(꿩과의 새) ②화계(花鷄: 되새. 되샛과의 겨울 철새) ③폐백(幣帛)의 하나 ④성(姓)의 하나 ⑤현(縣)의 이름 ⑥산(山)의 이름 ⑦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닭의 알 달걀을 계란(鷄卵), 닭의 울음을 계명(鷄鳴), 닭고기를 계육(鷄肉), 닭을 가두어 두는 장을 계사(鷄舍), 닭과 개를 계구(鷄狗),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의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의 계구(鷄口),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계간(鷄姦), 밤눈이 어두워 밤에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계맹(鷄盲), 닭을 잡아서 그 뼈나 눈을 보고 치는 점을 계복(鷄卜), 닭이 새벽을 알림을 계신(鷄晨),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을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으로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을 계구(鷄口), 닭의 무리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계군(鷄群), 독서하는 방을 계창(鷄窓),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집에서 기르는 닭을 가계(家鷄), 닭을 잡아서 죽임을 도계(屠鷄), 싸움 닭을 투계(鬪鷄), 썩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장을 빼고 털을 뽑고 얼린 닭을 동계(凍鷄), 묵은 닭을 노계(老鷄), 때 아니게 낮에 우는 닭을 오계(午鷄), 어미 닭을 모계(母鷄), 털이 흰 닭을 백계(白鷄),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한 사람을 계군일학(鷄群一鶴),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계군고학(鷄群孤鶴),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으로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을 계란유골(鷄卵有骨), 동쪽 닭과 서쪽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닭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여 인가가 잇대어 있음을 계견상문(鷄犬相聞),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뜻으로 인가나 촌락이 잇대어 있다는 계명구폐(鷄鳴狗吠),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계명구도(鷄鳴狗盜), 닭 울음소리를 묘하게 잘 흉내 내는 식객을 계명지객(鷄鳴之客),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을 계구우후(鷄口牛後), 닭 울음의 도움이란 뜻으로 어진 아내의 내조를 계명지조(鷄鳴之助), 살갗은 닭의 가죽처럼 야위고 머리칼은 학의 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늙은 사람을 계피학발(鷄皮鶴髮),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으로 같은 고향 사람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함을 계돈동사(鷄豚同社), 닭과 집오리가 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뜻으로 여염의 사람들이 서로 다툼을 계목쟁식(鷄鶩爭食), 닭 대가리는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남의 위에 서야지 남의 꽁무니에 따라 다녀서는 안됨을 계시우종(鷄尸牛從),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함을 계골지상(鷄骨之床), 다른 사람의 권세에 빌붙어 승진하는 것을 계견승천(鷄犬昇天), 맨드라미 열매의 과육이라는 뜻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계두지육(鷄頭之肉) 등에 쓰인다.
▶️ 鳴(울 명)은 ❶회의문자로 鸣(명)은 간자(簡字)이다. 鳥(조)는 새의 모양으로, 나중에 꼬리가 긴 새를 鳥(조), 꼬리가 짧은 새를 새추(隹; 새)部라고 구별하였으나 본디는 같은 자형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 것이며 어느 쪽도 뜻에 구별은 없다. 한자의 부수로서는 새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수탉을, 口(구)는 입, 소리로 수탉이 때를 알리는 모양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鳴자는 ‘울다’나 ‘(소리를)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한자를 이해하는 팁 중 하나는 글자 앞에 口(입 구)자가 있으면 대부분이 ‘소리’와 관련된 뜻이라는 점이다. 鳴자가 그러하다. 鳴자 역시 口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것으로 새가 우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수탉이 운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鳴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鳴자를 보면 口자와 함께 닭 볏이 강조된 수탉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수탉이 鳥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鳴(명)은 ①새가 울다 ②울리다 ③소리를 내다 ④부르다 ⑤말하다, 이야기하다 ⑥이름을 날리다 ⑦놀라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울리어서 진동함을 명동(鳴動), 마음에 느껴 사례함을 명사(鳴謝), 북을 쳐서 울림을 명고(鳴鼓), 산 비둘기를 명구(鳴鳩), 혀를 참을 명설(鳴舌), 종을 쳐서 울림을 명종(鳴鐘), 고운 목소리로 우는 새를 명금(鳴禽), 우는 학을 명학(鳴鶴),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짐을 명향(鳴響), 원통하거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여 나타냄을 명로(鳴露), 코를 곪을 명비(鳴鼻), 큰 소리를 내며 뒤흔든다는 명흔(鳴掀), 갑작스러운 위험이나 두려움 때문에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비명(悲鳴), 남의 생각이나 말에 동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는 생각을 일으킴을 공명(共鳴), 저절로 소리가 남을 자명(自鳴),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바다에서 들려 오는 먼 우레와 같은 소리를 해명(海鳴), 땅 속의 변화로 산이 울리는 소리를 산명(山鳴), 때를 알리는 종이 울림을 종명(鐘鳴), 사이렌 등을 불어 울림을 취명(吹鳴), 새가 소리를 합하여 욺으로 여러 가지 악기가 조화되어 울림을 화명(和鳴), 외손뼉은 울릴 수 없다는 고장난명(孤掌難鳴),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계명구도(鷄鳴狗盜),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래킨다는 일명경인(一鳴驚人),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개구리와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댄다는 와명선조(蛙鳴蟬噪) 등에 쓰인다.
▶️ 狗(개 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句(구)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狗자는 ‘개’나 ‘강아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狗자는 犬(개 견)자와 句(글귀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句자는 말뚝에 줄이 엮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개를 뜻하는 글자로는 이미 犬자가 있기 때문에 狗자가 따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다.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서는 이에 대해 큰 개는 犬으로 불렀고 작은 개는 狗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狗자는 이와는 관계없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개’나 ‘강아지’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狗(구)는 ①개(작은 개) ②강아지 ③범의 새끼 ④곰의 새끼 ⑤개새끼(행동이 나쁜 사람 비유) ⑥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개고기를 구육(狗肉), 개의 간을 구간(狗肝), 개장국을 구장(狗醬), 바닷 장어를 구어(狗魚), 너구리를 구환(狗獾), 개의 목에 다는 방울을 구황(狗鎤), 개의 가죽을 구피(狗皮), 개의 쓸개를 구담(狗膽), 개가 앓는 돌림병을 구역(狗疫), 개고기를 쪄서 만든 음식을 구증(狗蒸), 개와 돼지를 구체(狗彘), 개를 통째로 진하게 고아 낸 국물을 구고(狗膏), 개를 잡음을 구도(狗屠), 개가 짖음을 구폐(狗吠), 개와 말이라는 뜻으로 신하가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을 구마(狗馬), 개와 쥐의 뜻으로 인격이 비천한 사람을 구서(狗鼠), 개나 말이 그 주인에게 다하는 충성심이라는 구마지심(狗馬之心),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뜻으로 한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을 구맹주산(狗猛酒酸),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는다는 뜻으로 쓸 만한 인격자가 없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고관에 등용한다는 구미속초(狗尾續貂), 개밥의 도토리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톨이가 되는 것을 구반상실(狗飯橡實) 등에 쓰인다.
▶️ 盜(도둑 도)는 ❶회의문자로 沇(연; 침을 흘리다)과 皿(명; 그릇)의 합자(合字)이다. 접시 속의 것을 먹고 싶어 군침을 흘리다, 전(轉)하여 훔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盜자는 '훔치다'나 '도둑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盜자는 마치 次(버금 차)자와 皿(그릇 명)자가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盜자의 갑골문을 보면 次자 아래로 舟(배 주)자가 그려져 있었다. 次자는 입을 벌려 침을 튀기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갑골문에 나온 盜자는 배 위에 침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舟자가 皿자로 잘 못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盜(도)는 ①도둑 ②비적(匪賊: 떼지어 다니는 도적) ③도둑질 ④훔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몰래 엿듣는 도청(盜聽), 남의 명의나 물건을 몰래 쓰는 도용(盜用), 도둑 맞는 재난을 도난(盜難), 남의 산의 나무를 몰래 베어감을 도벌(盜伐), 훔친 물건을 도물(盜物), 남 몰래 사람을 죽임을 도살(盜殺), 몰래 엿봄을 도시(盜視),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을 도벽(盜癖), 폭행이나 협박 등의 수단을 써서 남의 재물을 빼앗는 도둑 또는 그러한 행위를 강도(强盜),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일 또 그 사람을 절도(竊盜),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침 또는 그 사람을 투도(偸盜), 개처럼 몰래 들어가 훔치는 도둑을 구도(拘盜), 나라의 보물을 훔치는 도둑을 방도(邦盜), 잡히지 않고 남은 도둑을 잔도(殘盜), 도둑은 주인이 자기를 제지하여 재물을 얻지 못하게 하므로 이를 미워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다만 자기 형편에 맞지 않으면 이를 싫어한다는 말을 도증주인(盜憎主人), 도둑에게도 도둑으로서의 도리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도역유도(盜亦有道), 제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하나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엄이도종(掩耳盜鐘), 남의 시문을 표절하여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슬갑도적(膝甲盜賊),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계명구도(鷄鳴狗盜),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궁해도 불의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인데, 도덕률의 엄격한 준행을 이르는 말을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더워도 나쁜 나무 그늘에서는 쉬지 않으며 목이 말라도 도盜란 나쁜 이름이 붙은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곤란해도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음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악목도천(惡木盜泉), 일부러 문을 열어 놓고 도둑을 청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화를 불러 들인다는 말을 개문읍도(開門揖盜)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