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파묘 (破墓)
최근에 개봉되어 1000만 관중을 넘어 인기리에 상영 되었던 영화 “파묘”는
장재현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고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이 주연을 맡은
2024년 대한민국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이 영화는 불길한 무덤의 발굴 과정을 따라가며,
그 무덤 아래에 묻혀 있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답게.. 파묘는 오컬트 영화이다.
오컬트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컫는 말로 주로 무당이나, 주술 같은
영적인 현상을 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논리적이지도.. 이치에 맞지도 않지만..
실제 하는 것들의 일화는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은근 보편적 정서인 오컬트는
잘 만들면 흥행에 성공하기 쉽지만.. 그러기에 내용이 조잡하거나 비현실적이라면
관객의 외면을 받기도 쉬울듯하다. 소재도 참신했고, 연출도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고 훌륭했다.
따라서 국제 영화제에도 출품 할 만큼 큼 인기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풍수지리설을 숭배하여 조상의 묘를 좋은 명당에 모시고
그래야 자손이 번성하고 잘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오래전에는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조상의 묘를 이장한 예도 우리는 알고 있다. 참으로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에 물들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숭배를 제일로 여겨 왔다.
파묘란 옮기거나 돌아가신 분의 묘를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내는 것을 말한다.
대개 무덤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기 위해 행하여진다.
파묘를 할 경우라도 반드시 묘 주인이 파다가 이장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요즘은 묘를 조성하지 않고 대부분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유골 분을 바다에
뿌리기도 하니 봉분을 조성하지 않는 요즘 추세로 보면 파묘라는 말은 오히려 전문적이거나
이미 상용되지 않는 말이다.
우리 가족의 선산은 아버님 고향인 천안에 있었으나 고속도로 개설로 없어져
선산이 없다가 북한산 신세계공원에 묘지를 구입하였다. 앞에는 장흥 유원지가 있고
멀리 도봉산과 백운대가 보이는 좋은 곳이었다. 50년 전 아버님이 67세로 돌아가셔서
그곳에 안장시켜드렸고 30년 전에 어머님을 그곳에 합장 시켜드렸다.
그곳에 가려면 위에 있는 작은 주차장에서 300미터쯤 험한 산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상당히 힘든 곳이었다, 몇 년 전에는 내가 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내려가다가
넘어져 골절로 몇 달 동안 고생을 하여 산소를 이장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3년 전에 성남에 새로 개장한 가족 납골공원을 매입 하였다.
마침 금년이 윤년이어서 이장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파묘를 하고 화장을 하여 옮기는데
코로나 유행으로 사망자가 많아 화장터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마침 코로나도 사라지고 수소문하여 금년 봄에 이장하기로 날짜를 받았다.
내가 믿는 천주교에서는 화장을 금하고 있지만, 좁은 땅에 산소가 많으면 국토를 이용하는데
지장도 많아 지금은 세태가 많이 변하여 신부님들도 화장을 하고 이를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4월이 되어 매년 가던 한식날 성묘도 가지 않고 20일경에 파묘하고 이장하기 로하고
옛날 풍습 같으면 자손들이 모두 참여하여 제도 올렸지만, 큰아들과 나만이 아침 일찍
파묘하는 곳에 가서 작업을 시작 하였다. 거의 2시간에 걸쳐 파묘를 끝내고 보니
아버님 유골은 모두 있는데, 어머님의 관은 그대로 있었다. 영화 파묘에서 본 이상한 것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돌아가신 두 분의 모습이 떠오르고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되는 것을 생각하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두 분의 유골을 창호지에 싸서 거두고 장례차로 벽제 화장장으로 갔다.
화장장은 그날 예정된 화장이 밀려있어 가장 늦게 차례가 왔다. 전에도 몇 번 가본 화장장이
지금은 현대식으로 새로 건물도 짓고, 옆에는 가족들이 쉴 수 있는 추모공원도 있었다.
차례가 되어 화장하는데 1시간가량 되니 유골이 나와 이를 기계로 가루로 만들어 미리 준비하여 간
유골함에 넣어 늦은 시간이라 집으로 모셔왔다. 화장을 하고 나니 한줌의 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살아생전 얼마나 생로병사에 신경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다음날 성남에 있는 납골 공원묘지에는 형제 가족이 모두모여 공원 측에서 임원이 나와 추모사도 하고
안장 하였다. 끝내고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온가족이 차례로 제주를 따라드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번에 걱정하던 큰 행사를 하고나니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시골집에서 좋은 아파트로 옮겨드린 것 같고
앞으로 우리 형제가족이 한데모여 하느님의 은총 속에 같이 영생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가끔 죽음이라는 단어를 앞에 놓고 숙연한 상념에 젖기도 한다. 주변에 무슨 사건사고가 있을 때
맨 처음 묻는 말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느냐는 물음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인간이 겪어야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엄연한 질서 속에서
어느 누가 그 흐름의 질서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팠고,
그리고 어떻게 죽었다는 원론적 얘기 속에서도
유독 신경이 머무는 곳이 죽음에 대한 뒷얘기 들이다
최종현(1926~1998) SK회장은 폐암으로 고생하다가 재발하자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거부하고
자택에서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룹총수로서 할 수 있었던 호화스런 장례를 마다하고
화장(火葬)을 선택해 우리나라 장례문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
소설가 박경리(1926 ~2008)는 항암치료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쓰며 생을 마쳤다.
그의 마지막 시집 ‘옛날의 그 집’이란 시에서 ‘모진세월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읊었다.
2009년 선종한 김수한 추기경도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일체의 생명연장 조치를 거부했다.
선도적인 삶을 살아온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실천한 장례의식과 죽음을 대하는
웰다잉의 마음가짐이 자칫 낭비가 심한 장례문화를 바꿔놓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소란스럽고 요란하게 치루는 호사스런 장례식보다 애도의 참마음이 아름다워 보이는
작은 장례의식이 자리 잡는 장례문화가 하루속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첫댓글 이 글은 앞으로 계간 수필춘추 여름호에 계재 할 글입니다.
제가 파묘란 영화를 못보았는데...
여기서 자세히 알게 됩니다.
아버님 고향이 천안이었군요.
제 고향도 천안에서 가까운 아산입니다.
거기에 선산이 있는데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곁에
합장하여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함께 계셔요.
성남이면 가깝네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제물을 차려 놓고
고인의 명복을 비셨으니 잘하셨습니다.
계간지에 올릴 글 미리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