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유인경의 ‘오십 너머에도’
안 읽었더라면 망신당할 뻔한 책이 있다.
방송인이며 작가인 유인경이 짓고 ㈜테라코타에서 2024년 5월 12일에 초판 1쇄를 발행한 ‘오십 너머에도’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 제목에 이어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라는 글을 더 보태고 있어서, 그 둘을 합하면 모두 스물세 자의 이런 제목이다.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
내가 그 책을 읽게 된 것은 우리 문경중학교 17회 동문인 정도신 후배가 내게 띄워 보내준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2024년 5월 18일 토요일에 띄워 보내 준 것으로, 이런 내용이었다.
유인경의 책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 발행일(5/12) 일주일 만에 현재 몇 백 권의 국내도서 중 50위(자기계발 7위)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은근히 욕심이 생긴다.. 아직 홍보도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으로 장한 일이 아닌가.. 수년전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을 거머졌을 때 환하게 웃던 그런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그래서, 이번 판에는 기꺼이 끼어들고 싶다. 방법은 내가 외판원으로 변신하는 방법.ㅋㅋ -첫째- 내 편지(ㅋ)를 보시는 당신께서는 구입을 하셔야 해요. 이유인즉, 나를 알고 지내온 시절이 당신의 인생길에도 쬐끔이라도 기록 돼 있을 터이니... 이런 말에는 적당한 표현이 있죠. 'Jiral' 이 소리가 들려와도 난 전차처럼 밀어 붙일 것이다. 양해, 이해 다 해 주시라 ^^ -두 번째- 10% 활인 받으며 편하게 주문과 배송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방법의 메시지를 보낼께요. 개인적으로 나만 한권 사서 볼꺼야 하시는 분은 서점에 나들이 삼...‘
거기까지만 읽었다.
더 이상은 안 봐도 빤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15년 전으로 거슬러 정 후배의 소개로 인연이 된 나와 유 작가의 평소 친분으로 봐서도 그렇지만, 정 후배의 그 메시지에 담긴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그 책을 구매해서 읽어봐야 했다.
곧장 이렇게 답장을 썼다.
‘그렇지요. 덕분에 내 이름 날린 게 어마어마.. 단박에 한 권 주문. 그리고 다 읽고 독후감 쓸 것임’
유 작가가 이전에 경향신문 부국장으로 언론인 현직에 있을 때, 당시 집행관이었던 나를 취재해서 전면 기사로 게재함으로써 내 이름을 경향각지에 소문내준 그 귀한 인연을 생각한 것이다.
곧장 온라인 구매로 그 책 한 권을 구매했고, 그 이튿날로 배송을 받았다.
‘남은 날들을 스스로 반짝이는 프리미엄 피리어드Premium Period로 만드는 21가지 지혜’
책 표지에 그러한 설명문이 있었다.
책의 제목과 그 설명문만으로도 그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나를 엄마로 또 할머니로 만들어 준 내 딸 유라에게’
유 작가는 책의 맨 첫 장에 그렇게 써놓고 있었다.
딸 유라를 위한 선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딱 그 한 줄 글로 인해서, 나는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 준 아내에게 감사해야 했고, 나를 할아버지로 만들어준 두 며느리에게 감사해야 했다.
이어서 유 작가는 ‘스스로 금빛으로 반짝이는 최고의 시기’라는 제목의 서문을 썼다.
다음은 그 첫 대목이다.
나는 64세다. 곧 65세가 된다. 비틀스의 노래 ‘When I’m 64’를 처음 들었던 20대에 64세란 나이는 내게 화성이나 목성처럼 아득하고 먼 곳, 그러나 정중한 초대장을 받아도 절대 찾아가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폴 매카트니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당신은 내가 늙어 머리카락이 빠졌을 때도 발렌타인이나 생일에 카드를 보내줄 건가요”라고 노래했지만, 그 가사는 너무 씁쓸했다.//
그렇게 노년에 대해 부정적 묘사로 글을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비틀즈가 불렀다는 ‘When I’m 64’라는 노래를 생전 처음으로 들어볼 수 있었다.
유 작가는 그 노랫말이 씁씁했던 그 이유를 이렇게 풀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장 가까이서 만난 우리 할머니들(할아버지들은 모두 돌아가셨다)의 지금 내 나이 때 모습은 쪽진 머리에 한복, 주름진 얼굴에 희로애락을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셨다. 그리고 내가 일했던 신문사를 비롯해 매스컴에 등장하거나 묘사되는 노인들은 자글자글 구겨진 얼굴의 살아 있는 미라, 나잇값도 못 하는 철부지, 고집과 심술로 굳어진 표정, 탑골공원에서 친구도 없이 멍하니 하늘만 보며 앉아 있는 할아버지 경로당에서 화투 치다 싸우는 할머니, 보이스피싱이나 다단계 사기의 어리석은 피해자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 사회는 이 어르신들에게 나이에 맞는 관대함, 포용, 존경할 만한 미덕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곧 반전이 있었다.
나이 들고 늙어 가는 것이 생각만큼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고 했다.
청춘 시절을 찬란하지 않고 미지근하게 보내서 사라진 젊음에 미련도 없다 했고, 오히려 나이 들어서야 명랑하고 낙천적인 자신의 성격이 장점으로 받아들여지고 뻔뻔함도 용서되어 감사하다고 했고, 할머니가 되어 손자와 보내는 시간에 기쁨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노년이 긍정적인 것에 대해, 그 구체적인 사례를 이렇게 예시하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그럭저럭 순응하며 은행 창구에 가지 않고 앱으로 계좌이체도 척척 한다. 똑비(똑똑한 비서란 뜻이란다)란 앱을 다운 받아 딸 도움 없이 비행기나 고속버스표 예매도 해결한다. 운전을 못하지만 카카오택시로 곳곳을 다니고 쿠팡으로 다음날 아침 찬거리를 주문한다. 임영웅 팬이기도 하지만 BTS 멤버의 이름과 본명을 알고 그들의 신곡과 해외반응을 체크한다. 지인들과 ‘핫 플레이스’라는 식당에 가고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예술의 날에 전시회에 함께 가는 모임에 참석해 데이비드 호크니부터 홍대 대학생들의 작품전도 감상한다. 정년퇴직한 지 10년 차에 들어서지만 무기력하고 무채색의 날들을 보내지 않는다. 아니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알록달록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원하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 스트레스 지수도 줄었다.//
유 작가는 이 책에서 바로 그런 사연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풀어낸 사연의 주인공들은 대충 이런 이들이라고 했다.
나는 64년의 삶을 살았고 1982년부터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노인과 어르신을 직간접으로 만났다. 최근에 만난 어른들, 중장년층은 자신의 숫자상의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악착같이 젊거나 어려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현재 자신이 맡은 연극의 역할과 출연하는 구간에 자신의 진짜 얼굴과 목소리를 내며 충만함을 느끼려고 한다. 그들에게 연극의 공연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배역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이다.//
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태어난 출생연도 혹은 UN이 정한 생애 주기로 청년 중년 등을 나누기보다는 피리어드Period, 즉 주체적으로 삶의 구간과 시대를 정해볼 것을 제안하면서 알파벳 ‘P’자로 시작하는 많은 단어들을 골라 삶의 구간에서 필요한 자세를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생각해본 결과, Present(현재), Prestige(품격), Peaceful(평화로운), Purpose(목적의식), Premium(프리미엄), Potential(잠재력), Pick(선택), Phenomenal(경이로운), Positive(긍정적인), Pleasure(기쁨), Prize(포상), Pass(패스), Power(힘), Peak(절정), Passion(열정), Playful(재미있는), Private(사적인), Precious(소중한), Polite(정중한), Provide(제공하다), Partner(동반자)해서, 모두 21개의 항목이 된다고 했다.
그것이 4부로 나누어진 이 책의 목차였다.
유 작가는 서문의 끝을 대문호 괴테가 후배들에게 한 말 한마디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곧 이랬다.
“사는 동안은 사는 것처럼 살아라!”
나는 이 책의 제목과 서문과 목차의 내용으로 봐서, 아무래도 나에 대한 언급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PART1 ‘최상의 구간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라는 그 첫 글부터 세심히 살피면서 읽어나갔다.
그 첫 글부터가 감동이었다.
“현재예요. 매일의 모든 것에.....”
1997년 122세의 나이로 사망해 아직까지는 현대인 가운데 가장 최고령까지 생존한 인물로 기록된 잔 칼망 할머니가 120세 생일에 “무엇에 가장 관심이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짧게 답했다는 것이다.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을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유 작가의 분명한 의도였다.
나에 대한 언급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31쪽에 그 언급이 있었다.
유난히 ‘사람 부자’인 어른이 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등산, 여행, 음악회 등 취미활동을 한다. 그 분은 인생의 좌우명이 ‘퍼뜩 생각, 후딱 행동’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면 즉시 전화를 걸거나 문자라도 보내고, 뭔가를 알려줘야 할 때도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곧바로 시행한다는 것이다. ‘나중에’란 시간을 우리가 못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그 어른으로 지목된 사람이 곧 ‘나’인 것은, ‘퍼뜩 생각, 후딱 행동’이라는 그 좌우명을 내가 유 작가에게 직접 전해줬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에서 책을 덮었으면 정말 망신당할 뻔했다.
좀 더 뒤로 책장을 넘겨 가면, ‘기원섭’이라는 내 이름 석 자를 직접 거명하면서 쓴 글이 있기 때문이었다.
71쪽에 실린 글로 곧 이렇다.
수사관 출신인 기원섭 선생은 ‘수사관 일지’라는 블로그를 연재할 때 인터뷰했던 인연으로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직업에 어울리는 약간 무섭고 무뚝뚝한 인상과는 달리 그는 책이나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동료들과 나누고 각종 문화행사에도 참여하고 국내외 여행도 자주 다닌다. 70대 중반인 지금도 MZ세대들과 독서 모임도 하고 후배들과 교류한다.
“늘 범인이나 피의자를 만나야 하는 수사관 생활에서도 문화나 예술에 목말랐던 나는 책이나 영화 등에서 다른 인생을 발견하기도 하고 예술이 주는 황홀감도 만끽했습니다. 덕분에 범인을 조사할 때도 더 깊게 그들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도 있었고 삭막한 현대생활에 낭만도 찾았습니다."//
이렇게 나를 책 속에 등장시킨 유 작가가 참 고맙다.
유 작가는 매 PART의 끝에 명언들을 한 꼭지씩 인용하고 있었다.
다음은 인용된 4꼭지의 명언들이다.
삶은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의 합계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절실하게 희망해 왔는가의 합계이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되찾을 수 없는 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한다.- 법정스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나무와 구름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 틱낫한
등 뒤로 불어오는 바람, 눈앞에 빛나는 태양, 옆에서 함께 가는 친구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 - 에런 더글러스 트림블
유 작가는 인도 격언에서 변형시킨 말 한마디로 251쪽의 이 책을 끝맺고 있었다.
유 작가의 세월보다 훨씬 앞서가는 망팔(望八) 나이의 내게 있어서도 멘토의 조언 같이 들린 그 한마디, 곧 이 말이었다.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