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가 넷달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추억여행을 떠났다. 하늘엔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안개비가 차창에 가만히 내려앉는 일요일 아침 분위기또한 안성맞춤이다. 만어사! 내고향 삼랑진으로 가기위해 신대구 고속도로에 발을 올리고 시속 1만 6천Km의 속력으로 타임머신은 과거를 향한다. 더 오래전의 기억을 더음으며 상동ic에서 낙동강을 타고 흐르는 좁은 강변도로를 달렸다. (사실 이코스는 오늘계획에 없었지만 내 머리속의 나침판이 고장나서 어쩔수없다고 함께한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강건너 원동역이 파란현대식 지붕을 머리에이고 길게 누운두가닥 철로를 따라가고픈 심정을 억누르며 바라보고 있다. 생림면 도요리 음실마을 어쩌면 필연적으로 향할수 밖에 없는 걸음이었을까? 다섯살 어린 나이때부터 시작된 기억을 더듬으며 언젠가 다시 와보리라 마음먹은 세월. 수십년을 간직하고 아쉬워한 아련함. 과거를 향해 구르던 바퀴는 생림 중학교뒤로 뻗어있는 좁은 도로를 매일 다니던 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간다. 무척산 서쪽 능선을 타고넘는 도로는 돌투성이 산길이었다. 경운기에 짐을싣고 넘나들때는 길이 너무 험하여 혼자힘으로 오르기 쉽지 않았다. 해질녘 내 또래의 마을 아이들이 산너머 생림 중학교에서 돌아오는길에 밀어주곤 하던길이다. 그 길이 이렇게 넓고 편안한 아스팔트로 쉽게 접근을 허락한다. 그런데, 왜! 여태 와보지 못했을까? 과거에의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렇다. 그 두려움이다. 그냥 간직하고픈 사랑의 추억처럼 혼자 안고있고 싶어서였다. 산마루에 올라서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같던 그 낙동강이 가슴에 안긴다. 농장을 일구던 강변들녂엔 내가 그리던 흔적은 지워지고 없다. 나의 부모님도 떠나고. 키큰 버드나무도 없고. 길다랗게 누워있던 포도밭도 없다. 눈부시던 모래사장도 없고 언덕한켠에 있던 왕대밭도 없다. 강언덕엔 길다란 둑이 만들어져있고 지금도 공사중이다. 산허리에 있는 마을엔 상람진 천주교 공소가 있었다. 7살때 미국 선교사에게 1원에 팔려 갈뻔한 그곳. 찡그린 얼굴로 사진을 찍었던 그곳이다. 지금은 어느건물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도요나루터 쪽으로 굽어돌던 길끝에는 새로이 단장된 잔디밭과 벤치가 있다. 그곳에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안개비는 그쳤는데 내 눈이 뿌옇게 흐려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다. 만어사로 가기로한 약속이 나로인해 이곳으로 차를 돌리게 했고 그들은 영문도 모른채 내 추억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진달래 강물에 묻히고 저 바위아래 깊은곳 푸르디 푸르던 강물은 어디로 흘러들고 남은 것은 안개비 젖은 꽃이련가 사 월의 푸른 물결이 무서워서 산위로 도망가던 연분홍 진달래는 피고 또 진지 서른번의 흔적 그 마지막 모습은 또렷하고 서른번하고 두달 검푸른 물결에 꽃. 꽃도 묻히고 없다.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노젓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강을 건너는것은 어린나이의 도전이자 즐거움. 그리고 자랑이기도 했다. 해질녘 서쪽하늘과 경전선 철교에 걸리는 태양은 커다란 다리를 녹여내듯 붉게 이글거리고 강물은 끓어 넘쳤다. 조개잡이 배 몇척이 끓는 물을피해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을 것이다. 어둠을 맞으러 강물은 또 검게 숯덩이가 된다. 이제는 신대구 고속도로에 가려서 철교는 잘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만의 꿈에서 깨어보니 괜히 멋적다. 뜨거운 커피한잔으로 쑥스러움을 달래고 만어사로 발길을 돌렸다. 압록강 철교같은 낙동강 다리를 건너 모교인 송진초등학교를지나 삼랑진역앞으로 돌아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가니 우곡리와 단장면 감물리 갈림길이다. 직진하여 만어사 쪽으로 향한다. 꾸불꾸불 올라가는 도로는 좁기도하고 비탈지기도 하다. 시골농장의 여백같은 만어사 앞마당은 많은 차들이 올라와있다. 느티나무아래에 거북돌이있어 천원한장올리고 가만히 들어보니 예사무게가 아니다. 소원이라도 빌어볼걸 그랬나, 법당에 참배드리고 고개드니 좌우에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을 거느리신 부처님의 미소가 37년전의 그미소 인듯 방긋이 웃으신다. 뒤돌아 나와 미륵전에 들어서니 초등학교 5학년때 봄 소풍와서 올려다본 그 바위다. 그때기억은 그냥 자라는 돌이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신기하다고 생갔했다. 미륵불이라는것은 몰랐다. 정말 자세히 들여다 보니 붉은 가사를 걸친 부처님의 옆 얼굴이 나타난다. 대웅전 쪽을 바라보고 계신다. 한번쯤 돌아보실만도 하건만 천년 세월을 한결같이 서쪽으로 돌아 앉아 계신다. 마당아래로 쭉 늘어선 돌들. 아! 만어사다. 이래서 만어사다. 魚山佛影이라 했던가! 소풍와서 돌들고 돌두드린 기억이 너무나 새롭다. 탁탁탁. 탱탱탱. 그소리도 가지 각색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두드리고 있다. 종소리가 난다고 해서 鐘石이라고도 한다. 만마리의 고기가 엎드려 도를 닦고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라고 중간에 길을 내놓았다. 되돌아 내려오는길에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아쉬워서 였을까? 고픈배를 달래며 얼음골 가기전 작은강 다리 아래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멋진 가든 파티다. 돌틈사이로 흐르는 물결은 수정처럼 맑다. 하얀 수정속에 물고기가 이리저리 노닌다. 잔잔한 바람이 이쪽 저쪽 장난스럽게 어깨를 짚고 지나간다. 간월재에 오르다 개울에서 빠져나온 차는 석남터널을 통과하며 지난가을 영남알프스 종주때 이규호 대장님. 문태균 부장님과 함께 달빛에 소주잔 부딪히던 간월재로 향했다. 천지는 온통 운무에 쌓여 산과나. 나와산을 떼어 놓으려고 무척 애를쓴다. 비포장도로를 20여분 오르니 마침내 나무데크를 깔아놓고 새단장한 간월재다. 이리 저리 나무계단을 따라 걸어본다. 나무 계단을 따라 간월산으로 올라 마지막 나무 전망대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불산을 바라본다. 발아래 낭떠러지는 간월 공룡능선이다. 새찬 바람에 오한이 들어 오래있지 못하고 숨가빠 하는 친구와 운문댐을 돌아 청도군 매전면 동창천을 타고 흐르며 밀양으로 향했다. 긴 여행의 막바지를 수놓고 부산에 당도하니 피로가 몰려온다. 오늘은 꿈을 꿀것 같다 깊은잠을 자는 꿈을 꿀것 같다 그 꿈속에서 잠을자는 꿈을 꿀것 같다 카라꽃과 해당화가 바람에 몹시 흔들리고 안개비에 젖은날 파란나비가 하늘을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