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천안 직산현 관아 문루에 걸린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 현판에 대해
최근에 천안 직산면과 관련한 모종의 근대기록을 발굴하여 이에 대한 조사정리작업을 한창 진행중에 있는데, 그러다보니 조만간 기회를 만들어 직산 현지를 한번 탐방하고자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여러 가지로 답사예비자료를 점검하던 도중에 옛 직산현 관아의 문루에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고 적은 현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장의 문화재 안내판(직산현 관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 1976년 1월 8일 지정)에 “다른 지역 관아와 달리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로 이루어져 있다. ‘호서계수아문’이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서의 첫 관문이라는 뜻으로 한양에서 삼남으로 통하는 길목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많은 관리와 시인이 오가면서 글을 남긴 곳이다.”라고 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루 안쪽에 걸려 있는 ‘직산면 문루 중수기(稷山面門樓重修記, 1938년 당시 임명순 직산면장 작성)’에도 “면사무소의 남쪽에 우뚝 서 있으며 편액에는 ‘호서계수’라고 하니 옛 직산군아의 문루이다(巍然立面署之南扁額以湖西界首者/舊稷山郡衙門樓也)”라고 하여 이 글자를 역시 ‘호서계수’라는 것으로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현판에 써 있는 글자를 쳐다보면 암만 봐도 이것은 ‘호서계수아문’이 아니고 ‘호서측수아문’이라고 되어 있는 것 같다. 중간의 글자가 ‘界’가 아닌 ‘畟’이다. 직산이랄 때는 직(稷)은 禾+畟이 합쳐져서 만든 글자이니 필시 畟은 稷을 나타내고자 했던 글자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자꾸 든다.
湖西界首衙門
湖西畟首衙門
그런데 ‘계수(界首)’라는 말의 정확한 뜻이 뭔가 해서 고전자료와 관련한 사이트에 몇 가지를 검색해봤더니, 어렵쇼, 여기서도 이것을 “서울에서 각 도(道)에 이르는 연변의, 도계(道界)가 되는 지역의 고을을 말한다.”고 적어 놓았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 국역 사이트에서도 이와 관련한 ‘계수관(界首官)’이라는 용어에 대해 “서울에서 각도(各道)에 이르는 본가도(本街道)의 도계(道界)에 있는 고을”이라고 각주(脚註)를 달아 뜻풀이를 해놓은 것도 곧잘 눈에 띈다.
하지만 짧은 소견이지만, 이에 관한 사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계수’니 ‘계수관’이니 하는 것이 무슨 경계에 있는 운운 하는 소리는 전혀 사리에 와 닿는 설명이 아닌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태조실록』 태조 2년(1393년) 11월 12일에 나오는 다음의 기사를 보자.
각도의 계수관을 정하다
○定各道界首官: 慶尙道, 鷄林, 安東, 尙州, 晋州, 金海, 京山; 全羅道, 完山, 羅州, 光州; 楊廣道, 廣州, 忠州, 淸州, 公州, 水原; 交州江陵道, 原州, 淮陽, 春州, 江陵, 三陟; 西海道, 黃州, 海州; 京畿左道, 漢陽, 鐵原; 右道, 延安, 富平. (경주, 안동, 상주, 진주, 김해, 경산, 완산(전주), 나주, 광주, 광주(廣州), 충주, 청주, 공주, 수원, 원주, 회양, 춘주(춘천), 강릉, 삼척, 황주, 해주, 한양, 철원, 연안, 부평)
여기에 나열된 고을들은 딱히 무슨 도와 도의 경계에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 지방의 중심이 되는 지역들이라는 이라는 사실이 금세 파악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도 있다. 『태종실록』 태종 13년(1413년) 10월 15일에 수록된 「지방 행정 구역의 명칭을 개정하다」라는 기사의 내용이다.
○辛酉/改各道各官之號. 上謂河崙曰: "全州今改爲完山府, 而尙稱全羅道; 慶州今改爲雞林府, 而尙稱慶尙道, 宜改之." 崙曰: "不獨此也, 東西北面, 亦宜改號." 上曰: "然." 遂以完山復稱全州, 雞林復稱慶州, 以西北面爲平安道, 東北面爲永吉道. 以平壤, 安州, 永興, 吉州, 皆界首官也. 又以各道單府官改都護府, 監務改縣監. 凡郡縣號帶州字者, 皆改以山字川字, 寧州改寧山, 衿州改衿川, 其例也.
또한 『세종실록』 세종 20년(1438년) 3월 12일에는 「경성부를 계수관이라 호칭하고 확장시키다」라는 내용이 기사가 있다.
○議政府據吏曹呈啓: "鏡城府, 乃都節〔制〕 使本營也, 屬於他官未便, 稱爲界首官. 本府以北鍾城, 慶源, 慶興, 今加設富居, 竝皆屬之." 從之.
그리고 『중종실록』 중종 35년(1540년) 8월 1일에 수록된 「충주를 예성으로 고쳤으니 충청도를 청공도로 고치라고 전교하다」라는 내용도 남아 있다.
○庚申朔/傳于政院曰: "吏曹以爲忠州改爲芮城, 則道號亦當改矣. 分遣史官, 議于大臣." 領, 左相議: "凡諸道之號, 例擧界首官號第一字爲之. 忠州旣降爲府, 則雖仍存忠字, 不可爲道號. 本道有公州, 洪州等官, 令該曹, 以此兩邑第一字, 加淸字擬望以啓, 取自上裁." 傳曰: "以淸公道改之."
이들 내용을 살펴보면, ‘계수’라든가 ‘계수관’은 도의 경계라든가 하는 식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여 ‘계수(界首)’는 “주위에 있는 주부(州府)와 군현(郡縣)을 관할하는 중심이 되는 고을을 말한다.”는 설명이 그나마 제일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그나마 “한 도(道)의 으뜸이 되는 고을을 말하며, 대개 도명(道名)은 계수관의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다.”라고 하는 설명 쪽에 더 수긍이 가는 것이다. 그러자니 ‘계수관(界首官)’이란 것 역시 “고려와 조선 초기에 있었던 지방제도의 한 형태로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대읍 혹은 그 곳의 수령을 지칭한다.”라는 정도의 설명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천안군에 속한 옛 직산현 지역에 역사적으로 계수(界首)였던 적은 없고, 이것과는 전혀 무관한 지역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럼에도 이를 ‘계수’라고 운운하는 것은 단지 ‘호서측수아문’이라는 편액을 ‘호서계수아문’으로 잘못 판독한 탓이 아니었을까 ... 이 부분에 대한 엄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정리 : 이순우, 2023.1.7, https://cafe.daum.net/distorted/)
(자료추가 : 이순우, 2023.2.2, https://cafe.daum.net/distorted/)
첫댓글 금일(2023.2.2일) 천안시 직산읍 옛 직산현관아의 현장 답사를 다녀왔기에 관련 사진자료를 본문에 추가하여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