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신부 친형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이태영신부>
나환자 마을에 위치한 부산 삼덕성당 주임사제로 일하고 있는 이태영신부는 오는 10월17일 우리 본당을 찾아와 주일 오전 9시30분 미사와 11시 교중미사를 집전하며 동생 고 이태석신부의 삶을 조명해준다. 이태석신부의 누나도 포콜라레 운동의 독신 수도자인 포콜라리나로 대구가톨릭병원 간호사를 일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 수천명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미래'를 선물하고 있다. 2001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수단의 남부 톤즈 지방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부의 선교활동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송되면서 한국에서는 온라인에서 '수단 어린이 장학회'가 운영되고 있고 미주에서도 그를 후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신부가 지난해 8월 열린 '남가주 성령대회'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고 난 뒤 토랜스의 성프란치스코 한인천주교회 주임 신부로 있는 그의 친형 이태영 신부에게 후원을 약속하는 전화가 빗발친 것이다.
이태영 신부는 "후원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만 200명이 넘는다"며 "그 분들의 정성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후원회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인제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로마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뒤 수단으로 가 8년동안 그 곳에서 살고 있다. 평소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그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성경구절을 마음에 담고 25년 내전으로 더이상 잃을 것도 없는 가난하고 피폐한 나라 수단을 택했다.
그의 형인 이태영 신부는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넉넉하게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가정형편이 오히려 그에게 '나눔의 행복'을 가르쳐 주고 그를 봉사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관객들을 눈물 쏟게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가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절망의 황무지였던 아프리카 톤즈 지역에 희망을 안겨준 故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가 개봉 3주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하며 54개관까지 상영관을 확대했다.
추석을 겨냥한 대작 영화의 공세 속에서도 꾸준히 관객을 불러 모은 '울지마 톤즈'는 입소문과 호평이 잇따르면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초 선종한 故이태석 신부가 가난과 질병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톤즈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과 꿈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진심이 관객에게도 통한 것이다. 한 사람의 고귀한 희생이 불러일으킨 감동이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는 평이다.
감동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개봉 3주만에 6만 관객 돌파! 54개관 확대 상영!
[유니온프레스=영화팀] 한 사람의 꽃다운 삶이 불러일으킨 뜨거운 기적! 절망의 황무지였던 아프리카 톤즈 지역에 희망을 안겨준 故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감독: 구수환)가 6만 관객을 돌파하며 54개관까지 상영관이 확대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9일 개봉하여 개봉 6일만에 2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예고한 <울지마 톤즈>가 추석 연휴에도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개봉 3주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하는 놀라운 스코어를 기록했다. 추석을 겨냥하여 개봉한 대작 영화들 틈새에서도 꾸준히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으며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 이어져 영화에 대한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올해 초 선종한 故이태석 신부가 가난과 질병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톤즈의 사람들이 희망을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아름다운 진심을 담은 <울지마 톤즈>는 한 사람의 고귀한 희생이 불러일으킨 감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고 할 만큼 그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관객들의 상영문의가 이어짐에 따라 확대상영이 확정되었고, 이번 주부터 CGV36개관이 추가되어 총 54개관 까지 상영관이 확대되었다.
2010년 최고의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가 된 <울지마 톤즈>는 전국 CGV상영관과 서울극장, 씨네코드 선재, 아리랑씨네센터, 허리우드클래식, 인천 영화공간 주안, 대구 동성아트홀, 부산 아트시어터 CNC에서 만날 수 있다.
감사합니다(이태영신부)| 신부님편히영면하소서
mimb76 조회 621 | 2010.01.19. 09:22 http://cafe.daum.net/WithLeeTaeSuk/INJS/80
열 여섯
한 소년이
십자가 앞에 꿇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
"당신은 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보고만 계시고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기도 중에 소년은 주님의 뜻을 헤아립니다 :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소년은 다짐을 하였습니다 :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이 기도를 마음 속 깊이 새겼던 소년은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고, 수도자가 되고, 신부가 되어
수단의 톤즈로 가서 이 기도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이 기도에 동참하기 시작했지요.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그 땅에
사랑과 꿈과 웃음과 평화가 조금씩 피어나는 것을 보고
소년은 노래하였습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슈쿠란 바바)"
사랑의 다짐으로부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소년의 삶은 분명 그 누군가를 닮은 삶이었습니다.
이천년 전 팔레스티나 땅에서 설흔셋의 짧은 삶이었지만
자신을 모두 인간과 하느님께 바치는 사랑의 삶을 살아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 주었던
예수, 그 분의 삶과 닮아있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입니다.
고마우신 분들이 너무나 많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이태석 신부의 삶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와 나눔으로 함께 해 주심에 가족들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태석 신부를 저희 가족에게 선물로 주시어 사랑을 가르쳐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톤즈에 희망과 사랑, 평화의 씨앗을 심고 하느님 나라로 옮아갔습니다.
이제 그 씨앗을 돌보고 키워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지요.
이 사랑의 길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태석 신부의 가족을 대신하여 이태영 신부 올림.
[인터뷰] 이태영 신부, 아프리카 희망나눔 후원회 발족
Jan 16, 2009 07:25:41 PM
이태영 신부가 동생 이태석 신부의 수단 선교활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한 달전에 수단 톤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흙길 활주로에 도착했을때 꼬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100여명이 모여있었습니다. 내리자마자 모두 저에게로 우루루 몰려와 환영해 주었습니다. '아, 나의 제 2고향이 이곳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코끝이 시려 왔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작은 것들은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저에게 주는 기쁨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단에서 이태석-
"저희는 음악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도움과 요한 이 신부님이 톤즈에 계심으로써 저희는 삶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저희가 악기 만드는 방법을 알았다면 권총과 무기들에 쓰인 금속으로 많은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희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상상할 수 없으실 거예요." -수단에서 피터 쿠안피니 곤(Peter Kuanypiny Gon)-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이 수천명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미래'를 선물하고 있다. 2001년 12월부터 아프리카 수단의 남부 톤즈 지방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부의 선교활동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송되면서 한국에서는 온라인에서 '수단 어린이 장학회'가 운영되고 있고 미주에서도 그를 후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신부가 지난해 8월 열린 '남가주 성령대회'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고 난 뒤 토랜스의 성프란치스코 한인천주교회 주임 신부로 있는 그의 친형 이태영 신부에게 후원을 약속하는 전화가 빗발친 것이다.
이태영 신부는 "후원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만 200명이 넘는다"며 "그 분들의 정성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후원회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인제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로마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뒤 수단으로 가 8년동안 그 곳에서 살고 있다. 평소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그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성경구절을 마음에 담고 25년 내전으로 더이상 잃을 것도 없는 가난하고 피폐한 나라 수단을 택했다.
그의 형인 이태영 신부는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넉넉하게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가정형편이 오히려 그에게 '나눔의 행복'을 가르쳐 주고 그를 봉사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에 처음 세웠던 학교(왼쪽)와 2006년 새롭게 지어진 학교>
이태석 신부가 제일 먼저 애쓴 것은 '교육'이었다. 가난한 나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교육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초가집을 빌려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모아 수업를 시작하긴 했지만 배고픔에 지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7년이란 시간동안 학교는 교실 18개짜리로 커졌고 학생수는 1,500여명에 달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정규교육 이외에 의대 시절밴드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음악교육도 시키고 있다.
<이태석 신부(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와 음악교육을 받는 수단 학생들>
교육이 끝나면 오후부터는 병원에서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고 진찰한다. 반경 60마일 이내에 의사라고는 이 신부 단 한명 뿐이지만 그래도 2004년 작지만 병원도 하나 지어졌다.
미주에서는 '아프리카 희망 나눔 후원회(Charity Foundation for Africa Catholic Mission)'라는 이름으로 17일 정식 발족하게 될 후원회에서 모인 후원금은 우선 교육에 집중될 계획이다. 회장을 맡은 이태영 신부는 "현재 이태석 신부가 건강 악화로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 후원회 발족을 미룰까도 생각했지만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단의 어린이를 떠올리니 그럴 수 없었다"며 한인들의 따뜻한 격려와 관심을 부탁했다.
‘울지마 톤즈’ 구수환 감독 & 이태영 신부, “이태석 신부가 이뤄낸 톤즈의 기적”
어머니
구수환 감독 이태석 신부의 어머니는 남편도 없이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워낸 분이다. 자식 중 셋이나 성직자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심경이 궁금했다. 먼저 이태영 신부를 만나 ‘이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밤 11시까지 그를 인터뷰하다가 넌지시 얘기를 꺼냈다. 어머님을 뵙고 싶다고. 어머님은 천천히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꺼내다가, 앨범에서 그의 사진을 보고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셨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2주 만에 그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건, 무척 가혹했을 것이다.
이태영 신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였다면 영화화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태석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가 남기고 간 사랑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결국 그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셨던 것 같다.
톤즈
구수환 감독 KBS에 입사한 이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지역을 숱하게 다녔지만, 톤즈 같은 곳은 정말 처음이었다. 총격전으로 인해 가는 길도 막힌 상태였다. 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만준 이승준 신부의 도움을 받아 남쪽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겨우 톤즈에 도착했다. 그곳에 가는 건 일종의 확인 작업이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가 그토록 사랑했던 톤즈가 어떤 곳인지, 그가 그곳의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알고 싶었다. 돈 보스코 병원과 학교에는 아직도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묻어났다. 이태석 신부가 없는 병원을 여전히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병원을 찾는지 물었다. 한 여인은 자신의 출산을 도와 아이를 직접 받아준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톤즈는 이태석 신부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정 그리고 눈물
구수환 감독 톤즈 사람들은 눈물이 없다. 용맹함의 상징인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태석 신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이들에게 그의 영상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눈물을 흘렸다. “쫄리 신부님이 너무나 그리워요”라고 말하던 아이가 너무도 섧게 울어, 카메라를 내려놓고 나도 그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태석 신부가 만든 35인조 브라스 밴드의 아이들이 악기 연주를 들려주겠다며 나를 불렀을 땐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들은 서툰 한국말로 이태석 신부가 가르쳐주었다는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곳의 아이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쫄리 신부님이 왔다’며 좋아하고 쫓아다녔다. 준비해 간 사진은 서로 달라는 통에 전부 주고 왔다. 사람들은 그 사진에 입을 맞추고, 연신 쓰다듬었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에게 감정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이금희
구수환 감독 내레이션은 이금희 아나운서에게 맡겼다. 사실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가 유명 배우에게 내레이션을 맡겨 크게 화제가 되면서, 이것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잠시 했다. 그러나 이금희만큼 진정성을 가진 목소리도 드물다. 이금희는 대본을 보자마자 ‘내가 꼭 이 작품을 해야겠으니 내게 맡겨달라’고 했다. 내레이션을 녹음하면서 이금희는 자꾸만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느라 적잖이 애를 먹었다.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진실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느라 이금희 아나운서가 고생이 많았다.
삶의 향기
구수환 감독 이태석 신부를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숱하게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왜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성직자가 된 건지, 왜 하필이면 멀고 먼 톤즈까지 날아가야 했던 건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건지. 톤즈에 가서야 알았다. 그가 말했던 ‘삶의 향기’가 어떤 것인지를.
이태영 신부 이태석은 그의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를 얘기하곤 했다. 의술도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굳이 성직자가 된 이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지만 아프리카까지 간 이유에 대해 말이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우리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태석은 그것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삶의 향기’라 했다.
고발에서 감동으로
구수환 감독 방송용 다큐멘터리로 만들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분량을 어떻게 줄여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는데, 영화로 다듬으면서 그 아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이 작품은 내게 무척 각별하다. 이제껏 어떤 실상을 고발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만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인 줄 알았다. 요즘은 방송국에서 후배들이 ‘저 선배가 저런 것도 만들 줄 알았냐’며 수군거리기도 하더라. (웃음) 그만큼 <울지마 톤즈>를 만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왜 눈물을 흘릴까를 생각해 보면, 그건 이 사회가 그만큼 사랑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사랑을 널리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다. 그것 역시 다큐멘터리의 역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