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보이차 산지죠, 남나산과 노반장에 가보기 위해 곤명 기차역으로 왔습니다. 그 곳에 가려면 먼저 서쌍판납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서쌍판납에서 곤명으로 이동할 때는 버스로 9시간 가량 걸렸어요. 서쌍판납을 떠나 두시간 즈음 잠들었을까, 버스 창문 커텐을 젖히니 곤명까지 529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본 충격적인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거리가 적힌 이정표를 본 적이 없거든요. 무튼 곤명에서 며칠 간의 보이차 공부를 하고 기차를 탑니다.
어쩐 일인지 다른 일행과 다른 객차에 좌석을 배정 받았는데, 옆자리에 현지 아주머니께서 앉아계셨어요, 시골 장터에서 만날 푸근하고 정 많아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식성도 좋으셨고요. 조금 나눠주시면 감사히 먹어보려 했는데, 제가 가진 간식은 해바라기 씨앗 뿐이란 걸 아셨나봐요. 말도 안 걸어 주셨습니다.
보이시 기차역 플랫폼을 경유하고요,
보이차 주요 산지인 서쌍판납에 도착했습니다. 굉장히 빠른 기차인데도, 무려 4시간 여 달려왔습니다.
운남 농대 주홍걸 교수님의 인맥과 배려로 기차역에 일정을 도와 주실 기사님과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호방하고 에너지 넘치는 기사님이셨는데, 언젠가 그 분에 대해서 게시물을 적어보려고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죠, 기사님이 가이드 하신 '만요찬청'이라는 태족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凹'라는 글자는 생긴 것처럼 오목하다 할 때 쓰는 글자인데요, 실제로 어딘가에 적힌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凸'이라는 글자와 함께 쓰이면 '요철'이예요.
식당입구가 아주 멋지죠? 여기는 태족 전통음식 식당이라고 힘껏 말하고 있는 것 같죠. 가운데 보이는 승합차가 맹납에서의 여정 중 이용한 차량입니다. 옵션이 별로 없는 상남자 차량입니다.
식사 전 단체 사진. 여정 내내 참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여러 음식이 참 푸짐하게 놓였지만 이 두 음식은 꼭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어느 꽃은 먹기도 하죠, 화전으로 먹기도 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꽃은 꽃 그대로 음식이더군요. 다소 이질감이 들었지만, 지나칠 수 없잖아요. 한 송이 입에 넣었습니다. 거 참, 고소하고 향긋하고 연한 것이 꽤 별미였어요. 물론 배가 불러지는 것에 별로 일조하지는 못합니다. 기분 좋게 신선한 여운이 잔잔한채로 오래 갑니다. 며칠 후의 일정 때 보니, 길가에 간간이 피어 있었어요.
두번 째 음식은 사진 왼쪽의 계란 부침개입니다. 보기에 별 이상 할 것 없는 모양새죠? 부추와 같은 채소를 섞은 계란 부침개입니다. 일정의 리드였던 신신성님께서 귀뜸 말씀해주셨어요. 저 계란 부침개를 먹으면 자신의 냄새를 확인 할 수 있다고요. '트림에 저 채소의 냄새가 꽤 섞이나 보다' 했는데, 그렇진 않았어요. 자신의 냄새는 자신만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요.
저는 저 음식을 '위험한 계란 부침개'라고 이름 지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 건물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소수민족 중 하나인 애니족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만강曼冈이라는 마을인데요, 마을이니 '촌村'을 붙여 만강촌이라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이곳은 전통의 흔적이 80퍼센트 이상 남아 있는것 같았어요. 전기가 들어오지만 여전히 불을 때서 음식을 하고, 현대식 의복을 입지만 전통의 장신구와 생활 방식을 고수했어요. 몇몇 새로운 건물을 짓지만 마을 대부분의 가옥은 여전히 전통 그대로입니다. 매력과 감성이 가득 찬 마을입니다. 어쩐지 만강이라는 발음도 정겨워요.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마을 할머니께서 머리에 짐을 걸고 지나가시네요.
1층은 창고와 작업장을 두고 2층에서 주거하는 방식의 전통 가옥입니다. 외지인 무리가 방문하니 마을 분들이 빼꼼 내다 보세요.
차산지인 만큼 초제가 가능한 설비를 갖춘 집들이 있어요. 생산량이 많은 집은 기계 유념기를 쓰나 봅니다. 기둥과 담 울타리, 그리고 바구니가 모두 박물관 소품 같아요.
마을 아저씨께서 바구니를 짜고 계시네요. 사실 바구니인지, 광주리인지, 아님 장에 내다 팔 닭을 넣을 망인지 저는 몰라요.
낯익은 이 설비는 무어죠?
바로 살청을 할 수 있도록 지어놓은 설비입니다. 솥은 걸어두지 않았네요. 장작과 불쏘시개가 준비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농촌의 부황작물처럼 이곳 사람들에게 차생산은 비중있는 수입이기 때문에 많은 가옥이 초제 설비를 갖추고 있어요.
동네 담벼락에 많은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글이 적혀 있어요. 미국처럼 갱단의 구역 표시도 아니고 우리나라처럼 종교단체의 봉사활동도 아닙니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애국심 고취를 지향하는 정부 포스터 정도라 합니다. 아마 중국이 여러 소수민족으로 구성됐기도 하고 외진 곳에는 정부의 홍보가 더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집도 역시 1층의 공간이 있고 많은 장작을 보유하고 있네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여러 대 있는 것을 보니 남성이 많은 가족인가 봅니다.
주거 공간인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다른 집의 1층은 아예 찻잎을 널어두고 있는 초제소로 활용하고 있네요. 채엽한 생엽을 실내 위조하고 있어요. 이곳에 들어서며 맡은 상큼하고 쌉쌀한 찻잎 위조향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소주 잔에 찻잎 한 장 탁 띄워 마시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키 작은 의자도 참 매력이죠?
주홍걸 교수님이 어떤 시범을 보여주십니다. 꽤 익숙해보이지 않나요?
사실 이 만강촌에 온 이유가 있어요. 당연히 차산지이고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공부를 하고자 견학차 왔지만, 그런 이유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요건은 주홍걸 교수께서 바로 애니족이라고 합니다. 한족이 92%, 타 55개 소수민족이 8%. 그 중 애니족이 얼마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중국을 그리고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애니족 이 작은 마을 사람들과 같은 소수민족이라는 사실을 듣고 존경심이 비죽 올라왔습니다. 보이차 사랑만큼 연구하고 실천하기에 얼마나 많은 현실적인 벽이 있었을까요. 내 마음 존경의 일아일엽.
햇볕 아래 찻잎이 참 예쁘죠? 쇄청모차를 만들 대엽종입니다.
어느 아이가 초제실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우리를 2층에서 빼꼼 내다보네요.
나들이 같은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