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낳는 고통
고통과 행복을 양팔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느 쪽으로 기울까요? 사람마다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잣대가 다른데 측정기구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주위의 만류에도 마라톤에 푹 빠져 쉴 새 없이 내 몸을 혹사시킨 결과가 고통의 수렁으로 치닫게 하고 말았다. 내리막을 내려갈 때 특히 무릎관절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정형외과를 찾았다. 며칠을 치료하니 다 나은 듯싶어 또 20km를 달렸다. 다시 병원을 찾아 사진을 찍어본 결과 의사께선 마라톤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나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다. 며칠을 치료해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다시 다른 병원을 찾아 치료하고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겼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대회는 점점 닥아 오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병의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꼈다. 병원에서는 누가 기록된 진료 카드를 보고 또 그곳에 부상을 입은 걸로 판단하고 치료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치료해도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환자 자신이 가장 자기 몸의 상태를 잘 파악하는 준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상세하게 병력을 의사께 이야기하여 의사가 올바른 판단과 치료가 되도록 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환자도 의사를 믿고 낫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분이 친절하고 아픈 곳의 상태를 두루 검사를 한 뒤에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한 참 후에 의사분이 사진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뼈와 연골은 튼튼한데 인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우선 의사 분께 신뢰가 갔으며, 나은 후에 마라톤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의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왔다. 그 후 물리 치료를 받고 나니 며칠 후에 날아 갈듯 한 기분과, 아픔이 사라져 버렸다. 드디어 의사께서 그만 치료하고 스트레칭을 많이 하고 일주일 정도 쉬고 마라톤을 하라는 것이다. 그때의 기분 이야말로 암흑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듯 했다.
20여 일만에 몸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동네 뒷산에 산행을 했다. 별로 아픔을 느끼지 않았으며, 이제 괜찮은 듯싶어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조금씩 적응 훈련을 하여 실전에 임할 각오를 다져본다. ‘대구마라톤’대회를 목표로 자만하지 않고 차근차근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 내 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다짐한다. 오래오래 부상당하지 않고 즐거운 생활의 한 방편으로서의 마라톤‘마니아’가 되리라고 굳게 결심해 본다.
진정 우리 삶에서 행복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뒤에 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병은 일순간에 오지 않고 사전에 어떤 예고된 신호가 오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무시해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번에 산악마라톤에서 내리막을 절룩거리며 내려왔으나 며칠 후 회복되어 계속 달리기를 했다. 그것이 누적되어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고통의 아픔이 터지고 말았다.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견딜 만큼만 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섣불리 판단하여 죽음으로 치닫는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고통 뒤에 오는 행복이 있기에 고통도 기꺼이 받아드림이 어떨까 싶다.
오랜만에 대구마라톤대회에 참가를 했다. 무릎은 아프지 않았으나 연습 부족으로 어렵게 완주를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희망이 있기에 행복했다. 며칠을 휴식한 뒤 연습으로 달렸다.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무릎이 아파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걸어서 절룩거리며 돌아왔다. 그 후 물리치료를 십 여 일간 받아도 별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도 무릎을 혹사시켰다. 테니스 월례회와 교구장배 테니스대회에 참가하여 아픈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절룩거리며 겨우 대회를 마쳤다. 다음날 더욱 걷는데,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 고통이 심했다. 아마도 무릎이 크게 이상이 왔음을 직감했다.
또 정형외과를 찾았다. 무릎이 부어올랐다는 것이다. X선 촬영을 해본 결과 무릎에 염증이 오는 시초라
며 달리기를 무리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청천벼락과 같은 선고가 떨어졌다. 팔 여 년 동안 즐겁게 나
를 지탱한 원동력이었는데 이제 어쩌란 말인가! 막막한 기분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일단 모든 생각과
행동은 뒤로하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 걸어보니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
다. 오후가 되니 날아갈듯 한 기분이었다. 새삼 감사와 기쁨의 순간에 들뜬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며칠
이 가지 않아 무릎이 아파 뛰는 것을 잠시 중단했다.
큰 병원을 찾아 가서 M.R.I 검사를 했다. 의사께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무릎의 연골이 계
란 크기만큼 손상되어 있다고 했다. 수술을 하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 후 관절 내시경
으로 무릎 수술을 했다. 이여년 동안 재활하는데 죽을 각오로 했다. 지금은 거의 옛날처럼 회복되었다.
마라톤은 그만 두고 자전거 타기로 행복감을 되찾았다. 정말로 고통 뒤에 오는 기쁨이야말로 무엇에
견주라 싶다. 침울했던 마음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 버리고 새 출발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이제는 동적운동은 자제하고 정적인 취미를 가져보기로 결심했다. 주위의 권유로 색소폰을 배우기로 결
심하고 안심 부근의 학원을 찾아 원장님과 상의하고 다음날부터 배우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소리도 나
지 않고 힘만 부쩍 들었다. 6개월 동안 입술이 터지고 손가락 마디의 아픔을 딛고 난 뒤에야 실력이 조
금씩 나아졌다. 이제는 대중 앞에 연주를 하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에 새로운 행복을 느낀다.
고통 없는 행복이 어디 있을까. 바늘과 실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산모의 진통 뒤에 오는 행복감
,
곤충들이 그 며칠의 행복을 위해 겪는 애벌레의 진통, 마라톤 마니아들이 죽을 고통의 과정을 겪은 후의
행복감 등이 그런 것이다
.
이 세상에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과 아픔의 진통을 겪고 난 다음에 행복을 낳는다. 행
복한 사람이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로 또 다른 행복의 사냥 길에 나선다.
첫댓글 민선생님 ! 고통, 진통, 아픔을다 겪으셨으니 이젠, 앞으로 행복하시고 즐거운일만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음악[색소폰] 열심히 연주하시고 멋진인생 사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