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많은 보편적 이야기
보편의 단어 / 이기주 산문집 / 말글터
華曇 정순덕
p23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평범하지 않는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살기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p25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애증' 이라는 단어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p 31 일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삶의 근간이다.
p41 살아가는 일은 고통이라는 이름의 터널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과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삶에서 비롯되는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모든 고통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쉽게 꺼내놓을 수 없기에 안쪽에서 곪아가는 아픔도 있기 마련이다.
p51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다.
p54 어차피 앞날을 치밀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지 않나.
p55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무언가를 벗어나려는 마음 덕분에 낯선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까.
p82 사람은 누구나 오를 수 없는 나무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있기 마련이다.
다만 닿을 수 없다고 해서 신기루처럼 공허하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린 끝까지 가보지 못한 곳,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평생에 걸쳐 떠올리머 살아간다. 일이 그렇고 꿈이 그렇고 심지어 사랑이 그렇다. 완전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채 이뤄지지 않은 것이 '기억의 뼈대' 가 된다.
p97 난 책을 고르기 위해 다시 서점을 어슬렁거렸다. 평소 일주일에 대여섯 권의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구매한 책을 다 읽느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대형 서점과 독립 서점을 싸돌아다니면서 가져온 책들을 서가에 꽂아두었다가 눈에 밟히는 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읽곤 한다.
p101 우린 좋든 싫든 타인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방식과 깊이는 제각각이다. 타인과 최소한의 관계만 맺으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맥이 재산이라는 믿음을 품고 많은 사람과 알고 지내려 애쓰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 영국의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는 현대인의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이 고작 150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p115 그런 날이면 '오늘 내 마음을 적당히 데워준 문장이 있었는데...' 라는 생각을 베개처럼 베고 잠을 청한다. 그러면 현실의 무게에 구겨졌던 마음이 슬며시 펴지는 것 같은 기분이든다.
p116 일정한 중량을 지닌 물체는
굳이 힘을 가하지 않더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굴러가지만
위로는 그런 방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우린 타인을 내려다보면서 위로할 수 없다.
위로의 언어는 평평한 곳에서만 굴러간다.
p121어떤 면에서 사랑은 서로의 삶을 포개는 일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각각의 책이 저마다의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옆에 있는 책에 기댄 채 비스듬히 서 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낀다고 해서 내 쪽으로 그 사람을 억지로 끌어당겨선 안 된다. 둘 사이의 공간이 사라져 상대도 나도 힘겨워질 수 있다. 잘못하면 둘의 관계 자체가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
p135 주변을 돌아보면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픈 기억을 함부로 자랑하지 않는다. 마음 깊이 파고들어 자신의 일부가 된 상처를 쉽게 꺼내기 어려울뿐더러, 그걸 남들 앞에서 펼쳐 보이는 건 상처에 스스로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상흔 한두 개쯤 가슴 깊은 곳에 새겨놓은 채 살아가고 있으리라.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고, 그 위에 아무리 따뜻한 기억을 덧씌워도 절대 가려지지 않는 진하디진한 상처 말이다.
다만 꼭꼭 숨겨놓은 상처라고 해서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선 안 된다. 마음에 그어진 흉터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p143 아무리 부유하고 똑똑한 사람도 죽기 전에 세상의 모든걸 경험하거나 공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린 평생 동안 사랑이라는 가장 깊고 넓은 책의 낱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삶을 배워나가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해준과 서래가 시종일관 서로를 탐색하고 탐구한 것처럼 말이다.
p157 질투의 화살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한때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을 겨냥해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상대와 알고 지낸 세월이 길수록 화살촉은 날카로워진다. 질투의 속성이 그렇다.
p266 삶이라는 항해 속에서 남보다 멀리 나아가려면, 결국엔 남이 아니라 내가 일으킨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p272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거짓으로 지어낸 타인이 내 안을 비집고 들어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잃고 살아간다는 건, 살아 있는 게 아닐 것이다.
p277 꾸역꾸역 현실을 견디면서 세월을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p287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점 남루해질 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누일 보편의 은신처는 사랑밖에 없다.
작가의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을 읽었다.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이런저런 감정이나 느낌은 비슷하다. 특별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동감의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이즈음 독서회에서 추천, 함께 읽는 책들을 비집고 읽은 좋은 책을 만났다.
공감하는 글들이 많은데, 책의 공감 글들을 열심히 필사해 보았다.
서점을 자주 어슬렁 거리거나 읽겠다고 주문한 책을 옆에 쌓아놓는다거나, 여행 때마다 지역서점에 들려서 사온 책들을 기분 내키는대로 읽는 습관은 비슷하다. 이를테면 책에 대한 욕심이겠다.
나는 어떤 보편적 단어에 기대고 살고 있나?
나의 삶의 언저리를 부지런히 맴돌며 우리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버팀목 같은 단어' 는 무었이었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