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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仁川) - 우리 땅 최초의 기억을 찾아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는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있다. 2003년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었고, 송도국제도시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2009년에 인천세계도시축전을 개최하였으며, 2014년 아시안 게임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한국문화 형성기로 보아 북방과 남방의 중간지대로서 가장 먼저 근대사의 여명을 맞이한 곳으로서 대륙의 문물이 한반도에 전파되고, 한반도의 문물이 해외로 나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인천 문화관광 http://itour.visitincheon.org/index.jsp
영상기록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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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립박물관 http://museum.incheon.go.kr/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jsp?uccfile_src=200909171958030058&title_chk=
인천 최고, 최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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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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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천 일본제1은행지점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jsp?uccfile_src=200910151440120040&title_chk=구)인천일본제1은행
인천 출장소가 서울과 인천에 있는 일본 영사관의 금고역할을 하게 되자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하고 서울에 인천지검 서울 출창소를 개설해 일본인들에게 상업자금을 공급했다. 제1은행지점과 출장소는 이렇게 인천 개항장에서 관세 및 수수료를 징수하고 일본 은화로 유통망을 장악해나갔다. 청일전쟁을 치르고 있는 일본군은 군수물자와 인력의 조달을 위해 막대란 한국 돈이 필요해지자 일본 화폐를 통용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제1은행에서는 개항장에 진출한 일본상인을 대상으로 예금과 대출업무를 했다. 8.15광복 뒤 조달청 인천사무소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법원등기소로 사용하고 있다.
구)인천 일본제18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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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한 제18은행은 현재는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물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건물의 특징을 보면 단층으로 고전적 장식의 절충주의 양식을 하고 있다. 벽체는 조적위에 모르타르마감으로 기둥부위와 기단부위는 돌로 마감되어 있다. 출입구의 기둥장식은 아주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으며, 지붕은 목조트러스 위에 일식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2006년 9월에 개관. 189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200년 동안 통치할 생각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벽돌을 가져와 만들었다는 일본18은행 건물을 개조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천장과 벽돌하나까지 그대로 그때의 건축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어 현재 시지정유형문화재 제50호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본 전시관은 인천의 개항당시 시대상황, 도크, 제물포(인천철도개통), 기독교전래-내리교회, 서구식초등교육기관-영화학당, 서구식공원-만국공원(현 자유공원) 등의 개항기 중구의 모습입니다.
구)인천일본제58은행 인천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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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제물포 구락부(club) 자유공원 안에 세워진 최초의 서구식 사교클럽
제물포항과 조계지 http://itour.visitincheon.org/utourpia/cybertour/05_01/index.jsp
제물포항과 조계지 http://itour.visitincheon.org/utourpia/cybertour/05_01/index.jsp?chk=09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지붕은 양철로 덮였고 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의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건축물의 특징을 찾기 어려우며, 1913년 조계(租界:외국인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구역)가 철폐되자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뀌었다. 2007년 6월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구)제물포구락부의 모습을 복원하여 스토리텔링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물포[濟物浦] 수도의 관문으로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 종4품)를 두었다. 한말 개항 당시에는 구미열강(歐美列强) 및 일본 등의 함선이 여러 번 입항하여 조선 정부와의 개국교섭이 행하여졌다. 1882년(고종 19) 7월에는 임오군란(壬午軍亂)에 대한 사후처리 문제로 조선의 이유원(李裕元) ·김홍집(金弘集) 등과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가 여기에서 만나 제물포조약을 체결하였다.
83년 1월 인천이 개항되면서 그때까지 인천의 일부로서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제물포는 급격히 인천항의 근거지로 부상하였다
능허대지[凌虛臺址]
능허대는 백제가 중국 동진(東晉)과 통교를 시작한 372년(근초고왕 27)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475년(개로왕 21)까지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을 태운 배가 출발하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조성되어 아파트와 유원지가 들어섬으로써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었다. 다만 나루터가 있던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 자리를 기념물로 지정하여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고 연못속의 언덕, 그 위에 능허대가 있다. 또, 능허대 인공폭포 주변에 있는 5천여 그루의 나무와 꽃들과 어우러져 이곳을 찾는 인천시민들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배다리골
부평 기적의 도서관 http://www.bppl.or.kr/gj/
부평역사박물관[浮枰歷史博物館] http://www.bphm.or.kr/html/history/index.asp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상 1층은 부평 역사2실과 기획전시실, 휴식공간 및 체험학습실로 이루어져 있고, 지상 2층에는 부평 역사1실과 농경문화실, 정보 라이브러리, 화랑 등이 마련되어 있다.
소래[蘇來]포구 남동구 논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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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 꽃게가 맛있는 이유? 소래 꽃게잡이는 봄과 가을에 절정을 이룬다. 꽃게 어장은 자월도 인근이다. 소래의 작은 어선으로는 서너 시간 가야 하는 거리이다. 여기서 잡은 꽃게는 당일 소래 포구에 들어오고 그 즉시 소비자에게 팔린다. 그 신선도로 보자면 소래 꽃게를 으뜸으로 쳐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큰 배로 꽃게잡이를 하는 경우에는 며칠씩 바다에 머무르게 되는데, 일찍 잡은 꽃게는 배의 수조에 담겨 있게 되므로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꽃게의 신선도 차이는 쪘을 때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싱싱한 꽃게는 단맛이 강하고 비린내가 적으며, 닭살처럼 결이 살아 있고 탱탱한 듯하지만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린다. 소래 꽃게가 그렇다. 소래포구 가는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소래습지생태공원(전시관) 남동구 논현동 1-17번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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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습지생태공원전시관은 생명의 갯벌을 아끼고 보호하는 생명존중의 인식을 정립하고 갯벌 생물과 함께 공존함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기 위한 배움의 장소이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421318
지하1층 지상1층의 규모로 2005년 10월 25일 개관하였다. 주요 시설은 상설전시실, 사무실, 수장고, 교육실, 다목적실, 기념품 판매소, 매점 등이다.
상설전시관은 인천의 달동네 가운데 역사와 유래가 깊은 수도국산 달동네의 삶과 일상을 중심 테마로 하여 <수도국산 달동네란>, <달동네상점>, <여럿이 사용하는 공간>, <달동네 생활상 엿보기>, <달동네 삶의 편린들>, <수도국산 달동네 기념공간> 등의 소주제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수도국산(水道局山) 이 산의 정상에는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수도시설이 남아있다. '송현배수지'로 명명된 이 시설은 인천 최초의 상수도시설이자 도시계획시설로, 2003년 10월 27일에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3호로 지정됐다
배수지(配水池) 정화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물이 가정에 공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치는 연못물을 많이 사용하는 시간대에는 많은 물을 공급하고, 물의 사용이 적은 새벽에는 물의 공급량을 줄이는 등, 급수량을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다
신포 문화의거리/신포시장
신포시장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닭강장 유명하다. 1895년 서울에서 내려온 정흥택씨 형제가 중구 신포도(옛 인천법원 맞은편)에 한옥으로 된 생선전을 지으면서 유통시장으로 형성되었다. 만두/쫄면/닭강정이 유명하다. 냉면을 만들려다 실패한 국수 가락이 쫄면이라는데... 그것이 바로 신포시장 주변 밀가루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그래서 최초의 쫄면을 만든 곳이 신포시장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이곳 쫄면은 유명하다.
1박2일의 은지원이 다녀간 뒤로 신포닭강정이 유명해졌다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사실 신포닭강정은 인천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먹어봤을 진짜 유명한 곳이랍니다!
옆면에 보면 각종 TV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된 것이 걸려 있어여 진짜 왠만한 방송에서는 다 나온거 같아염! 25년 전통을 자랑하는 신포닭강정이랍니다
양무호(揚武號)
국내에서 군함 도입을 계획한 것은 1902년. 당시 고종황제는 해군창설을 위해 일본에 군함 구입을 의뢰했고, 다음해 미쓰이물산 합명회사가 군함을 납품함으로써 4월 15일 인천항에 국내 첫 근대식 군함이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고종황제는 이 군함의 이름을 "나라의 힘을 키운다"는 뜻에서 양무호라 지었다. 하지만 양무호는 원래 영국 상선이었던 것을 일본인이 조잡하게 만든 탓에 군함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연안부두
유람선은 팔미도, 영종도, 영조대교, 월미도 등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인천 앞바다를 약1시간30분가량 유람한다.
영종대교(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총사업비 약 8,130억 원을 투입하여 도로와 철도 병용 교량으로 건설했으며, 현수교, 트러스교, 강상형교로 구성된 복합교량으로, 주항로부에 건설된 현수교는 주위의 바다 경관과 어울리는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도로·철도 병용 3차원 자정식(自定式) 현수교로 건설하였다.
영종대교는 다이아몬드형의 주탑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3차원 자정식 현수교이다. 300m의 주경간은 자정식 현수교 중에는 세계 최장 경간이다. 주탑은 107m 높이의 강재 주탑이다. 교량 아래로 10,000톤 급의 선박이 통행할 수 있다. 자정식 현수교란 케이블 양끝이 앵커리지블럭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고정되는 타정식과 달리 케이블이 교량의 몸체인 상판에 직접 지지되는 방식으로, 타정식보다 전체적인 외관이 아름답다. <영종대교기념관>
월미도[月尾島]
월미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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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전망대
월미산 정상에 위치한 23m 높이의 유리 전망대로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을 조망할 수 있다. 원형계단을 올라가 전망대 꼭대기에 서면 밑으로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서해바다와 인천항을 한눈에 볼수있곳이다.
고개를 돌리면 인천 시내와 자유공원이 잘 보이는 곳으로 여기서 보는 서해바다의 저녁노을은 정말 환상적이다
인천광역시 검단선사박물관 http://sunsa.incheon.go.kr/
우리 박물관에서는 해마다 특색 있는 특별전 개최 및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문화수요에 부응하는 박물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홍보관(갯벌타워)
각각 비즈니스, 물류, 레저를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어 이곳에 가면 인천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홍보관 야외로는 송도지역 전체를 감상 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 http://museum.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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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공원 http://grandpark.incheon.go.kr/icweb/html/web27/027001001001.html
주요시설로는 92과 332종 6550본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식물원과 1만 300여 주의 다양한 장미가 심어져 있는 장미원, 58종 231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어린이동물원, 23만㎡의 수목원, 환경미래관, 자전거광장, 관모산등산로, 사계절 썰매장 등이 있다.
인천 도호부청사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jsp?uccfile_src=200908202019040019&title_chk=
전국을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황해·함경(咸鏡, 永安)·평안의 8도로 구획하고, 장관으로 각각 관찰사(종2품)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도 밑에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의 행정구획을 설치하고, 장관으로 부윤(府尹, 종2품)·대도호부사(정3품)·목사(牧使, 정3품)·부사(종3품)·군수(郡守, 종4품)·현령(縣令, 종5품) 또는 현감(縣監, 종6품) 등의 수령을 파견하였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 http://www.landing915.com/
인천상륙작전 6·25전쟁이 일어난 후 조선인민군은 남진을 계속하다 국제연합군의 참전으로 낙동강에서 교착상태를 맞게 되었다. 이에 국제연합군은 조선인민군의 허리를 절단하여 섬멸한다는 계획을 세워 첫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되었다.
제1단계로 9월 15일 오전 6시 33분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작전개시 2시간 만에 점령을 끝냈다.
2단계로 한국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사단, 제1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하여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마지막 제3단계로 한국 해병 2개 대대, 미국 제1해병사단은 19일 한강을 건너 공격을 개시하고 20일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27일 오전 6시 10분 한국군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였고, 28일 수도 서울은 90일 만에 완전 수복되었으며, 29일 정오 의사당에서 감격의 수도탈환식이 거행되었다.
자유공원[自由公園] - 중구 송학동1가 11번지
http://itour.visitincheon.org/utourpia/cybertour/05_01/index.jsp?chk=07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2.jsp?uccfile_src=200901131320230020&title_chk=
응봉산 전체를 자유공원이라 부르는데 조성연대는 서울의 파고다공원(1897)보다 몇 년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천항 개항 뒤 외국인 거류민단(居留民團)에서 관리 운영하여 당시 시민들은 이를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 불렀고, 그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각국 거류지의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仁川府)로 이관되자 그 때부터는 서공원(西公園:일본인들이 이른바 神社를 지어놓은 동공원이 따로 있었음)으로 불렀다.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응봉산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이다.
짜장면박물관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426668
짜장면과 쫄면 http://itour.visitincheon.org/utourpia/cybertour/05_01/index.jsp?chk=04
공화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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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 앞의 차이나타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장면이 만들어진 공화춘을 비롯해 1박2일 촬영지 자금성 등 유명 중국 음식점이 몰려 있다. 인천에는 중국인 노무자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산둥성 출신인 이들은 간단한 식사로 불린 면에 춘장을 비벼 먹었는데 워낙 노무자가 많다보니 이 메뉴를 파는 가게가 날로 번창했죠. 이때부터 자장면이 여기저기 퍼져 나간 것이지요.” 그가 이렇게 ‘자장면의 인천 원조설’을 주장한다. 콩과 밀가루를 섞어 햇볕에 1년 이상 발효시킨 춘장은 산둥성 고유의 음식으로 우리의 된장에 해당한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청나라 병사들이 조선으로 넘어왔다(이들은 자연스럽게 고국의 음식을 찾았고
1950년대 미국을 통해 대량으로 들어온 밀가
루 원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밀가루를 배경으로 한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이 있었다.
차이나타운 중구 선린동 , 북성동 일대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3.jsp?no=2614&title_chk=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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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조계지 경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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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에 서구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이 요구됨에 따라 땅을 빌려쓰는 조계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렇게 내어준 영역을 조계지라 한다.
1883년 개항과 함께 시작된 조계제도는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점령하고나서 1914년 일괄 폐지한다.
팔미도(八尾島) 중구 무의동 산374
팔미도 등대 http://itour.visitincheon.org/utourpia/cybertour/05_01/index.jsp?chk=08
한국이민사박물관[韓國移民史博物館] http://mkeh.incheon.go.kr/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2.jsp?uccfile_src=200901141147140047&title_chk=
http://itour.visitincheon.org/popup/popup_flv2.jsp?uccfile_src=200901141146450046&title_chk=
내부는 4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수장고, 영상실, 강당, 자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외동포들로부터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 4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중문화관[韓中文化館] http://www.hanj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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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는 토요상설공연과 각종 문화강좌·세미나·공청회 등이,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회화·조각·서예 작가들의 초청 전시회가 열린다. 한중문화전시관은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매체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문화·경제·사회·생활상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탁본체험·궁중의상 입어보기 등의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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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로 사진촬영지 1871년 5월 30일 조사를 위해 미군 함선 위에 오른 3명의 한국관리들이 국내최초로 사진촬영이 이뤄졌다. 사진의 주인공은 인천인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을 촬영한 곳은 인천 앞바다(작약도)였다
굴포천 부평구 갈산동에서 부천 원미구 상동까지 14㎞의 굴포천은 원래 인공하천이다. 옛날에는 한양으로의 원활한 물자수송을 위한 교역로로 쓰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주변 평야에 농업용수를 제공했다. 산업화시대에는 공업용수를 제공했고 홍수조절 기능도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생활하수와 공장 오·폐수의 유입으로 오염됐지만 90년대 후반 하천 살리기 운동을 벌여 2008년 자연 친화형 하천으로 복원되면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굴포천을 따라 산책로와 휴식공간이 만들어졌으며 시민들은 역사 문화적 체험과 친환경생태체험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불호텔
일본인 호리 히사타로가 지은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은 외국인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이들은 수도 한양을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하룻밤은 인천에서 머물러야 했다. 이곳에서는 일어가 아닌 유창한 영어로 손님을 맞이했고 서양인들의 입에 맞는 제대로 된 서양 요리와 커피가 제공됐다. 호텔은 당시 인천을 경유해 한양을 향하는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머무르며 번창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놓이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예전처럼 굳이 인천에서 하루를 묵지 않아도 기차를 이용해 곧바로 한양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불호텔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데에는 지난해 2012년 5월 이곳 토지소유자가 지하 2층·지상 2층 규모의 일반음식점을 지으려 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불호텔이 발견된 곳은 사유지다
만석부두 이 부근 동네는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된 한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탔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의 무대가 된 곳. 괭이새 부리처럼 튀어나와 ‘괭이부리’ 곶. 이 작품의 배경인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6.25 전쟁 직후 가난한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이 동네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이다.
작가 김중미씨는 1987년부터 괭이부리말에서 살며 지역운동을 해왔고, 지금은 그곳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초등학교 5학년인 숙자와 숙희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구석구석을 착실하게 그려 나갔다.
부평지하상가 국내 최대의 지하도시. 경인전철 부평역 인천지하철 1호선 지하에 있는 부평지하상가는 전체면적이 4만 3,000㎡이다. 총 연장 길이만 1.8㎞에 달한다. 지하상가에는 점포가 1,500여 개 있다. 하루에 이곳을 통과하는 유동인구만 12만 명에 이른다. 부평의 대표적 명소인 지하상가에는 최신 유행하는 패션과 잡화, 신발, 화장품, 액세서리 등 브랜드 상품이 즐비하고 다른 곳보다 값싸고 실속 있는 보세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평풍물대축제 인천광역시 서북부에 있는 부평구는 예로부터 부평평야를 중심으로 농경문화권이 형성되어 풍물이 발달하였다. 이 축제는 이같은 부평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긍심을 고취하며, 전통문화인 풍물 보존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도모함과 아울러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자 1997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가족의 달'인 5월에 개최된다.
성냥공장과 사이다 인천의 성냥공장은 1917년 인천 동구 금곡동 지역 대지 2천여평에 세워진 것으로, 국내 성냥 소비량의 2/3가량 보급했다. 500여명의 직공들은 돈을 모아 집안살림에 보태거나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유황냄새에 찌든 공장 안에서 성냥개비와 씨름하며 청춘을 보냈다. 성냥, 인천의 마지막 성냥 공장이 지난 2011.12.25일부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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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유원지 4계절 종합휴향지로 알려진 송도유원지는 1964년 4월 1일 개장하여 지금은 해수욕장, 담수풀장, 눈(물)썰매장, 보트장, 놀이기구장, 자연학습체험장 등이 있으며 대형, 소형 운동장과 수목으로 어우러진 종합휴양지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취사가 가능하여 단체야영, 체육대회, 야유회, 소풍 등으로 많이 이용합니다. 또한 인근주변에 시립 박물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흥륜사, 호불사 등과 연계한 견학 코스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영화학당(永化學堂)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으로 1892년에 설립된 사립학교. 지금의 영화초등학교
원인재[源仁齋] 연수구 연수동에 있는 인천이씨의 중시조인 이허겸의 묘려(墓閭)
1990년 11월 9일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허겸은 고려시대 외척 세력인 이자연(李子淵)의 할아버지이다. 이자연은 세 딸을 고려 문종의 비로 혼인시켜 세력을 장악하였다. 이는 이허겸의 묘가 연화부수지의 명당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원래 연수구 연수동 적십자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왼쪽의 신지마을에 있었으나, 택지개발사업으로 해체되어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그의 묘역으로 옮겨져 복원하였다.
인천가족공원 인천가족공원(옛 부평공동묘지)은 현대식 장사시설과 편익시설을 갖춰 혐오시설에서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체 168만㎡의 부지에 1단계로 648억 원을 들여 4만 5000기의 납골을 수용할 수 있는 봉안당과 관리사무소, 홍보관을 새롭게 마련하고 생태하천과 진입로를 정비해 국내 최초로 추모와 휴식이 가능한 공원으로 조성됐다.
인천국제공항 21세기 수도권 항공운송의 수요를 분담하고 동북아시아의 허브(Hub)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매립하여 1992년 착공하여 8년 4개월만에 총공사비 7조 8,000여 억원이 투입되어 2001년 3월 29일 개항하였다
인천나비공원 부평구 청천동 장수산자락에 자리 잡은 부평숲 인천나비공원은 살아있는 나비를 주 테마로 조성된 곤충 생태공원으로 가까운 도심에서 자연을 느끼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수도권 유일의 체험학습장이다.
인천대교 인천대교는 총길이 21.38km로 세계에서 6번째로 긴 다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크고 긴 다리이다. 사장교로는 세계에서 5번째로 긴 다리인 인천대교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해 추진된 사회자본 사업으로 근대화 최초에서 세계로 가는 최초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인천 물홍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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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시는 물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물을 만드는데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물은 왜중요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관람자 스스로가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첨단 영상과 다양한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인천축항 최초의 도크식 항구 인천축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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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갑문 인천항은 조수간만의 차를 현대적 갑문시설로 극복한 인공항만으로 인천항 갑문은 갑문식 도크로는 동양 최대,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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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구청 건물은 옛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독특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중구청 건물 앞에는 역사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인천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어, 오가는 이들의 관심을 한눈에 끈다. 최초의 철도, 최초의 자장면, 최초의 전화기 등 평소 잘 알지 못했던 인천의 자랑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최초의 갑문이 세워진 인천항
서구 열강의 진입 통로였던 인천항. 조수간만의 차가 큰 탓에 이곳에 최초의 갑문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인천에는 최초의 철도 경인철도가 만들어지고, 최초의 호텔 대불호텔, 최초의 극장이 만들어진다. 서구 문물이 첫 발을 디딘 땅이 인천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이민자들이 인천항을 통해 하와이로 떠났다.
최초의 야구, 축구의 시작점 웃터골 운동장(지금의 제물포 고등학교)
야구와 축구 http://itour.visitincheon.org/utourpia/cybertour/05_01/index.jsp?chk=03
인천에서 한국인들의 최초의 야구단은 한영단. 그들은 지금 제물포고등학교 운동장인 ‘웃터골 운동장’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기억해주어야 할 인천 최초, 우리의 백 년 전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최초의 전신업무 서울과 인천 간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업무가 개시(1885년 9월 28일)
최초의 전보 인천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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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정원지구 부용지, 애련지 등의 궁궐정원과 소쇄원, 국담원 등의 별서정원 및 민가정원 양진당 등과 전통민가 등을 재현 한 자리에 모야 두어 문화 체험에 안성맞춤이다.
협률사(協律舍) 한국 최초의 국립극장인 원각사(1908년)의 전신으로 1902년에 창설된 궁내부 소속 협률사는 지금의 극장 명칭에 해당하는 희대(戱臺)로서 1906년에 해체됐고 춘향전, 흥부전, 장끼전 등을 공연했다.
인천역 → 차이나타운 제1패루 → (구)공화춘 →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 → 맥아더 동상(자유공원) → 홍예문 → 중구청(구인천부청사) → (구)일본제1은행 →
제18은행 → 제58은행 → 청일 조계지 경계단 → 한중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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