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년 함께했던 세 나라, 이제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는 근거는?[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 ⑧] 같아서 반갑고 달라서 신기한... 한중일 3국 문화코드
작성 2024.05.28 07:00 수정 2024.05.28 07:00 조회수 15481 by 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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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년 함께했던 세 나라, 이제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는 근거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리(萬里)'였다. 만리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난 5월 19일 중국 다롄(大連)시에서는 아카시아 꽃 축제가 한창인 가운데 우리 김해시에서 온 매화무용단의 춤 공연과 사물놀이 풍물패의 흥겨운 선율이 울려 퍼지며 다롄시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앞서 4월에는 중국의 전통 그림자극을 비롯한 한중일 3국의 문화공연이 김해시의 무대에서 함께 선보였다. 2024년 동아시아 문화도시 개막식이 각각 한국과 중국에서 개최된 것이다.
2024 동아시아 문화도시 다롄 개막식 (사진 : 김해시청)
'동아시아 문화도시'는 2012년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합의된 후 2014년부터 매년 국가별로 도시 한 곳씩을 선정하여 다채로운 문화예술 교류 행사를 연중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의 김해시, 일본의 이시카와현, 중국의 다롄시와 웨이팡(濰坊)시가 선정되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청주, 제주, 대구, 전주 등이, 중국에서는 취안저우(泉州), 칭다오(靑島), 닝보(寧波), 청두(成都), 메이저우(梅州) 등이 선정된 바 있다. 2021년부터는 중국은 신청 도시들 숫자가 많아 2개씩 선정하고 있다.
다롄의 베니스 수상도시(威尼斯水城) 야경 (출처 : 바이두)
다롄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부성장급(副省長級) 도시이자 아름답고 깨끗한 항구도시로 유명하다. 과거 고구려의 비사성이 위치했던 지역이다. 청일전쟁 중 1894년 일본군이 침략했고 전쟁 후에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제에 할양되었다. 1898년에는 러시아가 조차하여 다르니로 명명했고,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서쪽의 부동항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러일전쟁 후 1905년 일본이 조차권을 가져가면서 다롄이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 말기 1945년에는 소련이 점거하였다. 신중국 성립 후 1951년에는 뤼순(旅順)시를 합병하였고 1981년 다시 다롄시라는 이름을 회복하였다.
우리 귀에 익숙한 여순감옥(旅順監獄)이 있고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 열사들이 조국을 위해 투쟁하고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여순감옥은 당초 러시아에 의해 1902년 세워졌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이어받아 규모를 확장했고, 1939년에는 여순형무소로 개칭했다. 중국인과 조선인 외 많은 외국인을 가두고 탄압한 장소였다. 1945년 소련이 진군하여 관리하다가 신중국 성립 후 중국이 이어받아 복원하여 1971년부터 외부에 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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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은 1984년 중앙정부가 '연해 개방도시(沿海開放城市)'로 지정하면서 빠른 발전을 이루어냈다. 인구 700만 명 규모이며 중국 내에서는 축구의 도시(足球之城)이자 낭만의 도시(浪漫之都), 교육의 도시이자 관광의 도시로 유명하다. 유난히 광장(廣場)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 영사사무소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또 다른 2024 동아시아 문화도시인 웨이팡(濰坊)시는 산동성에 위치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칭다오(靑島)와 웨이하이(威海)의 서쪽에 붙어있는 인구 900여만 명의 도시이다, 고대에 중국을 일컫던 지우저우(九州) 중의 하나인 칭저우(靑州)로 불렸다. 지금의 이름은 강 이름 웨이허(濰河)에서 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이(東夷) 문화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과거 '남소주, 북유현(南蘇州北濰縣)'이라 불리며 남쪽 지역의 쑤저우와 더불어 북방의 상공업을 대표했었다.
공리 주연,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 포스터와 저우쉰 주연의 드라마 붉은 수수밭 포스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모옌(莫言)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붉은 수수밭(紅高粱)'에서 느낄 수 있는 질박하면서도 강렬한 민족 정서(情緖)와 향토 풍정(風情)이 배양된 곳이자 수많은 그의 작품에 직간접적 배경이 되었다. 작년 말에는 모옌 문학관(莫言文學藝術館)이 '붉은 수수밭 문학기지(紅高粱文學基地)'라는 별칭과 함께 웨이팡 가오미(高密)에 설립되었다.
웨이팡 연
웨이팡은 중국에서 펑쩡(風箏)이라고 불리는 연(鳶)으로도 유명하다. 노(魯)나라 때 철학자 묵적(墨翟)이 일찍이 나무 연을 3년 걸려 만들어 하루 날리고 말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청(淸)나라 때 서화가 이자 문학가였던 정판교(鄭板橋)는 53세에 당시 유현(濰縣)으로 불리던 웨이팡에 현령(縣令)으로 와서 7년간 선정을 펼친다. '유현을 추억하며(懷濰縣)'라는 시에서 당시 연 날리는 풍광을 "종이꽃이 눈발처럼 하늘 가득 날린다(紙花如雪滿天飛)"고 묘사했다. 또 '직을 떠나며 쓴 시(罷官作)'에서는 20여 년간의 관직의 속박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한가로이 종이 연을 날릴 것(閑逐兒童放紙鳶)"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판교 정섭(郑燮)의 대나무 그림과 '難得糊塗' 글씨 (출처 : 중국미술, 바이두)
판교 정섭(鄭燮)은 유현 현령을 하면서 자신의 대표작인 유현죽지사(濰縣竹枝詞) 40수를 썼다. 중국에서 그는 또한 '난더후투(難得糊塗)'란 처세의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똑똑하기는 어렵다. 어리숙하기는 더 어렵다. 똑똑했다 어리숙해지기는 매우 어렵다.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편히 갖고, 바라지 않으면 후에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聰明難, 糊塗尤難,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安心, 非圖後來報也)."
웨이팡 시내에는 '연 광장(風箏廣場)'이 있고, 매년 세계 연날리기 대회도 개최된다. 전 세계 연의 70%를 생산한다. 웨이팡이 '연의 도시(鳶都)'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이다, 연은 한중일 3국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전통문화코드이다.
붓글씨 쓰기를 한국에서는 서예(書藝)로,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으로,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로 부른다. 같은 것을 추구하지만 예술로써, 방법으로써, 수련으로써 그 방점을 각기 달리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중일 3국간에는 연뿐 아니라 수천 년간 교류를 통해 많은 풍습과 사상이 공유되고 축적되어 왔다. 매화, 대나무, 소나무, 젓가락 등 공통된 문화코드도 많다. 우리에게서는 난초(蘭草)로 불리지만 중국에서는 난화(蘭花)가 익숙하다. 각기 같음에 반가워하고, 다름에 신기해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 구동존이(求同存異)이다.
한중일 매화 그림 (출처 : '매화', 이어령 책임편집, 생각의 나무)
이어령 선생은 생전에 매화를 비롯한 한중일 문화코드 연구 대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중일 3국은 서양을 알기 이전부터 3천 년간 함께 나눠 온 문화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중화사상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같은 일국 중심의 지배 이론으로 동아시아 문화 가치가 편향되고 왜곡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역 문화의 동질성과 특성을 새로 풀어야 할 문명사적 소명 앞에서, 한 번도 지배 도구로 이용해 본 적 없는 한국이 중국의 대륙 문화와 일본의 해양 문화를 다 아우를 수 있는 반도 문화로 패권이나 이념화 아닌 가치중립적으로 이를 주도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했던 한중일 호랑이 전시회 도록 표지
한일중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4년여 만의 일이자 이번 정부 들어 첫 3국 정상회의였다. 이번 회의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동아시아의 전체 인구와 GDP의 각각 약 70%와 90%를 차지하는 3국 간의 대화로 정치, 경제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정상 만찬행사에는 우리 가야금, 중국 얼후(二胡), 일본 샤쿠하치 등 전통악기가 포함된 축하공연이 있었고 3국 도예가들의 작품 전시도 있었다고 한다.
공동성명 발표 등 이번에 거둔 성과와 함께 앞으로 지속 논의되어 나아가야 할 분야 중 하나는 문화 분야일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한중일 3국 간 관광객 방문, 문화예술 및 학술 교류는 급감하였고 현재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를 통한 국민 간의 교류는 국가 관계의 기반을 이룬다. 동아시아 문화도시 역시 한중일 정상회의의 문화 분야 주요 성과 사업 중의 하나이다. "마음을 통한 교류만이 오래가고 멀리 간다(惟以心相交, 方成其久遠)"는 말처럼 한중일 3국 간 깊이 있는 문화 교류는 서로의 관계 증진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각국의 발전과 국제 위상 제고 및 지역 번영에도 기여할 것이다.
디자인 :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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