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빨레르모 Gigi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빨레르모(Palermo)로 가는 아침 첫차를 탔다. 이 차는 북상을 하여 까따니아를 거쳐 빨레르모로 간다.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차는 시원스럽게 보이는 바닷가를 달리는데, 멀리 전면으로는 에뜨나 화산이 보인다. 며칠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길 양편으로는 아침 안개로 감싸인 과수원과 농장들이 보이고, 올리브와 미모사가 노랗게 피어 아침 햇살을 받아 온 들판이 노랗게 보인다. 이 일대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풍요로운 농업지대다. 화산은 인류에게 파괴와 고통을 갖다 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풍요와 기쁨을 안겨 주기도 한다. 특히 에뜨나 화산은 자주 폭발하지만 베수비우스 화산처럼 사납게 폭발하지 않으며 큰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에뜨나 화산에 대해서 두려움보다는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차는 까따니아를 경유하여 섬 중부의 산악지대 도시 엔나(Enna)를 거쳐 약 세 시간 후에 빨레르모에 도착하였다. 나는 아그리젠또와 셀레눈떼의 두 도시도 관광할 예정인데, 지도상으로 보면 남쪽 해안 도로를 따라 이 두 도시로 갔다가 빨레르모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다. 섬의 남쪽과 동쪽은 까따니아가 교통 중심지고, 서쪽은 빨레르모가 중심지인 것이다.
빨레르모는 시칠리아 제일의 정치, 경제, 문화, 및 관광 도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두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관광 대상은 말할 것 없이 전부 구시가지에 몰려있다. 호텔을 찾아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우선 찾은 곳은 구시가지의 중심인 콰트로 깐띠(Quatro Canti)다. 콰트로 깐띠는 구시가 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마퀘다 대로(Via Maqueda)와 동서로 뻗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대로(Via Vittorio Emanuele)의 교차로다. 이 교차로는 빨레르모의 중심인데, 콰뜨로 깐띠는 네 모퉁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이 교차로 주위의 건물들이 낡고 우중충해 보이지만 이 건물들이 들어선 17세기에는 대단히 화려하고 웅장해 보였을 것 같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대로
쁘레또리아 분수와 벨리니 광장 콰트로 깐띠에서 동남쪽으로 마퀘다 대로변에 큰 광장이 있고, 광장 한쪽에 큰 분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쉽게 눈에 뜨이는 이 쁘레또리아 분수(Fonte Pretoria)는 콰트로 깐띠를 찾는 표적이 될 수 있다. 분수의 규모가 크고, 분수 물받이 주위로 많은 여신들이 알몸으로 서있다. 이 분수대는 남쪽으로 벨리니(Bellini) 광장에 이어지고, 이 벨리니 광장에서 산 까딸도 교회(Chiesa di San Cadaldo)와 라 마르또라나(La Martorana)라고도 불리는 산따 마리아 델 아미랄리요 교회(Chiesa di Santa Maria dell' Ammiraglio)가 올려다 보인다.
쁘레또리아 분수
나란히 서있는 라 마르또라나와 이색적인 빨간 지붕의 산 까딸도 교회
산 까딸도 교회의 이색적인 3개의 빨간색 돔과 라 마르또라나의 아담한 종탑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두 교회당은 모두 12세기에 아랍인들이 세운 사원을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건물의 내외부가 건축 당시의 상태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특히 라 마르또라나 내부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시대의 작품이라고 한다.
라 마르또라나 교회에서는 결혼식이 자주 거행된다고 하는데, 내가 찾았을 때도 결혼식이 있었다. 많은 하객들이 교회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서성대고 있었으며, 신랑이 이들 사이를 분주히 누비면서 즐겁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도 신랑에게 축하한다고 한 마디 해주었다. 잠시 후에 신부가 도착하여 부축을 받으면서 계단을 올라와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하객들을 따라 들어가 목자 앞에서 진지하게 미사를 올리는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라 마르또라나 교회 내부를 구경하였다. 결혼식장에는 의례 불청객이 끼게 마련이다.
나는 결혼식에 앞서 산 까딸도 교회의 내부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 교회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결혼식 하객들을 위해서 오늘 특별히 문을 연 것이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도 초라하고 단칸오막살이집과 같이 작으며 내부도 요란스럽지 않았다. 성화들이 더덕더덕 걸려있고 화려한 조각의 석관들이 늘어선 큰 유명한 성당들만 보아오다 이렇게 작고 조촐한 교회에 들어와 보니 나름대로 엄숙한 데가 있어 나 같은 무종교인도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고풍스럽고 소박한 분위기의 교회 안에서 양가의 가족들이 결혼식에 앞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까떼드랄 다시 콰트로 깐띠로 나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대로를 서쪽으로 조금 걸어서 까떼드랄에 도착하였다. 빨레르모는 12세기경에 아랍에 이어 노르만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 두 민족 지배 하에서 가장 번창하였던 도시다. 이 성당은 이 시기에 건립되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개축과 수축을 거듭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중앙에 우뚝 솟은 돔을 비롯하여 건물 전체가 성당이라기보다는 궁전과 같은 당당한 모습이다. 내부도 어마어마하게 큰데 나는 별로 큰 감동은 받지 못하였다. 베네치아나, 피렌체나, 로마의 성당들과는 달리 이 성당에서는 르네상스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빨레르모가 아랍과 노르만이 물러나고,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이 지배하기 시작한 후로 계속 쇠퇴를 거듭하여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필자는 가톨릭교에 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으니 귀중한 것이 안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까떼드랄
왕궁 까떼드랄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레알레 궁(Palazzo Reale)이 나온다. 이 궁은 노르만니 궁(Palazzo dei Normanni)이라고도 불리는데, 11세기에 아랍인들이 사용하던 궁을 개조한 역사적인 건물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궁은 문을 닫았고, 궁정 예배당(Cappella Palatina) 만이 공개되어 있었다. 매표소 앞에 관광객들이 몹시도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는데, 한 번에 이삼십 명씩을 들여보내고 있어 좀처럼 줄이 움직이지 않았다. 빨레르모 제일의 관광 명소인 이곳을 안 보고 갈 수 없어 나도 인내심을 갖고 이 긴 줄을 따라 섰다(관람료 ?4.00).
예배당에 들어서 보니 내부를 온통 금으로 발라놓은 것 같았다. 바닥과 벽의 하반부는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본당 예배 석과 성소는 온통 금색 바탕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어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발을 멈추고 서서 감탄을 하고 있다. 이것이 근 팔백 년 전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지진이나 화재 등의 천재와 인재를 당하지 않고 그 옛날과 똑같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 예배당 안에서 기도를 하며, 호화의 극치를 누렸을 왕족들은 이 영화가 자손대대로 영속되기를 기원했을 것 같다. 아! 신은 어찌 이리 냉엄하게 이들의 소원을 무시하셨나이까?
금색 찬란한 왕궁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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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럽은 어딜가나 성당과 사원의 도시네요.
정보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