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선재 논제 244
당삼장법사현장역唐三藏法師玄奘譯이라고
되어있는 번역자에 대하여 삼장법사,현장,
번역 과정 등에 대하여 연구하고 사유해보세요.
<부제>
현장스님의 번역본을 간략한 판본이라 하고
경전의 형식을 갖춘 판본을 광본이라 합니다
약본과 광본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견 나누세요.
2562.12. 21.
발표자 : 종진
[1] 현장스님에 대하여...
한역에서는 반야심경의 제목 다음에 ‘당 삼장법사 현장 역(唐三藏法師玄奘譯)이라는 문구가 있다.
‘당(唐)’이란 현장이 당나라(618년~907년, 중국 문명의 최전성기이며 국제적 문화의 황금시기) 출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삼장법사(三藏法師)란 현장이 ‘삼장(三藏, tri-piṭaka)’ 즉 경(經, sūtra), 율(律, vinaya), 법(法, dharma)에 뛰어난 법사라는 뜻이다.
현장은 서기 596년(수문제 16년), 600년 또는 602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이며, 664년 2월 5일에 입적하였다 한다. 10세에 아버지가 죽자 형을 따라 낙양의 정토사로 출가한다. 13세 때에 수양제가 낙양에서 학업성적이 뛰어난 27명을 뽑아 정식으로 승적을 인정하는 칙령을 내린다. 이 시험에 수백 명이 응시하였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당당히 합격한다. 그리고 법명을 현장이라고 하였다.
7세기경 현장이 활약한 시기에 중국(당나라)은 많은 불교서적이 번역되어 있었다. 현장도 이런 한역된 불교서적들을 통해서 유식(구역舊譯 유식 *구마라집스님 이전의 번역을 고역古譯, 구마라집스님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함)을 배웠다.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 의하면 현장은 유식을 공부하는 중에 많은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그의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유식불교의 근본 논서인 『유가사지론(Yogacārābhūmi)』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인도로의 유학을 결심한다. 그의 스승 계현이 인도 유학의 목적을 묻자 “스승에 의지해서 『유가사지론』을 비롯한 불법을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유식의 핵심을 공부하기 위해 머나먼 인도로 갔다. 구법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는데 당시 황제였던 태조 이현이 물러나고 그의 둘째 아들 태종 이세민이 즉위한다. 현장의 나이 26세 때이다.
그는 동료 승려들과 의논하여 서역에 가고 싶다는 탄원서를 궁성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당시 당나라는 국법으로 옥문관(玉門關, 지금의 감숙성 서단)까지만 중국인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들은 몇 번이고 인도에 가고 싶다고 탄원서를 제출하였지만, 끝내 그들의 요청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의 동료 승려들은 인도에 가는 것을 모두 포기하고 말았지만 현장은 계속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끝내 구법의 길이 열리지 않자 그는 국법을 어기고 인도로 갈 결심을 한다. 때마침 장안, 낙성, 등지에서 기근이 발생하자 먹을 것을 구하러 성 밖으로 나가는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당나라 정부의 허락도 없이 현장은 인도로 몰래 출국을 감행하여 구법의 길을 떠난다.
그가 밀출국한 날짜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가 귀국한 것은 정관(貞觀) 19년(645년)이다. 그의 구법여행은 왕복 18년이라는 장시간에 걸친 인도 여행이었다.
그는 당시 인도불교의 중심지인 나란다(Nālandā, 현재의 나란다대학)사원에서 계현(戒賢, Śīlabhadra, 529~645, 현재의 교수사에 해당)에게 5년간 유식사상을 수학하였다고 한다.
현장이 수학한 것은 호법(護法, Dharmapāla, 530~561) 계통의 유식불교였다.
그는 범본(梵本) 경전 657부를 가지고 당나라로 귀국하여 태종(이세민)과 고종의 2대 황제에 걸쳐 존경을 받았다.
그 이후 현장은 황제의 보호아래 오로지 인도 불교문헌의 번역에 매진하였다.
현장이 한역한 불전은 모두 74부 1,335권이다. 『대정신수대장경』이 전부 32책인데 그 중에 현장 번역이 7책으로 전체 한역경전의 5분의 1이 넘는 분량이다.
그는 당나라에 귀국하여 664년 입적할 때까지 20년 동안 5일에 1권꼴로 경전을 한역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이 팔만대장경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뛰어난 번역승들의 노고와 생명을 건 구법정신 덕분인 것이다.
현장은 연구와 저술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온 불전의 번역 사업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쳤다. 현장이 저술한 것은 오직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뿐이다.
『대당서역기』는 현장이 당나라로 귀국한 이듬해인 646년, 당 태종 이세민의 명에 따라 ㅠ저술한 것으로 18년에 걸친 인도 여행기록이다. 이 여행기의 정밀하고 상세한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행기 중의 하나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3세기에서 11세기말까지 인도로 간 동아시아 구법승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 해도 165명이나 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구법승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1천명을 넘을 것이다.
그 중에 한국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신라인 12명, 고구려인 1명, 백제인 1명 도합 14명에 이른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 같은 구법승이라도 법현, 의정, 혜초 등은 ‘계(戒)와 율(律)’의 의문에 의해서 인도로 갔다. 당시의 인도와 동아시아는 기후, 풍토, 문화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수용할 수 없는 계율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 위함이었다면,
현장은 진정한 구법승이라고 할 수 있다.
* 현장 삼장법사의 번역방법*
현장 삼장법사는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스크리트 불전을 중국어로 번역했는데, 번역할 때 다음의 다섯 가지 말은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 발음 그대로 한자로 표기하자고 원칙을 정해두었습니다.
이것을 '오종불번五種不飜'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여기에 없기 때문이니, 염부수閻浮樹와 같은 경우다'입니다. 인도에서 '쟘부'라 불리는 나무는 중국에는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없는 동물이나 식물, 또는 인명이나 지명은 음사音寫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으니, 여섯 가지 뜻을 지닌 바가범(婆伽梵, 바가바트)과 같은 경우다'입니다. 산스크리트 '바라바트Bhagavat'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현장 삼장은 이 단어에 다음의 여섯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구상자具詳者: 상서로운 모습을 모두 갖춘 자.
파괴자破壞者: 번뇌를 파괴한 자.
구서덕자具서德者: 상서로운 덕을 완전히 갖춘 자.
분별자分別者: 불교 교리를 분별한 자.
수습자受習者: 뛰어난 행법을 수지하여 잘 익힌 자.
방황기사자彷徨棄捨者: 윤회 세계의 방황을 버린 자.
이런 여섯가지 뜻이 담겨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섣불리 의역意譯하지 않고 '바가범'으로 그대로 음사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옛 전통을 따르기 위해 번역하지 않으니, 아뇩보리와 같은 경우다'입니다. 이 아뇩보리라는 말은 뜻을 풀이하자면 무상도無上道나 무상각無上覺으로 번역해야 하나 현장 삼장 이전의 옛 번역가들은 그냥 이말을 아뇩보리로 음역했고, 이 말은 그대로 정착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들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선善'을 낳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으니, 반야와 같은 경우다'입니다. 반야라는 말은 지혜라는 의미인데, 이것을 지혜로 번역하면 어쩐지 가볍게 들립니다. 그래서 이런 말은 풍부한 의미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소리나는 대로 적어두기로 한다는 것이 현장 삼장의 견해입니다.
다섯째, '비밀스럽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으니, 다라니와 같은 경우다'입니다. <반야심경>의 마지막에 있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는 주문은 진언 또는 다라니라고 불립니다. 이런 다라니를 초심자에게 들려주면 오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를 그대로 음사한다고 한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즉설주왈卽說呪曰"이라고 해서 마지막에 다라니를 산스크리트 음 그대로 옮겨두고 있습니다.
삼장법사三藏法師
범어는 tripiṭaka-ācārya, 팔리어는 tipiṭaka-ācārya이다. 삼장법사, 삼장성사(三藏聖師), 삼장비구(三藏比丘) 등으로 호칭되며, 줄여서 삼장이라고도 한다.
불교 전적의 전승과 유통에 있어 율장(律藏) · 경장(經藏) · 논장(論藏)의 삼장(藏)에 통달한 승려에 대한 존칭.
동아시아에 있어 삼장법사 칭호는 초기에는 인도 혹은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활동한 뛰어난 승려들에게 붙이는 칭호였다. 마찬가지로 역경에 큰 업적을 남긴 승려를 일컬어서는 역경삼장(譯經三藏)이라 쓰기도 한다.
구마라즙은 진제(眞諦), 불공(不空) 그리고 당나라 출신의 현장(玄藏)과 함께 4대 역성(譯聖)의 역경삼장으로 극진한 존칭이 사용된다.
[2] 광본과 약본에 대하여
한 차례의 연설이나 한 편의 논문도 서론과 본론과 결론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자신의 의사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부처님 당시부터 이미 그것이 정형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전에는 으레 그 경이 생긴 동기와 본론 그리고 경을 맺는 결론의 서술이 있게 마련이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이라 이름 했다.
(1)광본이란,
광본(廣本), 대본(大本), 「텍스트」라고도 한다.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의,
여타의 모든 경전이 갖추고 있는 형식을 갖춘 경전을 말한다.
(가) 서분序分
서분의 경우,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 여섯 가지 필 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육성취(六成就)라고 하는데,
① 신성취(信成就) : 여시如是 : 이와 같이
② 문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내가 들었다
③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 어느 때
④ 주성취(主成就) : 불(佛) 부처님 - 누가
⑤ 처성취(處成就) : 재사위국(在舍衛國) - 어느 곳
⑥ 중성취(衆成就) : 여대비구(與大比丘) - 누구 와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경은 부처님의 설법임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나) 정종분(正宗分)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서술한 경의 본체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정종분의 구조를 사분四分으로 나누기도 한다.
① 입의분(入義分) :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의 25자로 경의 대의를 밝히고 있다.
(경을 설하는 주체와 주체가 의지하는 실천법을 제시)
② 파사분(破邪分) : ‘색불이공’에서 ‘이무소득고’ 까지, 잘못된 집착과 소견들을 없애주는
(진리에 대한 요지와 해탈의 성과를 밝히고 깨달음의 성과가 완전히 실현됨을 강조한 부분)
③ 공능분(功能分) : ‘보리살타’에서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까지, 반야심경이 주는 이익
(성과를 증명하는 부분)
④ 총결분(總結分) : ‘고지반야바라밀다’에서 끝까지, 진리의 참모습과 무한한 공덕을 천명
(다) 유통분(流通分)
경전의 마지막 부분으로 설법을 듣는 자의 기쁨, 이익이나 공덕 또 청중의 깨달음, 예배, 감사경의 이름 등을 기록한 부분이다.
(2) 약본은,
통상 쓰이는 『반야심경』처럼,
서분과 유통분이 생략된 채 정종분만 갖춘 경전을 말한다.
宗眞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