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유월 초순 여름 초입에 들어선 지 며칠이 지났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핀 듯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도 올라오는 열기는 발걸음 내딛는 마음을 미루게 만든다. 오전 강의가 마무리 되면 남아있는 시간은 라디오를 들으며 못다 읽은 책을 펴 본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모종을 화단에 심고 도구들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밭 작물에 물을 뿌리던 기다란 호스는 마당에 서로 실타래처럼 뒤엉켜 널따랗게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제야 시간을 내어 원통에 호스를 감고 공간 정리를 한다. 잔디밭이 가지런해지고 도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새로 구입한 묘목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물을 듬뿍 주었다. 나무를 심는데 동원된 도구들은 마당 여기저기 나뒹군다. 삽과 호미는 농기구를 보관하는 원래 자리에 걸어두고 보일러실로 향한다. 열린 문 손잡이를 잡는 인기척에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뛰쳐나간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머리가 쭈뼛 몸을 뒤로 휙 하고 돌리는데 멀리 달아나지도 않은 채 황토빛 고양이가 마당에 나서서 웅크리고 앉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보일러실 주변을 살피는데 비닐 뭉치 사이에 서로 몸을 비비고 뒤엉켜있는 고양이 새끼 네 마리가 꼬물거린다. 태어난 지 며칠 째 인지 눈도 뜨지 못한 채 고개짓만 한다. 고양이 가족이 누리고 있던 잠깐의 보금자리가 인간에게 방해를 받아 빼앗기게 생겼다. 닫으려든 문을 잠시 멈추고 어미 고양이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시간을 주기로 한다. 닭장 속에서 거닐고 있는 닭들에게 모이를 챙겨주고 물까지 보충을 한다. 남새 밭에 자란 상추 잎을 한 장 한 장 따내고 한 뼘 정도 되는 열무도 솎아낸다. 하릴없이 작은 잎사귀까지 따낸다. 작은 방 건너 좁은 터에 자리 잡은 푸성귀는 끼니마다 밥상이 푸짐한 상차림에 건강한 먹거리를 즐기는 재미를 준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뒤돌아 본 자리에는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흰 털이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녀석과 노란색 띠를 누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두 마리가 아직 남았다. 행여 어미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낙오되지 않을까 고개를 갸우뚱한다. 까만색이 섞인 새끼 고양이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기름 보일러실 공간은 블록으로 쌓아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기르기에 적합하다고 느껴 이곳에 몸을 풀었으리라. 느닷없는 불청객인 집주인의 방문에 놀라 새끼를 강제로 옮겨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두렵고 황당했을까. 사람의 인기척에 새끼들의 양육을 위해 더 이상 방해를 받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곳이 필요했으리라. 어미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로 아기 고양이를 옮기려고 했나보다. 꼬물거리는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키워볼까 하는 잠깐의 허세를 부려보았다. 안될 이야기다. 동물은 동물이 키워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잘 보살펴도 어미만큼 될 리는 없다.
안타깝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 가녀린 고양이 새끼를 두고 집을 나선다. 보일러실 문 닫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향한다. 오는 내내 아직 옮겨지지 않고 남겨진 두 마리가 눈에 밟힌다. 한 배에 태어난 새끼들이 오롯이 어미 품에서 체온을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남은 녀석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고양이 가족 모두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어엿한 개체로 자라기를 바란다.
인간과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낸 고양이다.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등장한 ‘개와 고양이와 구슬’을 불러 들인다. 욕심쟁이 할머니 집에서 잃어버린 구슬을 찾은 고양이가 그것을 잘 가지고 있을까? 구슬을 잃고 상심에 빠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는 개와 고양이, 그러나 결국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동화를 찾아가 본다.
반려견과 반려묘를 돌보는 가정이 한 집 건너 두 집일 정도다. 반려묘의 일상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행복과 위안을 준다고 한다. 여느 동물과 달리 넓은 마당이 없어도 되고 대소변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키우기에 손이 덜 간다. 사람들은 반려묘와 교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려 나간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개체가 유지되는 모습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동물의 정서가 오히려 우리 인간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태도로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편리한 대로 행동한 결과 뉴스에 오르내리며 비난의 대상이 된다.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 집을 나설 때까지 남아 있던 두 마리의 행방이 궁금하다. 그 어떤 천적으로부터도 위협 받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 두 마리도 어미의 보호 아래 한 가족으로 보살핌을 받고 성체로 자라기를 염원해본다. 조심성 없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고양이 가족의 일상이 흐트러졌다. 아니 아예 깨어졌는지 모른다. 새끼 낳은 지 며칠 만에 몸을 보할 여유도 없이 낯선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고양이 가족의 신세가 말이 아니다. 훼방꾼이 된 현실이 못내 곱씹어진다.
자연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위계질서를 가져야 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손을 대면 당장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생태계의 위협이 따른다. 인간의 편리성에 의해 지구 곳곳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높아진 기온 만큼이나 퍼붓는 빗줄기는 물 폭탄이 따로 없다. 올 여름은 조용히 지나가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