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의 어느 가을 여명,
가을 이야기,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하나, 가을이 서러운 까닭,
일 년 중 가장 살기 좋은 계절을 들라 하면 대부분 사람은 가을을 꼽지 않을까 한다.
좋아하는 계절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을이 가장 편한 계절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편하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가을과 대칭점에 있는 봄은 바람이 많이 불고
기후의 변화가 심해서 가을만큼 사람을 편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동양철학에서는 세상만사를 生(나고) 長(자라고) 收(거두고) 藏(저장하고)의 이치로 이해한다.
계절도 이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잎이 지고 동면을 한다는 순환 원칙에 충실히 순응하고 있고, 땅에 터 잡아 사는
사람의 삶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이치 아니겠는가,
가을은 여름의 열기도 걷히고, 풍성한 오곡과 과일이 넘쳐나는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다.
수확의 기쁨으로 가득한 가을이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축제의 마당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왁자한 한바탕 잔치가 끝날 즈음이면, 화려하게 채색된 단풍이 가을바람에 날리기 시작한다.
가을비라도 내리고 나면, 땅에 가득 깔린 단풍에서 가을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게 마련이다.
풍요로움과 화려함 뒤끝에 오는 공허함과 허무함에 문득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되기 때문이다.
가을이 왠지 서럽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
길가에 피어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애처롭고, 파란 하늘에 높이 떠 나르는 잠자리도
왠지 갈 곳을 잃은 것 같아 안쓰럽고, 화려하게 단장한 단풍잎마저 떠나기 전에, 하는 절박함이
짙게 밴듯하여 왠지 서럽게 느껴진다는. . .
인생의 봄이나 여름에 해당하는 나이에 있는 젊은 사람은 서러운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좋은 것을 보고도 눈물을 훔치는 사람은 대게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거나 훌쩍 넘긴 분이다.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이는 단편적 해석에 따른 것이리라,
남자는 서서히 늙어 가지만, 여자는 나이 듦이 확연히 느껴지는 단절을 겪어야 하기에,
-아! 내 인생도 이제 지는구나- 하는 좌절을 절실히 느끼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이리라,
가을 산에 올라 보면 중년을 넘긴 여자분들이 화려한 등산복 차림으로 열심히 오르고 있다.
가을 산은 단풍이 화려하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화려한 단풍으로 장엄한 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듯, 단풍 나이 여자분들의 화려한 자태가 인생의 가을을 장엄하고 있다.
가을은 단연 여자의 계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의 가을을 화려하게 꾸미는 여자의 계절이라고,
가을을 남기고 간사랑, 소운/박목철
봉화산 산신당 앞에 간이매점이 있다.
숨이 턱에 차오르면
작달막한 사내가 건네는
오백 원짜리 종이컵 커피 한 잔,
가을이 따사했다.
옹색한 포장 안에는
가을을 훌쩍 넘긴 아줌마들이
초조하다
도시락에 정성껏 담은 반찬도 여럿 보이고,
부러워 흘깃 사내를 봤다
그도 가을이 짙었다.
사내가 트럼펫을 툭툭 털더니
멋지게 불었다
-가을을 남기고 간사랑
겨울은 아직 멀었는데-
가을이 짙게, 애잔하게 가슴에 스민다.
눈시울이 붉어져
가을이 서러운 아줌마들도, 나도,
와!
그래
가을이 진다지만
겨울은 아직 멀었잖아
낙엽이 바람에 날린다 해도
그건, 그저 바람이야,
* 봉화산은 시인의 가슴에 있는 산입니다.
특정한 산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 2017년 가을, 구둔역에서 펼쳐진 프리마켓 행사장,
둘, 화려한 가을,
구둔역에서 프리마켓 행사가 있다고 구경 가자는 전화를 체육관에서 받았다.
운동복 차림으로 외출하는 모양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오던 차라 한참을
망설이다 화창한 날씨에 모처럼 나들이, 하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구둔역에 관해서는 한차례 소개 한 바도 있고,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오던 터라 주차장에
가득한 승용차를 보며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한가롭던 구둔역 역사 주변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선로가 있는 곳에 아담한 장터가 펼쳐져 있었다.
천막 아래 펼쳐놓은 매대에는 수제(手製)로 만든 물건들이 앙증맞게 진열돼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고 한 편에서는 숯불에 굽는 바비큐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가 뭔가 축제장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어우러져 -좋은 하루가 되겠구나- 느낌이 좋았다.
가을이 짙은 구둔역은 예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구둔역이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은 주변에 있는 나무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향나무야, 사철 늘 푸른 나무이니 그렇지만, 거목이랄 수 있는 은행나무와 미루나무가 단풍
으로 곱게 물들어 주변까지 환한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단풍잎까지 더해 가을이 완연한
구둔역은 한 폭의 동화 속 그림을 보는 듯했다.
이번 행사는 지평 중학교에서 지원하는 공연이 많은 탓인지 화려한 단풍이 무색할 만큼,
풋풋한 생기가 가을의 적막함을 말끔히 거둬낸 느낌이랄까? 더욱 밝아진 가을이다.
옛날 중국 북경 호텔 로비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활기찬 모습에 흐뭇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체격도 우람하고 잘 생기고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우리의 젊은이가 중국인들을 압도한다는
기분 좋은 추억을 다시 떠올렸으니,
지평이라면 시골인데, 지평 중학교 애들은 키도 크고 이쁘고 세련된 모습들이다.
사물놀이도 하고, 댄스팀이 춤도 추고, 관악기도 부는 등, 펼치는 공연이 진지했고,
무엇보다 나이 든 사람 시각에서 보면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누가 미래를 걱정하는가? 겁먹어 보지 않고 당당히 큰 우리 아이들의 장래는 밝을 것이다.
낙엽이 날리는 구둔역 간이 의자에 앉아 공연도 보고 옛날 도시락도 먹었다.
밥이 맛있으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지론을 다시 확인하며,
어린 시절 피난지 부산에서 친구 어머니가 차려 준 하얀 쌀밥을 먹었을 때의 좋았던 느낌
씹지 않아도 저절로 부드럽게 넘어가든 찰지고 감미롭던 밥맛,
탁자 위로 낙엽이 툭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구둔역의 가을은 노란 행복이 가득했다.
* 지평중학교 댄스팀의 생기 넘치는 모습들,
*지평중학교 사물팀의 공연 모습,
* 구둔역 운영자들의 합창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