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8
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까? / 김춘섭 목사
마샬한인교회 예배당과 주택이 아름답게 지어졌습니다. 땅 한 뙈기 없는 교회가 다른 교회를 짓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마음이 흩어진 교인들을 아우르며 예배당과 주택을 짓고 20여명이 넘는 예배인원을 확보한 것은 최 목사님이나 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이었습니다. 나머지 보이지 않는 잔 정리를 담당하고 교우들의 애환을 듣는 것은 노 목사님의 일입니다. 저의 역할은 좋은 목회자가 결정되기 위하여 기도하며 사람들을 만난 일과 다 만들어 놓은 곳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면 늘 아름다운 조화에 감사하게 됩니다. 자기의 생계를 뒤로하였던 우리 세 집사님들의 봉사도 감사한 일입니다. 각자의 삶에서 익힌 전문성을 잘 살려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는 말씀이 새삼 다가옵니다.
1. 신앙적 위기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우리가 잊지 말고 늘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이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위기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없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하다가 낙심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일하다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는 바울의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낙심하는 이유, 좋은 일을 하다가 마음이 떨어지는 이유는 선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신앙 자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평가를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경에도 위기를 만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단한 능력과 믿음의 소유자로 엘리야를 들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모세와 함께 구약을 대표하는 두 인물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산 위에 모세와 함께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외롭게 바알 선지자와 갈멜산에서 대결을 벌였던 예언자였습니다. 자그마치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앞에서 홀로 선 자였습니다. 먼저 백성들에게 고하였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였지만 백성들이 한 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왕상 18:21). 그런 외로움 속에서도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불로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손 시내로 데려가 전부 몰살시킵니다. 나아가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던 땅에 일곱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여 비를 내리게도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는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전에 있던 믿음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바로 몇 시간 전의 위대한 사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쉬지 않고 기도하던 그 자세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진맥진하게 됩니다.
2. 다시 하나님 앞에
그것은 바알 신을 끔찍이 섬기는 이세벨 왕후가 그 소식을 듣고는 하루 안에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장담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도망을 칩니다.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을 간 후 로뎀나무 아래서 하소연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4절)"
오히려 죽여달라고 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이 이렇게 죽을 지경이 되어 죽여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하루만에 이렇게 신앙적인 위기가 닥쳐올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떤 신앙이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응답을 위하여, 문제 해결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였던 그가 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대답은 그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도 열심히 하였고 하나님의 일도 열심히 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서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자기는 다 갖추어진 자로 착각하였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할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사랑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특별하게 냈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위기가 여기에서 왔습니다.
이세벨 왕후가 죽인다고 하니까 죽음의 두려움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이 여간 수치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 손에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고 합니다. 우리도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시면서 호렙산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40일 밤낮을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 굴속에서 하나님과 만납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특심(왕상 19:10,14)'하였다고 두 번이나 대답합니다. 참으로 특별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만 남았다고 합니다. 언제는 혼자서도 감당했는데 이제는 혼자라 두렵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했던 자신의 신앙에 그렇게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와 다시 만나셨습니다. 일을 뒤로 한 채 그는 먼저 하나님 앞에 섭니다. 홀로 남은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새롭게 힘을 주십니다.‘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었더냐? 신앙이란 것이 무엇이냐? 믿음 생활하는 목표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이런 것들을 물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경험을 한 후에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일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면서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셨다고 하셨습니다(18절).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하나님의 일하는 것이 같은 것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며, 기도생활도 많이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과연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를 되물어보아야 합니다. 엘리야처럼 다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3. 하늘에 속한 사람
홍성사에서 나온 책 '하늘에 속한 사람'을 읽었습니다. 보통 '브라더 윈'으로 불리는 저자인 리우전잉(劉陣英) 은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중국의 공산화, 모택동의 문화혁명 이후 엄청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초대교회의 놀라운 이적들을 경험하면서, 그리스도교회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성장하는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30회 이상 체포되고 세 차례나 투옥되던 중 30kg까지 줄어드는 74일간 금식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통제 속의 감옥에서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독일에 거주지를 정하고 세계를 다니면서 중국의 전도활동을 계속 지원하고 있는 그의 삶은 환난과 핍박 그 자체였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신한 그가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죽을 지경이 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보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 우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점검하는 일에 게을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역이 우상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보다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 우선이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다른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자원하는 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무감과 타성에 젖은 행동이었다(p.225)."
이것이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게 던져진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나를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 고백을 들으신 후에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기도를 계속하면서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서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실패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공허한 모습으로 죽을 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