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서안(西安)]에서 5일(3-2)
(2024년 4월 24일∼28일)
瓦也 정유순
3-2. 화산(華山)
오전을 함곡관에서 보내고 점심 식사 후 화산으로 이동한다. 화산 입구에 도착하면 일단 셔틀을 타고 케이블카 탑승 지점으로 간다. 화산(華山, 华山, 2437m)은 중국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이다. 함곡관에서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시안(西安) 동쪽으로 약 1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시안(西安)과 정저우(鄭州)의 중간인 화양시(華陽市)에 있다.
<중국 화산>
입구에는 화산객잔이란 건물이 보인다. 객잔(客棧)이란 중국의 숙박 시설의 하나로 주로 상품을 거래하거나 상담(商談)을 함께하는 지방 상인의 숙소다. 중국은 숙박시설의 이름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숙박 시설을 보통 여인숙(旅人宿), 여관(旅館), 호텔 등으로 구분하지만, 중국에서는 객잔(客棧) 주점(酒店) 반점(飯店) 대주점(大酒店) 대반점(大飯店) 등으로 구분한다. 호텔급에 해당하는 곳은 보통 일성(一星)~오성(五星) 급으로 나누어진다.
<화산객잔 표지석>
여관의 ‘여(旅)’나 여인숙의 ‘여인(旅人)’은 똑같은 나그네라는 말이지만 관(館)과 숙(宿)은 달랐다. ‘관’은 ‘밥식(食)’변이기 때문에 아침이나 저녁에 식사가 나왔고, 숙자는 ‘잘숙(宿)’ 자이기 때문에 잠만 재워주는 곳이었다. 중국에서는 반점과 주점은 같은 용도로 쓰는 말이다. 옛날에 반점은 밥집으로 잠도 재워주었고, 주점인 주막집은 술도 팔았지만 잠을 재워주었기 때문에 반점이나 주점은 같은 말이다. 반점, 주점 이외에도 빈관(賓館), 대하(大廈)라는 이름도 많이 사용한다.
<화산객객잔>
또 그 옆에는 국민당이 화산을 점령했었는데 공산당원 8명이 이곳을 탈환한 것을 기념하는 ‘8인의 용사 동상’이 화산 길목을 지킨다. 화산은 올라가는 길이 외길이어서 국민당 군인들은 당연히 그 길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화산 토박이들의 조언에 따라 공산당은 뒤에서 국민당을 공격하여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어떠한 지식이나 전술이 현장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뛰어넘을 수 없다는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다.
<8인의 용사상>
아래에서 멀리 보이는 화산은 한자 뫼‘산(山)’자를 형상화 한다. 입구에 도착하면 일단 셔틀버스를 타고 약 10여분 달려 케이블카 탑승 지점으로 간다. 케이블카는 서봉과 북봉으로 가는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북봉을 왕복하는 표를 구입하여 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 아래로는 화산의 깊은 계곡이 손금처럼 보인다. 그리고 산행을 하는 산길에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길 이름이 지취화산로(智取華山路)라고 한다.
<화산계곡>
화산은 ‘기(奇) 험(險) 준(峻) 수(秀)’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떨쳐 ‘기험천하제일명산(奇險天下第一名山)’이라 불린다. 오악(五嶽) 중의 서악(西嶽)인 화산은 남쪽으로 진령(秦嶺)을 의지하고, 북쪽으로 황하(黃河)와 위하평원(渭河平原)을 굽어보며 서북지역과 중원을 드나드는 관문이 있다. 화산은 중화민족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로 ‘중화(中華) 또는 화하(華夏)’는 모두 화산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화산>
화산은 커다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는데, 조성된 시기는 1∼2억 년 전으로 추정하며, 동·서·남·북·중 5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주봉에는 동봉 조양(東峯 朝陽)·남봉 낙안(南峯 落雁)·서봉 연화(西峯 蓮花)의 세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어 ‘천외삼봉(天外三峯)’이라 일컫는다. 또 북봉 운대(北峯 雲臺)·중봉 옥녀(中峯 玉女) 두 산봉우리가 서로 곁을 보조하며 36개의 작은 산봉우리가 앞에 나열되어 있어 지세가 험준하고 기세등등하다.
<천외삼봉>
화산 위의 기후는 변덕스러워 운화산(雲華山), 무화산(霧華山), 우화산(雨華山), 설화산(雪華山)의 특이한 광경을 이루어서 사람들에게 선경(仙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산은 또한 제4동천(第四洞天)이라 불리는 도교의 성지로 산 위에는 아직도 72개의 반현공동(半懸空洞)과 20여 개의 도관이 현존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옥천원(玉泉院), 동도원(東道院), 진악궁(鎭嶽宮)은 전국중점도교궁관(全國重點道敎宮觀)에 편입되어 있다.
<화산관광안내도>
케이블카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북봉정(北峯頂)’이라고 글이 새겨진 문 을통과하여 올라간다. 북봉은 5개의 봉우리 중에서 가장 낮은 산이며, 북봉 앞으로 중봉(中峯)인 옥녀봉(玉女峯)을 중심으로 동봉(東峯)인 조양봉(朝陽峯, 2096.2m), 남봉(南峯)인 낙안봉(落雁峯, 2154.6m), 서봉(西峯)인 연화봉(蓮花峯, 2082.6m)이 다이아몬드형 편대를 이룬다.
<북봉정>
옛날에는 운대궁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절벽에 귀를 비빌 정도로 바짝 붙어서 가야 한다고 해서 절벽 같은 바위에 ‘찰이애(擦耳崖)’라고 글을 새겨 놓았다. 현재는 정상에 오르는 길을 계단으로 잘 닦아 놓아서 정상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찰이애(擦耳崖)>
북봉정을 지나면 북봉의 다른 이름인 운대산 이름을 딴 운대산장(雲臺山莊)을 통과하여 진무전(眞武殿)이란 도교사원(道敎寺院) 앞에 다다른다. 도교(道敎)는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근간으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이자 철학사상이다.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토착종교(土着宗敎)이나 노자와 장자(莊子)를 중심으로 한 도가(道家)사상과 구별된다. 도교의 경전을 일반적으로 도장(道藏)이라고 한다.
<운대산장>
도교에서 여러 신(神)들을 모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새로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제사 지내는 신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 또는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고 이는 다시 무형천존(無形天尊)·무시천존(無始天尊)·범형천존(梵形天尊)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조로 받드는 노자도 원시천존의 화신(化身)이라고 믿는다.
<진무전>
<옥황상제>
진무전을 지나면 북봉 정상이다. 북봉은 화산의 북쪽에 위치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삼면이 모두 가파른 절벽으로 위로는 경운(景雲)이 덮여 있고, 아래로는 지맥(地脈)을 통과하여 홀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운대와 흡사하여 운대봉(雲臺峯)으로도 불린다. 북봉은 동·서·남 삼봉(三峯)을 관통하는 명당으로 많은 사람이 화산을 바라보며 촬영하는 곳이다.
<화상 북봉 정상>
<화산 북봉 정상 표지석>
화산이 소설가 김용의 주무대였던 만큼 북봉 정상에는 김용의 친필로‘화산논검(華山論劍)’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다. 김용(金庸, 1924∼2018)은 홍콩의 무협소설 작가이며 언론인이다. 본명은 사랑용(査良鏞)이며, 김용(金庸)이라는 필명은 사량융(査良鏞)의 ‘용(鏞)’을 파자(破字)한 것이다. 이재(理財)에 밝은 중국인들이 화산논검이라는 글자를 이용해 서봉주(西鳳酒) 회사에서 화산논검(華山論檢)이라는 백주 브랜드를 만들었다.
<화산론검>
<서봉백주>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북봉 아래 아스라이 펼처져 있는 위하평원을 내려다 보며 이백이 평생 가장 친한 벗이었던 원단구(元丹丘)를 전송하며 지은 칠언율시인 서악운대가송단구자(西嶽雲臺歌頌丹丘子)를 지었는데 내려오며 음미해 본다.
서악의 험준함은 웅장하기가 그지없고
(西嶽峥嵘何壯哉, 서악쟁영하장재)
황하는 하늘에서 실 같이 흘러오네
(黄河如絲天際来, 황하여사천제래)
황하는 만리를 달려와 산을 진동시키고
(黄河萬里触山動, 황하만리촉산동)
소용돌이 굽이쳐 진나라 땅을 흔드네
(盤渦毂轉秦地雷, 반와곡전진지뢰)
<화산 북봉에서>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데 미쳐보지 못했던 ‘중화석(中華石)’이란돌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바탕에 황금색으로 중국 지도가 나타나서 중화석이라 이름 지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드넓은 중국 땅이 화하족 스스로 일궈온 땅이 맞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국의 곳곳마다 태극(太極) 문양과 팔괘(八卦)로 장식하는데, 태극기를 국기(國旗)로 사용하는 대한민국과의 관계도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중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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