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빨래계곡
일본공사관의 비서 중 한 명 이 수도 인근을 소풍하던 도중, 그가 사랑에 빠졌던 풍광을 발견했고,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극도로 황량한 풍경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일종의 사당이라고 그는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형을 지키기 위해, 내가 떨떠름해 할 가능성을 미리 무시하는 방법으로 아마도 서양인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는 너무 거슬리는 장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풍의 보상으로 그것을 제안하고 약속했다. 그는 자신이 그 소풍에 쏟은 사랑의 적어도 약간만큼이라도 내가 그곳 풍경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은 매우 무력하고 절망적으로 따분하다 보니 생겨난 사랑이다. 그곳에 대한 묘사는 확실히 유혹적이지는 않았지만, 볼거리가 있을 것 같았고, 더 나아가 일본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우리는 극동지역의 사고로는 거의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의 애인을 방문하기 위해 출발했다. 우리는 풍경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내 사진기를 가지고 갔다.
우리가 가는 길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웅장하게 뻗은 경복궁의 긴 성벽을 돌아, 마침내 대도시의 북쪽 모퉁이를 가로질러 산과 만나고, 최소한의 망설임도 없이 그 산을 타고 내처 올라가다 북동문이라는 출구를 만난다. 문을 빠져 나가는데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북쪽의 어느 곳에서라도 도시를 벗어나고자할 때 누구에게라도 성벽의 전략적 중요성이 항상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성곽도시라는 바로 그 이름에는 낭만적인 소리가 담겨 있다. 오늘날 도시의 성벽은 현재의 적을 막아낼 힘이 없다면 적어도 과거의 기억 속에 가두기에 충분해 보인다. 구릉 꼭대기에 쌓은 성벽은 그 안에 웅장함이 있다.
하늘을 배경으로 돋보이는 성벽의 적막함 속에는 인상적인 무언가가 있고, 성문은 투명한 파란색의 작은 일부에 무한한 무언가를 액자처럼 끼운다.
지평선은 보통 누진적이어서, 땅과 하늘이 멀리서 합쳐져 땅이 하늘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을 잊는다. 하지만, 여기서 당신의 눈은 당신보다 몇 걸음 먼저 땅을 따라가고, 그러고 나서 외로운 무한 확장 속으로 뻗어 나간다. 당신 발치에 전경이 순식간에 저 멀리 펼쳐질 때까지 올라가면, 이 세상 끝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산을 오르는 데 힘을 들인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높은 관문 2층에 올라갔다. 경치를 즐기기 위해 이 독수리눈처럼 생긴 누각에 앉았는데, 내 길동무가 거의 인정하지 않는 먼 친척들에 대한 논평에 우연히 빠져들었을 때, 사람들이 문 아래로부터 기괴하게 축소되어 나타났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니, 그들의 모습은 무모할 정도로 모순적이었는데, 눈에 띄게 차이가 나서 경탄을 자아냈다. 처음에는 덤불나무 한 동이 걸어 나왔고, 가장품위 있는 태도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두 개의 거대한 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가까이 붙은 채 산을 내려갔다.
모자 아래 머리와 비교했을 때 모자가 엄청 커서 그렇게 다정스러워 보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더 인상적이게, 사람이 말 탄 채 느릿느릿 우리 발밑에서 나타났는데, 그의 머리는 목의 회전축에 놓여 있고, 밑에 진자몽치가 있어서 규칙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행렬이 지나갔다. 그리해서, 불쌍한 인간들은 형편없는 자동인형으로 격하되었다. 마침내, 위에서 굽어보며 내린 사람을 평판하는 것에 물린 우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와 문을 빠져 나갔다.
성문 반대편에는 조금 떨어져서 성스러운 악귀나무중 하나가 서 있었다. 끊임없는 입맞춤으로 닮아 없어진 어떤 성당에 있는 불쌍하게 보이는 조각의 모습처럼, 그것의 비참한 모습은 한 눈에 보기에도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 버릇없는 것과는 반대였다.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린 가장 애처로운 헝겊 조각과 처량하게 고립된 위치로 인해, 대중적인 숭배의 희생자라 할 만큼 비참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이유는 더 간접적이었다. 그것은 누더기가 된 화려한 옷을 미끼로 사용한 형무소나 함정에 불과 했고, 악귀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나 놀랄 정도로 길로부터 가깝다 하더라도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 나무주위로 돌계단을 쌓아, 행인들이 여름에 친절한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조선의 이 지역처럼, 성 밖의 시골은 구릉의 기복이 특히 심하다. 자연이 그들만의 정체성에 필요한 골짜기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조금 더 멀리 갔다면, 자연은 절망감에 빠져 포기하고 봉우리들이 하나의 연속된 고원으로 합쳐지게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작은 시골에 그럴듯한 계곡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자연의 실수 같았다. 계곡은 예상보다 훨씬 더 깊었고, 끝내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폭이 좁아질 대로 좁아진 골짜기를 지나야 했다.
우리가 처음 들어간 계곡은 진흙이 잔뜩 묻어 있는 듯한 인상을 남겼을 뿐인데, 독자가 나의 표정만 파악할 수 있다면 이 골짜기 말고도 조선의 많은 장소의 겨울 모습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이다. 계곡이 어느 정도 넓어지면서 진흙 계곡은 갑자기 끝났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한 지점부터 그 계곡은 곧 양쪽이 좁아졌다. 첫 번째 계곡이 유쾌하지 않게 보였다면, 두 번째 계곡은 예언자가 말한 황폐의 가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생각에 그곳은 어느 곳과도 닮지 않았다.
우리는 이 황량한 협곡을 올라갔고, 갑자기 우리가 찾던 곳을 발견했다. 좁은 개울가 옆에 사람이 살지 않는 절이 있었다. 중국인의 취향이 스며든 이래 사용되던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내가 본 그 풍경은 어떻게 묘사해도 이해가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정말 작은 보석으로 음산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어떤 전투를 기념하여 지어졌는데, 이 전투에서 조선인들이 이겼다고 확신한다. 계곡의 양쪽은 나무가 거의 없고, 많은 곳에 끼어 있는 틈새를 가리기엔 충분한 흙이 없고, 중앙의 개울 양쪽에는 덮인 흔적조차 없는 매끄러운 회색 선반의 바위가 있었다. 온갖 종류의 수많은 잔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걸로 보아, 어떤 계절에 분명히 급류에 쓸려왔을 것이다. 바위 속에서 대지의 뼈를, 흙 속에서 대지의 육체를 보는 조선인의 눈에는, 그곳이 아주 해골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가 바로 옆에 매끄러운 바위가 있는 이 작은 하천은 자연이 의도한 것이었으므로 조선인들은 현명하게 의류 세탁 도매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지역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그들은 세탁한 의복을 바위 위에 널고, 그곳에 내버려두어 말렸다. 그래서 이제는 수많은 흰 조각들이, 비록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그렇지 않았다면 온통 회색이었을 바위를 완화하였다.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이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절 맞은편에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는 멀리 홀로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빨래를 어디까지 널었는지 직접적으로 단언할 수 없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거리만 개울을 타고 올라갔다. 하지만 계곡 위로 보이는 곳까지 많은 옷이 널려 있었다. 어떤 곳은 상당히 멀리 떨어졌지만, 지키는 사람하나 없이 온통 빨래만 널려져 있었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여인들과 마주쳤는데, 그들은 짧은 등근 막대기로 허드레 빨래감을 가장 무자비한 방법으로 두들겼다. 이 관습의 명백한 증거만으로도 나는 조선인들이 옷을 빨아 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무척 회의적이었지만, 그때 나는 유감스럽게도 하얀 옷을 입고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옷 세탁 방식은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가장 간단하다. 그 옷들은 가장 가까운 개울가로 옮겨져 더러운 유령의 정신을 내줄 때까지 방망이로 두드린 다음 바닥에 널어 말린다. 이 방법은 간단한 옷 조각의 경우 쉬울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다. 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한 가지란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관습인데, 조선에서는 겨울 옷만 그렇게 취급한다. 세탁할 의류는 먼저 구성부위를 분해해서 각각 따로 빨래한 후 말린다. 분해된 의복은 그 후 다시 모아 꿰매므로 빨래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새 옷과 맞먹는다. 일본에서 이 방법의 효과는 독특한데, 모양을 잘 유지하기 위해 손으로 널빤지에 도배하듯 붙여 말리며, 그대로 옷을 꿰매면 실제 모습과 똑같다.
우리는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실제로는 계곡이 굽으므로 산을 넘는 지름길을 택했다. 특정 종이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마을로 갔다. 그 제지공장은 더 이상 가동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갑자기 급습한 꼴로 인하여 또 다른 관심 대상을 거의 확보할 뻔했다. 방금 놓친 이 횡재는 내가 본 조선 여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동네일에 매우 바빴다. 물론 짧은 시간 동안만 그녀를 본 것만으로 최상급을 쓸 수 있냐고 하겠지만, 이 경우에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오래는 아니지만 꽤 자세히 보았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녀의 사진을 찍기를 원했다. 그녀가 우리를 보자마자, 우리의 의도를 알 만큼 기다리지도 않고, 내가본 적 없는 정도로 재빠르게 이웃집으로 도망쳤다. 그 입구에는 한 노인이 동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서 있었다.
그 집은 개울 한쪽에 있는 둑 위로 약간 올라가 있었다. 반복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그것도 매우 불필요하게, 도둑맞는 것은, 우리에게 회복하기 위한 투쟁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담판을 시작했다. 우리는 선량한 김씨를 전면에 불러, 난민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둑 위에 있는 나이든 열혈 조선인에게 말했다. 그곳에는 우리 모두가 마치 공격하기 전날 군대의 주둔지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둑 꼭대기에 있는 나이든 적, 그 밑에서 그와 말을 트는 김씨, 개울 한가운데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나, 더 멀리 퇴각기지로부터 제안을 하는 일본공사완 비서. 이 연로한 조선인은 위에서 언급한 추정된 연관성을 물론 부인했다. 이에 우리는 그에게, 관련이 없으니 그 사건의 당사자가 적어도 그의 집에 숨어 있고, 따라서 그가 그녀를 나오게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녀가 너무 완고하고 너무 놀라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첫째로 우리 목적의 무해함을 설명하려고 했고, 둘째로 사진 촬영에 필요한 영광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에 빛나는 희생자들의 긴 목록을 열거했다. 우리는 이것이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그가 대답한 것은 단지 그녀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거짓이지만, 그 말을 부인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때 우리에게는 설득력 있게 보였던 다른 모든 유인책들을 제안함으로써 외교적으로 계속 회유하였고, 마침내 그는 우리에게 그만큼 나이 먹었고 더 추한 늙은 노파로 대체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약해졌다.
때마침 그녀가 집 안으로부터 나왔는데, 아름다운 처녀의 할머니쯤으로 생각했다. 나이는 그 보다 더 먹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아름다움을 잃은 그녀는 적어도 사진 강간에 대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는 처녀에서 새로온 사람에게 관심을 돌렸고, 우리가 발명품들을 상당히 많이 소진했기 때문에, 순서는 다르지만 노인에게 했던 말을 반복함으로써 그녀의 아마도 부드러운 여성다운 마음에 영향을 미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으려는지 전혀 아무것도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은 채 응시하는 것은 무엇을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노인은 다른 불가능한 이유 중의 하나로 그 젊은 여인이 이제 집에서 도망쳤다고 무료하게 덧붙였다. 우리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녀가 안에 있다고 확신했지만,
우리는 무력 했다. 그 집의 개는 이제 둑에 있는 무리에 합류하여 이따금씩 어떻게 되어 가는지에 게으른 관심을 보였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했다. 우리는 하녀를 불러 세웠는데, 그녀는 너무 무거운 빨래 보따리를 들고 집에 가는 길이어서 도망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정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뒤 오랜 시간동안, 젊은 여인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을 때, 조선식으로 너무 신중해서 할머니 밖에 볼 수 없었다는 후회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전적으로 성에 관한 문제였다. 조선에는 수많은 사례로 판단할 수 있는 한, 사진 찍힐 것에 대한 미신적인 두려움이 없다. 예를 들어, 사진이 인격의 일부를 빼앗긴다는 미신이 중국에 존재한다.
우리 또한 제지공장 보는 것을 놓쳤지만, 조선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생산품인 종이, 즉 한지에 대해 한마디 해도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넝마가 아니라 오로지 종이 나무의 껍질로 만들어진다. 그 결과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조선, 일본, 중국의 종이 세 가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종이와는 매우 다른 제품이다. 우리 종이는 어느 방향으로든 쉽게 찢어지는 데, 한지는 결대로 길게 찢어진다. 때때로 찢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때가 있다.
나는 종이가 그 면을 가로질러 힘에 굴복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가늘고 넓은 층층을 타고 갈라지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강점으로 인해 우리 제품 보다 훨씬 더 일반적으로 실용적 인 제품이 된다. 그것에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의 아주 사소한 용도 중의 하나이며, 사실 우리 의미에서 그것은 유약이 발라져 있지 않기 때문에 거의 글을 쓸 수 없다. 반면에, 많은 종류의 기름이 발라져 있어 방수가 되고 매우 질기다. 기름종이는 집의 벽지, 모자, 외투, 그리고 날씨에 노출되거나 계속 마모되는 곳에 다른 많은 용도로 사용 된다.
천연종이는 서예(적절하게 부르면 그림), 책, 부채, 등불 등에 사용된다. 이 형태든 저 형태든 너무 흔해서, 한 종류를 쓸 수 없으면 다른 종류를 쓰면 된다. 유약을 바르지 않더라도, 제조과정에서 압착되어, 그리고 재료의 특성에 따라 광택이 난다. 그러나 광택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한지는 일본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며, 진정으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전에 세계에서 명성을 떨쳤던 몇 안 되는 조선 물품들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