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 자격 취득에 열 올리는 요즘 일상
2024. 1. 24.
한양대 수학도 마치고 새해를 맞은 요즘, 나는 이제 소득이 있는 일을 찾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지난 한달 이래 김포고용센터와 洞행정사무소 등 이곳저곳을 탐방했다. 담당자들이 알려준 워크넷 사이트를 살펴보며 할만한 잡(Job)이 없는가를 열심히 살폈다.
여전히 외부 Job을 찾아야 하는 현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대학 평생교육원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경영경제학이나 인문학 강의안을 갖고 이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강의하는 것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칠순이 다된 사람이 그런 강의 기회를 얻는 게 그리 쉽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왔고, 나 스스로도 몇 군데 강의제안서를 보냈지만 응답이 시원찮음으로 인해 잘 감지했다.
<세계 각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순위>
경성대 퇴임 후 나이 든 대학생 놀이를 4년이나 하며 코로나 시기에는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채 어쩌다 얻어걸린 망외의 건수로 와이프가 한평생 맡아온 가계경영을 도왔다. 큰아들 대학 선배라는 무슨 기업보험사 직원으로부터 경남고 출신 키맨으로 제안받아 자신들이 포착한 경남고 출신 경영진의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신규보험과 업무경정 계약 몇 건 성사에 조력해준 댓가로 받은 천오백여만원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콩팥 초기암 발견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계약 맺은 세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험금 총 8천여만원이 나의 멋진 한 건으로 기록되며 마누라에게 반띵 이상 내놓으니 와이프가 가계운영에 모처럼 숨통이 튀인다며 크게 반색했다. 덕분에 한 1년 이상 특별한 경제적 위기감을 느끼지 않은 채 꽤 잘 보내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런 건수가 우리부부의 노화진행과 함께 다시 오지 않아 뭔가 뚜렷한 수익원이 없다면 우리의 기존 생활조건은 무너지기 일보전이라는 위기감이 다시 고조되었다.
그간 우리는 은행예금처럼 해놓은 각자의 기천만원대 주식투자 계정에서 소량 주식들을 매도해 자기가 맡은 월 생활비용을 감당했다. 나는 매도금으로 1억 중반에 달하는 주택대출금과 ‘19년 말에 접었지만 아직 O천만원 정도 남아있는 옛 편의점 시절의 대출원금, 그리고 아파트 관리비 및 각종 공과금을 막는데 들어가는 총 백팔십 정도를 매달 책임져 왔다.
<가계부채에 짓눌리는 한국의 중노년층>
와이프는 100여만원 되는 내 국민연금과 지난 여름부터 나오는 자신의 20만원 중반되는 노령연금을 기반으로 자신의 주식 매도금을 통해 둘째 캥거루 아들 포함한 우리 세가족의 생활비용과 각종 의료보험비용을 감당했다. 그런데 나처럼 분산투자를 해도 주식시장이 침체할 때는 고전하는 판에 자신이 확신한 이차전지 분야에 집중투자한 마누라의 투자성향으로 인해 요즘의 이 분야 폭락세에서는 생활비 염출을 위한 주식매도를 손댈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거주하는 김포 R 아파트 모형도>
결국 작년 여름부터 손절매 위기 탈출을 위해 아파트를 팔아 주택대출금을 털고 노령자 대상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자고 했다. 손에 쥔 남은 자금으로는 엄청 떨어진 주식들을 사모아 주가 반등할 때를 기다리겠다는 속내를 엿보이며 나를 줄기차게 채근했다. 나는 너무 한탕주의를 노리는 경제관이 미덥지 않았고 십수년 간 머물며 내 맘에 든 이 집을 떠나기 싫어 계속 버텼지만, 작년 가을 아파트 처분에 결국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담당하는 대출원금과 이자 막는데 투입되는 내 아까운 주식들의 손절매도가 멈춰졌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근처 부동산중개소에 아파트 매도를 의뢰했더니 한 오억 초반이면 나가겠다고 해 재작년 여름의 최고가 7억 오천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처분하려는 분위기로 나아감으로써 한 두 번 매수 희망자의 집구경 방문도 겪었다.
먼저 치고 나간 박모
하지만 우리는 점점 내려가는 시세 속에 투매가로 던지기는 내심 싫어 시세 회복이 될 때까지 시간을 좀 더 벌며 버텨보자는 결심으로 아파트 매도를 다시 거둬들였다. 둘째 놈까지 합쳐 셋이서 밖에 나가 각자의 능력으로 수입을 좀 건져오자고 결의를 했다. 이럴 때를 예견하고 작년 여름 국민배움카드로 요양사 양성학원에 두어 달여 다닌 와이프가 요양사 자격증을 설렁설렁 따자 작년 말부터 근처 요양소에 요양보호사로 채용되어져 먼저 일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사진으로 가져온 송파요양센터>
첫날 갔다 오더니 이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거의 최하위급 노가다 일인 것 같다며 이런 곳을 늘그막에 찾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자존감을 바닥으로 만든다고 치욕스러워 했다. 늙은 요양인들 돌보는 일이 엄청난 체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라 조만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정 그렇다면 그리 하는 수밖에 하고 동의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한 며칠만 더 다녀보다 최종 결정하겠다고 하며 다시 억지춘향식으로 끄떡끄떡 갔다. 나와 둘째 놈은 나눠서 설거지도 하고, 각자 간편식으로 두 끼니씩만 해결하며 박다르크가 돌아올 때까지 쪼골스러움의 시간을 보내었다.
<이미지 사진으로 가져온 어느 요양소 내부>
박이 두 번째 날 돌아와서는 어쩌면 쪼끔 더 할 수 있을 것도 같다며 더 다녀야 하는 쪽으로 마음을 다지는 듯 했다. 알고보니 동료 요양사들 연령대가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70대 초에 중산층 출신들이 많아 가계사정상 단기 막장 일거리로 여기며 급전 챙기러 왔다 2백만원대 고정 수입 맛에 초기의 충격에 적응되면 대충 눌러앉는 경우가 꽤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매스컴을 통해 들었던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요양 문화’가 시대적 현실임을 곧바로 절감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추세로 유치원이 노인요양소로, 결혼식장이 장례식장으로 바뀐다는 뉴스를 근자에 자주 접했는데 박의 필드 보고를 통해 이제 노인요양업계는 우리나라에서도 구조적으로 번창할 수 밖에 없음을 한번 더 실증적으로 확인했다.
내가 박이 돌아올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펼쳐졌나?’ 하고 물으면 박이 생기를 띄며 ‘여기는 매일매일이 버라이어티 쇼장이야!’ 하고 그날 있었던 톱 3 사건 순으로 주욱 옮겨주었다. 조금씩 깊어가는 치매성 노친네들 돌보는 스트레스성 일 자체와 한번씩 분변을 싸지른 노인네들 오물을 치우고 목욕까지 시켜야 하는 험한 일을 자기 팀이 어떻게 처리했나를 인간주의적 르뽀작가 정신을 깔고 특유의 유머러스한 입담으로 풀기 시작했다.
<어느 중년 요양사의 노인환자 돌보기>
그리고 3명으로 구성된 자기 팀이 돌보는 요양노인들 중 15명은 여성이고 5명은 남성인데 진상들 한 두어 명을 빼면 모두 가벼운 치매끼가 있지만 감정과 자존감이 있는 인간이라 그냥 기계적이고 교감없는 태도로 노인들을 캐어하는 다른 요양사들과는 달리 좀 사람냄새 나게 대했다 했다. 그랬더니 일부 환자들 중 진심으로 고마와 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제법 뿌듯했다는 스토리도 자랑스레 들려주자 나도 그건 아주 잘했다고 치하해 주었다.
요양사들의 활동동선을 cctv로 일일이 감시하는 원장과 그 가족들은 팀에서 일 느려터지게 한다는 굼뱅이 별칭을 가진 박을 탐탁치 않게 여기겠지만, 앞으로 15년 안에 곧 거기로 갈 우리네 상황도 짐작해 볼 때 작가정신을 갖고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요양소 경영주들의 지나친 영리적 운영 문제점들을 드러내어 개선을 촉구하는 고발서 같은 글을 작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일의 노가다성에 비해 야간특근비도 끊어먹고 최저임금에 준해 계산해주는 요양소 간 카르텔적 임금체계, 야근하는 요양사들이 밤에 세 시간을 교대로 눈을 붙일 수 있는 독자 취침공간 확보 요청을 '그게 왜 꼭 필요한데?' 하는 경영층의 조직원 복지 무개념, 근무 중에 가지는 취침시간은 유급시간이어야 한다는 현행 노동판례들에 정면 위배되게 ‘무급휴게시간’으로 자의적 해석을 해 시행하는 위법적 갑질 등이 마누라로부터 전해 들은 우선적인 문제점들이었다.
<어느 요양소의 번드르한 내부 복도 홍보 사진>
그리고 수용 노인들이 이곳을 종신감옥으로 여길만큼 외부 방문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비인간적 경영 사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2주간이나 매월 한번이라도 자기 가족들과의 외박을 노인보호법으로 보장하는 법이 만들어져야겠다 싶었다.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여기는 노인들이 많음에도 고객인 자식들의 이기적 편의만을 위해 주구장창 요양소 내에만 노인들을 머물게 하는 요양소 측의 경직된 운영 방침이 시급히 개선되어져야 할 포인트로 추가되었다.
근무 4일(주주야야) 만에 돌아오는 이틀(휴휴) 간의 비번 날에 와이프는 집에 오면 곧바로 쉬어야 함에도 생체리듬이 잘 안맞아 제때 잠을 못자는 때가 많았다. 오히려 일하고 자는 단순노동기계처럼 자신을 취급하기 싫다며 잠자는데 연연하지 않고, 수십년 간 몸에 배인 전업주부의 관성 때문에 집안 청소질과 내가 한 설거지가 못마땅한 지 한번 더 확인사살하는 작업을 꼭 행했다.
어쨌든 이달 초 생전 안해 보던 고정 일터에서 사상처음으로 5주간 일해 받아온 230만원 중 50을 내게, 30은 작은 놈에게 주며 나머지는 생활비와 자기가 막아넣어야 할 곳에 사용한 듯 했다. 하지만 요양소 일이 체력과 스트레스 억제력이 적지 않게 요구되어 결코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나도 이번에 잘 알았다.
따라서 생전 노동경험이 없는 와이프를 여차하여 바깥 일에 몰아넣고 강사 일자리 같은 원하는 일만 하염없이 기다릴 처지가 아니기에 나는 좀 더 접근가능한 일자리 찾기에 가일층 박차를 가해야 했다.
상담사 자격증이 눈에 꽂힌 필자
워크넷을 통해 내게는 상담사 일이 할만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지역노인복지관 같은 기관에서 찾는 노인심리상담사가 되려면 우선 국가인증기관에서 발급하는 상담사 자격증 제시가 일차 관문이었다. 물론 이런 곳에서도 심리상담사의 현실적 정년은 관행적으로 60~65세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일단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려 한국심리교육협회가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수강 등록을 했다.
<초고령사회에서 중요성이 점점 커질 노인심리상담>
수강은 무료지만 자격증 시험을 칠 때 인터넷 강의 사용료로 8만원을 요구하는 데 이 돈만 든다면 한번 해보리라 하고 지난 1/8일부터 열심히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제공하는 강의 목록을 보니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심리상담사’와 청소년 전담인 ‘청소년심리삼담사’ 과정도 일단은 돈이 안드니 지난 가을 한양대에서 4개의 중급외국어 한번에 수강신청하듯 등록했다.
영리기관인 본 협회의 수강생 돈 울궈내는 기법이 새롭지만 일단 해당 과정들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다루는 가를 살피고자 한 열흘에 걸쳐 동영상 교육을 1.5배속으로 시청하며 전체 3과정을 속성으로 다 마쳤다. 내 눈에는 강의 내용이 실전성과 깊이가 약간 떨어져 진지하게 접해지지는 않았지만 기관들이 입장권처럼 요구하는 쯩을 제시하려면 동 심리교육협회가 제공하는 2급과 1급 과정 시험을 쳐 합격하는 길이 그 첫걸음일거라 여겼다.
어느 '노인심리상담사 양성' 교육장
이렇게 설정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한 열흘간 뭔가에 몰두할 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에 스스로 좀 고무되었다. 와이프도 그동안 여러번 때려치우고 싶다며 집 내놓자고 푸념했지만, 그 다음 날은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출근했다. 가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오는 자신이 어쩌면 지금까지 널널하게 살아온 데 대한 비용지불 청구서를 받는다는 기분도 든다고 했다.
다른 한편 좋아하는 대본 글쓰기에 이보다 더 생생한 현실 場이 어디서 제공되겠냐 싶어 하늘이 준 기회라 여겨야 한다고 내가 한 마디 바람잡으니 밉쌀스럽기 짝이 없다는 듯 쬐려보면서도 속으로는 쪼끔 고개를 끄떡인 듯 했다. 그 증거로 며칠 전부터는 이곳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시리즈물로 기록하기 위해 돌아와서는 내게 말로도 전해주고, 자기 휴대폰에 기록해 카톡에 저장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참, 캥거루 우리 둘째 놈도 십년이 넘은 도제생활 끝에 만난 현역 음악감독 눈에 들어 드디어 방송 드라마 음악팀에 합류해 저작권 수입을 챙길 수 있는 프로 작곡가들의 말석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막장에 투입된 저그 옴마와 나, 그리고 큰 아들 놈까지 오호! 하며 커다란 기대감을 품게 했다.
<캥거루도 목록을 보탤 K-팝계>
둘째가 오랫동안 캥거루란 별칭 속에 저그 형의 쯧쯧거리는 시선을 만날 때마다 받았는데, 이제는 그 암흑기가 끝나는 전환기가 도래했음을 드디어 직감했다. 자신을 구해주는 마지막 동아줄이 세월 속에 축적되어 나타났다 싶었는지 이제는 철없는 시절처럼 더 이상 어영부영 보내지 않겠다는 내심의 결의가 내게도 보여졌다.
나 역시 대학생 놀이 한다고 치열함이 가득 찬 현실세상에서 한 걸음 발뺐던 시절로부터 다시 복귀한 이상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는데 우선 매진할 작정이다. 따고나면 다시 수소문하여 실무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수습기간까지 마치려 한다.
그리하여 그간 연마했던 ‘인문예술+경제경영+법학’ 부문의 배경지식들을 총동원해 구사하는 멀티플한 심리상담사로써 우뚝 서 남은 노년의 인생을 사회적 약자와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해 펼치려 소망한다. 찐한 현장경험을 장착하게 된 박 작가가 더 성숙한 작가로 거듭나고, 오랜 무명기 속에 축적된 창조의 에너지를 승화된 K-음악으로 재탄생시킬 예비작곡가와 함께..
첫댓글
김박사, 이야기가 아주 현실적이자 실감이 나는 내용인데다 마치 해피엔딩
드라마처럼 희망차고 푸근하게 마무리 되는 구조라..읽는 맛이 아주 좋군요.
안그래도 근황이 궁금하던 차..마치 이를 알고 있었다는듯이
조곤한 글체로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주시네요.^^
힘들어 보이는듯 스토리를 써나갔지만..그래도 현재 서토가 감내해 나가고 있는
정황에 비긴다면..정말 양반같은 여건으로 사료됩니다만..
한국이나 미국이나..평소 어 하며 만년의 경제에 무심한 세월을 보내다 보면
누구든지 조금은 팍팍한 상황이 되기 쉬운듯 합디다.
서토, 또 찾아온 신년 잘 보내시고 있능교? 나는 보시다시피 여러 정황이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서 와이프와 닥쳐온 경제적 고비를 넘기기 위한 방책 모색에 여념이 없소이다. 한국사회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다보니 70대가 넘어가도 사람들이 경제적 활동을 해야 최소한의 노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모양새임다.
서토 역시 빡센 경제적 고초를 헤쳐나온다고 나보다 더 고군분투하는 모양이구료. 삶이 고해 자체라 하니 팍팍한 삶의 조건 속에서 이런저런 압박들을 몸 건사와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부여된 수명만큼 담담히 지내다 떠납시다.
와이프는 양가적 마음을 품으며 잘난 가족을 위해 먼저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데, 이 힘든 시기를 빠른 시일 내에 변환할 수 있도록 둘이 같이 적극 모색하리다. 서토 부인도 경제활동 여전히 하고 있지요? 난세에는 여인들의 결단력이 더 셉디다.
그래도..타국 땅에 혼자 떨어져.. 밑도끝도 없이 계속 고생하며 몸이 상해가고 있는
서토같은 이의 암담한 처지가 문제지..
김박사는 비교적 건강한 체질인데다..매우 도전적이고 진취적 성품이라..
다가오는 애로들을 무난히 잘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특히나 상담역의 선택이 아주 현명하게 여겨지네요.
자리가 주어진다면..그간에 다양하게 준비된 지식을 엮어..누구보다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는 훌륭한 상담사 역할을 잘 해내리라 아울러 믿어지는군요.
아무쪼록 김박사가 계획하는 바대로.. 모든 일이 순탄히 이어지기를 적극 성원합니다.
서토는 내가 하려하는 일은 뭐든지 괜찮아 보인다고 몸에 배인 격려사를 인심좋게 막 던져주는구료. 내 건강도 옛날 얘기지 세월의 흐름 속에서는 장사가 없습디다. 몸의 각 분야에 크고 작은 시한폭탄들을 달고 사네요. 마 이 모든 게 삶의 나이테 같은 거라 여기고 그냥 보듬는 관리 정도나 하며 지내는 중임다.
대신 예전에 봤던 책들을 다시 만지작거리거나 새로 나타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우리 인생의 다양한 이면들을 살펴보며 남은 우리네 생의 후반을 음미하려 하네요. 그럴려면 최소한의 소득원은 확보해야 한다는 제약조건이 다시 부각되어 요즘 이 조건 해결을 위해 제법 노심초사 중이고요.
서토 말대로 뭐 그럭저럭 잘 풀리리라 하는 마음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 좋은 쪽으로 다잡고 있심다. 서토도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여진다 생각하고 세상에 대한 노익장의 담대한 마음가짐을 유지해주기 바라외다.
@김재민 티벳 사람들의 궁핍한 생활은 국민소득 500불보다 더 처참한 지경입니다. EBS의 세계기행 티벳편을 보니, 티벳 사람들은 모든걸 숙명으로 받아들여 배고픔도, 질병도, 자연재해도 모두 그러려니하며 超해탈적인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대단합니다!
길영공은 부부를 둘러싼 경제적 환경이 그래도 플러스 국면에서 유지되고 있지요? 부인을 캐어하는 깍듯한 마음가짐이 여러 난마들을 막아주는 필살기가 될 걸로 사료됨미다.
@김재민 노년에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출만 있지,고정 수입이 없으면 숨만 쉬도 돈이 자동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하루라도 일찍이 귀국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여기에 있으면
절약하는 것이 ; 건강보험료,아파트 관리비 65만원 거기다가 메이드 인건비 (월 22만원) 밖에 안듭니다.
아파트 세를 주어서 약 1,000만원 가량 년 수입이 있지요.해외에 있다보니 기초연금 못 받습니다.
세입자가 전세대출 이자를 버거워해서,저가먼저 월10만원을 보조해줄태니 오래 있으라고 했는데,이;번 5월에
재계약이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보조해줘도 뭐 크게 손해 볼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누가 발병을 하기 전에 약국이라도 하면 노후 생활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닫했지만,세상일이 어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혹뗄라고 하다가 오히려 혹을 붙였습니다. 이제 滿 13년이 지나다보니 밑천이 다들어나서
안쓰는 것이 버는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나빠 질 것도 ,더 좋아 질 것도 없는 내 인생 ! 그저 아픈데 없이 숨쉬다가 멈추면 가는 것이지요.
@이길영 길영공의 마닐라 생활이 한국보다는 훨씬 경제적인 것처럼 여져지네요. 특히 메이드 인건비가 월 20여만원 밖에 안드니 참 부러울 정도임다. 한국 정부에서 작년부터 동남아 메이드들을 월 100 이상에 입국하게 하는 안을 만지작거리니 이 친구들에게는 아주 그럴 듯한 일거리라 여겨져 현지에서 경쟁이 치열할 것 같네요. 초기에는 수준있는 필리핀녀들이 대거 들어오지 싶심다. 요양원 인력도 이들이 곧 접수할거고요..
송도 아파트 재계약이 되던가 다른 세입자가 나타나면 좋겠심다. 빡빡하고 비용 많이 드는 한국사회보다는 수입이 적은 노년들에게 필리핀이나 베트남 같은 곳이 좀 더 여유로운 삶을 구가할 것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인생 후반을 친구들이 많고 노년 캐어 인프라가 우월한 한국에서 보내는 대안 역시 시간이 가면서 더 매력이 가중될테니 여러모로 잘 살펴보기 바람다.
아, 박보살님~~~. 이건 일반인은 전혀 노동감을 잡을수 없는 극한의 노동! 내가 왜 아냐고 하면 대학교 과 동기가 1년전 요양원을 오픈했는데 파킨슨병 걸린 막내 고모를 입원,퇴원시키는 험난한 과정에서 직접 뼈저리게 느꼈음...
수인공은 요양원 현장에서 이미 요양사들의 노동강도를 목격했네요. 나는 와이프를 통해 에피소드적인 사건들만 축약적으로 전해들었지 직접 눈으로 목격한 적이 없어 그 실체적인 현장을 본 적이 없심다.
수인공이 봤다는 그 현장들에 대한 소감들을 좀 전해주면 나도 박보살을 빨리 그만두게 할 방책을 같이 모색하겠네요.
애숙님,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와이프가 자신이 지금 이 일을 하는 소회와 기왕지사 이리 된 바에 대본 글감을 얻어보자는 심정으로 좀 버텨보려 합디다. 그런데 자신이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을 웬만하면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내가 '누구도 세불리하면 평소 때 생각치도 않던 일을 할 수도 있다' 하고 위로하며 겪은 일을 기록하라고 설득했네요.
조만간 자신이 작성한 리포트 글을 여기에 올릴 수도 있을 것임다.
2년전에 글 올렸었는데...
구청 구직알선센터의 소개로 모 고교 급식일을 했는데 그거 보통 힘든게 아니더라고. 배식만 하는게 아니라 배식전에 밥과 반찬 등을 옮기며 준비.근데 배식후가 더 힘듬. 커다란 밥통과 반찬통 나르는건 약과고 테이블 위는 물론 바닥을 깨끗이 세척하느라 힘이 완전 빠지고 허리도 욱신....그래서 67000원받고 이틀만에 철수! 이후 주차관리원도 하려 했는데 마눌이 말려 출근 직전 포기!
가족분들의 적극 만류로 포기한 것인지..아니면 평소 게으른(?) 편인데다
그냥 힘든 일이 하기싫다(?) 보니 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제가 추측키에는..그리 안해도 밥묵고 사는 데는 별반 큰 지장이 없다보니
손을 떼신 것이 아닌가 함미다만-
서토를 비롯, 소위 먹물(?)들은.. 좀 어렵더라도..가능하다면 최대한, 몸으로
때워야 하는 힘든 일은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지만 ..
서토의 경우, 정히 여의치 않게되다 보니..뭐라도 하게 되더군요.
이런 경우..몸이 따라주어야 하니..평소에도 늘 건강에 유의해야 되겟습디다.^^
@김의철 집을 처분하고 변두리로 가면 여유있게 살수 있는데 형편이 그렇지 못하네요. 올해부터는 내핍생활 돌입 ㅎㅎ
아, 이 글 기억나네요. 뺑이쳤다 했지요? 급식장 일도 사람들이 오래 하면 골병드는 일이라 합디다. 여기도 엄청난 노동강도에 비해 보수가 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네요.. 그림자 노동들을 정당한 보수로 쳐주지 않으니까 이런 모양임다.
요양소에서 야근시 세시간씩 교대로 눈붙이는 6시간을 무급시간으로 잘라먹는 사례도 여기에 속하네요. 잠은 자지만 항상 업무적 상황발생의 대기조가 된 마음으로 자야 하니 완전자유휴게시간과는 커다란 차이가 남다. 업무와 당연히 연결되는 시간이니 무급이 어불성설이지요.
한 자리에서 눈에 보고 목소리로 귀에 듣듯 실감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한국이 노인빈곤이 문제라지요. 빈곤은 아니지만 미리미리 현실을 개척해 나가려는 행동력과 그 가운데서도 늘 질 높은 문화를 지향하는 선비정신이 존경스럽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밝은 기운이 돕니다.
멀리서 기운을 보태며 축하합니다.
법사도 신년 잘 맞이하고 있지요? 법사야 쌓은 학덕과 공덕이 많은 양반이니 늙어가며 부대끼는 동기 중생들의 삶이 많이 긍휼하게 여겨지겠심다. 우리부부 역시 노인빈곤까지는 아니라도 경제적 안정은 확보하지 못해 와이프가 노동현장으로 급기야 뛰어나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네요.
저 역시 이번 일로 인해 와이프가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고자 일단 단기필마로 달려나간 결단에 높은 평가를 하고, 앞으로 세상 뜰 때까지 등에 업고 지내리라 결심하게 되었심다. 아무튼 법사의 따뜻한 위안과 격려를 큰 힘으로 삼고 올 한해도 잘 보내려 함다. 뭐 죽으란 법은 없겠지요..
@김재민 애숙님 경우, 신체적 한계가 올때 관두는게 적절할수도...물론 무리는 절대 금물입니다. 번것보다 병원비가 더 나가니...상호 자주 체크하소
노인 은퇴자들의 실 생활을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내 주변의 노인들도 노인정청소
일주일에 3일 하루 스3시간 하여 한달 27만원 수령.
아파트 미화원 아파트 영선실에서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집은 비싼곳에 사는데 수입이 지출보다 적으니
일 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입니다. 재민박사 글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대책도 필요
합니다.
백교장도 잘 지내시능교? 서예실력이 엄청 늘었다는 게 제 눈에도 띄입디다.
주위에 있는 중산층 출신 노인은퇴자들의 일거리가 너무 판에 박은 듯 제한되고, 보수 역시 비현실적이니 노년의 품위있는 삶은 경제적 수입이 안정된 선택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일차적으로 해당되는 것 같네요.
통념상의 사회적 정년도 없애버리고, 노인들 역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책하지 않은 채 자기단련을 죽을 때까지 할 수있게 하는 사회적 컨센세스와 제도적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할 때라 여겨짐다.
김박사의 글을 읽으니 인간의 도전 정신의 모범을 보는 듯합니다.
그 용기와 도전 행위가 결실을 맺어,
'‘인문예술+경제경영+법학’ 부문의 배경지식들을 총동원해 구사하는 멀티플한 심리상담사로써 우뚝 서 남은 노년의 인생을 사회적 약자와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해 펼치려 소망'이 꼭이루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