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제목은 원래 작가가 붙인 것이지만
굳이 사람과 우주와의 관계를 붙이자면
사실은 사람이 언감생심 우주의 주인이라기
보다는 이분이 쓴 글의 내용상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소우주라는 표현이
그나마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세상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시시각각 온갖 사건 사고들로 하루에도
무수한 생명들이 사라지곤 하는 때라도
그 각자들은 누군가에게는 목숨보다 귀한 존재인
것이고, 조상들과 수많은 인연들의 바람으로
간신히 바늘 끝 같은 기회를 잡은 생명인 것이니
어찌 보면 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
신께서 숨을 불어 넣어주시고 자연이 길러내는
이 세상에, 소임을 다해 공부하러 온 소중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한 목숨이 스러진다는 건 그 안에 담긴
신의 숨결, 우주 자연의 사랑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작은 미물일지라도 하찮은 목숨이란
없다고 하셨는데 하물며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영혼들이 세세생생 그토록 간절히 바라며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사람의 몸을 받아 온 이들이
기껏 이 세상에 와 꽃도 열매도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이제 그만!’ 하는 자연의 소리에
떠밀리듯 돌아가야 한다면 그 안타까움이 오죽할까요.
아래 인용한 글의 내용처럼 사람의 귀함과
생명의 가치를 아는 세상이라야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우침이 향기로서 더해져
신께서 만들어주신 이 세상이 제 노릇을 다하면서
오래도록 이 우주의 일부로서 아름답게 존재하기를
바래봅니다.
---------------------------------------------------
『지구 위에는 수십억 명의 인구가 지역별로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수십억 인구
중에서 단 한 사람쯤이야 백사장의 모래알
하나처럼 무가치 무의미하게 여겨버릴 수 있으나,
따지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우주의
주인공이자 우주 전체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 한 사람이 우주의 존재 이유고
우주 자체라는 것이다. 옛날의 책을 읽어 보면
인간 한 사람의 높은 가치를 이야기한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율곡 이이나 다산 정약용도
사람의 가치를 거론한 바가 있다.
‘시이자가계(示二子家誡)’라는 글을 보면
“군자가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온통 욕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진가를 알아주기를 바라서이다.”라고 했다.
글을 써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일인(一人)’의 귀중함을 말했다.
맹자는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장에서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한 가지라도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인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
단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율곡은 이를 그대로 인용해
『격몽요결』이라는 책에서 “죄 없는 단 한 사람만
죽이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지라도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지녀야만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맹자·율곡·다산은
한 사람의 존귀한 가치를 넉넉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공자의 후학들이 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국토를 방위할 국군들이 기본 책무를 던져버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반(反)쿠데타 군인들에게 무차별
발포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들은 또 5·18에 광주로 내려가 민주주의를
하자고 외치는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우주인 생명을 그렇게도 무참히 학살했지만,
이들 신군부 세력 대부분은 인과응보도 지켜지지
않은 채 천수를 다했다. 이런 일이 현대에
있었던 우리의 역사였다.
그러나 길게 보면 하늘은 결코 눈을 감지 않는다.
인과응보도 늦을 수는 있어도 반드시 오고야 만다.
영화 속, 반란군들과 반쿠데타 군인들과의 충돌에서
반란군 지도자에게 반쿠데타 지도자가 외치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너는 대한민국의 군인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라고
외치던 목소리.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군인은
군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라는 외침은 무고한
사람 죽이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상기시키는
역사에 길이 남을 외침이라고 여겨진다.
진리는 늦게라도 끝내 도착하는 기차다.
한 인간의 가치를 부정한 그들에게 미래의
후학들은 절대로 눈감지 않을 것이다.』
--박석무 다산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