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고재오, 조령산에의 도전
어언 16년 세월이 흘렀다.
2008년 초가을인 9월 어느 날, 우리 문경중학교 13회 동기동창 친구들과 어울려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봉을 올랐었다.
대청봉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오색에서 새벽 2시쯤의 아주 이른 시간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등산모에 장착한 헤드라이트로 그 어둠을 뚫었다.
초입부터 가팔랐다.
그 가파른 산세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 모퉁이만 돌면 좀 평탄해지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지만, 그 모퉁이에 가면 또 다시 가파른 산세였다.
턱밑까지 숨이 차서 헐떡거려야 했다.
일행들은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앞서가고 말았다.
이날 동행한 아내도, 내 느린 발걸음을 도저히 맞춰줄 수 없었던지, 저만치 앞을 가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했다.
그때 내 옆에 딱 붙어준 친구가 하나 있었다.
고재오 친구였다.
얼마나 산을 잘 타는지 ‘산 다람쥐’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친구로, 그 친구는 자기 발걸음으로 오를 것 같으면, 대청봉 그 봉우리에서 이날 저 멀리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태양을 충분히 맞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기회를 포기했다.
너무나 힘겨워하는 나를 챙겨줄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그냥 옆에 붙어서 내 그 느린 발걸음에 보조를 맞춰주다가, 나중에는 어깨동무를 하거나 허리를 껴안거나 해서 지친 내 몸을 부추겼다.
“친구야,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 힘 내!”
그렇게 말 한마디도 용기를 북돋워주기까지 했다.
그 챙김이 하도 고마워서, 내 그냥 펑펑 울고 말았다.
덕분에, 대청봉 그 정상에서 이날의 아침태양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눈물 속에 핀 꽃과 같은 성취였다.
2024년6월 21일 금요일인 바로 어제 일이다.
이른 아침에 들판으로 나갔다.
여명의 풍경에 빠져들고 싶어서였다.
해발 912m의 바위산인 성주봉 그 너머의 동녘하늘이 장밋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봉우리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한 바퀴 휘돌았다.
패러글라이더들이 창공으로 차오르는 해발 956m의 단산 봉우리로, 새로 생긴 명물 출렁다리로, 그리고 해발 1,063m의 백두대간 백화산 봉우리로, 그리고 우리 고향땅 문경의 진산(鎭山)인 해발 1,076m의 주흘산까지 장엄한 풍경을 한 눈에 다 담았다.
그 풍경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고재오 내 친구의 얼굴이었다.
나로 하여금 생전 처음으로 대청봉에 오르게 해줬던 친구였음에도, 잊고 지낸지 너무나 오래 됐다 싶었다.
문득 생각에 곧장 실행이라, 그 이른 아침 시간에 전화를 했다.
놀랍게도 생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했다.
그 말, 곧 이랬다.
“재오야! 내 부탁이 하나 있다. 지난날에 나를 설악산 대청봉에 세웠듯이, 이번에는 나를 조령산에 좀 올려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