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이야기-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2024년 6월 22일 토요일인 바로 오늘 일이다.
이른 아침에 내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안휘덕 친구가 중학교 친구들이 온라인으로 함께 어울리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영상 한편을 게시했었다.
시국을 걱정하는 내용이어서 곧바로 댓글을 붙였다.
다음은 그 댓글 전문이다.
‘세상 걱정이 어찌 이리도 내카 똑 같노. 노무현이든 문제인이든 이재명이든 그 마누라 하는 꼬라지 보면 속이 디비지고...윤대통령은 그들이 남긴 온갖 세상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고...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그립다. 생각난 김에, 문경 장날인 오늘, 시장에 나가서 파 모종 3단 사라는 마누라 심부름도 하고, 청운각도 댕기올란다...’
청운각(靑雲閣)이라면 우리나라 구국의 영웅이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일제 말기에 지금의 문경초등학교 전신인 ‘문경소학교’(聞慶小學校) 교사로 잠시 일하면서 묵었던 하숙집을 기념해서 조성해놓은 건물이다.
그 댓글대로 곧장 실행에 들어갔다.
마침 오늘은 문경 장날이어서, 막 서는 장으로 달려가 파 모종 3단을 18,000원에 사고, 그리고 청운각으로 달려가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우리나라의 태평성대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때맞춘 듯 오랜 가뭄 끝의 단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숙연한 마음으로 경내를 두루 둘러보고, 막 발걸음을 돌렸을 때였다.
놀라운 카카오톡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이곳 문경을 지킴이처럼 살아온 내 또래 문은자 친구가 띄워 보내준 메시지였다.
필명 ‘석산’이라는 이가 쓴 글이었는데, 그 제목을 이렇게 붙여놓고 있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너무나 놀라운 글이었다.
이렇게 댓글을 붙여야 했다.
‘참 희한타! 내 방금 비 맞으면서 청운각 둘러보고 나왔는데...’
또 한 번의 놀라운 텔레파시 경험이었다.
다음은 그 글 전문이다.
1973년 대한민국 재벌의 탄생비화, 1973년은 1차 오일쇼크로 전 세계의 경제성장이 멈췄던 해이다.
승승장구하던 미국, 일본, 북유럽 국가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1972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사채동결조치' 때문이다.
믿기진 않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기업 현대와 삼성과 LG 같은 대기업도 그 당시엔 모두 사채빚에 허덕이며 밤마다 부도를 걱정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은행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국민들은 저축을 할 여유가 없으니 은행엔 돈이 없었고, 대부분의 돈은 일제 시절부터 어둠의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은 사채업자들이 대한민국의 돈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이들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는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사채에 대한 규제도 없었으니 이자는 매우 비쌌고, 기업이 열심히 일해서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가져다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은 조직폭력배는 물론 유력정치인들과 연계되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불황속에서 기업 활성화를 위해 사채빚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 1972년 8월 3일 전격적인 사채동결조치를 발표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기업들이 사채업자에게 빚졌던 계약관계를 모두 무효로 만든 것이다.
이는 분명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조치 였다. 사채업자들의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사채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독재라며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했고, 사채업자들의 저항도 극심했다. 그들과 연결된 정치인, 조직폭력배도 같이 합세하여 대한민국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혼돈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72년 10월 유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17일 국회해산 및 헌법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1972년 12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91.5%의 지지로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하고 유신헌법시대가 시작된다.
그 결과, 지하에 숨어 있던 돈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기업들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1971년 39억원에서, 1973년 545억원으로 급증했으며, 1973년 1분기 GNP 성장률은 전년 대비 19% 상승했다. 단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채업자들에게 은행에 돈을 넣고 기업에 투자하면 돈의 출처를 묻지 않을 것이며 세금도 감면해 줄 것이라고 했고, 기업들에게는 최대한 더 많은 자회사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경제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때 구성된 것이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끈 30대 그룹이다. 대한민국 재벌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비정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한민국의 경제의 꽃은 이렇게 피었다.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경제는 발전 시켰지만, 독재는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다. 독재가 아니었다면, 사채업자들 세상을 막을 수도, 비정상적인 경제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사회를 뒤집고, 그로 인해 피를 흘렸고 발전했다. 단순하게 잘한 것, 못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말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는 사채동결, 유신독재와 같은 비정상적 조치를 통해서라도 기업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모든 비판을 감수하고 독단적으로 나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리고 현재 부국강병을 이룬 대한민국이 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 결과만 있을 뿐이다. 혼란의 시대를 겪었고, 찬란하게 성장했다.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은 다수의 군중들이 아니라 소수의 천재들이다. 연료가 없는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연료를 넣고 시동을 걸어야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이 이루어낸 경제발전은 ‘한강의 기적’ 이 아니며, 한국인들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소수의 천재들이 있었고, 그들을 지휘한 지도자가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 기적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존재와 역할이다. 그러한 천재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에 기적 같은 부국강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돌아보라! 지난 세월의 배고픔과 아픔과 슬픔들을... 보릿고개를 지나 온 60~70대여! 지금 이게 나라라고 살고 싶은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생각을 해 봅시다.
정말 누가 옳았고 옳은가? 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을 하였고, 누가 당리당략과 사리사욕과 좌익이념 속에 살았는지?//
첫댓글 朴正熙대통령님 !!!
존경합니다.
이 혼탁한 세상을 보고만 계실께예요.
이것들 좀 혼내주세요.
제발요!
이것들이 애써 가꾸어 논 이 나라
다 말아 쳐먹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