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변화구
바야흐로 야구 시즌, 그동안 코로나로 경기장에 못 가다가 이제는 야구경기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런데 야구경기에선 선수가 타자를 상대할 때 곧잘 '변화구'라는 걸 구사하곤 한다. 그게 야구뿐일까요? 사람도 한평생 사노라면 이런저런 '변화'를 꾀해야 할 일들과 늘 부딪치며 산다.
문득 “머니 볼”과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라는 영화가 생각나 다시 찾아서 보았다. 10 여 년 전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개의 야구 영화다.
하나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 볼' 이고,
다른 하나는 클린트 이스트웃 주연의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라는 영화다.
두 영화 모두 선수의 통계데이터와 구단의 선수 스카웃 문제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두 영화의 시각은 서로 정반대 입장이다.
‘머니 볼’에서
브래드 피트는 나이 먹은 스카우트들의 조언 대신에 야구장에도 가보지도 않은 채, 모니터 앞에 앉아 선수의 출루율(상대의 유인구에 잘 속지 않고 볼넷을 얻어 1루로 살아나가는 비율)을 비롯한 통계에 기반하여 선수의 실적을 수치화해 성장가능성을 가늠하여 스카웃을 한다. 이렇게 하여 아메리칸 리그 103년 역사상 20연승을 이룬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서
클린트 이스트웃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믿지 않는 구닥다리 노인 스카우터인데 영화에 나오는 그의 대사 중에
"그는 변화구를 못 치잖아"
"어떻게 알아요?"
"소리로 알지. 청아한 소리!"라고 하는 말하는 것처럼
그는 선수의 실적도 중요하지만 직접경기를 보며 선수의 장점과 취약점을 발견한 후 그의 발전가능성을 가늠하여 선수를 스카웃한다. 고집불통 아빠(클린트 이스트 웃)와 신인선수 스카웃을 돕는 까칠한 딸과 함께 떠나는 불편한 동행 길에서 빠른 직구와 예리한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에 대한 테스트과정을 거쳐 구단은 신인투수로 계약하고자 하고 딸이 아버지의 스카웃 일을 물려받거나 둘이 함께 일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영화에서 신인투수의 활약상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있지만 투수의 빠른 직구와 예리한 변화구로 상대타자들을 제압하고 클린트 이스트 웃의 경험과 감각에 따라 선발된 타자덕분으로 마지막 역전 찬스에서 변화구를 쳐내 홈런한방으로 구단승리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두 영화가 우리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디지털 방식의 통계에 의한 프로그램과 아날로그 방식의 인간의 경험과 감각, 이 두 가지가 모두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란 다가올 시간과 변화에 대해 말해 줄 수 없으며 인간의 경험과 감각은 유한하며 협소하다.
결국 이 둘은 서로 보완 할 수 밖에 없으며 현대의 어떤 통계들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숫자적 데이터에 인간의 경험이 강제로 더해져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냥 보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늘 역전의 찬스는 주어지는 법이다. 우리의 인생 또한 다르지 않기에 우리는 야구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구경기에서 직구보다 변화구에 더 많은 홈런이 나온다. 변화구는 직구보다 치기가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변화구는 타자의 타이밍을 뺏고 타자 앞에서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거나 공이 휘어져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구를 치기만 한다면 최원준 선수처럼 바로 홈런이다.
왜냐하면 변화구 자체에 많은 회전이 숙성(?) 되어있어서 회전력에 의해 더 힘을 받고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다.
야구와 인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직접 발로 뛰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 퍼펙트게임은 없다는 것, 역전만루홈런의 극적인 승리를 기대하는 것,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것. 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인생을 야구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를 보면 인생 황혼기에 들어선 주인공이 다가오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지혜를 보여준다.
인생을 살다 보면 치기 쉬운 직구보다 어려운 변화구가 종종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치기는 힘들지만 쳤다하면 홈런을 안겨줄 변화구~
그런데 야구에서의 변화구처럼 인생의 변화구도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낭패를 초래하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어언 70세 중반의 연륜, 그런 우리들에게 아직도 '변화구'라는 게 필요할까요?
하기야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다 다를 텐데 '정답'이란 게 어디 있겠는지요?
“인생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부터 늙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평소에 하고 싶어 하던 일이나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두 번째 인생을 걸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은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96세로 타계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타계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을 계속했는데
페루의 민족사를 읽고 있는 그에게 아직도 공부를 하시냐고 묻는 젊은이에게 답한 유명한 말이 있다.
“정말 사람은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는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생각이 젊어지면 인생도 젊어진다.
새로운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 도전하는 일에 무슨 나이가 상관인가.
젊은 마음으로 인생을 건전하게 즐기는 것은 분명 이름다운 노년의 멋일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직구만을 기다려서는 안 되고 예측이 불가능한 변화구 앞에서도 자신 있게
처내야만 남은 인생을 역전의 찬스로 만들 수 있다. 인생이 우리에게 어떤 공을 던지든 인생의 드라마를 어떻게 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우리들 인생에서 주어진 9회말 2아웃 또는 80⁺세 연장전(인생 80⁺세)에의 마지막 역전 찬스를 얻을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요?!
홈런 한방으로 역전 승리를 거둘 수 있으니 만큼 늙어서 마지막까지 삶의 기회를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클린트 이스트 웃이 딸에게 말한다.
“내가 좀 바뀌어져야겠구나.”
꼭 나한테 던지는 말인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