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목록 (제1521호 - 제1560호, 끝)
hanjy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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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1호: 경국대전(經國大典) 2007.07.13 지정, 성남시 김민명소유
경국대전은 최항(崔恒)ㆍ노사신(盧思愼)ㆍ서거정(徐居正) 등이 왕명을 받들어 세조 때 편찬에 착수해서 몇 차례의 수정
과 증보를 거쳐 1485년(성종 16)에 완성하여 반포한 조선조의 통치체제(統治體制)의 대강을 규정한 기본법전이다.
제1522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동아대학교박물관
이 그림은 가로로 7매를 이어 만든 삼베바탕에 주(朱)를 전면에 칠한 후 백색안료와 황토로 각 상의 윤곽과 문양 등 세부를 그린
불화이다. 중앙상단의 본존불이 외형상 하품중생인을 짓고 있어 아미타불로 볼 수 있으나, 하단의 화기에 …靈山會…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영축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 중의 석가모니불로 여겨진다. <전체 높이 : 세로
227.0cm, 가로 188.5cm >
제1523호: 불국사석조(佛國寺石槽) 2007.09.11 지정
불국사석조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수조의 형상이 원형인 백제시대의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 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함.
특히 내부 바닥면의 화려한 연화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제1524호: 이윤탁 한글영비(李允濯 한글 靈碑) 서울 노원구 하계동 12번지
이 비석은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이 부친인 이윤탁(李允濯)의 묘를 모친인 고령(高靈) 신씨(申氏)의 묘와 합장하면서 1536
년에 묘 앞에 세운 묘비이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묘주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한글
과 한문으로 경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특징적 가치는 비석 왼쪽 면에 쓰여진 한글 경고문인데, 우리나라 비문으로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
려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한글영비’는 국어생활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첫째, 중종 31년(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
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둘째, ‘한글영비’에 새겨진 한글의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서체, 즉 <훈민정음 해례본>
의 서체와 <용비어천가> 서체의 중간형의 성격을 지닌다. 셋째,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제외하고는 국한
혼용이 아닌 순 국문으로 쓰여 있다. 본격적으로 한글로만 쓴 문헌은 18세기에나 등장하나 이 ‘한글영비’는 16세기에 이미 순국
문으로만 쓰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넷째, ‘한글영비’는 언해문이 아닌 원 국문 문장이다. 15세기 이후 한문 원문을 번역한 언해
문이 한글자료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 ‘한글영비’는 짧은 문장이긴 하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문장으로, 한글이 한문 번역도
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변화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한글영비’에 쓰인 국어 현상은
이 당시의 언어를 잘 반영하여 당시 국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제1525호: 금장요집경(金藏要集經) 범어사
이 책은 북제(北齊)의 승려 도기(道紀)가 각 경전에서 불교 교화에 도움이 되는 인과응보에 관한 설화를 중심으로 편찬한 7권
가운데 2권(권1~2)이다. 권두서명 다음 행에 간략한 목차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22개 연(緣: 篇에 해당)
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전체 내용을 조망해 볼 수 있다. 이 간략 목차 다음에 바로 <사견연제일(邪見緣第一)>의
편제(篇題)가 시작되고 있는데, 편제의 다음에는 각 편의 세부 목차가 기재되어 있다. 각 세부 내용이 시작되는 제목 아래에는
전재해 온 내용의 정확한 출처를 소자쌍행(小字雙行)의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판식은 고려 13~14세기 불서에 흔히 보이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며 판심부의 하단에 ‘현사(玄四)’, ‘문향(文鄕)’, ‘백기(白基)’
등의 각수명(刻手名)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에도 참여했던 인물로 나타나는데 판각의 상태로 보아 고려
말에 새기어 조선전기에 인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권1~2의 2권 1책만이 있는 결본 상태이나 현재 국내외에 전존이 드문 판본이라 희소성이 높으며, 목차에 22개 연기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전체 내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제1526호: 범어사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梵魚寺 木造釋迦如來 三尊坐像)
이 삼존좌상은 범어사 대웅전의 주불로서 개금시(改金時) 복장에서 발견된 불상기문(佛像記文)과 불상기인발원축(佛像記因發願
祝)을 통하여 석가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의 수기삼존불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순치 18년(조선 현종 2년,
1661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와 수두(首頭) 희장(熙莊)을 비롯한 보해(寶海), 경신(敬信), 쌍묵(雙黙), 뇌영(雷影), 신학(信學),
청언(淸彦) 등이 조각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1527호: 충주백운암철조여래좌상(忠州白雲庵鐵造如來坐像)
충주시에 소재한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
해진다. 이 사찰에서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이 철불은 원래 이곳에서 전하던 불상은 아닌데, 인근에 고려시대 대규모 사지인
억정사지(億政寺址)가 있어서 아마도 이곳에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충주는 철의 산지로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이외에도 대원사(大圓寺)의 충주철불좌상(보물 제 98호)과 단호사(丹湖寺)의 철불좌상(보물 제 512호)이 전하고 있어서,
이 세 구의 철불은 충주 지방의 3대 철불로 알려져 있다.
제1528호: 초조본사두간진일태자이십팔수경(初雕本 舍頭諫晉日太子二十八宿經) 연세대중앙도서관
이 대장경은 서진(西晉)의 축법호(竺法護)가 한역(漢譯)한 것으로, 일명(一名) 호이경(虎耳經)이라는 별칭이 소자(小字)로 되어
있다. 재조대장경에는 ‘사두간태자이십팔수경(舍頭諫太子二十八宿經)’, 일명 ‘호이경(虎耳經)’으로 태자 이름인 ‘진일(晉日)’이
빠져 있어 차이가 있다. 내용은 한 천민 여인의 애욕과 이욕(離欲)에 대한 인연 및 4성 계급의 평등을 자세히 설하고 이어서,
천문·점성·별자리 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도의 계급 제도에 대하여 자세히 논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고대 인도사
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제1529호: 초조본잡아비담심론권제9(初雕本 雜我毘曇心論 卷第九) 연세대중앙도서관
이 경전은 천축국의 법구(法救) 존자가 지은 것을 유송(劉宋) 시대(435)에 승가발마(僧伽跋摩) 등이 번역한 경전을 11세기에 대
장도감에서 판각한 초조대장경의 일종으로 전 11권 중 9권이다. 흔히 비담종(毘曇宗)이라 불리는 소승부파(小乘部派)의 하나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대표적인 논서이다. 전체 내용은 서품(序品), 계품(界品), 행품(行品), 업품(業品), 사품(使品), 현성
품(賢聖品), 지품(智品), 정품(定品), 수다라품(修多羅品), 잡품(雜品), 택품(擇品), 논품(論品) 총 12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9
권에 해당하는 잡품에서는 불상응(不相應), 삼무위(三無爲), 구과(九果), 신족(神足) 등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제1530호: 초조본수용삼수요행법(初雕本 受用三水要行法) 연세대중앙도서관
이 경전은 당(唐)나라 때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이 편찬한 것을 11세기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초조대장경의 일종으
로, 승속(僧俗)의 사람들이 물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한 경전이다. 이 경전에서는 물을 세 종류, 즉 비시수(非時水), 시수(時
水), 촉용수(觸用水) 등으로 나누고 그에 합당한 사용법을 설명한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용법을 어기면 그 내용에 따라서 불수
용죄(不受用罪), 증촉죄(增觸罪), 숙촉죄(宿觸罪), 악촉죄(惡觸罪), 오수착음식기죄(汚手捉飮食器罪), 부정죄(不淨罪) 등 여섯
가지 죄에 해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15,480가지의 죄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율장에 의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531호: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英祖乙酉耆老宴·景賢堂受爵宴圖屛) 서울역사박물관
<영조을유기로연·경현당수작연도병>에는 크게 두 개의 행사장면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장면에 해당하는 병풍의 제 2·3·4폭에는
을유년(영조 41, 1765) 8월 18일 영조가 왕세손을 데리고 기로소(耆老所)를 방문하여 기로소 내의 영수각(靈壽閣)에서 전배례
(展拜禮)를 행하고 그 옆에 위치한 기영관(耆英館)에서 기로신들에게 선온(宣醞: 임금이 신하에게 궁중의 사온서에서 빚은 술을
내리던 일)한 행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인 제5·6·7폭은 그 해 10월 11일 경희궁의 경현당(景賢堂)에서 영조(英祖)
의 망팔(望八)을 기념하여 수작례(受爵禮)를 행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제1532호 : 조선효종영릉재실(朝鮮孝宗寧陵齋室)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고, 능호를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며,
그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76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능호를 영릉으로 고치고 재실도 함께 옮겨
왔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
하고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
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제1533호 :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 고려대학교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시한 지도이다. 상단에는 붉은색의 전서체로 제목이 쓰여 있고, 각 지역 별로 백·적·황·갈·녹·청색의
동그라미에 지명이 적혀 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는 1652년(효종 3)에 황해도 강음(江陰)과 우봉(牛峰)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김천(金川)이 있고 1712년(숙종
38)에 건립된 백두산 정계비(定界碑)가 없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2m에 달하는 지도의 규모에 봉수로의 상세한 표현과 뛰어난 회화성이 돋보이는 17세기 후반의 지도로 고지도 분야뿐만 아니라
회화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하겠다.
제1534호 : 서궐도안(西闕圖案) : 고려대학교
서궐(西闕)은 경복궁(北闕)의 서쪽에 있는 궁궐, 즉 경희궁(慶熙宮)을 의미한다. 1720년(광해군 12)에 영건된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1760년(영조 36)에 경희궁으로 개 명하였다. <서궐도안>은 이 경희궁의 전경(全景)을 그린
그림으로, 국보 제249호로 지정된 <동궐도>와는 달리 채색이 가해지지 않은 밑그림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제1535호 : 숙빈최씨소령원도(淑嬪崔氏昭寧園圖) : 한국학중앙연구원
숙빈 최씨(1670~1718)의 무덤인 양주(楊洲)의 소령원(昭寧園)을 그린 묘산도이다. 숙빈 최씨는 영조의 생모로 1718년(숙종 44)
에 사망하여 양주 고령동 옹장리(현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묻혔다. 이때는 영조가 즉위하기 전이라 묘(墓)였다가 1753
년(영조 29) 소령원(昭寧園)으로 봉해졌다.
<소령원배치도(昭寧園配置圖)>는 백묘로 소령원의 석물 배열을 나타낸 그림이다. 봉분 주변의 담장과 비석, 혼유석, 상석, 장
명등, 망주석, 문인석 등을 실재 위치에 맞추어 그렸다.
제1536호 : 월중도(越中圖) :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배지 영월(寧越)에 남겨진 단종(端宗)의 자취와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8폭의 그림으로 제작한 화첩이다.
그림은 정교하게 그려졌으며 특히 밝은 색채를 많이 구사하여 화사한 인상을 준다. 매우 정교 한 필치를 구사하여 경물을 정확
하게 묘사하였으며 산악 표현과 나무 묘사에서는 진경산수 화풍의 여운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그림의 화격이 높아서 어람용
으로 추정된다. 제작시기는 <동궐도> 등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대략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제1537호 :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국립중앙도서관
우리나라의 북부 지방과 만주지방을 그린 관방지도이다. 조선의 서북지역과 만주 일대를 묶어 피아지도를 만든 것은 대체로 영
조 때부터이다. 지금 남아 있는 피아지도의 사본들은 복제된 시점이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대체로 영조대의 문제의식을 반영
하고 있다. 이 지도 역시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만주 일대에 대한 지리정보는 ·성경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조선의 서북지
대는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관찬지도로 공인되기 이전의 정보들에 기초해 있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피아지도 중 가장 걸작에 속하는 지도이다. 북방 강역의 양강 일대를 그린 관방 지도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으며 회화적으로도 매우 수준이 높다.
제1538호 :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 국립중앙박물관
1축이 272.2×137.9cm에 달하는 대형 조선전도의 족자로서, 표현된 범위는 조선과 만주의 일부를 아우르고 있다. 지도의 재질
은 세견(細絹)으로 세 폭을 이어 만들었는데, 정교하게 그려진 솜씨로 볼 때 도화서의 화원이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의 전체적인 모습, 수록된 정보의 종류와 양이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동국지도>원본 계통과 동일하다. 1767년에
산청(山淸)과 안의(安義)로 바뀌는 산음(山陰)과 안음(安陰)이 명칭변경 이전의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 등에서 1755년에서
175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국대지도>는 만주를 함께 그린 것을 통해 볼 때 정상기가 그린 전도인 <동국지도>를 원본으로 하여 관에서 필사한 초기
의 지도로 연구되고 있다.
제1539호 : 봉래유목(蓬萊遺墨) : 연세대학교
이 서첩은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1517-1684)의 친필로 된 시문을 모아 엮은 것으로 허강 (許강)의 ·서호별곡(西湖別曲)·을
옮겨 쓰고, 자신의 자작시와 국한문 시가를 필서하였다. 양 사언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서예가로 특히 해서와 초서에 능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불렸다.
제1540호 : 청자표형주자(靑磁瓢形注子) : 호림빅물관 : 2007.12.31 지정
고려 시대(12세기)의 조형적 특징을 보이는 표주박 형태의 청자 주자(注子)이다. 표주박 형태의 병에 참외같은 골 주름 여덟 줄
을 깎아내고, 물대는 둥글고 넓은 박 잎을 대롱처럼 말아 붙여 만들고 손잡이는 박 넝쿨을 꼬아 붙인 것 같이 만들었다. 뚜껑 역
시 작은 박 잎을 엎어 놓은 형태처럼 만들었으며 밑바닥도 굽을 별도로 깎아내지 않아 마치 표주박의 밑둥을 연상되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청자의 몸통과 물대, 손잡이는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감을 보이고 있어 세련미를 더한다.
제1541호 : 분청사기상감모란유문병(粉靑沙器象嵌牡丹柳文甁) : 호림박물관
양감이 좋은 15세기의 전형적인 분청사기 형태에 특징적인 상감문양이 장식된 병이다.
대담한 추상성을 보이는 문양의 창의성이 현대적 디자인 감각과 상통하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 주고 있으며, 기형과 문양 모두
분청사기 특유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분청사기의 미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며, 15세기 전반
경의 상감분청사기 전성기의 무르익은 감각을 창의적으로 구현한 점을 볼 수 있어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다.
제1542호 :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08.3.12
규장각 소장 “요계관방지도”는 1706년(숙종 32)에 노론대신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이 제작하여 왕에게 올린 것으로, 관방
지도의 백미로 뽑힌다. ‘요계(遼薊)’는 요동과 북경지방을 가리키는데, 요동에서 북경에 이르는 군사형세도를 그린 지도라는
뜻이다.
이이명은 1705년에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구입해온『주승필람(籌勝必覽)』속에 들어 있는 ‘요계관방도’와, 동행한
화사를 시켜 모사한 ‘산동해방지도(山東海防地圖)’에 우리나라 관방의 중요한 부분을 합하여 이 지도를 제작하였다. 10폭 병풍
이란 대폭의 화면에 펼쳐진 치밀한 구성력과 강직하면서도 세련된 필묘(筆妙), 청록산수기법으로 표현된 산악의 장식적인 효
과는 지도에 예술성을 더해준다. 지도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회화성도 뛰어난 작품이다.
제1543호 :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권제9~10(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 卷第九~十) , 수덕사 성보박물관
이 책은 1316년(고려 충숙왕 3) 8월에 보현사 비구 석연이 주선하여 변산에서 개판된 불교 의식집이다. 『자비도량참법』은 양
의 무제가 찬수한 뒤에 대양의 천감연간(502∼519)에 고승들이 번잡한 곳을 없애고 핵심이 되는 요지를 촬록하였으며 또 여러
경전에서 묘어를 선택하여 모았다.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본문에 착오와 와전이 생겨나자 원대에 이르러 내용을 대교(對校)하
고 심정(審訂)하여 다시 정리하였으므로 상교정본이란 말을 붙이게 되어 그것이『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이다. 이『상교정
본자비도량참법』은 일종의 참회문의 총서라고 할 만큼 여러 경전에 들어 있는 참회의 방법과 내용들을 일정한 체계로 엮어 낸
참법서이다.
제1544호 : 나주심향사건칠아미타여래좌상(羅州 尋香寺 乾漆 阿彌陀如來坐像)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특히 많이 조성된 건칠불상 중 하나이며, 점토나 석고로 만든 원형을 제거한 탈활(脫活) 건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고려후기 불상의 특징인 이국적이면서도 단엄한 얼굴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왼쪽 어깨 위에 부채살처럼
흘러내린 세밀한 잔주름은 13세기 후반에 조성된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276년),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1362년
이전) 등에서도 확인되는 공통된 특징이다.
나주 지역에서는 이 불상 외에도 불회사와 죽림사 등 여말선초에 조성된 건칠불이 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형적 완성도
가 가장 높다. 더욱이 이 불상은 현재 알려진 건칠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작품 중 하나로 중요성을 지닌다.
제1545호 : 나주불회사건칠비로자나불좌상(羅州 佛會寺 乾漆 毘盧遮那佛坐像)
불회사 대웅전의 주존으로 모셔진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특히 많이 조성된 건칠불상이다. 양식적으로 이 불상은 다소 길
어진 신체의 비례와 형태, 작아진 얼굴, 착의형식, 옷 주름의 표현 등에서 고려후기 불상 양식을 계승한 조선 초기에 제작된 상
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쥔 형태의 지권인(智拳印)의 수인(手印)은 고려후기의 화엄경 변상도에
등장하는 비로자나불의 수인인데, 불회사 상은 현존하는 조각에서 이 수인이 표현된 이른 예일 뿐만 아니라 조각적으로도 우수
한 불상이다.
제1546호 : 구례천은사금동불감(求禮 泉隱寺 金銅佛龕)
전각형 불감으로 내부에는 두 구의 불상을 모시고 후벽과 좌우 벽에는 후불탱화의 역할을 하는 비로자나불·약사여래·아미타여
래 삼불회도를 타출기법으로 표현하였고, 문 좌우에는 기운이 넘치는 근육질의 인왕상을 나타내었다. 이와같이 이 불감은 비로
자나를 본존으로 하는 삼불을 봉안한 법당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고, 각 벽면마다 고부조로 새겨진 후불도의 세부 표현 역시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특히 불감의 뒷면 좌측상부에는 선각으로 불감 조성에 참여한 제작자, 시주자 등이 새겨져 있어 주목
된다. 이 불감은 삼신불과 삼세불의 도상이 융합되어 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여말선초의 조각, 회화, 금속공
예, 건축양식, 문양 등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1547호 : 해남대흥사금동관음보살좌상(海南 大興寺 金銅觀音菩薩坐像)
이 상은 윤왕좌(輪王坐)의 보살상으로 금동불로는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보살상의 세부 표현과 양식은 전반적으로 고려시
대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으나, 길죽하면서도 부은 듯한 얼굴모습, 유두를 두드러지게 표현한 점, 몸 전면에 영락이 표현되지
않은 점, 몸을 감고 있는 천의자락의 선이 다소 경직되게 표현된 점 등은 조선전기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이 보살상은 조선 전반기의 금동상으로서 규모가 큰 편이고 보관 등에 다소 파손된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이 크기가 큰 윤왕좌의 보살상은 조선 전기 보살상 중에서는 그 예가 드물며, 신체의 균형이 좋
으며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 등 조각기법이 매우 우수한 금동보살상이다.
제1548호 : 구례화엄사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화엄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화엄사상의 삼신불인 비로자나, 노사나, 석가불을 표현한 것인데, 도상면에서 법신, 보신,
화신(응신)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이러한 삼신불은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으로는 드문 편이다.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는 이른 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삼신불상은 크기가 거대하고 단순하고 깊이의 강약이 느껴지는 굵직한 옷주름의 표현은 한층 상의 중후함을 더해 주고 있
다. 특히 『화엄사사적기』(1697년 간행)에 의하면 1636년 조각승 청헌, 영이, 인균, 응원 등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
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승려장인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화엄사 대웅전은 삼신불상은 조성연대를 짐
작할 수 있고,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17세기의 기준이 되는 불상으로 높은 의의가 있는 상으로 평가된다.
제1549호 : 순천송광사목조석가여래삼존상및소조16나한상일괄(順天 松廣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 제석천, 범천, 인왕, 사자를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應元)을 비롯한 조각승
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자상(使者像)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1624년(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존상은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된 수기삼존형식으로 조선시대 삼세불상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본존상은 수종사
불감에서 발견된 15세기 금동불좌상과 같은 조선전기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신체가 부드럽고 양감이
강조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17세기 전반기 조각으로서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십육나한상들은 목심소조(木心
塑造)로 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전기의 16나한상 조각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이 송광
사 16나한상들은 16존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제1550호 : 여수흥국사목조석가여래삼존상(麗水 興國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이 삼존상은 흥국사 대웅전의 주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협시 보살상의 보관 뒷면에는 각각 자씨보살대명숭정(慈氏菩薩大明崇
禎), 제화보살대명숭정(提花菩薩大明崇禎)이라는 명문이 타출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 삼존상이 수기삼존상(授記三
尊像)으로 17세기 전반의 숭정연간(1628~1644)에 조성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삼존상은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서 양감이 잘 표현되었으며, 손과 발의 표정이 잘 살아있고, 옷 주름이나 장신구의 표현
도 유려하다. 불상은 17세기 조각의 단순함을 잘 반영하고 있고, 두 보살상은 자연스러운 자세와 장대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17세기 전반의 상으로 이와 같은 크기의 보살상을 동반한 삼존불이 드물고, 도상과 양식면에서도 조선후기 불교조각을 대표하
는 상으로 평가된다.
제1551호 : 진천영수사영산회괘불탱(鎭川 靈水寺 靈山會掛佛幀)
영수사 괘불은 『묘법연화경』에 의거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문중을 중심으로 그린 영산회상도로서, 1653년 명
옥(明玉)을 비롯한 4명의 승려화원들이 그렸다. 석가모니의 대좌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사리불을 비롯하여 좌우에 시립
한 많은 권속의 묘사는 조선후기 영산회상도 중에서도 영산회상을 가장 장엄하고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특히 밝은 채색과 유려
한 필치, 다양하면서도 능숙한 인물묘사가 돋보인다.
영수사 괘불은 제작시기가 1653년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시기성, 사리불이 청법자로 등장하는 가장 빠른 괘불
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비록 부분적으로 후대에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만 17세기 영산회상도 양식을 보여주는 대
표적인 작품이다.
제1552호 : 해남대흥사영산회괘불탱(海南 大興寺 靈山會掛佛幀)
색민(色旻)이 으뜸화원을 맡아 조성한 괘불로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왼쪽에는 여의를 든 문수보살을, 오른쪽에는 연꽃을 든 보현보살을, 그리고 석가모니불의 두광 좌우로 관음보살과 아미타불을 배치하여 오존도(五尊圖)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내소사 괘불을 비롯하여 안정사 괘불, 청곡사 괘불, 운흥사 괘불, 다보사 괘불 등 18세기 호남지역에서 성행한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근거한 도상을 간략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괘불은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와 다소 살찐 듯한 인물표현, 다양하면서도 화려한 문양 등은 색민이 스승인 의겸(義謙)의 화풍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선행 도상과 화풍을 잘 계승하고 있는 귀중한 작품이자 색민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
제1553호 : 순천선암사서부도암감로왕도(順天 仙巖寺 西浮屠庵 甘露王圖) 선암사 감로왕도는 1736년 의겸(義謙)이 으뜸화원을 맡아 그린 작품으로 화기에 “서부도전하단도(西浮圖殿下壇圖)”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서부도전에 봉안하기 위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단에는 칠여래와 관음, 지장보살, 인로왕보살, 중단에는 한 쌍의 아귀와 제단, 하단에는 육도 제상을 그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감로왕도에서 주목되는 점은 상단에 그려진 칠여래가 중단과 하단에 비해 비중 있게 그려진 점인데, 이는 수륙재(水陸齋)를 통하여 중생들을 영가천도(靈駕遷度)하는 감로도의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것으로 여겨진다. 제1554호 : 순천선암사33조사도(順天 仙巖寺 三十三祖師圖) 이 작품은 『조당집(祖堂集)』에 근거하여 가섭존자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까지 33명의 조사를 11폭으로 나누어 그린 선종 33조사도로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33조사도이다. 원래 총 11폭으로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7폭만이 남아 있는데, 1753년에 은기(隱奇)를 비롯한 5명의 승려화원이 그린 것으로 18세기 중반 불화 속에 수묵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던 의겸의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여기에 묘사된 33조사의 도상은 중국 명대의 화보(畵譜)인 『삼재도회(三才圖會)』,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蹤)』을 모본으로 하고 있어 조선후기 화보의 전래와 불화 도상 간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중요하다. |
제1555호 : 담양용흥사순치원년명 동종(潭陽 龍興寺 順治 元年銘 銅鍾) 높이가 102㎝인 이 종은 조선시대 주종장(鑄鍾匠) 중 김애립(金愛立), 김성원(金成元) 등과 함께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용암(金龍岩)이 주가 되어 1644년에 주성한 종으로, 규모도 비교적 클 뿐만 아니라 비례감과 조형성이 뛰어나다. 또한 종 고리로 쌍룡(雙龍) 대신 활력 넘치는 사룡(四龍)을 채용하여 특이함을 보이고, 종신에 시문된 각종 문양의 표현에서도 세련미가 넘쳐 난다 제1556호 : 여수흥국사강희4년명동종(麗水 興國寺 康熙 四年銘 銅鍾)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金龍岩)·김성원(金成元) 등과 더불어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애립(金愛立)이 순천 동리산의 대흥사 종으로 1665년에 주성하였으며, 높이가 121㎝나 되는 대종에 해당한다. 종의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져 마치 포탄과 같은 모습을 하였다.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는 쌍룡(雙龍)을 종 고리로 삼고 천판에는 큼직한 연화문대를 돌렸다. 천판과 만나는 종의 어깨부분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둘러져 있으며, 몸체에는 연곽대와 보살상 및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어 있다. 종신에 새겨진 문양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화려하며 잘 정돈된 느낌을 보여준다. 제1557호 : 고흥능가사강희37년명동종(高興 楞伽寺 康熙 三十七年銘銅鍾) 현존하는 김애립(金愛立)의 작품 가운데 가장 뒤늦은 시기인 1698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종신의 전체적인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벌어져 여수 흥국사 동종과 유사하며, 용뉴는 쌍룡(雙龍)으로 구성되었다. 연곽대와 연곽대 사이에는 4구의 보살입상이 유려한 모습으로 부조되었고, 종신 한쪽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었다. 제1558호 : 순천선암사강희39년명동종(順天 仙巖寺 康熙 三十九年銘 銅鍾) 높이가 120㎝에 이르는 비교적 대형 작품에 속하는 이 종은 종신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1700년(강희 39) 조계산 선암사 대종으로 800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이 때 새로이 주조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김상립(金尙立)의 아들 김수원(金守元), 도편수(都片手) 김성원(金成元), 부편수(副片手) 김효건(金孝建), 김성원의 아우 김섬태(金暹泰) 등 18세기에 활동했던 김상립과 그의 아들 등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 김상립을 중심으로 한 사장계(私匠系)의 활동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 제1559호 :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 고려 충숙왕(忠肅王) 복위(復位) 5년(1336)에 감색의 종이에 은니로 쓴 사경으로, 동진(東晋)의 불발타라(佛跋陀羅)가 한역한 대방광불화엄경 60권본인 진본(晋本) 권 28·29·38과 당나라 실차난타가 한역한 80권본인 주본(周本) 권24·53·56·60 등으로 모두 7권 7첩이다. 권60의 권말에 있는 사성기(寫成記)에 따르면 경주 기림사 주지 선지(善之)가 전 밀직부사(密直副使) 상호군(上護軍) 임서(任瑞)와 지직운산(知識雲山)이 함께 발원하였으며, 한역된 진본·주본·정원본(晋本·周本·貞元本)의 삼본 화엄경 180권을 모두 필사한 것 가운데 7권 7첩임을 알 수 있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사경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1560호 : 도성도(都城圖)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소장 <도성도>는 한양의 전경(全景)을 회화식 지도로 표현한 작품으로, 목멱산(남산)을 위쪽 중심에 두고 삼각산과 도봉산을 아래쪽에 넓게 펼쳐둔 채 도성의 전모(全貌)를 원형구도로 담고 있다. 지도의 위쪽이 남쪽인 이러한 구성은 다른 ‘도성도’와 구별되는 특성인데, 남쪽을 바라보며 정사를 보는 왕의 시각에 맞추어 그린 것으로 어람용으로 추정된다. 구성, 필법, 준법, 수지법, 채색 등 일반적인 산수화에서 사용되는 모든 기법을 충실하게 구사하면서 회화적인 표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작품으로 18세기 유행한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르고 있으며 회화성이 탁월하다. [출처] 한국의 보물 목록 (제1521호 - 제1560호, 끝)|작성자 김영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