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지난 8월 20일(토)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을 가르는
축령산 정상 숲속에서 벌어진 '작은 음악회' 이야기에 관련된 졸문이다.
애초에 <전라도닷컴 9월호>에 <우천의 새살새살>코너에 네 쪽에 걸쳐 실을 목적으로 썼으나,
지면 사정으로 2쪽으로 축약하여 게재되었다.
잡지가 이미 나왔으니 전문을 공개해도 좋을 듯해 옮긴다. 혜량하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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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오후를 달군 숲속의 ‘문화 대공연’.. .이런 음악회 본 적이 있다요?
- 축령산 휴림, 4년만의 거북바위 귀향-발효타워 준공 기념
- 대주大主 비롯한 80여명 5시간동안 ‘흥 ․ 멋 ․ 맛’ 한마당
날이면 날마다 새벽 4-5시경, 짧은 글과 함께 사진 몇 장을 카톡으로 보내오는, 기인이라면 기인이 있다. 그게 벌써 10년을 넘어20년쯤 된 것같다. 십수년 전 조용헌님이 방외지사方外之士로 소개해(『고수기행』) 조금은 알려진 축령산 휴림의 변동해님이 그이다.
먼저 그분이 8월 7일 새벽에 보내온 단상을 보자. <4년전/선비가 은둔하는 동네/고창군 고수면 은사리隱士里 1번지 축령산 휴림에서/주무시고 계시다가/도로 확포장 공사로/중생을 깨우러 나오신/거북바위 선비님께서/우여곡절 끝에/4년의 여행을 마치고/세심비 공원으로/귀향하는 날/달님과 별님이/반갑게 맞아주는 것을 보니/아름다운 이야기가/이어질 것같습니다//아름답게 생각하면/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거북바위 선비님(‘은사隱士’) 이야기이다. 지난해 6월 부분완공한 ‘발효타워’(가칭)를 올여름 마지막으로‘스커트’(비맞이 차양막)까지 입혀 역사적인 준공을 한 김에, 4년만에 귀향하는 거북바위(높이 2m 10, 둘레 4m, 무게 3t)와 발효타워 준공을 한몫에 묶어 ‘숲속 집들이’를 꿈꾸었다. 8월20일(토) 오후 3시부터 ‘밤을 새도 좋다’는 초대전화가 화들짝 반가운 이유였다. 너무 거창하게 하면 감당을 못할 것같기에 알음알음 50여명을 불렀다지만, 80여명이 그들먹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그분이 잘 쓰는 “天地人께 감사합니다”는 말처럼 오전까지 제법 세차게 내리던 비가 행사 직전 딱 그쳐 선선한 초가을 날씨를 보이니 야외 퍼포먼스하기에 딱이었다. 신기하여라. 이런 것을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하는 것일까.
제자리를 찾은 거북바위에 씌운 하얀 천을 벗기면서 그날의 문화잔치가 시작되는데, 고창의 풍물패 박병주님의 사물패 가락이 울려퍼졌다. 조선대 공예과 퇴직교수(조규춘)의 즉흥춤을 어느 누가 흉내낼 수 있으랴. 조교수는 발효타워 앞 행사장에서도 김성문님의 대금 연주에 맞추어 즉석에서 파초잎 2개로 ‘파초잎 춤’을 선보여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사진). 동영상으로 봐야 실감이 날 터인데, 도무지 글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게 오직 아쉬울 손.
세심비공원(*사진)은 2017년 구리로 만든 3m여 세심비를 세우면서 조성됐다. 세심비란 마음을 씻는 빗자루라는 뜻이다. 유명 서원(도산서원, 병산서원, 소수서원, 산천재 등)이나 아산 현충사, 강릉 오죽헌 등에서 가져온 대나무 가지로 세심비 300여개를 만들어 한양까지 올라가 전무후무할 전시회를 가졌다(2016년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 우물갤러리). 일촉즉발 박근혜 탄핵을 앞둔 시점 청와대 앞에서 온갖 불의와 부조리를 쓸어버리자는 의미로 ‘마당쓸기 퍼포먼스’를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거대한 ‘조각 세심비’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기념 행사때 광주 충정로를 33인이 끌고 행진을 한 역사적인 기념물이 되었다.
풍물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반갑고 정겹다. 흥이 많은 우리 민족의 DNA 때문일 것이다. 대주大主 변동해님의 앞날은 이제 발복뿐이라는 광주의 풍물패 박병주님의 지신밟기 비나리 축문도 좋았다. 거북바위 선비님의 자리가 바로 ‘오복터’임을 호언장담하는 덕담들이 이어졌다. 이어서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이영애님과 다섯분의 단원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우정출연 ‘해방 아리랑’등을 연주하는데, 이 깊은 산속 대낮에 이게 무슨 귀호사, 눈호사인가 싶다(*사진). 이영애님이 말했다. “여기 대주님은 한마디로 측은지심 인간이요. 측은지심이 바로 짜안헌 것 아니요. 짠헌 사람을 보면 그냥 못지나치요. 아무 대책없이 당신 것을 뭐든 다 줘버린당개요. 그리서 우리도 돈 상관없이 단원과 함께 와부렀소”멋지다. 30년이 넘은 우정답다. 음향감독이면서 사회까지 맡은 권혁찬님이 포켓색소폰과 일본 몽골의 이색악기로 연주까지 하더니 독창을 하는데 가수 뺨을 친다. 워매-, 이게 무슨 놀이판인가 싶다. 노래하는 통기타 가객 정용주님은 또 어떠신가.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노을을 앞두고 범능 스님의 <무소의 뿔처럼> 등을 부르는데 또다른 가객 장사익이 절로 가라다. 즉석에서 검색해보니, 오매, 보통사람들이 아니고 모두 프로들이다. 잔치는 흥을 더해 고급막걸리가 돈다. 청산녹수라는 양조장을 차리신 전남대 김모교수와 낙안읍성에서 만든 무첨가 고급곡차 ‘납월월매’도 떴다. 주최측 얘기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회용품들은 완전 배제, 예쁜 도자기에 여수에서 갓 올라온 14kg 민어회와 홍어회, 병어 등을 담고 접시와 자신이 마신 잔은 돌아갈 때 가져가라신다. 대박, 완전 횡재이다.
어둑할 때까지 이어진 잔치는 음전한 여성 세 분(지희순, 홍영수, 남치풍)의 시 낭송으로 분위기를 이끄는가 하면, 흥이 도도해진 횟집주인은 횟칼을 던지고 ‘어화둥둥’ 판소리 한 자락을 겁도 없이 제켜대는게 아닌가. 놀랍다. 이 자리는, 이런 콘서트는 보느니 처음이다. 어느 숲속 음악회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감동을 줄 수 없을 듯하다.
거북바위에 이어 발효타워 사진을 감상해 보시라. 순전히 청담(변동해)의 영감靈感으로 지은, 어쩌면 대한민국에 유일무이한 건축물일 듯하다. 그의 변을 들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기적입니다. 편백나무 2천그루, 연인원 1000명, 건축비 2억5천만원, 건축기간 3년, 이것은 제가 지은 게 아닙니다. 더구나 글로벌입니다(조선족 목수들의 헌신). 비계 하나 없이, 8m(아파트 2.5층 높이)의 통나무 건축물(안에 들어가면 3층까지 있다)을 어디에서 본 적이 있나요? 안전사고 한 건이 없었서라우. 돈이 다 떨어졌는데, 어디서 별 친한 사람도 아닌데 ‘한 장’을 아무 조건없이 빌려주기도 헙디다. 그러니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것소잉.”이 대목에서 어찌 박수가 나오지 않으랴. 그의 얘기는 조금 더 이어진다. “이것을 왜 지었냐면, 앞으로 21세기 산업은 공기空氣가 될 것이라고 생각허요. 우리 후손들이 맑고 좋은 공기 속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먹거리 방죽(저수지)’로 삼을라고 허요. 하몽 아시지라우? 하몽, 어란, 육포, 햄, 곶감 등을 이 ‘통째로 건물’에서 발효시키고 있소. 어느 지인이 발효타워는 외국어가 섞여 있으니 ‘발양루醱養樓’로 하면 어떠냐고 해서 즉석에서 오케이해부렀소. 이 산 정상에서 깨끗한 공기와 맑은 바람으로 발효숙성된 건강식품이 우리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길러 주실 것을 믿겠지라우? 암먼, 그러컸지라우”한때 ‘천의 목소리’라 불린 보이스 탤런트(voice talent) 권희덕님의 “아름다운 밤이에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숲에서 아름답게 놀면서 아름답게 생각하는데 어찌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이어지지 않겠는가.
대단한 분이다. 도무지 세속의 이득에는 눈곱만큼 관심이 없는, 대책없는 사람이다. 사모님의 십팔번은 당연히 “또, 또, 또…”‘일’벌일까 무섭단다. 흐흐. 그러기에 2005년 10년에 걸쳐 혼자서 황토방을 짓고 지인들이 하룻밤 쉬면서 마음을 씻어가라고 열쇠 100개를 만들어 선물했을 것이다. 이름하여 ‘세심원洗心院’. ‘아니온 듯 다녀가라’는 문패가 이제 낡디 낡았다. 올 여름 담장을 기왓장으로 뺑 둘러쌓으니 고풍하고 고아한 분위기가 한층 더한다. 귀틀집 여섯 채를 편백나무로 지어 심신이 지친 분들을 위로하기 20여년, 그가 손수 담근 양애장에 밥을 비벼 드셔보라. 흔한 말로 ‘백종원 쉐프는 저리 가라’이다.
단순하게 살지만 생각하고 사는 것, simple life, high thinking, 그는 온몸으로 일년 삼백예순날 ‘행行’을 하고 있다. 실천궁행實踐躬行, 생각이 나면 즉각즉각. 또한 판판이 어록語錄이다. “행行은/기적을 만듭니다” “소소한 일들이/소소한 행복을 키우는/필수 비타민이다” “인문학이 머시다요? 짜아헌 맘이 바로 인문학의 시작이자 끝이요”“손님을 초대하면/주변이 깨끗해집니다” “차茶는 붙여쓰기로/술은 띄어쓰기로/인생이란 글을 씁니다” “땀과 휴休/인생의 황금조합이다/초대하라/청소가 되니 마음이 맑아져/아름다움이 보인다” “계절의 감각을 느껴야/인생의 맛을 감지한다” “소학小學이 기본이다/소쇄응대진퇴掃灑應對進退를 모르면 사람 아니다” “일상(땀과 휴)이 습習이 되면/마음이 개운하여/모든 게 아름답게 보입니다”“나의 그림자를/비춰주시는 거울은/ 달님입니다”“편하게 살려고 하면/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아/걱정이 앞섭니다”위의 구절들은 글머리에서 말씀드린 8월 이후의 ‘새벽단상’의 일부이다. 시인도, 철학자도, 수필가도 아닌 사람이 순전히 ‘하이 싱킹’만 하며 산 덕분에 만들어지고 쏟아지는 어록들이다. 그가 지난 주말 벌인 숲속 퍼포먼스는 한마디로 ‘멋짐의 폭발’이었다. 그가 30년도 더 전에 꿈꾸었던 ‘세심공화국’(세심원, 세심비공원, 휴림, 발양루)은 이미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나저나 숲 속에서 사는 사람은 이미 아름답다는 게 나의 글 마무리이다. 휴休- 휴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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