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故 鵲泉을 추모하며, ‘삼교리 막국수’의 추억
서울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인근에는 음식점이 참 많다.
등심구이집도 있고, 부대찌개집도 있고, 생대구집도 있고, 회집도 있고, 칼국수집도 있고, 삼겹살집도 있고, 순대국집도 있고, 설렁탕집도 있고, 햄버그집도 있고, 족발집도 있고, 양고기집도 있고, 삼계탕집도 있고, 메밀국수집도 있고, 냉면집도 있다.
줄은 이어 음식점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 골목을 소위 ‘먹자골목’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많은 음식점들 중에 내가 단골로 정한 집은 몇 안 된다.
‘인하순대국집’이라든가, ‘남도찌개’라든가, ‘포항물회’라든가, ‘효종갱’이라든가, ‘목동등심’이라든가 해서, 대여섯 집 정도다.
맛을 앞세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이외에 조건이 또 하나 더 있다.
차려내는 밥상의 양이 배가 부를 정도여야 한다.
공기밥을 더 시켜야 하거나, 냉면 사리를 더 시켜야 하는 집은, 맛이 어떻든 간에 무조건 단골에서 뺀다.
배려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파랑길 트레킹 이틀째인 2017년 2월 19일 오후 1시 반쯤 해서, 우리는 삼교리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 6시 반쯤 해서 고성읍내에서부터 걷기 시작해서 일곱 시간을 줄곧 걸었으니, 오륙 십리 정도는 걸었음직했다.
지칠 만큼 지쳤고, 또 배도 고팠다.
음식점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눈에 딱 띄어 들어온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삼교리 막국수’라는 집이었다.
이것저것 입맛을 따져 음식점을 찾을 여유도 없었지만, 막국수라면 게 눈 감추듯 하는 아내였으니, 무조건 그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맛도 그랬지만, 푸짐하게 담아주는 한 그릇 막국수에 그냥 매료되고 말았다.
푸근하게 배를 채웠다.
그 넉넉한 인심이 고마웠다.
내 그러니, 그 집을 또 다시 들를 집으로 딱 점찍어 놓은 것은, 당연히 귀결이었다.//
7년 전으로 거슬러 2017년 2월 26일에, 내가 카페지기인 우리들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 사랑방에, 내 그렇게 글 한 편을 게시했었다.
아내와 내 손아래 동서해서 셋이 어울려, 그해 2월 19일 낮 12시 반쯤에 강원도 고성의 명파해수욕장에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해서, 그 한 해 내내 틈틈이 동해 해파랑길 2,000리를 걸어, 성탄절인 12월 25일 오후 4시 53분 38초에 끝 점인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 이르렀었다.
그 대장정의 과정을, ‘햇비 산악회 2017, 해파랑길 2,000리’라는 제목을 붙여 모두 173편의 묶음 글로 남겼었는데, 위의 글은 그 중 15번째 쓴 글이다.
벌써 한 시간을 헤맸다.
‘삼교리 막국수’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그 집을 찾아 헤맨 시간이 그랬다.
내비게이션으로 맨 처음 찾아간 집은 분명 아니었다.
7년 전 추억 속의 그 집은 호젓한 작은 마을 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우리가 찾아간 집은 ‘삼교리 막국수’라는 상호는 붙여놓고 있긴 했으나, 속초에서 고성으로 가는 큰 대로 변의 큰 집이었기 때문이다.
상호를 도용한 딴 집인가 했다.
이제는 기억 속에 있는 그 마을을 눈대중으로 찾아가야 했다.
“백도해수욕장이 그 인근에 있었는데...”
아내의 그 말 한마디로, 자그마한 백도해수욕장으로 찾아가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집 자리인 듯한 곳에 있는 2층집에는 다른 상호가 붙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곳 마을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 집, 이사 갔어요. 저기 저 대로 변으로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바로 우리가 내비게이션으로 맨 처음 찾아갔던 그 집이 있는 쪽이었다.
이미 몇 해 전에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는데,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헤맨 것이다.
역시 그 추억의 막국수가 그때 그 차림대로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