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억새는 햇살에 따라 색깔을 달리한다. 보는 위치에 따라 황금색이었다가 역광(逆光)의 햇살을 받으면 은빛으로 출렁댄다. 산정까지 힘겹게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코발트 색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맑은 가을 하늘과 산세의 음영이 어우러진다면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진다. 가을 가뭄에 흙먼지 풀썩거리지만 늘 즐거워하는 산행객의 함박웃음은 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억새밭 사이에서 펼치는 도시락은 어느 진수성찬보다 꿀맛이다.
* 경남 양산시 천성산 화엄벌 억새평원
천성산 터널을 반대하는 지율 스님의 단식투쟁, 산불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천성산(922m)이지만 그곳의 화엄벌 억새평원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는지, 등산로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원사 계곡, 홍룡사, 미타암, 용주사 등등 등산로는 사방팔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원사 계곡이 일반적이지만 화엄벌 억새군락지를 만나려면 홍룡사(055-375-4177,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나 원효암(055-375-4111) 방면을 이용하면 된다. 원효암은 군부대 안을 거쳐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 통행은 불가능하고 셔틀 버스를 시간(9시, 10시, 11시, 13시, 15시)에 맞춰 이용해야 한다. 홍룡사에서 화엄벌 오르는 코스는 두 군데인데,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길을 1시간30분 정도 올라야 한다. 능선에 다다르면 25만여평의 화엄벌 억새평원이 시원스레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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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산 억새 평원 |
화엄벌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1000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강설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화엄벌 중간에는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 습지 화엄늪이 있다. 화엄늪은 자연생태가 그대로 살아있는 환경적 학술가치가 높은 곳이다. 모든 걸 차치하고 이곳의 억새평원이 좋은 점은 사방팔방 막힘 없이 트여 있어 발아래 풍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억새는 키가 크지 않지만 여느 곳과 다르게 멋진 풍치를 자아낸다. 국내 억새평원의 금강산이라고 해도 손색없으며 중턱에도 단풍이 들어 멋지다. 단 홍룡사에서 오를 때 길 팻말이 따로 없고, 정상 부근에도 팻말이 잘 되어 있지 않으므로 유의하길 바란다.
자가운전 - 경부고속도로~양산 나들목~35번 국도 따라 10분쯤 달리면 ‘홍룡사 대석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에서 우회전해 대석저수지를 지나면 원효암 셔틀버스 타는 곳이 있고, 이곳을 지나면 홍룡사 매표소가 있다.
추천 별미집 - 주변에 특별한 맛집은 없다. 그리고 산행시간이 길기 때문에 반드시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며 오르는 길에 물이 없으므로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 경남 창녕군 화왕산 억새밭과 관룡산 용선대 석좌
경남 창녕의 가을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화왕산(757m)의 억새군락지는 두말할 것도 없고, 관룡산(구룡산 740m)의 단풍숲과 용선대가 너른 품으로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녕의 화왕산 정상 부근에는 10리가 넘는 억새밭이 펼쳐지는데, 해마다 억새 태우기를 통해 억새대가 크고 실해서 사람 키를 훌쩍 넘길 정도다. 억새의 날카로운 잎이 피부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긴팔과 긴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억새군락은 화왕산과 관룡산을 잇는데, 무엇보다 화왕산성(사적 64호) 안쪽에 밀집되어 있다. 화왕산성에는 선사시대 화산으로 추정되는 3개의 못(龍池)이 있고 그 주변으로 갈대가 자란다. 억새와 갈대를 한꺼번에 볼 수 있으며, 10월 28일에는 갈대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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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왕산 용선대 관광객들(왼쪽) 화왕산 용선대 화왕산성(오른쪽) |
화왕산 억새뿐 아니라 인근하고 있는 관룡사의 용선대도 필수코스다. 관룡산 중턱, 관룡사 서편 능선인 용선대까지는 절집에서 0.68㎞. 1㎞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오르막길이고 가팔라서 쉽지만은 않다.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이 있는 너른 바위는 참으로 멋진 곳이다.
여래불 앞으로 관룡산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옥천마을도 굽이굽이 모습을 드러난다. 금방이라도 땅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움에 현기증이 느껴지는 그곳에 단풍 든 관룡산이 눈 속으로 스며든다. 등산은 창녕 읍내나 옥천리를 이용하면 되는데, 창녕 읍내는 거리는 짧으나 가파르다.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여주 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 분기점~경부고속도로~대구 방면~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창녕 나들목
추천 별미집 - 화왕산 가는 길목에 있는 고향보리밥(055-521-2516)을 비롯해 토종닭 등을 파는 토속음식점이 많다. 또한 창녕읍에서 우포 가는 길목에 있는 현대쌈밥(055-533-7242)집의 해물뚝배기가 괜찮다.
* 울산 울주군 간월산과 신불산 억새 평원
‘영남의 알프스’라 일컫는 신불산(1209m·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이천리에 걸쳐 있음). 산정에는 널찍한 초원이 형성되어 가을이면 황금빛 억새밭으로 출렁인다. 간월재를 사이에 두고 간월산(1208m)과 신불산 양 옆으로 억새가 출렁인다. 간월재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해 손쉽게 억새꽃을 감상할 수 있지만, 산정까지 오르는 것이 묘미가 있다.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까지는 1.5㎞, 간월산까지는 0.8㎞로 거리가 길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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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불산 등산나무 계단 |
억새 평원을 맘껏 보려면 신불산의 신불재와 영취산을 잇는 길을 찾으면 된다. 오르는 길목은 약간 가파르지만 나무 계단을 만들어 초보자도 가능하다. 쉬엄쉬엄 오르면 정상을 잇는 평평한 능선을 만나는데, 발 아래로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신불산이라는 정상 돌 표지석 앞에 서면 일명 칼바위라고 불리는 공룡능선을 비롯, 남쪽으로 광대한 초원이 주능선을 타고 이어진다. 억새평원은 영취산 쪽을 향해 한없이 넓게 펼쳐진다. 좀 더 많이 걷고 싶다면 영취재의 억새평원까지 능선길을 걸어도 좋고 아예 차량 이동을 하지 않고 등억온천단지에서 홍류폭포 쪽을 거쳐 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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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불산 등산 초입 오르막길 |
자가운전 - 경부고속도로~언양 나들목~언양읍~석남사 경유~밀양 방면~배내골 방향으로 좌회전~배내골. 배내 정상에서 ‘신불산 자연휴양림’이란 팻말을 보고 좌회전하여 비포장 길을 따라 가면 간월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간월산과 신불산이 서로 나뉘게 된다. 신불산은 우측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추천 별미집 - 언양은 소문난 언양 불고기 집성촌이다. 그 중 언양 전통불고기(052-262-0940)집이나 방향이 다른 언양 진미불고기(052-262-4422)가 소문나 있다. 가지산 온천 앞에 있는 허름한 가지산 순두부(052-254-1143)집도 한끼 식사하기에 충분하다. 숙박은 신불산 자연휴양림(055-383-6493)을 이용하거나 등억 온천 단지에 있는 자수정온천 찜질방(055-254-4044)을 이용하면 피로도 풀리고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다.
* 강원도 정선군 민둥산 억새밭
억새밭으로 유명한 민둥산은 긴 억새 축제(9월 23일~11월 12일)를 한다. 해발 800여m 발구덕까지 차를 이동할 수 있고, 그곳에서 30여분만 오르면 되는 거리다. 그래서 아침을 든든히 채운 사람이라면 도시락보다는 물 한 병만 준비해도 충분하다. 1000고지가 넘는 산이라서 다소 숨가쁨이 있지만 돌아서고 나면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는 산. 정상에 서면 발 밑으로 제법 넓은 억새군락지가 펼쳐진다.
축제도 하고, 달집 태우기도 하면서 가꿔 놓은 억새꽃대는 키가 훌쩍 커서 제 멋을 낸다. 민둥머리 꼭대기에 한없이 넓게 펼쳐지는 억새평원, 그곳에 서면 증산이 발 아래로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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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둥산 정상 |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 진부IC~59번 국도~나전~42번 국도(9.4㎞)~정선읍~남면 삼거리에서 우회전~38번 국도~증산읍. 민둥산을 최단으로 등산할 수 있는 코스는 발구덕 마을에서 올라가면 된다. 증산에서 굴다리를 넘어서 증산초등학교 지나면 능전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팻말이 있다. 팻말 따라 산 중턱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추천 별미집 - 증산읍내의 충주식당(033-591-2175)은 질깃한 곱창요리를 내놓는데, 갖은 야채와 참기름 듬뿍 넣고 비벼 주는 밥이 맛있다. 팻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있는 장수식당(033-591-1597, 자목골)에는 장작불을 지펴 고아내는 토종 황기닭이 있다. 2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필히 예약해야 한다. 증산읍내에는 엘카지노 불가마(033-592-8222, 입장료 8000원)가 있다.
이밖에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 억새 평원, 충남 홍성의 오서산 억새 평원, 전남 장흥의 천관산 억새 평원, 경남 밀양시의 재약산 사자평, 제주도의 한라산·산굼부리 등도 놓치면 아쉬운 곳들이다.
글·사진=이신화 ‘여행지 맛집 967’의 저자 www.sinhwa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