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용연사 품은 용문산…
호젓한 숲길과 능선 조망 탁월해
대구광역시 북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 진산 팔공산이라면, 남쪽은 비슬산군이 울타리가 되어 분지지역을 형성한다. 비슬산은 천왕봉에서 두 개의 지맥을 분기시킨다. 북동쪽 방면으로 뻗어 내리는 비슬지맥과 청룡지맥이다. 이 두 지맥에서 갈래 뻗은 산줄기들은 수많은 산봉우리를 낳으며 다시 곁가지를 펼쳐 대구시가지의 남녘을 에워싸고 있다.
한편 비슬산에서 북으로 내달리던 청룡지맥은 687.5m봉(닭지만당)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북서쪽에 작은 가지 하나를 남긴다. 그 가지에 솟은 671.1m봉 산릉은 용문산에서 다시 까치봉과 함박산 능선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함박산을 제외하고는 이 양쪽 산릉의 용문산, 까치봉, 저승봉은 물론 닭지만당산의 지명도 지형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인근의 삼필봉, 청룡산, 앞산 등에 비해 아직 덜 알려져 한적하다. 뿐만 아니라 운치 있는 소나무 숲길이 고즈넉하고, 능선에는 조망처가 많아 탁 트인 전망을 안겨 준다.
용문산 산행은 용문사에서 닭지만당산을 연계한 원점회귀 산행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코스와는 달리 대중교통편이 편리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설화명곡역을 들·날머리로 했다. 설화명곡역에서 명곡미래빌 아파트4단지 뒤로 돌아 까치봉을 거쳐 용문산에 오르고, 하산은 기내미재~함박산~446.4m봉~나주 임씨 묘역을 지나 다시 설화명곡역으로 되돌아온다. 원점회귀 산행으로 거리는 약 13km이다.
설화명곡역 4번 출구를 나서면 명신보감로 종합안내도가 서있다. 달성군에서는 까치봉과 명심보감 목판본(유형문화재 37호)이 보관된 인흥서원을 연결해 둘레길인 명심보감로를 개설했다. 건널목을 지나 멀리 보이는 명곡미래빌 아파트 쪽으로 향한다. 인도 따라 1km쯤 걷다 보면 명곡미래빌4단지 옆으로 길이 꺾인다. 길 옆 축대에 명심보감로 표지판과 안내판 등이 붙어 있다. 아파트 뒤로 돌아들면 ‘합천이씨 대구경북 종친회관’이다. 종친회관 옆 묘지군으로 오른다.
소나무,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선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지만 여전히 신록이 그윽한 숲길이다. 동네 뒷산이라 야외학습을 나온 유치원생들과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하는 주민들도 보인다. 산길은 완만할 뿐만 아니라 넓고 반들반들하다. 곳곳의 쉼터에는 벤치, 운동시설 등을 갖춰 주민들도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그렇다보니 갈림길이 많다. 하지만 요소요소에 이정표가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숲길 군데군데 명심보감의 명구를 게시해 고전의 향기도 느껴진다.
소나무가 울창한 제3쉼터를 지난다. 인흥서원 갈림길을 만나고 달성보 녹색길과 합류한다. 통나무 계단의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은 제4쉼터에서 누그러진다. 모처럼 얼굴을 내미는 용문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숲길로 잇는다. 곧 까치봉 표석이 있는 제5쉼터다. 정확한 지명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까치가 많이 날아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평탄하게 내려서던 산길은 비슬산 둘레길 교차점을 지나 임도에 닿는다. 화원읍 본리리와 기내미재를 가로지르는 임도를 건너 용문산으로 향한다. 온통 빽빽하게 숲을 이룬 소나무가 하늘을 가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밀양 박씨 묘를 만나고, 뒤이어 418.1m봉이다. 봉우리라기보다는 능선상의 일부로 별다른 표식은 없고 묘지가 자리한다. 경사가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바윗길도 만난다. 화원자연휴양림 갈림길을 지나 올라서면 용문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별 다른 표지석도 없고, 누군가 바위에 올려놓은 돌에 쓴 용문산이라는 글씨도 희미하다. 용문산은 2010년 화원자연휴양림이 개장되고 주변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명은 산자락의 용문사에서 따온 이름이 아닌가 싶다. 용문사와 용문산 주변은 용龍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특히 남쪽 골짜기에 고찰 용연사까지 품고 있어 불도량의 기운이 감도는 산이다.
바위로 둘러싸인 정상에서의 조망은 압권이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사방팔방의 전망은 꽉 막힌 가슴을 후련하게 뚫어 준다. 지나온 까치봉 능선은 물론 가야 할 함박산 능선이, 그 너머로 대방산, 금계산도 선명하다. 멀리로는 가야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성서공단을 끼고 화원 옥포를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이 넉넉한 물줄기를 이룬다. 시계방향으로 몸을 돌리면 대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에는 팔공산이 마루금을 그으며 장쾌하게 뻗어간다. 오른쪽은 앞산을 비롯해 삼필봉, 황룡산, 청룡산, 주암산, 최정산 등등이, 남쪽 가까운 곳에 닭지만당산, 뒤편에는 비슬산이 머리를 내민다. 산과 강, 아파트가 밀집된 도심, 강을 낀 들판까지 시원하게 볼 수 있다.
하산은 올라왔던 방향으로 돌아서면 갈림길이다. 왼쪽 능선 따라 내려서는 비탈길은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전망이 좋은 바위지대를 조심스레 통과하면 소나무 숲길이다. 차츰 경사가 수그러지며 차례로 나타나는 널찍한 묘역을 거쳐 임도에 닿는다. 임도 따라 빤히 보이는 기내미재는 화원 본리리와 용연사를 연결하는 고개다. 귀넘이, 또는 귀네미에 어원을 두고 귀넘이가 기내미로 변화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귀네미는 <정감록>에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으로 풀이돼 있다.
고개 주변에는 간이매점이 있고, 비슬산 등산안내도를 비롯해 자전거길, 둘레길 등의 안내도가 보인다. 화원읍 명곡리와 옥포면 반송리를 잇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 육교를 건너면 노송이 우거진 숲에 평상까지 마련된 쉼터가 있다. 여기서 함박산을 거쳐 446.4m봉까지는 달성보 녹색길과 같이 간다.
함박산으로 향하는 산길은 목재 계단길이다. 계단을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용문산과 그 뒤로 보이는 비슬산이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허리를 약간 돌아 오르면 지형도상 함박산(432.3m)에 닿는다. 기산(276.6m)을 거쳐 반송리로 연결되는 갈림길로 리본 몇 개가 달려 있다. 달성군에서 펴낸 <내고장 전통 가꾸기>
에는 ‘명곡동 작약산’이라 표기돼 있으며 ‘주민들은 작약산芍藥山의 한글 이름인 함박산으로 부르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제 경사가 완만한 산길로 잇는다. 돌기둥처럼 우뚝 선 함박바위를 지나면 기내미재 전망대다. 달성공단으로 내려앉는 비슬산 능선 아래 기세리 들녘이 풍성하다. 시원하게 뻗은 중부내륙고속국도 지선과 달서구와 달성군 테크노폴리스를 연결하는 자동차전용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자락 송해공원 옥연지의 햇빛에 반사된 은빛물결은 눈을 부시게 한다. 호수 너머 금계산과 대방산도 부드러운 산세의 모습을 드러낸다.
정선 전씨 묘가 자리한 443.7m봉을 넘으면 함박산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는 조망과 휴식을 위한 쉼터도 겸한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대구시가지 전역을 살필 수 있다. 연무로 희뿌연 팔공산의 실루엣이 어렴풋하고, 비슬산에서 갈래 뻗은 능선 따라 늘어선 준봉들을 한눈에 담는다.
곧장 올라선 지형도상 446.4m봉에는 김문암님이 제작한 함박산 표지판이 걸렸으나 고도 표기가 432m로 위치가 잘못된 듯하다. 삼각점(왜관 333, 2000 복구)이 있는 이 봉우리를 다른 안내도에는 저승봉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지명유래는 알 수 없다. 달성보 녹색길과 명곡 갈림길인 이곳에서 하산은 명곡 방향 능선 길로 직진이다. 달성보 녹색길은 왼쪽 송해공원 옥연지로 이어진다.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은 남평 문씨 묘를 지나면 완만하다. 아카시나무 군락지를 빠져나오면 갈림길이다. 능선 길을 버리고 오른쪽 비탈길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면 콘크리트 임도에 닿고, 임도를 따르면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난다. 그대로 돌계단을 올라 나주 임씨 묘 옆으로 나지막한 112.1m봉을 넘는다.
다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숲속을 벗어나면 멀리 명곡미래빌 아파트가 보인다. 민가와 밭둑 사이로 빠져나와 도로에 서면 아침에 지났던 LH분양홍보관이다. 여기서 도시철도 설화명곡역은 가깝다.
산행길잡이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설화명곡역~명곡미래빌 아파트4단지~합천이씨 대구경북 종친회관~까치봉 418.1m봉~용문산 정상~기내미재~함박산~446.4m봉~나주 임씨 묘~도시철도 1호선 설화명곡역 <5시간 소요>
교통
용문산 산행은 대중교통편이 좋다. 동대구행 열차 또는 동대구터미널(복합환승센터)로 가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동대구 복합환승센터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해 종점인 설화명곡역에서 내린다. 돌아올 때 역시 설화명곡역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타면 수월하다.
숙식(지역번호 053)
동대구역 인근에 숙소가 많다. 대구의 별미는 역시 막창구이다. 동대구역 인근 대구은행골목의 태영생막창(753-3593)을 비롯해 여러 집이 있다. 동대구역에서 가까운 영락교회 인근 종가집한정식(742-7771)의 돌솥밥 정식은 저렴하면서도 깔끔하다. 대구신세계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팔도국수 면주방은 국수, 만두 등 면요리 전문점이다. 동대구역 사거리 인근 더큰청진동해장국(945-0077)은 국밥, 해장국, 육개장으로 소문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