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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가정요리인 뵈프 부르기뇽에 밥을 곁들였다. /히데코 제공
올해 설날은 시댁에서 보냈다. 이번에도 시어머니와 내가 각자 제일 잘하는 요리를 만들었다. 시어머니는 떡국.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 두부와 소고기를 고명으로 올렸다. 나의 메뉴는 갈비찜 대신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가정 요리인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사진)과 영국의 전통 요리 로스트 비프였다. 경주 출신 요리 선생님에게 배운 육전도 곁들였다. 어쩌다 보니 소고기뿐이었다. 미리 준비해둔 고급 한우를 아낌없이 썼다.
뵈프 부르기뇽은 '기발한 요리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주방 구석에서 마시다 남긴 레드와인을 발견하고 떠올렸다. "그래, 프랑스판 갈비찜으로 가자!" 뵈프 부르기뇽은 배우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줄리&줄리안'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프랑스 향토 요리다. 일본 비프 스튜의 원조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양지살과 홍두깨살을 네모나게 썰어서 양파, 셀러리, 당근, 버섯, 각종 허브와 함께 부르고뉴 레드와인으로 조린다. 물론 와인은 마시다 남은 세계 각국 어느 와인이어도 좋다.
갈비찜과 뵈프 부르기뇽의 공통점은 냄새다.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오랜 시간 뭉근히 졸이면 온 집안에 행복한 냄새가 은은히 감돈다. 소갈비를 삶은 뒤에 파, 마늘, 설탕, 간장, 깨소금, 참기름 등의 양념을 듬뿍 넣어 재워서 무, 당근, 밤, 은행 등과 함께 졸이는 갈비찜을 만들 때면 언제나 뵈프 부르기뇽이 떠오른다. 올해는 소고기 질이 좋았는지, 마시다 남은 와인이 맛있었는지, 며느리로서 나의 마음이 온화해졌는지, 뵈프 부르기뇽을 졸일 때의 냄새와 소스 맛이 한결 진했다.
그리고 설날 당일 아침 한 시간에 걸쳐 오븐으로 구운 로스트 비프도 평소보다 훌륭하게 완성됐다. 로스트 비프가 특기인 친정아버지에게 90점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나친 자신감에 빠졌을 정도다. 고기 무게의 1%에 해당하는 소금, 후추, 마늘, 올리브 오일을 채끝살 덩어리에 발라 하룻밤 냉장고에 재운다. 굽기 두 시간 전 냉장고에서 꺼내 표면을 살짝 구운 뒤 오븐에 넣는다. 오븐에서 꺼내면 상온에서 식힌다. 고기를 가열하면 50~60도 전후에서 단백질이 응고돼 흐물흐물한 식감이 씹기 좋게 변한다. "그래서, 오븐 온도 조절이 아주 중요해"라고 설명해준 아버지는 감기 안 걸리고 건강하신지.
뵈프 부르기뇽과 로스트 비프와 시어머니의 맛있는 떡국에 와인까지 한 잔씩 걸치고, 따로 사는 며느리는 오후 세 시가 되자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어젯밤에 만들었다"며 도토리묵을 잔뜩 싸주셨다. 매콤한 양념에 무치면 뵈프 부르기뇽하고 로스트 비프하고 아주 잘 어울리겠다 싶어 내심 기뻤다. 나는 행복한 며느리다.
첫댓글 프랑스 전통스튜인 소고기 부기뇽에 대한 즐거운 가정사네요..저희도 메뉴.떨어질때 즈음하여 가끔해먹는 스튜입니다..남편 파리서 유학할때 자주 해먹던 요린데 제가 전수받아 더 그럴싸한 맛을 낸다는 스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