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아침
조미경
지숙이 생산팀에서 올라온 결재 서류를 넘기며 한숨을 푹 쉬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달러가 강세로 이어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다 보니, 납품해도 영업 이익이 예전보다 못하다. 지숙은 회사 자금 담당 이사로 거래처 등에 물건을 납품할 때 원가와 기계, 설비 등의 감가상각을 계산해서 거래처에 기획안 품의를 기획하고 있다. 눈은 서류에 고정되어 있으면서 시선은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에 머물러 있다.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키어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커피를 마신다. 요즘 신경이 부쩍 예민해져 하루가 고통이다. 커피잔을 들고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커피를 마지막까지 마시고 나서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때 울리는 휴대폰에 요양보호사라는 선명한 글씨가 떴다. 지숙은 가슴속에서 이유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휴대전화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예…보호사님, 지…지금이요?” 지숙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무슨……말씀인지… 뭐라 구요?” 당황한 지숙이 통화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간다. 자신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서 남편 동찬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여보 큰일났어!” “왜?…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동찬의 목소리가 여유롭더니 결국은 커진다. 지숙이 한숨을 크게 쉬더니 “어머니가 사라지셨대요.” “뭐라고?” 지숙의 남편 동찬도 덩달아 목소리가 커진다. “보호사는 뭐 하느라 어머니 집 나가신 것을 몰랐다는 거야?”“보호사 말로는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어머님이 밖으로 나갔다는데, 아무래도 동네로 찾아다녀야 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서로 음성을 높였다. 그러는 사이 지숙이 집 앞에 도착해서 차고에 자동차를 주차 시키고, 현관으로 뛰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가 가실만한 곳을 요양보호사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안 구석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나 집안에는 시어머니가 없다. 이번에는 정원으로 달렸다. 정원에는 나무들이 많이 있어 혹시 나무들 사이에 쓰러져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원을 살펴보아도 시어머니의 흔적은 없었다. 정원 끝에 창고로 쓰는 지하실이 있다. 지숙은 창고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며칠 전에도 시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들어간 지숙이, 지하실 창고에 웅크리고 있는 시어머니를 발견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번에도 문을 열고 스위치를 켜는 지숙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린다. 지하실은 퀴퀴한 알 수 없는 냄새가 훅 풍긴다. 처음 시집을 왔을 때는 지하실에도 세입자를 들여서 세를 받아 오던 살림집이었다. 그 당시에는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더니 최근 몇 년 동안은 지하실에 살겠다는 세입자가 없어서 그냥 놀리고 있다. 비어있는 지하실의 현관문을 열고 입구부터 거실을 거쳐 방을 한곳씩 차근차근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어머니?’하고 불렀다. 목이 아프게 불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부엌을 지나 안방으로 가면서 스위치를 올리니 찰칵 소리가 나면서 불이 환하게 켜진다. 벽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지숙이 흠칫 놀랐다. 불빛 때문인지 벽지에 묻어 있던 모기 자국이 드러나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흉물스러운 모습이다. 집안에는 환하게 불빛이 들어 왔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다. 지하실 구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컴컴해서 스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 어두운 곳에 있으니 으스스 한기가 느껴진다. 지하실은 차고와 연결이 되어 있어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둡고 컴컴하다. 이곳에도 시어머니는 없다. 실망한 지숙이 지하실을 나왔다.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장독대 쪽으로 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지숙의 시어머니는 집안일에 무심한척했지만, 가끔 장독대를 찾아 간장이며 된장 항아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예전부터 자주 보아왔었다. 장독대는 시어머니가 젊은 시절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던 것으로 지금까지 그곳에는 된장이며 고추장이 햇살을 받아 익어가고 있었다. 지숙과 동찬이 운영하는 공장 식구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할 때는 지숙 시어머니의 손길로 담근 된장이며 고추장, 간장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입맛이 까다로운 직원들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근처 식당에서 식권을 통해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지숙이 항아리가 모여져 있는 장독대로 천천히 다가갔다. 항아리에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아, 길가에 던져두어도 쓰레기로도 가져갈 사람이 없어 보였다. 지숙은 의식적으로 장독대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무서웠다.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다 그만 항아리 사이에 몸이 끼어서 울면서 엄마를 부르던 무서웠던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가슴이 쿵쾅거린다. 집안에는 동생과 지숙이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공장에서 함께 일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혼자가 아니다. 항아리 사이로 희끄무레한 무엇이 보인다. 지숙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누구?” 지숙은 소리를 치고 나서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때 지숙의 남편 동찬이 뛰어오면서 소리친다. “당신, 왜 그래?” “여…여기…” “여기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동찬은 아내인 지숙과 어머니 사이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없이 자신과 동생을 고생고생해서 키우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숙의 바가지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신혼 때는 나이 어린 신부를 얻었다고, 친구들이 자신을 야수라 불렀을 때 만 해도 그냥 웃어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시간이 흐르니 이제 자신도 지치고 있다. 지숙이 시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보니 짧은 겨울의 해는 기울어 이미 마당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당신이 한번 봐요.” 동찬이 그녀가 가리키는 쪽으로 다가갔다. 동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의 말을 믿어야 하지만 자신을 낳아 준 엄마가 치매라 는 것도 믿기지 않은데, 오늘 자신의 엄마를 보니 할 말이 없다. “엄마, 왜 여기 있는 거야? 다들 찾고 난리잖아.” 동찬이 자신도 모르게 엄마에게 큰소리를 쳤다. 지숙은 남편이 소리를 지르자 가까이 다가갔다. 뭔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보이는데, 어두워서 짐승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어 속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희미한 물체를 향해 동찬이 엄마라 부르는 소리에 지숙이 한 걸음 다가갔다. 장독대 사이에 끼인 물체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었다. 흰자만 번뜩이는 두 눈동자에는 깊은 두려움이 깔려 있고, 억새처럼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얼굴을 온통 덮고 있어 흡사 귀신을 보는 것만 같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은 흙투성이가 되어 짐승이 인가에 들어왔다 올가미에 걸린 꼴이었다. 지숙은 그런 시어머니를 마주하고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왜 제 말을 듣지 않고 집에서 나온 거예요? 제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세요,” 남편이 옆에 있었지만,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한바탕 퍼붓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은 지숙이다. 어느 때는 정신이 맑아서 식탁에 앉아 반찬 타박하고 살림을 가르치지 못한 친정엄마를 들먹이다, 지숙의 표정이 달라지면 이번에는 살림을 배우지 못한 지숙을 나무랐다. 어쩌자고 집안을 나와 어디를 헤매고 다녔으며, 흡사 동물 같은 표정으로 집안 식구들에게 이렇게 발견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장독대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에게 소중한 공간인 것 같다.
그날 저녁 지숙이 가족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시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낮에 가족들을 애타게 걱정시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에 빠져 있다. 순한 아기가 되어 잠을 자는 시어머니를 보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게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찬은 한사코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어머니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고 약을 먹어도 치매가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요양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동찬에게 치매 전담 요양병원에 시어머니를 모시자 했다가 부부싸움을 크게 했다. 동찬은 자신을 어렵게 키워주신 어머니를 짐짝을 버리듯 요양병원에 모시는 일에 있어 펄쩍 뛰며 놀라는 남편 때문에, 지숙은 하루에도 수십 번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가고 있다. 시동생 부부 역시 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맏아들과 맏며느리의 몫이라며 한사코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일에 딴지를 걸고 있다. 동찬은 한집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모른다. 동찬은 오직 회사 일밖에 모르는 남자다. 그는 처음 작은 기계 한 대를 들여놓고, 구멍가게로 시작 지금은 직원을 100명 이상 거느린 중소기업으로 회사를 키웠다. 회사 자금과
직원 관리는 아내인 지숙에게 맡기고 자신은 주로 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지숙의 시어머니 강 여사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갱년기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찾아왔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며느리 지숙은 치매가 천천히 진행되기만 바라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괴팍한 성격의 강 여사는 오십이 넘으면서 시시콜콜 며느리인 지숙과 충돌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벌컥 내면서 지숙을 닦달했다. 그때마다 취미 생활을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라도 등록하시라 등을 떠밀어도 돈이 아깝다며 손사래 치던 시어머니는 온데간데없고, 몇 년 전부터 며느리 등쌀에 못 살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그 바람에 시동생 부부와도 만나면 공기가 싸하다. 시동생은 아주 내놓고 이죽거린다. “우리 엄마가 돈을 쓰면 얼마나 쓴다고 그 돈이 아까워서 그래요. 우리 엄마 우리 형제들 키우느라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제 호강할 일만 남았는데, 형수님도 그러는 거 아니에요.” 하는 말에 지숙은 어이가 없다. “서방님,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님 친구분들과 여행 다니시라고 하는데, 어머님 지난달에 일본 다녀오셨는데 모르셨어요?” 지숙이 따지자 강 여사는 모르는 척 아예 외면한다. 강 여사는 큰 며느리인 지숙과 작은 며느리 화윤 두 사람에게 상대방의 흉을 보면서 싸움을 붙인다. 마음이 착한 지숙은 그런 시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만 동서인 화윤은 당장 지숙에게 전화해서 씩씩대면서 대든다. 영문도 모른 채 손아래 동서에게 당하고 나면 지숙은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지숙이 대학교 3학년 신학기를 앞두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이불 공장이 있던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다. 범인은 술에 취해 담배꽁초를 던져 명절 대목을 노리고 물건을 잔뜩 쌓아 놓은 가게와 공장 내부를 몽땅 태우고 말았다. 화재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자식들 크는 재미로 고된 하루도 웃음으로 승화 시키던 가장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세상을 비관하며, 술독에 빠지게 했다. 그 일로 엄마는 머리를 싸매고 몸져누웠다. 단란하던 지숙의 집은 당장 하루 한 끼를 먹기 위한 쌀 걱정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숙은 수업 후 담배 냄새가 지독한 기원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하며, 동생들의 학비를 벌었지만, 끝내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취업을 서둘렀다. 경력이 없는 지숙은 건설 현장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 일을 시작했다. 건설회사 사무실은 어린 지숙이 일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한 달을 겨우 버틴 지숙은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나이도 어리고 기술이 없는 지숙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다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 동찬을 만났다. 동찬은 30대 초반으로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중이었다. 지숙은 공장 옆에 딸린 작은 사무실에서 동찬과 함께 근무했다. 동찬은 20대에 창업해서 인스턴트 라면 포장지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공장장 겸 사장을 겸하고 있다. 공장 식구들은 3교대로 밤낮없이 일했다.
공장 옆에는 기숙사로 쓰는 조립식 건물과 부엌이 있어 공장 식구들의 하루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지숙은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했다. 그때는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 사장의 어머니라고만 알고 있던 강 여사를 생각하면, 괄괄하면서 괴팍한 자신을 탐색하듯이 바라보는 눈빛에서 이미 기분 나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강 여사는 몰락한 집안의 맏딸인 지숙을 동찬의 배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지숙이 동찬과 신혼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시어머니 강 여사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 여사가 17살에 동찬 아버지와 결혼하고 나서 딸과 아들을 내리 셋을 낳고 여자의 행복이라는 것을 막 느끼기 시작할 무렵, 남편이 풍토병에 걸려 어느 날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타났다. 그 후로 강 여사는 어린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좌판에서 콩나물을 길러 팔았다. 한창 젊은 나이에 계절마다 제대로 된 옷 한 벌 장만하지 못하고 자정까지 콩나물에 물을 주어 기르면서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일했다. 주부들은 싱싱한 강 여사의 콩나물을 자주 샀다. 젊은 시절 재혼의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어린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마음을 접게 되었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고집스럽고 괴팍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날도 지숙은 남편과 달콤한 신혼의 재미에 푹 빠져서 강 여사의 눈을 피해 애정 표현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지숙은 시어머니가 눈치를 챌까 봐 조마조마했다. 강 여사는 아들인 동찬과 며느리 지숙이 식탁에 앉아 다정한 눈길이라도 교환하고 있으면 못마땅한지 급하지도 않은 심부름을 시키면서 며느리를 못살게 굴었다. “아니, 이것들이 늙은 시 어미 앞에서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 하고 아들이 없을 때 며느리 지숙에게 눈총을 주곤 했다. 어쩌다 둘이서 같은 시간에 퇴근하면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아들 동찬이 지숙을 만나기 전까지는
둘도 없는 효자였던 아들이 여자가 생기면서, 자신에게 소홀하고 무관심하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괘씸한 생각이 든다. 젊은 아들 내외가 사이가 좋아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질투가 난다.
어느 날 자정이 넘은 시간 지숙이 부엌으로 물을 가지러 나가려고 안방 문을 열자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해 비명을 질렀다. 지숙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자 잠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동찬이 팬티만 걸치고 방 밖으로 나가다 잠옷 바람으로 방 앞에서 졸고 있던 강 여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찬과 지숙의 비명에 강 여사가 잠에서 깨어 눈앞에 서 있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고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그 일로 동찬은 지숙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도 강 여사는 며느리 지숙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의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호시탐탐 적의를 감추고 있었다. 강 여사는 40이 넘자 몸무게가 점점 뚱뚱해져서 외출이라도 하려면 불룩 나온 배를 가려야 했다. 반면 며느리는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게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 칭찬을 듣고 싶어 며느리를 데리고 신발을 사러 다니고, 옷을 사러 다녔다. 남들처럼 며느리가 아닌 딸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다정한 척도 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며느리가 이쁘다고 칭찬한다. 속이 상했지만 참고 넘어간다.
강 여사는 초저녁잠이 많았다. 저녁 9시면 코를 골면서 잠을 자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부엌에 나와 달그락거리며 이미 닦아둔 냄비를 꺼내어 다시 씻으며 새벽 단잠에 빠진 며느리 지숙을 괴롭혔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지숙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시어머니에게 들어가 있으라 하고 자신이 밥을 지었다. 그러면 강 여사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지숙은 잠이 부족해서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젊은 지숙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묵묵하게 견디고 있지만 어느 때는 친정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결혼기념일이 두 번 지난 후 지숙에게 몸의 변화가 생겼다.
일할 때도 졸음이 쏟아지고 피곤이 쌓이면서 새벽에 일어나 밥하는 것이 힘들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 여사가 지숙의 단점을 잡아서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한 집안을 책임지는 안주인이 게으르다,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식으로 갖은 험담을 퍼부었다. 지숙이 며칠째 속이 좋지 않아 혹시나 하고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검사를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나서 바로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도 많았다. 다음날 동찬과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는 검진하더니 임신 8주에는 항상 몸조심해야 하고 행여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어도 되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한다는 주의 사항을 이야기했다.
그날 저녁 동찬이 지숙의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기뻐할 줄 알았던 지숙의 예상과 달리 강 여사는 “축하한다. 잘했다, 이제 홀몸 아니다,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하고 말을 하면서 요즘 젊은것들은 임신이 뭐 대단한 것으로 아는 모양이지… 쯧쯧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시어머니에게 크게 실망했다. 강 여사는 이미 고인이 된 시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나서, 여자의 몸으로 혼자 자식들을 가졌을 때는 먹을 게 먹어서 잘 먹지도 못했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다. 지숙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퇴근하면 정원에서 꽃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거나, 시간이 되면 태교 음악을 들으며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독서를 했다.
임신 후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 연휴 기간 납품할 물건을 거래처에 제날짜에 출고하려 지숙은 정신없이 발주 준비하고 있다. 공장은 매일 3교대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동찬은 원재료 구매 담당 바이어와 점심 약속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지숙은 공장 식구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사무실에 앉아서 거래처에서 걸려 오는 전화와 지출결의서에 사인하고 있었다. 그때 강 여사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그래, 새 얘기냐? 너 언제 퇴근할 거냐?” “오늘은 회사 일이 바빠서 아마 늦게 퇴근할 것 같아요.”
지숙은 강 여사의 전화에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내일모레가 추석인데 너는 며느리라는 얘가 그래, 명절 음식 준비할 줄도 모르냐?” “저도 알아요. 어머니…명절 음식 준비는 내일 그이랑 시장 봐서 할게요.” 지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팍한 강 여사의 말이 쏟아졌다. “바쁜 네 남편 부려 먹고 싶니? 남자가 어떻게 음식 만드는 재료 사는 시장에 따라가고 그러냐, 안 되겠다. 너, 빨리 집에 와서 명절 준비해라.” 통화를 끝낸 지숙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앉아 있다. 이럴 때 시어머니는 대책이 없다. 출근하기 전 명절 준비는 아래 동서랑 하기로 했으니 그리 알라고 일러 놓았는데도 바쁜 며느리에게 강짜를 놓으신다. 더구나 지숙은 임신 3개월이다. 병원에서 의사가 당분간은 힘든 일은 피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배려도 없이 명절 상차림만 걱정하고 있다. 며느리가 한 명도 아니고 작은 며느리도 있는데, 왜 작은 며느리에게는 명절 음식 해야 하니 일찍 오라는 말 못하고 자신만 닦달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숙의 손아래 동서는 지숙보다 세 살이 연상이다. 동서와 시동생이 결혼할 때 남편이 신혼집을 마련해주느라 고생했는데도 시어머니는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지숙이 시동생 부부를 생각하니 시어머니가 밉다. 아주 밉상이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금전 문제에 있어 맏아들과 맏며느리는 한 집안을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말로 자신의 합리화를 하는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공장 식구들 다독이며 이만큼 회사를 키운 것은 자신과 남편의 몫인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늘 며느리의 역할은 없고 오직, 자신 아들의 공이라 말하니 속이 상한다. 시동생은 그동안 창업한다는 빌미로 동찬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거금을 빌려 가서 갚지도 않고, 지금껏 언제 갚겠다는 한마디 말도 없다. 그런 시동생이지만 남편 동생이고 가족이라 지금까지 남편 의견에 반대 의사도 내비치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시어머니는 자신과 남편에게 전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은 모양이다. 지숙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집에서 가까운 마트에 갔다. 명절이 바로 내일이라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두 눈을 반짝이며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날도 지숙은 혼자 장을 보아 집으로 오고 싶었다.
그런데 기어이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앞세워 장을 보면서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자동차에서부터 시작된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요 앞에 재래시장에 가면 채소가 좋더라, 과일도 싱싱하고 좋던데, 너는 젊은 애가 어찌 그리 돈 아낄 줄을 모르냐?” 그냥 보기에만 좋고 맛도 그저 그런 백화점에서 파는 것들은, 비싸기만 하지…돈이 물도 아니고 돈이 썩었냐 기어이 마트 가서 사야 속이 시원하지…
지숙은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순간 ‘욱’하고 짜증이 났다. 정말 매일 속이 뒤틀리고 화가 난다. 나이가 어린 며느리라고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시어머니가 야속하다. 그렇지만 이제 갓 시집온 며느리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도 없다. 마음으로는 ‘어머니, 재래시장이 조금 싸지만 저는 마트에서 한꺼번에 장 보고 싶어요.’라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킨다.
“네 시아버지 제사상 차리는데 정성을 보여야지, 젊은것들은” 강 여사는 며느리가 못마땅하다. 얼굴만 곱상하게 생겼지, 살림이라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도 미운데, 시어머니인 자신의 면을 살릴 줄도 모르는 며느리가 답답해서 화가 난다. 아들 동찬은 많은 아가씨 중에 하필이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을 며느리로 맞이해서 자신을 화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오니 이 집의 가장 동찬이 거실에 앉아 있다가 무거운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이렇게 무거운 것을 이 사람 혼자 들게 하셨어요?” 아들의 말에 강 여사는 속이 확 뒤집혔다. 지금껏 키워 놓았더니 며느리 힘들다고 역성을 들고 있다. 그동안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새벽부터 잠도 못 자고 콩나물 장사할 때는 당연한 일이라 여기면서 며느리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게 했다고 따지고 든다.
그날 저녁 둘째 아들과 둘째 며느리가 차례를 지내러 초인종을 누른다.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을 하고 있던 지숙이 문을 열어 주었다. 두 사람은 한껏 치장하고 있다.
순간 지숙은 집안일 하느라 더러워진 앞치마를 입고 동서를 마중하니 자존심이 상한다.
동서 손에는 흔한 과일 바구니 하나도 들려 있지 않았다.
차례 지내러 오는 시동생과 동서 손에 선물 한 개 들려 있지 않아 어이가 없다.
“어서 오세요…서방님,” 시동생은 겸연쩍은지 지숙의 눈치를 보고 서 있다.
“어서 오세요, 우리 지금 전 부치고 있는데, 송편도 빚어야 해서 손이 부족한데.”
지숙은 어색하게 서 있는 손아래 동서를 부엌으로 밀었다. 명절 준비하러 시댁을 방문한 동서 손에 흔한 과일 바구니 하나 들려 있지 않으니 속으로 기가 차고 화가 났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 집의 맏며느리인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시동생 부부에게 미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시동생은 남편 동찬보다 두 살이 아래지만, 아직 변변한 직장도 없이 형 그늘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지숙은 속으로 그런 시동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곧 아이도 생길 텐데 뭘 믿고 저렇게 태평하게 세월을 보내는지 이해하려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시동생 부부는 사회 탓만 하고 있다. 자신 같은 인재를 몰라준다는 넋두리에 지숙은 그만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아래 동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 취업하면 아무리 힘들고 하찮아도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경력을 쌓아 다른 회사에 이직하기 위해 모멸감도 참아야 하는데, 시어머니 앞에서 회사 일이 힘들다, 일이 많아서 못 다니겠다고 하소연만 하더니, 동찬이 빌려준 사업자금은 단 3개월 만에 탈탈 털어먹더니, 결국은 또 빈털터리가 되어 직장생활도 하지 못하고 단기 알바로 연명하고 있다. 지숙이 보기에는 마치 시위라도 하듯 돈을 헤프게 쓰면서 돈 타낼 궁리나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숙은 성격이 깔끔한 편이었다. 집안을 늘 정갈하게 가꾸고 집에 필요 없는 물건은 재활용품 상자에 담아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날도 출근하기 전, 계절이 바뀌어 다음에 입을 옷을 정리하고 나서 유행이 지나 입지 않는 옷을 상자에 담아 정리했다.
남편의 옷과 자신 옷을 집 앞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넣고 출근길에 올랐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저녁 준비를 위해 퇴근길에 오른 지숙은 마당에 걸려 있는 옷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아침 출근할 때 헌 옷 수거함에 넣어둔 옷이 버젓이 빨랫줄에 올라앉아 빼꼼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아침에 현관 앞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버린 철 지난 낡은 옷들이다. 지숙은 시어머니의 못마땅한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어머니의 쇳소리가 들린다. “아니, 너는 멀쩡한 옷을 왜 버리고 그러냐? 옆집 보라 엄마는 옷 두 벌로 한철을 버틴다는데…너는 살림한다는 여자가 어찌 그리 씀씀이가 헤프냐?” 지숙은 속에서 울화통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어머니, 저는 매일 출근하고 일하니 새 옷이 필요해요. 그런데 왜 자꾸 옆집 여자와 비교하고 그러세요?” 며느리 지숙이 자신에게 말대꾸하자 화가 치밀어 오른 강 여사 얼굴이 벌겋게 변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지숙은 참고 넘어갈 수가 없어 이번에는 정면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어도 속으로는 너무 화가 났어도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저녁 7시가 되자 동찬의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현관문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는 동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의 목소리가 속으로는 반갑지만, 겉으로는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안방에 앉아 있던 강 여사는 며느리 지숙에 대해 고자질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날 저녁 강 여사는 낮에 있었던 지숙과 불편했던 일들을 동찬이 퇴근하자마자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했다. 동찬은 낮에 있었던 일로 심기가 불편했다. 집에 들어오면 쉬고 싶은데 어머니는 지숙과의 일을 시시콜콜 자신에게 보고한다. 동찬은 어머니와 지숙 사이에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지숙이 아들을 둘 낳을 때까지도 은근히 며느리인 지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던 큰아들 윤기가 방학을 집에서 보내기 위해 집으로 오는 날이다. 지숙은 일 년 만에 만나는 윤기 생각에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변했을까…혹시 몸이 아프지는 않겠지’하고 설레고 있었다. 성격이 불같이 급해도 손자인 윤기에게는 안절부절못하는 강 여사는 손자 볼 생각에 설레는지 안방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거실로 나왔다. “큰애야, 윤기가 온다는데 맛있는 것 만들고 그러지?” “예, 윤기가 좋아하는 음식 만들려고 어제 장 봐 두었어요.” 지숙은 출근하면서 가사도우미에게 이것저것 귀띔해 두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몇 번이나 분가하고 싶어 남편을 설득하다 지친 지숙은 이제 서서히 나이가 드는 것은 느낀다. 시어머니 밑에서 살림하면서 질투심이 강한 시어머니 비위 맞추고 사는 것도 이제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일로 인해서 받은 스트레스로 남편과 이혼을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툭하면 친정 집안의 몰락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당신 아들이 처가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시시콜콜 알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지숙은 속이 상했다. 어쩌다 친정에 나들이 다녀오려면 며느리는 시집오면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시대착오적인 말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강 여사는 손자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지숙은 윤기에게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날 저녁 회사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마친 동찬이 현관 초인종을 누르자, 샤워하던 윤기가 아빠를 부르다 그만 욕조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쳐 성형외과에서 급하게 수술했다. 윤기 얼굴에 커다란 반창고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강 여사는 지숙에게 손자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는 꾸중과 함께 칠칠치 못하다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평상시에도 고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지숙과 강 여사는 그 후 서로에게 미움이 쌓여만 갔다. 윤기가 태어났을 때 만 해도 강 여사는 젊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윤기가 처음 유아원 가방을 메고 등원할 때는 엄마인 지숙을 대신해 자신이 입학식에 따라가고 싶어 했다. 강 여사는 자신이 젊은 시절 자식들에게 베풀지 못한 사랑을 손자에게 쏟아 부었다. 그러나 손자를 데리고 마을을 돌아다니면 동네에서 말만은 젊은 아낙들의 비웃음을 감내해야 했다. “저 할머니, 아래 큰 대문집에 사는 것 같은데 며느리도 젊고 예쁘던데 왜 할머니는 저렇게 후줄근하게 하고 다니죠?.”
“그러게요, 없이 살지는 않는 것 같은데 차림새가 영 아닌 것 같아요.”
“손자 데리고 다니려면 할머니도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아요.” 아낙들의 수군거리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강 여사는 화가 났지만, 젊어서부터 옷치장을 하지 않고 살아서 그런지 자신은 수더분하게 다니는 게 아주 편했다. 그런 관계로 며느리에게도 자신처럼 꾸미지 않고 살기를 종용했다. 어느 날 윤기가 유치원에서 하원 하던 길에 같은 유치원 다니는 엄마와 함께 있는 예슬을 만났다. 예슬 엄마는 윤기를 보고 물었다. “윤기야, 엄마는 집에 계시니?” “아니요, 엄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어…그렇구나!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집에 가는 길이구나. 어쩜, 참 잘 생겼네” 하고 예슬 엄마는 그 자리를 떴다. 그날 이후 윤기는 지숙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랐다. “엄마가 유치원 끝날 때, 데리러 오면 안 돼? 나…할머니랑 함께 집에 오는 거 싫어 ... 창피하단 말이야.” 지숙은 윤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그래, 윤기야? 왜 할머니랑 집에 오면 되는데 그래.” 윤기는 할머니가 못생겨서 싫다고 떼를 썼다. 강 여사는 지숙이 쇼핑을 다녀오면 어떤 물건을 사 왔는지 꼭, 자신 눈으로 살펴야 직성이 풀렸고, 과소비하는 지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얘, 너는 살림하는 여자가 한 푼이라도 아껴서 저축할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옷을 자주 사고 신발은 한 켤레만 있으면 됐지, 또 아까운 돈을 썼구나! 그래.”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지숙이 “어머니 정말 너무 하세요. 남들처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저도 돈을 버는데 이깟 신발 얼마 한다고 그러세요.” 이때 퇴근하는 동찬이 이 말을 듣고 “무슨 일인데 이렇게 목소리가 커”. 그날 지숙 부부는 크게 다투었다. “여보, 우리 분가하면 안 돼요?”“뭐라고…당신 다시 한번 말해봐. 방금 분가하자고 했어?”
“그래요, 우리 분가해요. 어머니하고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먼저 미쳐 버릴 것만 같아요.”
지숙의 말에 동찬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 지숙과 결혼할 때 약속한 사항이기도 한 어머니 문제에 대해 지숙이 이렇게까지 발끈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나,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당신은 왜 그렇게 어머니밖에 모르는데.”
지숙이 흐느끼면서 말하자 동찬도 할 말이 많았지만,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수시로 안방에 들어와서 내 침실을 뒤지고 장롱도 뒤지는 거 정말 싫단 말이에요.”
지숙의 말에 동찬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모른다.
그날 지숙은 남편 동찬이 야속하고 답답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큰아들 윤기가 자라자 지숙은 더 큰 세상으로 보낼 결심을 했다.
이때도 강 여사는 맏손자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지숙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은 일찍 결혼하게 되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못했지만, 자신 아들은 좁은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윤기가 필리핀으로 떠나고 집안은 고요함 속에 묻혔다. 윤기 동생 형기는 대학 입시 학원에 다니느라 늘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왔다. 큰 손자 윤기는 할머니인 자신에게 용돈을 타내기 위해 재롱을 떨었지만, 둘째 형기는 과묵해서 필요 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 여사는 집안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이때부터 강 여사는 조금씩 변했다. 그러나 갱년기 우울증 정도로 치부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단지 노화 탓으로 여기고, 신경을 쓰지 않은 자신의 무신경을 탓해야 했다. 어느 날 강 여사가 지숙에게 전화해 자신의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까지도 건망증이라 여겼다. 집안은 한차례 도둑이 휩쓸고 지나간 듯, 강 여사가 지내는 안방은 서랍에서 쏟아진 속옷이며 양말들이 침대와 방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2층 아들들이 지내는 방에도 물건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건넌방인 지숙의 방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화장대에서 쏟아져 나온 화장품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어떤 물건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신경이 예민한 지숙을 화가 나게 했다. 그날도 지숙은 시어머니를 타이르고 달랬지만, 어린아이가 되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며느리인 지숙에게 반지를 훔쳐 간 도둑년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소리 지르며 우기는 바람에,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동찬은 그런 아내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바탕 언성을 높였다.
월말 직원들 월급 정산과 본청에서 발주한 물량 재고 파악 후 퇴근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니, 부엌 싱크대에는 양푼에 비빔밥을 먹었는지, 씻지 않은 그릇들과 컵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지숙이 옷을 갈아입지 않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부엌 바닥은 물을 흘렸는지 바닥이 물이 흥건하다. 비를 이용해서 물을 싱크홀 속으로 부으며,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꾹 참았다. 날마다 강 여사의 이상한 행동은 꼭 저녁에만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투정을 부리듯 사건이 일어났다. 하루가 정신없이 흐르고 집에 들어오면 물먹은 솜처럼 몸은 무거운데 시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한밤중 누군가 방문 손잡이를 돌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비몽사몽 잠에 취한 지숙이 고단한 나머지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방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지숙이 더듬거리며 문을 열었다. 지숙이 자는 안방 문 앞에는 강 여사가 청소기를 들고 낑낑대고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대책이 없다. 가족들이 모두 곤한 잠에 빠진 새벽에 청소기를 들고 서서 지숙을 빤히 보더니, “게으른 년 청소도 안 하고 집구석에서 잠이나 쳐 자고 있어?” 강 여사의 눈빛에서는 분기가 탱천해서 지숙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 지금 시간이 새벽이에요. 지금은 잠자는 시간이에요. 잠옷 바람으로 서 있는 시어머니를 달리고 있자 ‘1층에서 소란을 떨자 2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윤기가 아래층으로 내려온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엄마? 잠 좀 자자.” 할머니 치매 때문인데 엄마가 이해해야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왜 이렇게 전쟁이야. 윤기가 졸린 눈을 비비며 투정을 부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 여사의 건망증과 집착은 심해지기만 했다. 집안일을 하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훔쳐 갔다고 우기고 욕하는 바람에, 집안일을 하던 도우미들은 더 이상 지숙의 집안일을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일이 생겼다.
하루에도 수없이 자주 밥을 달라고 조르는 시어머니 때문에 회사 일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자, 남편과 함께 강 여사의 치매 검사를 받기로 했다. 처음 동찬은 자신 어머니의 치매에 대해 믿지 않으려 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던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동찬은 아내 지숙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고려장 같은 요양원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보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강 여사의 생일이 다가오자 지숙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시어머니라 하여 생일상을 차리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밖에서 외식하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지금 상태로는 강 여사가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됐다. 결국 가족들과 의논 후 호텔에서 조촐하게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다.
지숙이 시어머니를 위해 고급 한복을 맞추어 드리고, 신발도 새로 장만했다.
강 여사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지 어린애처럼 웃으며 좋아했다. “어머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지숙이 물었다. 강 여사는 아이처럼 얌전하게 앉아 눈만 멀뚱거린다.
“오늘, 어머니 생신이라 가족들 모두 모여서 맛있는 식사할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곳에 가시면 안돼요.” 지숙이 강 여사의 머리를 드라이어로 만지면서 말했다.
30년 동안 한집에 살면서도 시어머니 머리 손질을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 어색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머리 손질이 끝나자 이번에는 자신의 화장품을 가지고 와서 거칠거칠한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처음 시어머니께 인사할 때는 피부도 탱탱하고 좋았는데 오늘 막상 얼굴을 가까이 보니,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듯이 굵은 주름이 깊게 파였다. 피부는 누렇게 떠 있고 검은 머리는 어느새 새하얀 눈이 덮여 예전 젊은 시절의 카랑카랑하던 모습은 이제 없다. 한참 시어머니 얼굴에 화장하던 지숙이 자신도 모르게 울컥 치밀어 올랐다. 평생을 미워하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 꾹꾹 눌러 참으며 살아온 모습이 거울 속에 비친다. 거울 속에는 지치고 삶에 찌들어 가는 중년의 여인이 서 있다. 낯설다. 왠지 그 여인을 바라보다 지숙이 그만 헉,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찬이 “당신, 왜… 그래?”하고 묻자 무안한 지숙이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말끝을 흐렸다. 호텔에 도착하기도 전에 강 여사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동찬이 근처 주유소에 들러 급한 볼일을 마치고 다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식사 전에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자, 강 여사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아니면 맛있는 음식에 잠시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지숙은 어린 시절 매운 시집살이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다. 그날은 맛있는 식사 하고 자식들의 효도에 기분이 좋은지, 강 여사는 정신이 말짱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식사가 테이블 위로 날라져 오자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문으로 달려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찬이 강 여사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날따라 호텔 연회석은 행사가 많아서 그랬는지,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조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강 여사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식사를 미처 끝마치지도 못하고 연회장 밖으로 나왔지만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이름을 부르기도 했지만, 종적이 묘연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헤맨 끝에 연회장에서 멀리 떨어진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강 여사를 발견했다. 가족들은 망연자실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날 동찬과 동생 희찬 부부와 상의 끝에 더 이상 치매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해 약을 처방받고 노인들을 전담해서 돌봐 주는 주간 요양보호 센터에서 지내기로 했다. 가족들은 강 여사를 치매 전담 노인 요양보호 센터에서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집으로 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예전에는 집에서 시어머니를 요양보호사에게 맡겨도, 출근하고 나면 집안에서는 갖가지 일이 생겨 지숙의 업무 효율을 떨어뜨렸다. 이제 자신도 갱년기에 접어드니 부쩍 신경이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도 흥분하게 되어 자주 남편과 다툼이 생겼다. 지숙은 시어머니를 주간 요양보호 센터에 모시고 나서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중간에 요양보호사에게 시어머니 상태를 확인하느라 늘 긴장하고 있으니 컨디션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사무실 근처 공원에서 머리를 식히며, 되도록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시어머니 일에 무 신경 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강 여사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평소에도 관절염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약
드시는 것을 확인 후 지숙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시어머니가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방으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늦은 시간까지 연예 프로에 빠져 있을 텐데 춘곤증 때문인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결에 와장창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큰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처음 지숙은 꿈을 꾸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눈을 떠 보니 사건은 이미 벌어져 있었고, 그곳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남편 동찬의 모습에서 집안에 무슨 변고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지숙이 놀란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고 서 있자, “여보 큰일났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어머니가 2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지셨어.” “뭐…라…구… 왜, 어떻게 2층으로 가셨지…어쩌다가” 거실 바닥에는 강 여사가 대자로 뻗어 있고 의식이 없다. 집안은 정적으로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다. 지숙은 시어머니가 잠자리에 들면 자신도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날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 지숙은 남편과 함께 대학병원 응급실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검사 결과는 담당 교수가 있어야 정확한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입원이 필요한 단계이며 당장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그 후에도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당직 의사가 확신에 찬 얼굴로 이야기했다. 이미 치매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 후 예전처럼 건강하게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평소 지병인 고혈압을 앓고 있던 차에 자신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2층 계단은 완만했지만, 치매를 앓는 노인이 밤중에 계단에서 발이 걸려서 뇌를 다쳤다. 뇌출혈로 인한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수술 후 완치가 되어도 언어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또한 치매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고, 연세가 많아서 다시 깨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어서 수술을 강행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한다. 사무실을 비울 수 없는 지숙은 시어머니를 돌봐 줄 간병인을 신청했다. 치매가 진행 중인 강 여사는 정신을 차리면 집에 가야 한다고 소리를 쳤다.
간병인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강 여사는 눈만 뜨면 간병인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지숙은 시어머니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서 가지고 갔다. 나중에는 자신이 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병문안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숙이 퇴근 후 매일 병원에 들러 시어머니 상태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강 여사는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자 점차 깨어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날은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지숙이 강 여사를 향해 부드럽게 인사를 하자, 표독스럽게 지숙을 바라보던 강 여사의 눈빛이 어느 순간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 한참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목소리가 젖어 드는가 싶더니“민정아?…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너를 찾아 헤맸잖아. 이제 멀리 가면 안 된다. 혼자서 멀리 가면 안 되는 거야." 하면서 울먹인다.
보다 못한 지숙이 “어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시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자 강 여사가 떨리는 눈빛으로 지숙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 옆에서 강 여사와 지숙을 지켜보던 동찬이 “엄마,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하고 강 여사의 손을 잡자 강 여사는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숙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이 시…애미를 용서해다오…네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야. 미안하다. 너를 보면 자꾸만 민정이가 생각이 나서 그랬던 거란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데 옆에 있던 지숙이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강 여사는 다시 뜻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리다 “사는 게 힘들어서 입 하나 덜려고 그랬던 것인데...”민정이, 너를 죽게 한 거야…정말 미안하구나”하고 혼잣말하는 얼굴이 오랜만에 평온해 보인다. 그리고 몇 분 후 강 여사는 눈을 감고 잠이 든다. 잠이 든 강 여사는 온순한 아이 같았다. 시어머니가 잠든 후 지숙은 남편으로부터 어려웠던 시절, 어린 나이에 남의 집에 식모살이 갔다가 주인집에서 학대받다 억울하게 죽은 시누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강 여사는 수술 후 잠시 의식을 차린 듯했지만, 결국은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장례식장을 찾은 지인들과 친척들에 둘러싸인 순간에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어렸을 때 죽은 시누이를 못 잊어 독한 시집살이를 하게 만든 시어머니를 이해는 하면서도, 치매로 자식들의 이름을, 시누이 이름만 부르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 밤에도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200X103) 끝.
첫댓글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만 갑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일상에 일어날수있는 고부갈등을 잘묘사해주셨고 그래도큰며느리의 착한마음씨가 눈시울을 적시네요ᆢ인생은 짧은 순간인것을 ᆢ건강하게 마음편히 삽시다 ᆢ감사히 구독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이많은 글을 언재다 쓰섯어요
대단하심니다 수고 하섯습니다
건행 하세요
하늘을 종이삼고 바다를 먹물삼아 쓰신것같습니다 다보고 나니
골이 띵하네요 고마위요 건행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