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41/가을 단상]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공기가 삽상하다. 반팔, 반바지가 무색하게 제법 춥기까지 하다. 한낮 햇볕은 나락 익으라고 그런지 따갑지만, 하늘은 드높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가을날씨. 청명하다. 하늘의 구름은 모양도 갖가지, 올려다보기에 심히 좋다. 아주 모처럼 뒷산을 올랐다. 늦밤들도 다 떨어져 줍기만 하면 금세 한 말은 되련만, 언제 떨어졌는지 벌레 먹은 것들이 많아 소용이 없다. 빨간 다라이에 쏟으니 둥둥 뜬 것이 태반이다. 이것들은 틀림없이 벌레가 들어있거나 너무 오래된 것들이 까기가 겁난다.
감나무밭을 둘러봤다. 오매-, 어쩌면 이럴 수가? 그 많던 대봉들이 말 그대로 “싸그리” 떨어져버렸다. 감뿐만 아니라 감잎까지 다 떨구었으니 모두 죽은 나무같다. 지난번 이름도 이상한 ‘힌남노’(라오스어로 돌, 가시, 새싹이란다) 때문이다. 바람이 밤새 얼마나 억수로 불든지 잠을 다 설쳤다. 올해는 감이 많이 달려 제발 떨어지지 말라고 깎지벌레약도 쳤는데, 너무 속이 상한다. 1000개가 달렸다면 10개도 안붙어 있다. 11월초면 주먹보다 더 굵은 대봉시를 하나하나 닦아 지인들에게 보내곤 했는데, 올해는 진작에 시루를 엎었다.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못내 아깝고 아쉽다. 농사는 하늘(자연)이 짓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늙은 감나무 하나에 주렁주렁 매달린 토종감들을 본 적이 있는가? 자연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풍경화, 수채화에 괜히 행복해지기까지 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고창 문수사 앞 키가 아파트 10층 높이쯤 되는 감나무에 매달린 수만 개의 감은 그려만 봐도 행복해진다. 떨어진 멀쩡한 감 몇 개를 주워다 툇마루에 놓았다. 며칠 지나면 홍시가 되겠지. 홍시를 엄청 좋아하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전주에서 사갖고 오면서 혹시나 터질까봐 노심초사했던 홍시. 나훈아의 ‘홍시가 열리면’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이윽고, 들판의 논으로 내달렸다. 나락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곧 황금벌판이 될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 ‘들멍(들판 바라보며 멍 때리기)’을 즐길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논에 물 대는 것도 끊어 논바닥이 말라지고 보름이나 스무 날쯤 지나면 콤바인이 순식간에 수확을 하게 되리라. 그사이 몹쓸 깨씨무늬병 등이 번지지 않아야 할텐데. 작년 ‘신동진벼’가 유난히 그 병에 약했다하여 올해는 ‘해품벼’를 심었다. 허나, 풍년이 되면 무엇하리. 쌀값이 커피값보다 못하다던가. 농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건만, 정부는 ‘나몰라라’ 귀를 닫고 있는 듯하다. 나야 가짜농부인 셈이지만, 이게 생업生業인 우리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간다. 장마와 태풍을 이겨내고, 이제 머리를 숙이는 저 겸손한 우리 주식主食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쌀이 곧 밥인 것을, 밥이 곧 하늘님인 것을. 우리 민족은 그렇게 살아왔거늘. 쌀 미米자를 보아라. 여덟 팔八자가 두 번 겹친 글자. 땀을 최소한 여든여덟 번 흘려야 비로소 완성되는 쌀 한 톨. 우리의 정精과 기氣자를 보아라. 모두 쌀 미자를 머금고 있지 않는가. 그 쌀이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반성할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나마 나는 2년째 쌀농사 흉내라도 내고 있어 다행이다. 농사를 모르면 '사람 아니다'는 말은 지나치겠지만, 우리의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앞으로도 쌀일 것임을 의심하는 자가 있는가.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된단 말인가. 아니다. 결단코 아닐 것이다. 농사도 모르는 후배가 단언한다. 1마지기(200평)에 평균 20만원을 못넘긴다고, 직불금 지원이 없으면 완전 적자인게 논농사라고. 작년 얼추 계산해보니 그 말이 맞다. 그래도 5천년을 이어온 농사인 것을. 겨레의 숨결이고 국토의 눈물인 쌀이 어떻게 이런 천대와 수모를 받아야 하는가, 나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백수가 내일모레인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진짜 이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싶다.
어찌거나 가을이 깊어가는데, 나의 삶은, 나의 인생은 늙어가는 것인가? ‘우아하게’ 익어갔으면 좋겠는데, 요즈음 왜 자꾸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가는지 모르겠다. 짜증이 스멀스멀 내 몸과 마음을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3년 반 전, 40여년만에 나의 생가로 귀향하면서 ‘전원생활’을 꿈꾼 것은 아니다. 여생餘生을 내가 태어나 자란 이 찬샘마을에서 책 읽고 글 쓰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재밌게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아내의 ‘장기 부재’도 ‘괜, 찮, 다’ ‘괜, 찮, 다’ 짐짓 나를 위로하고 감수하며 지냈는데, 이것도 한바탕 꿈꾸는 것인가 싶게 금세 흘러갔다. 고향의 산천초목은 의연한데,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사람은 늙고 병이 드는 것인가. 그래서 석가모니는 생노병사의 비밀을 찾아 죽을 듯 수도를 하였는가. 깊어가는 가을, 도道, 나만의 도를 닦아야겠다.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을 우러러본다. 어깨를 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