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을 수행하다 보면 우선 순위라는 것이 있고 상대방에 대한 수싸움이라는 것도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정부 정책이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키거나 욕구를 충족시키기 힘든 것이기에 어느 것이 시급한가라는 문제와 설득하고 협의해도 통하지 않을때 상대와 전략적 수싸움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번에 의대 정원 대폭 확대 방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의대정원 확대 방안을 놓고 의사협회와 여러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대정원 확대문제는 전 정권에서도 수차례 시도하다가 멈추고 다시 시도하기를 끊임없이 한 안건입니다. 하지만 한번도 정부의 안이 의사협회에 먹힌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이른바 의료개혁의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의사들도 아니나 다를까 강력하게 응수하고 나섰습니다. 정말 초유의 강 대 강 대립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가장 젊고도 핵심인 전공의들이 대거 의료현장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의대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후배들의 행동에 보조를 맞추려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면허 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대응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따라 그 기안을 3월말로 늦춰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이 그동안의 태도를 바꾸어 현장에 복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로 보여집니다
총선을 얼마 앞두고 여당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의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여당의 중진 인물은 의대 정원 문제를 가지고 국민들이 굉장히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환자나 그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대통령과 여당지도부가 의대 정원 문제로 야기된 의정갈등을 일주일 안에 해결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도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정원을 2천명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의사 경력을 가지고 있는 어떤 총선 후보는 휴학하고 군대 간 학생들까지 돌아오게 되면 2천 명이 아니고 4천 명을 교육을 시켜야 된다면서 이것은 완전히 의료파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다른 것은 일부 양보해도 의대 정원 2천명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대신 의료계에 대규모의 재정 투자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료개혁 실무를 총괄하는 대통령실의 정책실장은 브리핑을 열고 의료계를 향해 전에 없던 국가재정 투자를 제안했습니다. 내년 예산을 '의료개혁 5대 재정사업' 중심으로 편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관련해 전공의 육성을 국가가 지원하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나 지역 병원을 키우기 위한 '지역의료 발전기금'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타협과 협상을 이루기 위해서 의대정원 대폭 확대의 백지화가 대전제 조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계 일각에서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추진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의사들과 처음에 대화를 나눌 때 의료계에 대규모 재정 투자를 할 것이다라는 것이 우선이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에 천천히 의대 정원 확대 카드를 꺼내들었어야 순서가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냥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다가 의사들의 예상보다 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급히 대규모 재정 투자 방안을 제시한 것은 급조된 정책같아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충방안에 수긍하고 받아드렸다면 아마도 의료계에 대규모 재정 투자같은 카드는 나오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항하고 때쓰고 울어야 젖이라도 더 준다는 인식을 자칫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도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의사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경우 더욱 힘든 정책 추진이 우려된다는 지적입니다.
이제 총선도 열흘 앞으로 다가왔고 정부와 의사들의 의정 갈등도 두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국민도 지치고 특히 환자와 그 가족들의 우려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너무 강하게 정원 확대 2천명을 못박고 각 대학에 통보까지 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정부가 2천명 안을 백지화할 경우 강하게 저항하면 결국 정부가 물러서더라는 전례를 남기게 될 것이고 계속 추진할 경우 의료계에 정말 전대미문의 비상상황이 닥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락가락 정책 추진은 더욱 혼란과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딜레마임에 틀림없습니다. 퇴로를 너무 성급하게 차단해버린 과오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2024년 3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