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스투리 1탄 (이게 1탄이고 밑에께 2탄이예요 ^^)
제목옥 : 나의 영원한 사부 정헌이 형을 만나다.
내 나이 14살에 호주에 떨어졌따.
그리고 이제 호주땅에 떨어진지 48시간도 안됐다.
근데 내가 있는곳은 한 고등학교 안에 위치한 교복 판매점이였따.
된장. 남들은 유학가면 처음에 랭귀지 스쿨 가서 6개월 정도 공부하고
어느정도 영어 늘면, 고등학교 시험보고 들어간다는데, 난 뭘 믿고 이땅
에 떨어지자 마자 고등학교 직빵으로 들어 갔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머리도 기를수 있
었고, 사복을 입었으며, 남녀 공학이였다. 그야마로 파라다이스였다.
분명 영화에서 외국은 귀걸이에 머리 염색하고 힙합바지에 스케이트 보
드들고 다니고 천국 같은 곳인지 알았는데,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
국도 사립하고 공립하고의 차이가 확실했다.
사립학교는 학비가 비싼 대신, 엄격한 룰이 있고, 선생님의 관심이 있었
으며, 조금은 한국 학교와 비슷한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었다. 반대로 공
립은 학비가 저렴하며, 자유스럽다. 사실 선생이 신경을 안쓴다. 머 귀
걸이를 하던 코걸이를 하던 학교를 나오던 안나오던 신경 자체를 안쓴
다. 어느쪽이 더 좋은거라고 딱 잘라서 말할수는 없다. 자신의 취향과
맞는 학교를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대부분 부모님은 사립학교
를 보낸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 열정 딴 나라 간다고 달라지겠는가.
암튼 거두 절미하고, 나 역시 극성 맞은 아버지 덕에 한국 사람들로만
득실득실 하다는 랭귀지 스쿨을 건너뛰고 곧장 사립고등학교로 입학하
는 엿같은 행운을 갖게 되었따. 한번도 입어보지 않은 어색한 교복, 답
답하기만한 넥타이를 매고 처음 학교를 가던날, 난 그야말로 어리버리
정신 없었따.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교회같이 생긴 학교 건물.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영어 소리, 백인 아이들, 한쪽에서 들리는 중국말, 한
쪽에서 들리는 일본말,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Multi-Culture라는
것을 실감 할수 있었다. 어딘가 찾아가야 할것 같은데 어딘로 가야하는
지 몰랐다. 머 당연히 이곳에도 교무실이라는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자
신있게 교무실처럼 생긴곳을 찾아 갔따. 오호~~ 생각보다 제대로 빨리
찾았다. 그런데 그때 부터가 문제였다. 도대체 뭐 부터해야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따. 영어라도 할줄 알아야 머라하지. 메인 오피스라 불리는 곳
으로 갔던 난 그곳에 있는 한사람에게 어렵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I'm new student. where do I have to go?"
당연히 발음은 부정확했고, 목소리마저 개미새끼 목소리보다 작았다. 머
리 노란 사람을 보고 영어를 꺼낸다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맞는 말
을 하면서도 왠지 틀린말을 하는것 같이 느껴지고, 내 발음을 이해는 할
까 싶기도하고, 솔직히 말해 쫀다.
그래 그게 정답이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가장 큰이유는 쫄기
때문이다. 쫄아서 알면서도 말을 못하고, 시도 조차 해보지 않는다. 근
데 참 신기한건 영어를 못할때 상대방이 질문을 하면 왜 항상 YES라는
대답이 나오는걸까. 대답이 NO일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상대방이 질문
을 하면 계속 YES라고만 대답하게 된다. ^^;;;
"Do you have passport and Enrollment form?"
(여권이랑 입학서류있니?)
"Yes" (예)
"How about your time table?" (시간표도 있니?)
"Yes" (예)
시간표는 받지도 않았으면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하고서는 계속 예스란
다.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게 나만 그러는게 아니더라.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예스 컴플렉스가 있다.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해야
할것 같은 그런 기분,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스라고 대답을 해버
리는 습성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난 시간표를 받았고, 그렇게 직원이
알려준 교실을 찾아가기 위해 정신없이 두리번 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
때였다. 전방 30m 거리에 왠 양아치 한명 발견. 일본인으로 보이는 그남
자는 단발 머리에 웨이브 머리, 거기에 노랗게 탈색을 했다. 얼굴은 화
장을 한것 처럼 하얗게 보였고, 하여간 이미지는 딱 양아치였다. 교복
을 보니 같은 학교 학생임이 분명했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휴먼들은 태어날때부터 일본에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갖고 자란다. 한일
전 축구할때보면 알수 있다. 정말 하나로 뭉쳐서 일본을 누루기 바라는
염원을 빈다.
나 역시 대한민국 사람. 쪽바리 정말 실타.
그넘이 다가온다. 20m , 10m ,5m, 2m , 그넘이 바로 내 옆을 지나간다.
본능적으로 내곁을 지나가는 그넘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이 쪽바리 새끼 재섭서"
정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렇게 중얼 거렸다. 우리집 조상중에는
독립운동가도 없는데 왜 그랬지 모르겠따.
그렇게 그넘을 스쳐가면서 한참을 걷는데 먼가 뒤통수가 무지하게 따끔
한 느낌이 들었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그 쪽바리 놈이 날 노려보
는거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나도 바라보고 있었따. 그 쪽바리넘 조금
씩 내게 다가온다.
다시 그넘과 나의 거리 1m. 그넘 날 딱 쳐다보더니
그넘 : "너 뭐냐?" (한국말로 말했다)
나 : (무지 당황하며, 요즘은 쪽바리도 한국말 많이 배우는구나 했다)
그넘 : "너 새로 왔냐?" (계속 한국말로 말하더라)
나: (발음이 무지 정확한 그넘을 바라보며, 대단한 일본넘이라 생각했
다)
그넘 : "반갑다 나 박정헌이야 75년생이고 넌 몇년생이냐?"
나: (첫날부터 젖땠다는 느낌이 엄습해 왔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였
따 ㅜㅜ 나보다 나이도 많았따)
그넘 : "내가 아무리 쪽바리 같이 생겼어도 그렇게 말하면 안돼지"
나: 죄송합니다. ㅜㅜ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따. 첫날부터 이게 뭔감. 이 시골 촌구석
에 있는 학교에 한국 사람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 했건만, 알고 보니 전
체 학생중에 나를 포함해서 모두 한국 사람들이 였고, 내가 막내였따.
그일을 통해서 우리는 금방 친해지게 되었고, 수업이 끝나면 그 형이 살
고 있는 하숙집에 모여서 너구리 라면을 끊여 먹었따.
그 형은 호주인 집에서 하숙을 했지만, 그집 주인이 한국 유학생들을 위
해서 그렇게 한달에 한박스씩 한국 라면을 사다 놓는다고 했따. 사실
난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성의 없는거 같고, 그냥 몸에 별
로 안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근데 외국에서 먹는 한
국 라면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살살 녹는다. 라면을 먹는게 아니라
고향을 먹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서 일까. 형
들은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그집에 모여서 먹는 한국라면, 그리고 담배
한대를 피며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곤 했다. 난 그때까지 담배를 안
폈다. 머 한국에서 모범생도 아니였지만 그리 심한 날라리도 아니였다.
그때 생각에는 왠지 담배피는건 날라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
실 담배를 피거나 술을 먹는다고, 문제아가 되는건 아닌데... 술은 마셨
지만, 이상하게 담배는 거부감이 생겼였다.
그런던 어느날 정헌이형이 물었다.
정헌 :" 너 담배 안피냐?"
나 : "네"
정헌 : "왜안피냐?"
나 : "그냥 공부해야져"
정말 바보 같은 대답이였다. 공부해야져라니. 담배피면 공부 못하나? 근
데 그때 생각은 그랬다. ㅋㅋ
호주 생활이 일주일쯤 지났을때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이 끝난후에 정
헌이 형 집에 뭉쳐서 너구리를 먹고 있었따.
라면을 먹고 나서,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떻게 호주로 유학을
오게 되는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헌이 형이 먼저 얘기를 끄냈다.
"난 검도부였어, 운동부다 보니까 어릴적부터 이리저리 많이 놀러 다녔
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기 몇주전에 친구가 사고쳐서 학생 주임한테 죽도
록 맞더라. 그거 말리다가 학생주임한테 주먹을 휘둘렀는데, 학주새끼
앞이빨이 부러져서 퇴학 당할뻔했는데, 교장이 자퇴 시켜주더라. 그래
서 여기 왔다."
오호~ 역시 내가 첨 생각했던것 처럼 양아치 였다. 역시 난 사람을 잘본
다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도피구나 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래저래 자기가 어떻게 호주에 오게 됐는지 이야기
를 시작했다. 이야기에 젖어 있을무렵, 정헌이형이 학교에 제출해야한다
면서 자기방 책상에있는 성적증명서좀 가져 와보라고 했다. 책상에 있
던 성적 증명서를 본순간 난 놀라 부렀따. ^^;; 전교 3등. 강남의 모 고
등학교 이름이 적혀있고, 거긴 분명 전교 3등이라는 등수가 적혀 있었
따. 이럴수가, 이거 혹시 위조 성적 증명서 아닐까.
이래 저래 훌터 봤따. 진품이였따. ^^;; 그렇다 정헌이형은 겉모습과는
달리 굉장한 성적을 유지하던 사람이였따. 이때 난 알아 부렀다. 사람
을 겉모습 보고 판단하는게 얼마나 바보같은 것인가를..
형은 날라리 같은 행동과는 달리 자기일을 아주 철저히 하는 사람이였
다. 내가 다니던 호주의 학교에서도 항상 탑을 달렸고
호주에 온지 1년여만에 영어도 왠만한 이민온 사람만큼 구사했다.
세상을 살면서 해볼수 있는건 다해보라는것을 알려준 사람이였다.
그형은 귀걸이와 코걸이를 즐겨했고, 주말에는 항상 나이트와 가라오케
같은곳에서 놀았다. 오토바이 타는것을 즐겼고, 나중에는 여자친구와 같
이 살기도 했다. 그 형은 나에게 홍정욱의 7막 7장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고, 방에 태극기를 달고, 아침에 일어나면 태극기를 젤 먼저 보라
고 했다. 그리고 어떤일이 있어도 여기에 있는동안 흔들리지 말고 살라
고 그랬다.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던간에, 이제는 다 같은 목적을 가
진 유학생이라고, 내가 가끔 학교에 소홀 할때면 날 많이 혼내주었다.
"이 새끼야 너 하루 학교 빠지면 학비 얼마 날리는지 알어? 온지 한달
도 안된게 통밥굴려서 학교나 빠지고 미쳤냐!!"
형은 나에게 스승이였다. 형과 나는 나이차이가 3살이 았지만 내가 그
곳 고등학교를 제때 들어가는 바람에 학년으로는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차이는 문제가 되질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똑같이 졸업하고, 금의 환향을 하는것이였다. 정헌이형을 알게 된후 난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나이트를 전전하며 놀러 다녔고,
공부 욕심도 생겨 유학 생활 3달만에 전교 1등을 할수있었따. 정말 나
한테 고마운 사람이였다.
그렇게 그형과 1년여쯤 같은 학교에서 생활 할때쯤 그형은 학교를 옮겼
다. "이런 촌구석에 있는 학교에서 일등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 더 넓은
학교로 가면 지금 내실력으로는 전체 50%에도 못들어. 넓은 데로 가야겠
다. 나 학교 옮긴다."
그렇게 형은 다른 학교로 떠나면서, 우리의 만남은 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형으로 인해 내가 깨달은 것들로 인해 내 유학생활은 아주 빨
리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투비 컨티뉴드.
-우물안 개구리 우물밖 나가다 비맞고 기절하다- 크리스 스투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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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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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
우물안 개구리 우물밖 나가다 떨어지는 빗방울 맞고 기절하다 1탄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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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0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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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따~^______^ 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