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prologue
“형님요, 아입니더. 거기서 죽은기 아이라요. 가가 충청도 아거든요. 근데 가가 대학교 산악부에 참여해서 등산 훈련을 할 때마다 조령산을 찾았었지요. 그래서 함께 훈련했던 동료들이 그 추억을 기려서 거기에 세운 겁니다.”
우리 고향땅 문경 산북 출신으로 나와 아내를 히말라야로 이끌어간 세계적 알피니스트 이상배 대장의 답이 그랬다.
내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조령산에 올랐는데, 여기에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어. 산악인 지현옥를 추모하는 팻말이야. 가가 여기 조령산에서 죽었나?”
내 그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8일 전으로 거슬러 지난 2024년 6월 27일 목요일에 내가 직접 해발 1,017m의 백두대간 조령산을 올라서 ‘山岳人 지현옥’을 추모해서 그 정상에 세워놓은 팻말을 봤기 때문이었다.
조령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꿈꿔온 것으로 일찌감치 버킷리스트 상위에 올려놓고 있던 것이었다.
너무 험해서 나 같은 거구의 똥배로서는 무리라면서, 아내를 비롯해서 말리는 주위들이 많아서 그동안 실행을 미뤄왔었다.
그렇게 미루다보면 결국은 조령산 등반을 포기하게 될 것 같았고, 그 포기는 그동안 도전의 삶을 살아온 내게는 비겁자의 딱지가 붙게 될 판이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정 위험하면 발길을 돌리면 그만이다 생각하고 도전에 나서기로 작심했다.
고맙게도 마침 나와 동행하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나를 이끌어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게 해준 고재오 친구였다.
오전 9시 40분쯤에 해발 548m의 백두대간 이화령고개에서 오르기 시작해서 낮 12시 정각에 조령산 그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쭉 뻗어간 백두대간의 풍경이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그때 내 눈에 띄어든 작은 풍경이 하나 있었다.
조령산 그 정상에 세워진 2m 남짓 높이의 나무 팻말이었다.
‘山岳人 지현옥’
한쪽 면에 그렇게 새겨놓은 것으로 봐서 ‘지현옥’이라는 산악인을 추모하는 팻말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는 이렇게 새겨놓고 있었다.
‘들꽃처럼 산들산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영원한 자연의 품으로 떠난 지현옥 선배를 기리며...2012. 04. 29 서원대학교 산악부’
12년 전에 같은 대학교 후배들이 세운 팻말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녀가 조령산에서 조난을 당했나 싶었다.
그래서 이 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게 됐고, 그리고 그 애틋한 사연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은 ‘나무위키’에 실린 그녀에 대한 기록이다.
‘대한민국의 여성 산악인.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와 데날리를 등반하였다. 1959년에 2남 5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1979년에 서원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산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이던 1981년에는 산악부 부장을 했던 바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88년에는 5명의 여성 산악인으로 구성된 원정대로 데날리 정상에 가장 먼저 올랐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심한 고소증세가 있었지만 잘 극복했다. 1989년~1990년에는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하였다. 1991년에 서원대학교 산악부 원정대장으로 중국 곤륜산맥에 있는 무즈타그아타(7,546m) 등반에서 그녀의 능력을 인정받아서 1993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선발되었다. 그리고 5월 10일 10:45(UTC +5:45)에 대한산악연맹 원정대 대장으로 최오순, 김순주 대원과 함께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인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98년에는 가셔브룸 2봉을 여성 최초로 무산소로 등정했다. 1999년 4월 29일3:30(UTC +5:45) 캠프3를 출발해 10시간 30분 뒤인 14시경 엄홍길 대장에 이어서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하산 도중 7,800m에서 실종되었고, 시신이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2000년에 체육훈장 백마상을 받았다. 2017년에 그녀가 실종되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에 추모 이정표가 설치되었다. 현재로서는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이후 네팔 관광부의 말에 따르면! 하산 도중에 동행 셰르파와 같이 추락사했음이 밝혀졌다. 저서로는 <안나푸르나의 꿈>이 있다.’
내가 조령산에 오르지 않았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그녀였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죽음을 무릅쓰고 도전에 나섰던 그녀의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이 내 가슴에 또 다른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그런 도전의 삶을 산 사람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숱하다.
이제부터 그런 사람 이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