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는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다. 등대가 포구로 돌아오는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잡이인 것처럼 페이스메이커는 대회장에서 참가자들에게 안내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초보자들에게 목표 시간을 빨간 운동복 뒤에 붙이고, 눈에 잘 띄도록 풍선을 매단 채 달리는 노련한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컴퓨터로 조작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도 가끔 실수를 한다. 구간별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고 몸에 밴 습관대로 빨리 뛰어서 열심히 쫓아가던 참가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이 또한 마라톤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반증일 것이다.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이 81%나 되는 설문조사 결과(2004년 10월 마라톤온라인)도 있어서 ‘등대의 불빛’은 당분간 꺼지지 않을 듯싶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13회 완주한 필자의 경우, 목표로 삼은 페이스메이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린 대회에서는 종반까지 물 흐르듯 가벼운 몸 상태에서 기록을 단축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페이스메이커를 버리고 혼자서 내뺀 대회에서는 후반에 접어들며 체력이 고갈돼 목표 기록에 한참 뒤지는 쓴맛을 봐야만 했다.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마라톤 가이드’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따금 ‘119 구조대원’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번 표지 인물 윤왕용(45)씨가 겪은 일은 마라톤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얼마나 중요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라톤대회장의 119 구조대원
작년 6월 6일,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에서 열린 제5회 철의 날 기념 전국 하프마라톤대회에서였다. 이 대회에는 경기도 광명시 가림중학교에 다니는 장애우 특수반 아이들이 참가했는데, 그가 속한 광화문마라톤모임(이하‘광마’로 표기)에서 동반 페이싱을 맡았다. 장애우 한 명과 광마 회원 두 명이 함께 달리는 형식이었다. 그는 10km 부문에 참가한 장애우의 동반주를 맡았다.
여의도를 출발해 5km 지점인 동작대교 부근에 못 미쳤을 때였다. 앞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웬일인가 해서 가보니 30대 초반의 여성 참가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헤치고 정신을 잃은 여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펴봤다. 호흡이 멈추는가 싶더니 눈이 뒤집히면서 이내 숨이 끊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산책 나온 시민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119에 신고는 벌써 했지만, 구급차가 오지 않는다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방치하면 소중한 생명이 끊길 것 같았다. 그는 여인을 똑바로 눕힌 뒤 우선 목을 뒤로 젖혀 기도를 열었다. 그리고 여인의 코를 막고 인공호흡을 3회 실시하는 한편 심장 압박을 했다. 이런 응급조치를 5분여 실시하니까 다행히 여인의 호흡이 트이면서 눈이 돌아왔고, 의식도 회복됐다.
의식을 잃었던 여인이 길게 토해내는 숨소리를 들은 그는 서브3의 실력을 발휘해 5km 급수대로 달려갔다. 자원봉사자의 휴대전화를 빌려 대회본부에 응급상황을 전한 뒤 주최측에서 보낸 앰뷸런스가 현장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는 장애우와 함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뒤 결승점에 도착하니 그 여인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얼굴 가득 잔주름이 잡히는 웃음과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여인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해준 자신의 능력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건 특공부대에서 군복무 할 때 배우고, 광마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익힌 심폐 소생술 덕택이었다.
그는 지난 1월 1일부터 광마의 제7대 코디를 맡고 있다. 회장이라는 호칭 대신 코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1백85명의 페이싱팀을 운영 중인 광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발자취를 잠깐 짚어봐야 한다.
광마는 춘천 마라톤과 깊은 관계가 있다. 춘천 마라톤 게시판을 통해 달리기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우리, 이렇게 온라인에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실제로 얼굴을 한번 보자”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해서 처음 모임을 가진 게 1999년 4월 2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였다.
24명이 참석한 이 모임에서 광마의 전신인 ‘네티즌마라톤광화문모임’이 결성됐고, 나금풍씨의 제안에 따라 회장 대신 코디를 두게 됐다. 광마에는 주인(회장) 대신 조정자(코디네이터, 약칭 코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였다. 회장, 부회장이라는 용어는 괜히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는 거부감도 작용했다. 일꾼들의 대표를 상징하는 단어로는 코디가 걸맞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임기 1년의 초대 코디는 제안자인 나금풍씨가 맡았고, ‘순수를 지향하는 마라토너들의 봉사모임’이 모토로 채택됐다.
“페이싱 봉사하며 돈을 받는다?”
윤현수-정해성 코디에 이어 2002년을 책임질 제4대 고재봉 코디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모임의 명칭은 지금의 광마로 개칭됐다. 2003년과 2004년에는 이준섭-신상헌씨가 코디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홈페이지(http:// kwanghwamun.or.kr)도 구축하면서 조직의 틀을 완전히 갖추게 됐다.
마스터스들에게는 ‘광마=페이스메이커’라는 인식이 높다. 광마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페이싱팀은 2002년부터 구성되기 시작, 지금까지 6기의 팀을 배출했다. 페이싱팀이 되는 조건은 제법 까다롭다. 대회에서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는 경험이 있어야 하고, 각종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풀코스 5회 이상 완주 경력과 투철한 봉사정신을 갖춰야 한다. 광마 회원은 페이싱팀과 일반 회원으로 구분된다. 페이싱팀은 1백85명이고, 일반 회원은 현재 95명이다.
광마의 페이싱팀은 2002년 3월 인천 마라톤대회에서부터 정식 페이스메이커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무려 50여 개의 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광마의 페이싱팀이 대거 투입되는 대회는 아무래도 가을의 춘천과 봄의 동아 마라톤대회. 풀코스로만 치러지는 이들 대회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무대’이고, 그만큼 참가자 수가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춘천 마라톤에서는 45명의 광마 페이싱팀이 활약했다. 춘천 마라톤 조직위는 작년에 서브3 페이스메이커를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운영했는데, 바로 그가 서브3 페이싱을 맡았다(그는 3월 6일 열리는 서울마라톤대회에서도 서브3 페이스메이커를 맡는다).
풀코스를 20여 차례 완주했고, 2시간54분27초의 최고기록(작년 동아 마라톤에서 작성)을 갖고 있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꿈의 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는 강훈련을 소화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오는 3월 13일 열리는 동아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광마에서 48명이 페이싱 자원봉사를 한다(표 참조). 역대 최다 인원이 참가할 예정인 만큼 페이스메이커도 대거 투입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 이들의 활동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핵심은 “마라톤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하며 주최측에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봉사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주최측에 금품을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다. 페이스메이커가 누리는 혜택은 단 하나, 참가비를 면제받는 것이다. 그리고 번호표와 칩을 달고 뛰기 때문에 완주한 뒤에는 일반 참가자들과 똑같이 완주 메달과 기념품을 받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이따금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는 경우는 있지만, 금품 수수 운운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안타까워했다.
“광마는 전임 코디들이 워낙 잘해와서 자리가 완전히 잡혀 있습니다. 제가 새로 코디를 맡았다고 해서 어떤 변화나 개혁을 꾀하기보다는 좀더 내실을 기하고, 질적으로 성숙시키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작년에 떠돈 음해성 비난들도 자연히 사라지겠죠.”
올해에는 지금까지 광마가 펼쳐온 대회 자원봉사와 장애우 동반주, 독거 노인 돕기 등의 봉사활동을 좀더 확대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달리기 시작 2년만에 서브3 달성
그의 달리기 경력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그가 달리기를 하기 위해 처음 운동화를 신은 것은 2002년 초였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재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본사가 있는 우원해운항공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수출입 화물의 운송을 대행하는 회사로, 부산에도 지사가 있다. 회사의 성격상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 많고, 그러다 보니 술자리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퇴근이 늦고, 술을 많이 마시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체중이 70kg으로 늘었다.
안 되겠다 싶어 집(경기도 일산) 앞에 있는 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둘레가 400m인 공원을 처음에는 5바퀴 달리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오랫동안 몸을 방치해 놓았는데 달리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숨을 헉헉대면서도 목표량은 꼭 채우길 거듭하자 호흡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때부터 거리를 조금씩 늘려 나갔다. 공원을 25바퀴(10km) 돌 수 있게 되자 단순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대를 호수공원으로 옮겼다.
이렇게 혼자서 두 달을 달리고 참가한 대회가 2002년 5월의 대전MBC 마라톤대회였다. 10km에 참가해 50분14초에 골인한 뒤 다음 달인 6월에는 하프 마라톤에 참가해 1시간50분에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해, 그의 머릿속에는 나름대로의 설계도가 있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뒤 10월의 춘천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계획이었다. 9월에는 강화에서 열린 32.195km 대회에 참가했고, 드디어 10월의 춘천 마라톤에서 머리를 얹었다. 기록은 3시간46분으로, 첫 경험자치곤 훌륭한 성과였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춘천 마라톤은 기록 순으로 출발한다. 풀코스 완주 기록이 없던 그는 가장 후미그룹인 I그룹에 배정받았다. 그해엔 1만6천여명이 참가했는데, 출발한 직후부터 다른 참가자들을 계속 추월하며 골인한 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순위가 3천1백 등이었으므로, 대충 계산해도 1만명 이상을 따라잡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듬해 춘천 마라톤에서 첫 서브3를 달성했다(2시간57분43초).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도 안 돼 ‘꿈의 기록’을 작성한 것이다. 학창시절, 특별한 운동을 한 적도 없다고 하니 그는 아무래도 타고난 마라토너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쥐도 한 번 안 나고, 부상 경험도 없는 특이 체질이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삐끗한 게 유일하게 다친 경험이다.
1주일에 5∼6일은 달린다. 주중에는 달리기 입문 초기에 가입한 일산호수마라톤클럽과 광마의 정기모임에서 훈련한다. 그리고 일요일엔 집 부근에서 장거리를 달리거나 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한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훈련 방법은 화, 목요일에 실시하는 10∼15km 지속주이고, 월간 주행거리는 보통 350km 정도다.
근력운동은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다. 올겨울에 헬스클럽에 등록한 것은 상체를 단련시켜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니다. 얼굴과 상체의 살이 너무 빠지다 보니 ‘없어 보여서’ 영업하는 데 지장을 받기 때문이었다. 61kg인 몸무게는 아무리 늘리려고 해도 잘 불지가 않아서 포기한 상태다.
그는 후반에 더욱 강한 걸로 유명하다. ‘1시간30분에 하프 반환점을 통과하면 절대로 서브3를 못 한다’는 법칙(?)이 있는데, 이 마라톤 상식을 종종 깨는 사람이 100회마라톤클럽의 이광택 회장과 그다. 술을 못 하는 이 회장과 달리 그는 심지어 대회 전날 폭음을 하고도 서브3를 쉽게 달성해 주위를 놀라게 만들곤 한다. 지난 2월 13일의 아!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대회에서도 전날 술을 적잖게 마셨다는 그는 2시간58분44초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처음에 스피드가 잘 안 붙는 체질이기 때문인가. 지금까지 풀코스를 28회 완주하는 동안 입상한 적은 없지만, 울트라 마라톤은 세 번 참가해 모두 입상했다. 2003년 호미곶 울트라(100km)에서는 9시간38분으로 5위를 했고, 일산 호수공원 12시간 달리기대회에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작년의 동아시아 울트라(100km)에서는 7시간16분30초로 2위를 했다. 이 기록은 풀코스를 3시간5분 정도에 완주하는 스피드(약 13.7km/h)로 줄곧 100km를 달린, 엄청난 기록이다.
“올해에는 풀코스를 2시간40분대에 완주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광마의 코디를 맡게 돼서 아무래도 기록주보다는 봉사활동에 더 치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87년에 결혼한 한 살 아래의 부인(김영미)은 그의 달리기 생활을 적극 지지한다. 달리기를 하면서부터 늘 밤늦게 귀가하던 그가 바른 생활 남편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최근 헬스클럽에 등록해 트레드밀에서 걷기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니 조만간 부부 마라토너가 또 한 쌍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윤왕용 약력] ·1960년 10월 24일 충북 음성에서 4남1녀의 막내로 출생 ·감곡중-충주고-명지대 무역학과 졸업 ·무역회사와 선박회사에서 10년 근무 ·1995년 우원해운항공 설립, 현재 대표이사 ·1987년 결혼한 부인 김영미(44)씨와의 사이에 1남(태웅)1녀(예랑) ·살 빼기 위해 2002년부터 달리기 시작 ·2005년 2월 19일 현재 풀코스 28회, 100km 울트라 2회 완주, 페이스메이커 봉사 20회 ·최고기록-10km 39분, 하프 1시간20분30초, 풀코스 2시간54분27초, 100km 7시간16분30초 ·172cm, 61kg, 신발 사이즈 270mm, 가슴둘레 95cm ·담배는 안 피우고, 술은 즐김(주량 소주 2병) |
첫댓글 명마회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인국아,지금 막 통화해서 이번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7시 30분쯤 도착하기로 했으니 그 시간이전에는 모두들 참석 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
또 한분의 멋진 선배님이 계셨군요.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