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콩 사러 가는 날
그날은 아침 여덟시 복지관에서 탁구를 쳤다. 아침 일찍이라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둘이서 계속 탁구를 즐겼다. 누가 그만 교체하자는 사람도 없으니 쉬지도 않고 한 시간을 치니 힘도 들었다. 평소에는 서로 치겠다고 하니 한 판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그만 쳐야만 한다.
핸드폰에 밖에 기온을 보니 영상 1도이다. 여수 날씨로서는 제법 춥다. 그런데 탁구를 쉬지 않고 한 시간을 치니 땀이 난다. 피곤하여 상대방에게 ‘그만 치자’고 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1943년 생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인데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오늘은 손님을 만나는 날이니 이만 치자’하고는 2층에 있는 도서실로 와서 땀을 식히고 책을 보게 되었었다.
책을 보는 중에 우연이 동부콩에 대한 곡물을 만나게 되었다. 동부는 어려서 어머니께서 더운 여름철 밥에 넣어주면 씹을 맛이 있고 쌀보다 식감이 더 나곤 했다. 동부는 팥보다 약간 길고 크다. 여름에 나비 모양의 보라색 꽃이 피고, 송편의 속 재료나 인절미 떡고물로 이용했다. 어머니가 외가에 갈 때면 동부 넣은 인절미를 해가지고 갔었다.
불현듯이 동부 생각이 났다. 아내가 집에 없을 때 동부 넣는 밥을 해보자. 아내가 옆에 있으면 주부 경력이 자기는 많다는 까닭으로 잔소리를 할테이니 없는 중에 하고 싶었다. 서시장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갔다. 시에서 준 20장 무료탑승권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버스를 탑승하고 버스 안에 있는데 웬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고 보니 아내의 벨소리다. 아내가 분명히 복지관에서 포켓볼을 즐길 테인데 이상했다. 다짜고짜로 아내는 “당신 지금 곡성 갈려고 하지요” 한다. 나는 곡성 갈 상황이 아니다. 말이 안 통해 전화를 끊고 서 시장에 갔다.
어머니가 몇 개월 전에 작고하신 뒤에는 곡성을 생각 안 하려고 한다. 곡성에 가면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메어든다. 직접 모시지 못하고 마지막 삶을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서시장에 가니 ‘농실상회’라는 간판이 있다. 상가 주변에 각종 약초와 건과류를 가득 쌓아 두었다. 상가 안에 들어가니 쌀, 잡곡, 약초, 곶감, 은행, 밤, 다양한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다.
밥을 하는데 동부 뿐 아니라 은행, 팥, 밤, 찹쌀을 넣으면 좋겠다 싶어 샀다. 집으로 오니 아내가 없다. 전화할 때 아내가 집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없는 틈에 동부와 팥을 먼저 삶았다. 동부가 삶은 중에 밤껍질을 칼로 깎았다. 밤껍질은 단단하여 엄지손에 상처가 생기고 여간 힘들다.
동부 넣는 솥에 깎은 밤과 은행 그리고 찹쌀을 넣고 밥을 했다. 전기압력밥솥에 했다.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 죽지게 되었다. 밥을 다 하고 나니 아내가 그제서야 왔다. 밥이 내 마음에는 성이 차지 않았으나 아내는 맛있다고 한다.
적당한 소금과 설탕을 넣었으니 정상적인 밥은 아니드래도 입맛에는 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 지금 어디에서 오는 거요?” 물으니 “여수엑스포역에서 왔다.”고 한다. 내가 곡성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집에 와서는 크게 화를 낼 줄 알았다.
아까 전화할 때에는 성을 내고 꼬치꼬치 따져 집에 오면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이상이 없다. 나는 생각했다. 아내와 50년을 살고도 이토록 아내의 마음을 모르니 아내가 화를 내도 무덤던 해야겠다고 여겼다. 아무리 화를 낼 만한 일이 있어도 화를 내고 싸워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를 좋게 말하면 팔불출 하나라고 하겠지만 아내는 그렇게 성질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겠다고 생각했다.
동부는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철분, 아연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한방에서는 독소배출과 지방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부콩을 자주 식용으로 이용하고 동부콩 속에 있는 독소배출로 내몸과 정신에 깃든 독소를 빼내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싶다
첫댓글 김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나도 돈부콩을 넣어서 밥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마트 앞에는 각종 콩종류를 가져와 파는 노점상이 있는데 거기에 붉은 돈부콩도 있더군요.
그걸로 밥을 하면 맛있을 것 같습니다.
부부간에 살면서 좋게 보고 이해하면 한층 화목환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겁니다.
사모님의 행동에서 김선생님을 많이 챙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읽을수 있었습니다.
동부 콩을 넣어서 밥을 해 먹으니 밥맛도 있었습니다. 어려서 먹었던 것과는 다른 맛이었지만 그래도 맨 밥 보다는 낫더군요.
아내가 쓸데없이 귀찮게 해 성이 가셨지만, 악의는 없는 것 같아 이제는 될 수 있으면 아내가 화를 내도 좀 더 이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요즘엔 동부가 좀 귀한 것 같습니다.
동부와 팥, 밤, 찹쌀 등 보약이 되는 재료들을 정성스럽게 삶고 다듬어 약밥을 지으셨으니 누군들 마다하겠어요.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을 그대로 실천하는 선생님의 강단이 늘 부럽지요. 선생님을 챙겨주시는 사모님도 부럽고요.
곁에서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함께한다는 자체가 행복 아닐까요.
어려서 먹었던 동부 콩 밥이 생각나 불현듯 시장에 가서 동부 콩을 구입해 동부 넣은 밥을 했습니다.
은행, 밤, 팥을 넣고 아내를 기쁘게 해 주려고 했는데 제 뜻대로 밥이 안 되어 서운했습니다. 밥은 물이 적당해야 했는데 밤, 은행이 포함돼다 보니 물 조절이 어려웠습니다. 해 놓은 밥을 보고 아내가 밝은 얼굴을 표해 안심이 되었죠. 추운 날 몸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