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청 동락관에서 종가포럼이 열리고 있습니다.호남의 종가와 화합하는 자리입니다.
온계종택은 퇴계 이황 선생 형님댁입니다.
400년,500년,600년 내려온 종택들...
내보다 잘생긴 신병주 교수 특강
임진왜란 진주성대첩의 1등공신이자 영웅인 학봉 김성일 종가의 다과상
윗줄 중간 사과건정과,박건정과,깨다식,금귤정과,생강편강,약과,곶감
꽃건정과(복숭아,당근,참외,딸기,오이,비트,천도복숭아)
음...다음 생애는 여자로 태어나서 종갓집으로 시집가봐야겠다.ㅎ
아니면 종녀로 태어나던지...ㅋ
인절미(대추,녹두,깨,동부콩)
담양 양진재 종가 토산물 반상
기순도 종부는 고경명의 4대 후손 양진재(養眞齋) 고세태(高世泰, 1645~1713)의 10대손이다. 후손들은 360년 된 고택 근처에 한옥을 짓고 장류사업을 하며 종가를 지키고 있다.
안동 서후 교리에 단계 하위지 종택이 있다.단계 종부
단계종가 안동특산 9첩반상
자신이 양반후손이라면 9첩반상,7첩반상,5첩반상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아야한다.ㅎ
명태보푸리도 알아야하고...
그런데...사실 저도 다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경북 안동권 출신중에서 나이 60세 이상인 분이 할머니가 해준 명태보푸리를 안먹어 본 분은...양반가문이 아니다...
재산 100억이나 1천억이 있어도 자기 아버지 성을 모르는 사람들 많습니다.왜냐하면 족보볼줄 모르니까요.
족보볼줄 모르는 사람이 양반일리가 있겠습니까?
절이도 해전 1등공신 송여종 장군의 묘비명을 쓰신 수은 강항 선생의 수은종택.
간양록의 주인공이다.
안동 임동 박곡 지례 지촌종가 <손맛 별식상> 안동 건진국수(건진국시)
북어보푸리(명태보푸리)
저의 경험 하나를 들자면,60세 이상의 안동 양반이라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주신 북어보푸리를 안먹어 본사람은 양반이 아니다.ㅎ
저도 10살 전후 몇년을 추석이나 설날때 ,또는 방학때 할머니가 할아버지상에 올려주신 것을 할아버지와 함께 먹어봤습니다만,1966년생인 제동생은 저것을 못먹어봤습니다.장남만 고향을 자주갔으니...중학교 2학년인 14살에 조부께서 돌아가셨는데,할매가 해주신 북어보포리는 다신 못먹어봤습니다.어른이 되어 안동의 유수한 고택들 여러 집에서는 먹어봤습니다만.
할배...할매가 그립습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예천 용문면 작은 맛질 춘우재 종부<예천 소문난 주안상>
종부는 영양 주실 마을이 친정입니다.한양조씨 조지훈 가문.
전남 담양 홍주송씨 이요당(二樂堂) 송준(宋駿) 종가
딸이 여류시인 송옥봉이고 사위는 미암일기를 남긴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이다.
'원기 북돋는 주안상'
석탄주와 오리전골,육회 등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술먹을 때 전부 호남에서 먹었다는 말인가?헛참...
후세에 태어나면 호남의 종갓집으로 장가들어야겠다.아니면 아들이나 손자를 ...하다못해 증손자라도...
석탄주는 양녕대군이 즐겨먹던 술이라고 한다.
퇴계 이황의 형인 정민공(貞愍公) 온계(溫溪) 이해(李瀣,1496-1550) 종가 삼백당 종부
친정은 안동 임동 박실 수정재이고,외가는 보백당 묵계종택(묵계 김계행,필자의 15대조의 외갓집)이다.
보백당 김계행 공의 첫째 따님이 필자의 16대조인 행정공 박눌(朴訥)할배와 혼인했고,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5子모두 문과급제했다.그중에 막내인 정랑공(正郞公) 박종린(朴從鱗,1496~1552)할배가 처가인 예천 용문면 금당실 마을로 입향하였다.정랑할배 후손에서 문과급제자가 18분이 나왔다.보백당의 둘째따님은 안동 하회 풍산류씨 류자온(서애 류성룡 증조모)과 혼인했다.
구한말 을미의병때(1896) 의병을 지휘해 행군하던 영양출신 벽산 김도현 의병장도 온계종택인 삼백당에 유숙한 적이 있다.1896 을미의병때 왜병이 종택을 불살랐고,최근에 복원했다.종손 이의화(李義和)의 의병지원활동과 그 동생 이인화(李仁和)가 예안(禮安)의 3대 의병대장을 한 연유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진성이씨 대종택인 주촌(周村)종택의 종손인 이긍연(李兢淵)의 '을미의병일기(乙未義兵日記)에 기적처럼 실려 있었다.그 글에는, “병정들이 마음대로 온혜로 들어가 삼백당三栢堂(온계종택당호)을 불 질렀다.놀랍고 당황함은 무엇으로 말하랴. 불행 중 다행은 사당祠堂만은 무사한 점이었다.”.방화는 일제의 만행이며 보복이었다.
이때 퇴계종택도 함께 불탔는데 1926년경 전국 450여 문중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여 퇴계종택을 복원하였다.
어초은 윤효정 종가 (해남 녹우당)의 '자연을 담은 다과상'
2017.7.29 뜨거운 여름날 필자가 답사할 때의 기념사진.
고산 윤선도의 장인인 윤돈은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을 역임하셨다.경기 김포 남원윤씨 윤돈(윤극신의 아들)은 퇴계 이황과 기대승의 문인이다.난중일기에 6번 등장한다.윤우신(윤돈의 숙부),윤돈 등 남원윤씨 문중은 이순신 장군을 적극 지원했다.
윤선도 종가 문적에 장인인 윤돈의 편지가 하나 있는 것을 작년에 필자가 확인했다.윤돈의 후손가에 아직 우리가 잘모르는 자료가 있을텐데..역사가 묻혀있다..호남학,이순신학 차원에서 추적과 연구가 절실하다.
위사진 중간좌측:금귤정과
중간:비자실(들깨,백년초,흑임자,참깨,콩가루)
위사진 우측(어만두,육만두)
윗사진 아래 좌측:인삼정과
윗사진 좌측 위:매작과
예천 춘우재 종손과 석계 종부 기념사진. 석계 이시명 선생
음식디미방.
석계 이시명 선생 석계종가 <음식디미방.별식상>
음식디미방은 정부인 장씨가 기록한 한글조리서이다.
동아로 만든 음식-좌측부터 동아적,동아선,동아느르미,동아돈채
동아는 난중일기에도 기록되어있다.정유년(1597) 7월 14일자.
합천 초계에서 백의종군때 문인수라는 분이 와가채와 동아전을 갖고 왔다고 이순신 장군께서 기록을 남겼다.
종부에게 이순신 장군도 드신 음식이라고 말씀드렸다.
언제 영양에 이순신 장군이 드시던 동아전을 먹으러 한번 가야겠다...으음...
담양 양진재 종가 토산물 반상
기순도 종부는 고경명의 4대 후손 양진재(養眞齋) 고세태(高世泰, 1645~1713)의 10대손이다. 후손들은 360년 된 고택 근처에 한옥을 짓고 장류사업을 하며 종가를 지키고 있다.
안동 서후 교리에 단계 하위지 종택이 있다.단계 종부
단계종가 안동특산 9첩반상
자신이 양반후손이라면 9첩반상,7첩반상,5첩반상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아야한다.ㅎ
명태보푸리도 알아야하고...
그런데...사실 저도 다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경북 안동권 출신중에서 나이 60세 이상인 분이 할머니가 해준 명태보푸리를 안먹어 본 분은...양반가문이 아니다...
재산 100억이나 1천억이 있어도 자기 아버지 성을 모르는 사람들 많습니다.왜냐하면 족보볼줄 모르니까요.
족보볼줄 모르는 사람이 양반일리가 있겠습니까?
영호남 종가 MOU협약식
좌측:윤형식 전남종가회장(해남 녹우당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종손)
우측:이필주 영종회장(경북 칠곡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 종손)
중간은 이철우 경북도지사
첫댓글 지난 여름 우연히 들른 학봉종택에서 종가의 다과상을 받고
그 정성을 생각하니 그냥은 차마 입으로 가져가기가 부담이더이다.
나도 그렇습니다.학봉종택 다과상은 어떻게 이로 깨물어 먹니껴?
눈으로만 삼키고,냄새로만 먹어야죠.
저렇게 이삔 것을 께믈어 먹는 사람들은 야만인이죠!
우연히 들렀다-라는 말을 좀 수정해야할듯...
그냥 "연통을 넣어서 사전에 연락을 취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연히 들렀는데,다과상을 못받으면 욕을 하게 된답니다.저의 좁은 소견입니다.
@약포(藥圃) 정탁(鄭琢) 네~~~아주 능력 있으신분의 우연한 통화로 도착전 미리 연통을 넣었놨더군요.
종가포럼~새롭습니다^^
전국의 종가들이 요즘 많은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ㅎ
특히 영남과 호남의 종가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