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모세의 관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사도 15:1. 1세기 회중의 일부 사람들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아마도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그렇게 주장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 6:12) 사도 바울은 그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견해를 따를 것을 강요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연로자들에게 맡겼습니다. (사도 15:2) 바울이 그렇게 문제를 처리한 덕분에 그리스도인 회중은 기쁨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15:30, 31) 우리는 심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여호와께서 회중을 돌보도록 임명하신 사람들에게 지침을 구함으로 평화를 추구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출판물이나 조직에서 마련한 그 밖의 자료에서 성경에 근거한 지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그러한 지침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회중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22.08」 22면 8-9항 |
모세의 관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Except ye be circumcised after the manner of Moses, ye cannot be saved. —사도 15:1. Barnes' Notes on the Bible And certain men - These were undoubtedly men who had been Jews, but who were now converted to Christianity. The fact that they were willing to refer the matter in dispute to the apostles and elders Acts 15:2 shows that they had professedly embraced the Christian religion. The account which follows is a record of the first internal dissension which occurred in the Christian church. Hitherto the church had been struggling against external foes. Violent persecutions had raged, and had fully occupied the attention of Christians. But now the churches were at peace. They enjoyed great external prosperity in Antioch, and the great enemy of souls took occasion then, as he has often done in similar circumstances since, to excite contentions in the church itself, so that when external violence could not destroy it, an effort was made to secure the same object by internal dissension and strife. This history, therefore, is particularly important, as it is the record of the first unhappy debate which arose in the bosom of the church. It is further important, as it shows the manner in which such controversies were settled in apostolic times, and as it established some very important principles respecting the perpetuity of the religious rites of the Jews. Came down from Judea - To Antioch, and to the regions adjacent, which had been visited by the apostles, Acts 15:23. Judea was a high and hilly region, and going from that toward the level countries adjacent to the sea was represented to be descending, or going down. Taught the brethren - That is, Christians. They endeavored to convince them of the necessity of keeping the laws of Moses. Except ye be circumcised - This was the leading or principal rite of the Jewish religion. It was indispensable to the name and privileges of a Jew. Proselytes to their religion were circumcised as well as native-born Jews, and they held it to be indispensable to salvation. It is evident from this that Paul and Barnabas had dispensed with this rite in regard to the Gentile converts, and that they intended to found the Christian church on the principle that the Jewish ceremonies were to cease. When, however, it was necessary to conciliate the minds of the Jews and to prevent contention, Paul did not hesitate to practice circumcision, Acts 16:3. After the manner of Moses - According to the custom which Moses commanded; according to the Mosaic ritual. Ye cannot be saved - The Jews regarded this as indispensable to salvation. The grounds on which they would press it on the attention of Gentile converts would be very plausible, and such as would produce much embarrassment. For: (1) It would be maintained that the laws of Moses were the laws of God, and were therefore unchangeable; and, (2) It would doubtless be maintained that the religion of the Messiah was only a completing and perfecting of the Jewish religion that it was designed simply to carry out its principles according to the promises, and not to subvert and destroy anything that had been established by divine authority. It is usually not difficult to perplex and embarrass young converts with questions of modes, and rites, and forms of religion; and it is not uncommon that a revival is followed by some contention just like this. Opposing sects urge the claims of their special rites, and seek to make proselytes, and introduce contention and strife into an otherwise peaceful and happy Christian community. 반스의 성경 주석 그리고 어떤 사람들 - 이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대인이었지만 지금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절에 그들이 분쟁 중인 문제를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기꺼이 회부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공언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 기록은 기독교 교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내부 불화에 대한 기록입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외부의 적과 맞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인 박해가 기승을 부렸고 기독교인들의 관심은 온통 그것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는 평화로웠습니다. 그들은 안디옥에서 외적으로 큰 번영을 누렸고, 영혼의 대적은 그 후 비슷한 상황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교회 자체의 분쟁을 자극하여 외부 폭력으로 교회를 파괴할 수 없을 때 내부 불화와 분쟁으로 같은 목표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따라서 이 역사는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최초의 불행한 논쟁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또한 사도시대에 그러한 논쟁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유대인의 종교 의식의 영속성에 관한 매우 중요한 원칙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유대에서 내려와서 - 사도들이 방문했던 안디옥과 그 인접 지역으로, 사도행전 15:23. 유대는 높고 언덕이 많은 지역이었으며, 그곳에서 인접한 평지 국가로 향했습니다. 형제들을 가르쳤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너희는 할례를 받지 말고 - 이것은 유대 종교의 주요 또는 주요 의식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이름과 특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믿는 개종자뿐만 아니라 토착 유대인들도 할례를 받았으며, 할례는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개종자들에 대해 이 의식을 생략하고 유대교 의식을 중단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독교 교회를 설립하려 했던 것은 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마음을 화해시키고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할례를 행할 필요가 있었을 때 바울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사도행전 16:3). 모세의 방식대로 - 모세가 명한 관습에 따라, 모세의 의식에 따라. 너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 유대인들은 이것을 구원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이방인 개종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것을 강조하는 근거는 매우 그럴듯하며, 많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이므로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2) 메시아의 종교는 유대 종교를 완성하고 완전하게 한 것일 뿐이며, 단지 약속에 따라 그 원칙을 수행하도록 고안된 것이지 신적 권위에 의해 확립된 것을 전복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종교의 방식, 의식, 형식에 대한 질문으로 젊은 개종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보통 어렵지 않으며, 부흥이 일어나면 이와 같은 논쟁이 뒤따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반대 종파는 자신들의 특별한 의식을 주장하며 개종자를 만들려고 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기독교 공동체에 다툼과 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
할례는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신체의 수술이기 때문에 생후 8일 만에 이러한 수술을 감행할 때는 무리없이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유대인은 이러한 관습이 없었으므로 성인이 되어 마취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수술을 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과연 비유대인이 이런 의식을 치러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그것은 모세가 정한 방식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유대인으로 개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은 유대인만이 구원을 받느냐 아니면 이방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서 신학적 교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사도들과 예루살렘 장로들이 의논한 결과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이방인 중에는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사렛파의 특징은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은혜로 새로운 사람이 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유대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느냐인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 된 상태에서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대인이 되는 의식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다만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징표로 생명의 존중(피를 멀리함), 거룩함(음행의 금지)을 나타냄으로써 구원의 표를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징표는 이스라엘에 사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도 요구되었던 것이다. 구원의 본질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능력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공동으로 숭배한다는 것은 반드시 공유된 의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식물이 열매를 맺을 때 반드시 껍질에 둘러싸여 나타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두 가지가 다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당시 행해지던 십일조는 하나의 연합된 백성으로써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박하와 딜과 쿠민의 10분의 1은 바치면서도, 율법의 더 중요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등한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도 행해야 하지만 다른 것들도 등한시하지 말아야 했습니다.(마 23:23) 사실상 인간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후자이다. 전자는 연합을 위해 사무적으로 필요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행해지는 기독교의 많은 관습과 의식에도 이와 같이 껍질과 내용이 있다. 이러한 것을 구별하는 것을 '분별력의 영'이라 한다. 전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데는 많은 할애를 하면서도 진작 개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인성함양은 소홀히 하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의 실정이다. |
질문:
1. 그리스도인에게 할례가 이슈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2. 예배(숭배)의 본질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