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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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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탐사기획 스크랩 삽살개 덕분에 찾아낸 공양왕의 시신, 고려 공양왕릉
유경/박노철 추천 0 조회 73 09.11.21 00: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조선 태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도성이었던 개경에서 도망쳐 이곳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두워진 이후였다.

두려움과 배고픔으로 지쳐있는 왕의 일행이
건너편 골짜기에서 한 가닥 불빛이 보여 찾아가 보니 마침 작은 절이 있어 하룻밤을 묵고자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미 고려는 멸망되고 조선이 창건되었으니 절에서 계속 머물기는 어렵게 되었고
인근의 다락골에 피신하게 되었다.

 

이후 남몰래 스님들이 밥을 가져와 왕에게 드렸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 마을의 이름을 '밥 절', 즉 '식사동(食飼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양왕과 왕비가 보이지 않았다.
스님들과 왕씨 일행이 온산을 뒤지며 왕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공양왕과 왕비가 귀여워 하던 삽살개만이
골짜기의 작은 연못 속을 향해 계속 짖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연못을 자세히 보니
사람의 형체가 보였고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자
그 안에 편안한 자세로 죽어 있는 왕과 왕비의 시신이 있었다.

<왕과 왕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연못>

 

이를 본 사람들이 두 분의 시신을 정성들여 모셔
연못 뒤 양지바른 곳에 장례를 치루고
능을 지키기 위해 능앞에 삽살게 모양의 석물을 세워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사적 제191호, 고려 공양왕릉, 경기도 고양시 소재>

 

<고려 공양왕릉의 앞을 지키는 삽살개 모양의 석물>

 

이러한 전설로 인해 인근에 식사동 뿐만 아니라
어침이, 대궐고개, 왕릉골 등 여러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려사, 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정사에는

공양왕이 강원도 삼척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공양왕에 대한 고양 지역 사람들의 애절함이 이와 같은 전설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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