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로버트 매크론과 약속이 있었다.
: 매크론쪽에서 그에게 일을 맡길려고 거의 마음을 굳힌 것 같다.
: 케일은 LA출신이다.
: 그리고, 비버리 힐즈 근교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
: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고.
: 로버트 매크론도 그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케일 사이먼이 이번 일에 적임자라는 것을.
:
: 주말은 글을 쓰면서 보냈다.
: 그리고, 아주 오래간만에 도면 스케치를 해 보았다.
: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시 글을 썼다.
: 그러다 문득 떠 오르는 생각에 스케치북을 다시 들었다.
: 시간이 흐르자 점점 그림은 독일풍의 오래된 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 컴퓨터 앞에 앉아 설계를 시작했다.
: 새벽이 되는것도 모르고 일에 빠져 있었다.
: 회사에 출근해서도 계속 그 일에 매달려 있었다.
: 그녀가 그 일에 빠져 있는 것만큼 그도 자신의 일에 빠져 있다.
:
: 계약이 성립되고 안되고는 경영주의 일이다.
: 그녀는 옆에서 열심히 서류를 챙겨주고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뽑아주기만 하면 된다.
: 그렇게 계약이 성립되면 설계사 서너명에게 일을 주고, 도면이 올라오면 같이 검토했다.
: 그는 설계사들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면 조금도 굽힐줄 몰랐다.
: 그러다 의견이 분분하면 같이 도면을 보던 대여섯의 사람들이 심한 감정싸움까지 가게된다.
: 그럴때 사장실에 붙어 있는 바의 역할은 엄청나다.
: 술을 먹다 잠이 들기도 하고, 화해를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 만약 매크론 건이 성립되면 그녀의 도면으로 그와 싸우게 될것이다.
: 그녀는 그 싸움에 가슴이 떨렸다.
: 이제껏 말싸움은 아마 장난이라고 생각하게 될껄...?
:
: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모든 상념에서 깨어났다.
:
: "엘리트 콘스트럭션..."
:
: "여기 지하 주차장이야. 빨리 내려와."
:
: 그녀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 "무슨 일이에요?"
:
: "네, 바비. 잠깐만요...뭐라구? 빨리 내려오라니까."
:
: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
: "근사한 일이야. 빨리 내려와. 왜 아직도 전화를 받고 있는거야?"
:
: 전화가 끊겼다.
: 이제 아예 제멋대로다.
: 몇주전부터 사장은 변했다.
: 모든 일에 자신감이 차 있다.
: 외모에 대한 변화가 그에게 자신감을 준 것이다.
: 엄청난 자신감을...
: 지하 주차장 문이 열리자 그가 얼른 문 앞을 가로막아 시야를 가렸다.
:
: "왜 그래요?"
:
: "오늘은 내 옷차림이 어떻지?"
:
: '왠 일로 그냥 지나가나 했지.'
:
: "전에 했던 충고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겠죠?"
:
: "물론이야. 어제 저녁에도 1km를 뛰었는걸? 아직도 다리가
: 후들거리느 것같아."
:
: "이제 비켜줘요."
:
: "아직 검사 안했잖아."
:
: 오늘은 검은 양복이다.
: 무척 화려하게 보인다.
: 그녀가 입고 있는 노란색 슈트때문에 옷이 더 검어 보였다.
:
: "좋아요."
:
: "당연하지. 지니 로드의 주인공처럼 입었으니까."
:
: 그녀도 알고 있었다.
: 그는 늘 지니 로드의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옷을 입었다.
: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을정도로 그녀의 이상에 꼭 맞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 만약 소설속의 그 남자가 케일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
: "눈을 감아."
:
: "뭐라구요?"
:
: "제발 되묻지 말고 시키는대로 좀 해라."
:
: "왜 그래야 하죠?"
:
: "눈을 감았다 떠야 깜짝 놀랄 일이 생기니까."
:
: "...알았어요."
:
: 눈을 감았다.
: 그가 그녀의 양손을 잡고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 기다렸다는듯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기계음을 내며 위로 올라갔다.
: 그러는 동안 그느 계속 그녀를 잡고 걸었다.
: 얼마나 걸었을까?
: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
: "이제 눈 떠요?"
:
: "아니. 아직 아냐."
:
: 그가 그녀에게 짧게 키스해 주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
: "보비 때문에 진짜 키스는 하지 못하겠어."
:
: 그의 키스가 싫진 않지만, 이제는 내 행동을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다.
:
: "케일. 이제 내게 키스하지 말아요, 제발."
:
: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그게 내 낙인데..."
:
: "그..."
:
: "자, 이제 눈을 떠요."
:
: 눈을 뜨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 아직도 그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 그가 옆으로 두어 걸음 비키자 멋진 은색 재규어의 모습이 보였다.
:
: "우와~ 오늘이었군요."
:
: "뭐야, 잊고 있었단 말이야?"
:
: 볼멘 소리로 그가 말했다.
:
: "우리들 차가 나오는 날인데 어떻게 오늘을 잊을수가 있어?"
:
: "어쨌든 사장님 차잖아요. 제가 타면 몇번이나 타겠어요?...정말 멋있어요. 은색이 기가 막힌데요?"
:
: 그녀는 차 뒤로 천천히 걸어가며 차의 이곳 저곳을 살폈다.
: 그러다 조수석쪽에서 그에게 잡혔다.
:
: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
: "왜요... 멋진 차라고 칭찬 중이잖아요."
:
: "내가 변했을때도 이렇게 감탄하지는 않았어. 내가 차보다 못한거야?"
:
: "그럴리가 있겠어요? 사장님이야 늘 가까이에서 봤던 분이고, 재규어는 오늘 처음 보거든요."
:
: "...타."
:
: "어디 갈거예요?"
:
: "점심식사 약속 잊었어? 진 로이드는 약속을 잘지킨다."
:
: "...?"
:
: 운전석에 앉으며 문을 쾅 닫았다.
: 보비사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보였다.
:
: "약속까지는 안 했던 것 같은데..."
:
: 보비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차에 올랐다.
: 중형차는 미끄러지듯 소리도 없이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
: 차 안에서 그는 계속 침묵이다.
:
: "제가 이런 침묵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시잖아요."
:
: "당신은 차 번호판도 보지 않았어."
:
: "벌써 번호판도 달아 나온 거예요?"
:
: "번호판만 아니었다면 금요일날 차를 가지고 왔었을거야."
:
: "몇 번인데요?"
:
: "'we2we' 우리만이라고 넣을려 했는데 그건 이미 임자가 있다는거야."
:
: "우리만...?"
:
: "그래. 이 차를 탈 수 있는건 우리 뿐이니까. 근사한 이름이지?"
:
: "...그래요."
:
: 앞으로 그녀가 나타나게 되면 난 이 차를 몇 번이나 탈 수 있을까.
:
: "피나는 다이어트를 먹으면서 하는 아가씨. 지금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음식 이름은?"
:
: "피자."
:
: "피자?"
:
: "네."
:
: "그런 인스턴트 음식은 안돼. 이런 차까지 끌고 나왔는데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가자구."
:
: "점심 시간은 겨우 40분이에요."
:
: "우리가 안 들어온다고 누가 뭐라 그럴거야?"
:
: 양고기 바베큐를 먹기 위해 30분을 달렸다.
: 식당에서도 다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지만 음식 맛에 그녀도 감탄했다.
:
: "다음에는 예약을 하고 와야겠어."
:
: 그가 오래된 와인을 한 병 시키고 그들은 최고의 분위기 속에서 그 분위기를 맘껏 즐기며 식사했다.
:
: "매크론이 내게 일을 맡겼어."
:
: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말해 한동안 그녀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 "아, 공사."
:
: "설계를 해 보기는 했어?"
:
: "물론이죠. 정말 축하해요. 대충 구도만 잡았어요."
:
: "이번 주말에 로레타 한슨이 여는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 같이 갈거지?"
:
: "무슨 파티에요?"
:
: "목적이 있나? 그냥 말이 좋아 사교모임이지. 먹고 놀자는거 아냐?"
:
: "그런 파티에 한 번도 간적 없었잖아요."
:
: "독신남녀들이 모인다고 오라잖아."
:
: "이혼녀를 포함해서 말이죠?"
:
: "독신이 그리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더군."
:
: "자주...만났어요?"
:
: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르 냈다.
:
: "매크론을 만날때마다 따라 나왔었어."
:
: "자기 아버지 앞에서 그런 말을 하더란 말이에요? 독신이 그리웠다느니 하는 말 말이에요."
:
: "말로는 뭘 못해?"
:
: 혹시?
: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가 로레타 한슨 아닐까?
: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 그 파티 이후에 그가 변하기로 결심했었다.
: 로레타와 춤을 춘 이후로...
: 오, 이런...
: 갑자기 식욕이 사라졌다.
: 와인만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 주말에 잠을 거의 못잔 탓인지 술이 들어가자 졸음이 확 밀려왔다.
:
: '그래, 내가 설계에 코를 박고 있는동안 밀회를 즐기셨다?'
:
: "왜...그만 먹는거야?"
:
: "나의 '그'를 위해 계속 이 몸매는 유지해 줘야죠."
:
: 누가 됐든 나의 '그'에게 감사한다.
: 만나기도 전에 나의 보호막이 되어 주고 있으니...
:
: "지금도 보기 좋지만 조금 더 살이 쪄도 괜찮아."
:
: "나의 '그'와 사장님의 견해는 달라요."
:
: "그래 케일은 사장이야."
:
: "..."
:
: "정말 멍청한 자식이군. 자기 여자를 뻣뻣한 나무 막대처럼 만들건가?"
:
: 와인 잔을 들고 일어섰다.
: 그리고 테라스로 나가 단숨에 마셔 버리더니 술잔을 벽에 던져 버렸다.
: 정원에서 식시하던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 술잔 조각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 지배인과 두 며의 웨이터가 그에게 달려갔다.
: 지배인이 먼저 테라스로 나가 침착하게 그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 그는 그녀를 향해 이런 저런 손짓을 하며 지배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 곧 지배인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다.
: 말재주 하나는 정말 끝내 준다니까.
: 지배인이 들어와 그녀 옆에 섰다.
:
: "사이먼씨께서 후식을 가지고 피크닉을 가고 싶으시답니다. 정원 내에서는 어디든지 이용하셔도 됩니다. 호수 주변에 있는 벤취를 권해 드리고 싶군요."
:
: "감사합니다."
:
: "뭘 준비할까요?"
:
: 케일이 좋아하는 종류로 준비했다.
: 무슨 이유에서든 화가 난 기분을 풀어줘야 할 것 같다.
:
:
: 컴 속 소설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