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내게 등을 보이니 / 손현숙
입산금지 팻말을 무시하고 정광산 비탈길로 발 들인다 가쁜 스틱이 호흡을 가파르게 끌고 간다 어휴, 무슨 산길이 낙엽으로 길을 지워놓는 걸까 바람이 나뭇가지를 들어 허공을 회초리 칠 때 왼발이 중심을 아찔, 엎지른다 호신용 내 등산 스틱이 다급하게 산을 깨운다 산등을 찌르려는 것은 아니었다 허둥지둥 공기를 찢고 낙엽을 흩으며 벼랑길로 도망치는 고라니 새끼 나는 저를 겨냥한 적 없는데 등이 슬픈 목숨이 뛴다 본능을 끌고 가는 시퍼런 맹렬 목숨을 튀기며 사라지는 발자국이다 저도 모르게 갈겼던 애인의 귀뺨처럼 달아나는 짐승의 내장 같은 공포
- 시집 『일부의 사생활』 (시인동네, 2018)
* 손현숙 시인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문학박사 졸업 1999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2002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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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 상 ]
화자가 등산용 스틱에 의지하여 비탈길을 오른다. 호흡이 가파르니, 오히려 "가쁜 스틱"이 사람을 끌고 가는 형국이다. 산길은 낙엽에 덮였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 끝이 허공을 후려친다. 갑자기 왼발이 휘청 하자 왼쪽으로 몸의 중심이 쏠려 넘어질듯 하는 화자. 중심을 잡아보려 스틱을 다급하게 땅에 찍는다. 스틱에 찍혀 깨어나는 산. 고라니 새끼가 놀라서 도망친다.
고라니는 "등이 슬픈 목숨"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다. 등산객에게 놀란 고라니는 "본능이 끌고 가는 시퍼런 맹렬"한 자세로 뛰다. 시 '나무나 나나 바람이나 뭐'에서 화자는 북한산 향로봉 날등바위를 오르고 있다. 아이젠을 신고도 "한 발 나가면/ 한 발 밀리"는 미끄러운 눈길이다. 이런 눈길이 화자는 낯설다.
이런 길을 가면서 화자는 "다음 세상 찾아가는 길"이 이렇게 낯설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시인은 '깨어있는 꿈'에서는 태안면 신두리에 꽃 구경을 하러 갔다가 철새들을 봤나보다. 바다는 썰물이어서 바닷물이 끝없는 수평선을 향해 나간다. 삽시간에 물이 찰 것이다. 이런 바다에 새들은 복숭아뼈까지 물이 차올라 발이 시리겠다고 한다.
-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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