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업체만 바쁘고 수요자 시큰둥"
업체,옵션으로 분양가 전가…장기 미분양 우려도
아파트 분양가 책정을 둘러싸고 건설업체와 지방자치단체간 소송으로 지난 1년여 간 사실상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중단됐던 충남 천안시에 아파트 분양 대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 동안 분양가 소송 등으로 분양되지 못했던 신규 아파트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천안시에서 분양될 예정인 아파트는 총 1만여 가구. 특히 대부분의 주택건설업체들이 가급적 9월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전에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방침이어서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간 천안에서는 아파트 분양시장이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위축과 분양가상한제 시행 예정 등으로 수요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을 것으로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내다보고 있다.
천안시 “분양가 상한선 750만원”
천안이 아파트 분양가 소송에 휘말린 것은 지난해 4월. 천안시는 당시 아파트 분양가 상한선(평당 655만원)을 정하고, 상한선을 넘어 분양승인을 신청하는 업체들에게는 분양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자 한 부동산개발업체가 지난해 4월 천안시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 입주자모집공고안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천안시는 결국 패소했다.
천안시는 대전고등법원에 상고했지만 대전고법은 1월 18일 “자치단체의 분양가 제한은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원심대로 업체 측의 손을 들어줬다. 천안시는 고법 판결에 승복,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천안시는 그러나 3월 20일 새로운 분양가 상한선(평당 750만원)을 제시하고 주택건설업체들에게 분양가 상한선을 지킬 것을 권고했다. 이에 주택건설업체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제2의 분양가 논란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였지만 주택건설업체들이 천안시의 분양가 상한선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이 문제는 아직은 조용한 편이다.
유명무실한 분양가 상한선
불만을 토로하던 주택건설업체들이 돌연 분양가 상한선을 지키겠다고 나선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초 기본 분양가에 포함돼 있던 가전제품 등을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옵션으로 전환해 기본 분양가를 낮춘 것이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최근 신방동에서 천안신방 푸르지오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분양가를 평당 최고 750만원에 맞췄다. 이 아파트의 당초 분양가는 평당 최고 823만원. 천안시의 권고를 따라 평당 최고가를 70만원가량 낮춘 것이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당초 분양가에 포함돼 있던 식기세척기, 정수기, 주방TV 등 14개 항목을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는 옵션으로 분리했다. 이들 옵션 비용을 분양가에 포함하면 분양가는 당초 분양가와 별 차이가 없어진다.
4월 10일 현대산업개발이 백석동에서 분양한 백석동 현대아이파크와 4월 16일 우림건설이 용곡동에서 분양한 천안용곡 일봉산 우림필유 아파트 등도 분양가를 모두 평당 최고 750만원에 맞췄다. 그러면서 당초 분양가에 포함돼 있던 일부 품목을 옵션을 뺐다.
동일토건이 쌍용동에서 선보일 쌍용동 동일하이빌 아파트도 마찬가지. 동일토건은 분양가에 포함키로 했던 식기세척기, 가스레인지 등의 가전제품과 온돌마루, 붙박이장 등을 옵션으로 전환해 평당 최고가를 750만원 선에 맞췄다.
청약ㆍ계약률 신통치 않네…
형식적이긴 하지만 이처럼 주택건설업체들은 천안시가 정한 분양가 상한선을 지켰고, 천안시는 이들 업체들에 대해 분양승인을 내주기 시작했다. 따라서 3월 말 불당동을 시작으로 아파트 공급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순위 내 청약률이나 계약률은 신통치 않다. 순위 내에서 모집 가구 수를 모두 채운 곳은 대우건설의 천안신방 푸르지오 뿐이다.
대우건설이 4월 16일 청약통장 1~3순위자를 대상으로 청약을 받은 천안신방 푸르지오는 순위 내 경쟁률 1.17대 1을 기록했다. 417가구 모집에 430여 명이 청약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23일부터 계약이 시작된다.
그러나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청약을 받은 현대산업개발의 백석동 현대아파이크는 순위 내 청약률이 61%에 그쳤다. 1040가구 모집에 635명만이 청약한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18일부터 계약에 나선다.
한화건설이 불당동에서 분양한 한화 꿈에그린도 3월 28일~30일까지 청약을 받은 결과 모집 가구 수를 다 채우지 못했다. 297가구 모집에 1순위자는 60명, 2순위자는 45명만이 청약했다.
불당동 한화 꿈에그린 아파트의 계약률은 17일 현재 40%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건설의 한 관계자는 “천안에서 9월까지 줄줄이 아파트가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서두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요자들 “서두를 이유 없다”
사실 수요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우선 정부 정책 등으로 부동산시장이 극도로 위축돼 있고, 한꺼번에 한 곳에서 엄청난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9월 분양가상한제 시행도 분양 성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불당동 대동공인 이은주 사장은 “천안에서 분양 대기 중인 아파트가 1만 가구가 넘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자는 수요자들이 많다”며 “수요자들은 시간을 두고 여러 아파트를 비교해 가면서 계약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방동 가나공인 관계자는 “천안의 경우 사실 신규 아파트 수요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어서 정부 정책 변화 등의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분양시장이 공급만큼 활기를 띄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안시가 분양가 규제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분양가가 비싸다는 지적도 나온다. 쌍용동의 대화공인 문상옥 사장은 “분양가 상한선을 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며 “업체들이 옵션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안 되게끔 아파트를 팔고 있어 수요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분양가 부담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업체들 “장기전될 것”
주택건설업체들은 현재 저마다 상품의 특장점 등을 적극 홍보하며 수요자 잡기에 힘을 쏟고 있다.
한화건설은 자사 아파트가 천안시의 신흥 주거지로 꼽히는 불당동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화건설 조형선 분양소장은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 같다”며 “불당동에 위치한 입지여건 등을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시로 견본주택 문을 열고 분양을 준비 중인 동일토건은 쌍용동 동일하이빌의 입지와 천안 내 동일하이빌 아파트의 좋은 이미지 등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우림건설은 일봉산과 천안천을 앞뒤에 있는 배산임수형 입지여건을 내세우고 있고, 18일부터 안서동에서 안서동 금호어울림 아파트에 대한 청약 접수를 받는 금호건설은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바로 옆이라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금호건설의 한 관계자는 “안서동 금호어울림이 30평대 위주로 구성된 만큼 비교적 젊은 30대 주부들을 적극 공략, 계약률을 높여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