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나이로 요절한 천재 가수 김정호의 <하얀나비> 공연 장면
가수 김정호(1952년 3월 27일 ~ 1985년 11월 29일)는 전남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가수 겸 송라이터로 활동하였으며,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에 '사월과 오월'의 3기 멤버로 활약했고, '어니언스(양파들)'의 많은 노래를 작곡, 작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3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이름 모를 소녀〉가 히트하면서부터이다. 1985년 11월 29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요절했다.
노래처럼 살다 노래처럼 슬픈 가을에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김정호, 서른 셋의 삶 마침표
1975년 경 가수 윤복희 극장쇼에 초청가수로 나온 고 김정호가 직접 그의 히트곡인 <하얀나비>를 부르는 장면이다. 지난 1985년 결핵으로 요절한 가수 김정호가 그리워지는 계절인 것 같아 한 번 올려 본다.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김정호는 한국 포크 역사에서 가장 짙은 감성과 음악성의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있다.
학창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포크 송 가수였었는데 그의 히트곡인 <하얀나비>, <이름 모를 소녀> 등을 흥얼거리면서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대전에 살면서 1970년대 초 중반 한창 중, 고등학교 다닐 적에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대전 서구 흑석리(지금 대전시 편입)와 신도안(지금 계룡대 육군본부 자리로 바뀌어 출입금지지역이 되었음)으로 호남선 완행열차를 타고 많이 놀러가면서 그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김정호의 노래를 제일 즐겨 불렀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에는 본인 고향인 대전에서 흑석리와 신도안으로 갈 때 서대전역에서 목포행 완행열차(비둘기호-지금은 통일호와 함께 살진지 오래다.)를 타고 신도안쪽으로 많이 놀러갔었다.
완행열차(비둘기호)지만 그 당시에는 열차가 운행 중에도 객차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치며 즐기며 여행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은 고서방가나 안면방해로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가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다른 승객들도 함께 분위기와 흥을 돋우며 즐겼었다.
그러한 완행열차 안에서 기타를 치며 당대 최고의 히트가수로 젊은 초중고 및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치솟았던 최고의 가수 김정호의 노래인 <하얀나비>와 <이름 모를 소녀> 등을 즐겨 불렀는데 당시 그는 요즘 BTS나 임영웅급 이상의 인기를 구가했던 명가수였었다.
그리고 참고로 당시 김정호와 함께 최고로 인기 많았던 여가수는 섹시한 춤으로 인기 정상이었던 김추자였었다. 당시 고교나 대학생들간에 인기 있는 춤은 고고춤이었고 고고리듬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가 바로 김추자 노래였다.
그러다가 1975년 경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가요계에서 퇴출되면서 팬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가 갑자기 1985년 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가 병환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다가 곧바로 그는 가을인 11월말 33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에 홀연히(!) 떠났다.
요즘 들어 나이를 먹으면서 가끔 외로울 때면 70년대 좋아했던 포크 가수들과 그들이 불러 히트했던 노래들이 생각나는데 특히, 이럴 때일수록 그가 더욱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그의 히트곡인 <하얀나비>와 <이름 모를 소녀> 등을 계속 듣게 되는 모양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여주인공이었던 배우 심은경이 영화 장면에서 슬픈 분위기로 불러 히트한 <하얀나비>(편곡이지만....)를 들으면 요절 가수 김정호 생각이 더욱 더 나는 건 웬일일까?
김정호 (조용호) 전 가수
생애 1952년 3월 27일 ~ 1985년 11월 29일(페결핵으로 33세 요절)
데뷔 1973년 노래 '이름 모를 소녀'
그는 33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가수 김정호가 마지막으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고생한 자신의 아내에게 남긴 한 마디 "고생시켜 미안해"라는 짦은 유언만 남긴채 떠났다.
그는 흰눈이 펄펄 내리던 날 경기도 기독교 공원묘지에 안장된 그의 비석에는 불후의 명곡 '하얀나비'가 묘비명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호는 수유리 달동네에서 살았다. 그는 가난해서 집에 전축이 있을리가 없었다. 따라서 동네에 전축이 있는 집주인이 음악 틀기를 기다렸다가 그걸 듣고는 집으로 돌아와 코드를 따서 노래연습을 했다고 한다.
결국 85년 11월 29일 겨울 문턱에서 외로운 가객 김정호는 주옥같은 50여 곡을 남기고 홀로 세상을 등졌다.
요절 가수 김정호를 소개한다면.....
‘간다/간다/정든 님이 떠나간다/간다/간다/나를 두고 정든 님 떠나간다/님의 손목 꼭 붙들고/애원을 해도/님의 가슴 부여잡고/울어/울어도/뿌리치고 떠나가더라….’(김정호 노래 ‘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듯 피를 토해내며 부른 노래는 결국 ‘만가’(輓歌)가 됐다. ‘손목 꼭 붙들고 애원’하고 ‘가슴 부여잡고 울어 울어도 뿌리치고 떠나’간 사람.
지난 1985년 오후 1시 서울대병원에서 가수 김정호(사진)가 33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났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혀온 폐결핵을 이겨내지 못한 채 흰눈이 내리던 날, 경기도 파주시 기독교공원묘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이름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 ‘작은새’, ‘님’,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등 50여곡의 ‘불후의 명곡’을 남긴 김정호.
그는 서편제의 거목인 외할아버지 박동실과 국악인 어머니 박숙자 여사의 피를 이어받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걸어온 험난한 예술의 길을 물려주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들 김정호는 기어이 그 길에 나섰다.
그 길은 순탄치 않아서 가난과 배고픔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고 관계자들은 기록하고 있다. 1974년 임창제와 이수영으로 이뤄진 인기 듀오 어니언스가 부른 노래 ‘작은 새’는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당시 미8군에서 활동하던 김정호는 ‘작은 새’의 작곡가로 세상에 알려지며 이름을 얻었고 가수로 무대에 나서 ‘이름모를 소녀’를 선보였다.
‘이름모를 소녀’는 오랜 세월 자신을 지켜준 부인 이 모 씨를 짝사랑하며 품은 감성을 적은 노래. 영화로도 만들어져 주연을 맡은 정소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김정호는 이후 ‘하얀 나비’와 ‘달맞이꽃’ 등 한국적 포크의 리듬과 멜로디에 애상 가득한 목소리로 외로움과 고독, 슬픔의 정서를 노래했다.
1976년 1월, 그는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음악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몇 년 동안 무대에 설 수 없었다. 결핵균이 스멀스멀 그의 몸과 마음을 옥죄어가고 있던 때였다.
그의 대표곡은 <하얀나비>, <이름 모를 소녀>, <저별과 달을>, <달맞이 꽃>, <작은새>, <사랑의 진실>(어니언스 노래), <나그네>, <빗속을 둘이서>, <날이 갈수록>, <잊으리라>, <외길> 등이 있다.
5년 뒤 MBC ‘토요일 토요일밤에’에 출연하며 재기하기도 했지만 이미 건강이 악화한 상태였다. 1985년 여름, 그는 마이크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5개월 동안 자신의 숨을 끊어놓으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결핵균과 싸우며 마지막 앨범을 녹음했다.
여전히 꽹과리와 아쟁 등을 손에 쥐고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음악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기도 했다. 여기 실린 ‘님’과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가 대중의 귀에 다가갔지만 이미 그는 세상에 없었다.
2년 뒤 김수희, 송창식, 전영록, 윤시내 등 18명의 가수는 ‘사랑의 앨범’을 고 김정호에게 바쳤다. 이 앨범은 ‘국내 최초의 헌정앨범’이 됐다.
가수 김정호와 남겨진 그의 기족들....
그의 대표곡 ‘이름모를 소녀’는 1995년 MBC 라디오가 광복 50돌을 맞아 가요 관계자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우리 가요 100선’ 설문조사에서 25번째 노래로, 2008년 11월 KBS 1TV ‘7080 콘서트’가 1988명의 누리꾼에게 ‘7080세대가 뽑은 불후의 명곡’을 물어 10위에 각각 꼽혔다.
김정호가 세상을 떠난 1년 뒤 그의 동료들은 고인의 묘지에 ‘하얀 나비’ 노래비를 세웠다. ‘꽃잎은 시들어요/슬퍼하지 말아요/때가 되면 다시 필 걸/서러워 말아요’라는 ‘하얀 나비’의 노랫말처럼 김정호와 그의 노래는 영원히 팬들의 가슴에 피어나고 있음을, 앞서 적은 두 설문조사 결과는 말해준다.
20대 초반의 김정호
20대 후반의 모습.
김정호 - 하얀나비
김정호 - 이름 모를 소녀
첫댓글 유용한 정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매우 귀중한 영상정보 너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유용한 포스팅이었습니다.
김정호라는 가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드리고, 당시에는 폐병이라고 하는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40여년 전에는 이 정도로 우리나라 의료수준이 매우 낙후되었었죠.
이처럼 백혈병이나 폐결핵 등으로도 많이들 죽어나가 떨어지고,,,,
요즘은 높은 의료수준으로 대부분 치료가 거의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런 천재가수들이 지금 의술로는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사망했다고 합니다.
김정호와 같은 시기에 가수로 활동했고 같은 해인 1985년 경에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유명한 하수영도 백혈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죠.
제가 학창시절 제일 좋아했던 대표적 가수였죠.
중학교 시절 김정호의 하얀나비와 이름 모를 소녀의 노래는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는 가장 애창했던 노래 중의 하나랍니다.
지금도 이 노래 소리를 들으면 슬프고 외롭고 애잔한 느낌과 감정들이 혼재된 그러한 분위기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창 잘 나가던 1985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공연 직후 피를 토하며 병원에 급하게 입원 후 얼마 못 가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와 함께 그와 함께 그 시절 풍미했던 가수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애절하게 노래했던 가수 하수영도 같은 시기인 1985년 백혈병으로 돌연 사망했답니다.
한 해에 두 거성들이 한꺼번에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당시에 그들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답니다.
매우 유용한 정보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네요. 덕분에 유익한 정보 잘 봤고요...
아무튼 김정호에 대해 많은 정보들과 영상자료들을 업로드해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덕분에 유익한 정보와 영상 잘 보고 갑니다.
저도 김정호의 '하얀나비'와 '이름모를소녀'라는 곡을 2011년 상영했던 영화<수상한 그녀>에서 주인공 심은경이 직접 불러 재히트했었죠
이처럼 이 영화를 통해 익히 들었던 곡이랍니다.
다시 듣고 싶고도 합니다만 김정호라는 가수가 한창 활동할 젊은 나이인 33세에 요절해서 많은 곡들을 남기진 못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안타깝네요.
요즘처럼 일교차가 심한 날씨일수록 감기와 중국산 코로나19 바이러슥 ㅏㅁ염병 특히 조심하시고 코로나19 백신접종 한 분도 빠짐없이 접종하셔서 다시 재감염되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저도 끝까지 버티다가 드디어(!!) 작년 12월에 코로나19 감염되어 3주간 고생 많았었는데 그 비싼 화이자의 치료제(일주일분이 약 56만원 정도함)를 1주일간 국가지원으로 무료로 복용하여 완쾌가 되었는데 그 후 감기에 쉽게 걸리더라고요. 전에는 운동을 한지라 수년간 감기는 잊고 살았는데 코로나19 감염 후 면역체계가 거의 깨져서 그 이후에는 감기에 쉽게 걸리고 그게 1개월 이상 갑니다. 약을 먹어도 마찬가지고요. 전보다는 못하더라고요.
하여튼 중국산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
많은 정보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