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있는 평양냉면집 - 북한 예술단
부패와 암흑의 나라 캄보디아
지난 2. 13(금) ~ 16(월)캄보디아 앙코아트를 다녀왔다.
캄보디아 여행 관문인 시엠공항에서는 비자 발급 비용 20달러를 지불해도 당당하게 추가 비용 원.달러를 외치는 공무원들을 보며 캄보디아 부패의 실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여권 검사를 하는 직원은 서툰 영어로 “원.달러.! 팁을 달라”고 떼를 썼다. 유독 한국인에게만 요구하는 것이다(?) 나중 한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교민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정이 많은 한국인 자체가? 돈을 난무하게 뿌린 과오로 만든 무덤이라고 한다.
인도와 주택가는 황톳길, 그곳에서는 교통질서는 없었으며 길거리엔 앵벌이 어린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빈곤국가이다. 그동안 내가 여행했던 유럽, 아시아, 동남아 15개국 중 최악이었으며 캄보디아는 2일 투어하면 구경거리가 없는 곳으로 앙코아트 여행을 간다는 지인을 만나면 추천하고 싶지 않는 곳, 관관객 70%가 한국인이다.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위치해 있는 [캄보디아]는 크메르 제국의 다른 이름인 '캄부자(산스크리트어: कंबुज)'에서 유래한 프랑스어'캉보주(Cambodge)'가 영어화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970년 이전 왕국시대에는 캄보디아로 불려오다가, 1970년 론 놀의 쿠데타로 공화국이 성립되자 국명이 크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75년 4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크메르어: ខ្មែរក្រហម Khmêr Khrôm)에 의해 수도 프놈펜이 함락되고 국명은 또다시 민주 캄푸치아로 바뀌었다. 4년 뒤인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가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가, 이후인 1993년에 현재의 국명으로 되돌아왔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캄보디아에는 기원전 2000년~1000년대 사이에 신석기 수준의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 [1] 이들은 주로 중국동남부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후 1세기경에는 메콩 강 하류와 하구에서 농경과 어로, 목축을 통해 생활하며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한 집단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인도와의 교류를 통해 종교 등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에 알려진 첫 번째 국가인 푸난을 세웠다. 푸난은 1세기 에서 6세기 말 경까지 번영했으며, 이후에는 메콩 강 중류에서 일어난 진랍의 공격을 받아 위축되다가 7세기 중엽 멸망하였다.
이 시기의 진랍은 지방분권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랍의 왕인 자야바르만 1세가 68년 사망한 후, 진랍은 육진랍과 수진랍의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으며, 이후 말레이인과 자바인의 압박을 받아 현재의 캄보디아 지역의 국가들은 점차 속국화하였다.
이후 9세기에 자야바르 2세가 등장하여, 자바인들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주변 소국들을 정복하였으며, 종래에는 앙코르를 수도로 하는 왕조를 세웠다. 이것이 크메르 제국의 시작이다. 크메르 제국은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번영하였으며, 앙코르 와트와 같은 유적들도 이 시기의 군주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러나 13세기 초 자야바르 7세의 치세가 끝난 후 점차 약화되어 14세기에는 서쪽의 아유타야와 남쪽의 퉁구 왕조 (현재의 미얀마), 그리고 동쪽의 베트남 사이에서 약소국으로 연명했다. 1431년에는 아유타야의 침공으로 수도 앙코르를 함락당하고 현재의 프놈펜으로 천도하기도 했으며, 18세기 말에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떠이선의 난과 미얀마인의 아유타야 침공의 여파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하였다.
186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식민지로 남아있다가 1954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국으로 독립했지만, 베트남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해 크메르 루즈가 득세하는 등 계속해서 정권이 불안정했다. 크메르 루주 등의 준동과 베트남의 개입으로 인해 내전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 중 킬링필드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캄보디아의 문화는 대표적으로 앙코르 시대(802년 ~ 1432년)에 만들어진 앙코르 와트 사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화려했던 유물들은 관리가 소홀한 탓에 파괴와 식민 시대의 약탈 등에 시달려 많은 손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