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21일) 있었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중국이 한국에 0:3으로 패하며 중국 내부에서 다시한 번 축구 대표팀의 실력에 대한 자조와 비판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선발된 스포츠 인재들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메달을 싹쓸이합니다. 그런데 유독, 축구에서만 도무지 힘을 못 쓰고 있는겁니다.
중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1992년 6월 베이징 훙산커우 회의에서 나타납니다. 스포츠 개혁 논의가 이뤄진 회의인데 핵심만 요약하자면 이를 계기로 축구는 '프로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축구는 원래 프로팀으로 운영되는게 아니냐고요? 꼭 그런건 아닙니다. 훙산커우 회의에서 프로화 전환을 결정하기 이전 중국 축구는 일종의 '국가 육성 시스템(舉國體制)'으로 운영됐습니다.
중국에서 쓰는 표현(舉國體制)을 우리식 독음으로 읽으면 '거국체제'가 되는데요, 넓은 맥락에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중앙정부가 자원을 통합관리하고 배치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스포츠에서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국가가 발굴해 집중 육성하는 구 소련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재밌는 것은 프로화되기 이전 이 시스템 하에서 중국 축구의 성적이 훨씬 좋았다는 점입니다.
1960년에는 중국 대표팀이 일본을 6:0으로 대파한 적도 있고, 1981년에는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당시 지역내 강호로 꼽혔던 북한을 4:2로 꺾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도 3:0 승리를 거뒀습니다. 1984년에는 78년도 제 11회 월드컵 우승국이었던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축구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 이는 모두 과거의 영광으로 퇴색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중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흥민과 미토마 가오루 등 걸출한 세계적 축구스타들을 배출하는 이웃 한국, 일본과는 달리 세계 무대에서 중국 축구는 존재감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시안게임서는 금메달 쓸어담아…축구도 국가 주도로?
21일 열린 경기에서 3:0 패배를 겪으며 다시금 축구에 대한 내부적 고민과 비판이 시작된 사이, 바로 다음날인 어제(22일) 베이징에서는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내외신 기자들에게 아시안게임 소회와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