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한류열풍 사랑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ㆍ자주국방/군사/무기 왜란 당시 조총의 유용성
팍스 추천 0 조회 2,284 07.11.11 20:30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7.11.11 21:00

    첫댓글 리오리엔트를 읽어 보니 18세기 심지어 19세기 전반까지도 유럽이 동양 3국의 총생산량을 못넘었더군요. 식민지에서 얻어쳐먹은 부로 배가 따땃해지자 예술이니 고고학이니 역사니 지들 중심으로 연구해대니 콩알만한 유럽이 마치 오래전부터 세계의 전부인양 체계를 잡아놓고,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질서를 석유와 자본을 지배하는 앵글로 색슨월드로 바꾸어 놓은 다음, 유럽빠돌이인 일본이 그걸 증폭시켜서 주변국에 전파하고, 현재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솔직히 산업혁명이전까지는 그닥 별볼일 없는 놈들이었는데... 증기기관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머릿수=생산능력을 크게 벗어나게 되었다고 봅니다. 뭐 그 이전까지는 화약무기니 뭐니 그닥

  • 07.11.12 23:42

    ...19세기 전반까지 동양삼국의 총생산량을 못넘었다는게..음...총생산량이란게 GDP를 가리키는겁니까? 아니면 총기류의 생산량을 가리키는건가요? 총기류라면 좀 아닌것같습니다.. 19세기 전반 프랑스만해도 50만정이상의 머스켓을 생산해냅니다만... GDP라면 맞는것같지만...

  • 07.11.13 14:40

    말그대로 토탈 생산량을 가리키지요.

  • 07.11.11 21:08

    동서간 차이도 별로 없었고, 조선은 밖으로 안튀어나갈려고 해서 그렇지 매우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죠. 왜구새끼들이 식민지배하면서 수많은 것들을 작살내놔버려서 현대에 다시 그려지는 조선의 이미지가 그닥 좋지 않다 뿐이지...

  • 07.11.12 09:34

    조총이 임란당시 전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맞는 말이나 그렇다고 조총 이하 초기 화기가 당시 제식이었던 활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연사력, 사거리? 물론 중요합니다. 허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의 용이함과 양산량, 그리고 성과 대 훈련도 입니다. 그리고 이런 종합적인 결과를 따져보면 단연 조총 이하 화기가 활을 '압도' 합니다. 물론 당시 조선의 상황은 좀 달랐지만 말입니다. 왜군의 조총병 비율문제는 수천명은 오바고 전체 왜군의 10~15%정도가 통설입니다.

  • 07.11.12 09:55

    질문: 왜군의 가슴팍에 입는 갑옷을 보면 동그랗고 앞으로 나온모양입니다. 이순신 스페셜보니 그두께도 꽤 두꺼웠다고합니다. 헌데 그 갑옷도 조총사거리안에서는 구멍이 지대로 뚫려서리 그자리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근데 과연 화살로서 그갑옷을 파괴하여 사망시킬수 있나? 또한 칼이나 창으로 그갑옷을 벨수 있나...궁금하네요

  • 07.11.12 23:55

    활로 판금갑옷같은 금속제 철판을 뚫을 려면 대략 30~40미터 이내에서 쏴야합니다. 총이라면..17세기이전이라면 아퀴버스나 머스켓이냐에 따라 틀린데... 머스켓이라면 200m에서 아퀴버스라면 대략 90m에서 판금갑옷을 뚫을수있었다네요. 칼이나 창이라면... ...대략 미스터 술탄님이라고 리인액터라해야하나...하여간 갑옷이나 도검류를 만들고 수집하시는 분이 실험하신게 생각나네요. 15세기 서양 판금갑옷과 비슷한 강도를 지닌 현대에 만든 판금갑옷을 창으로 몸무게까지 실어서 내리 찍었는데...일단 뚫리기는 뚤렸습니다만 대략 창이 들어간 깊이가 1cm정도로 안쪽에 입었을 가죽갑옷등을 생각하면 부상을 입힐정도로 파고들지는

  • 07.11.13 00:07

    못했지요. 그외에 이것저것 외국 실험동영상이나 관련글을 보면 철퇴나 양손검,도끼등 둔기류가 아닌 이상은 부상입히기가 쉽지 않았던.... 판금갑옷의 도검,화살류의 방호력은 운동에너지로 대략 230쥴정도 인데 한손검의 운동에너지는 50~100정도...둔기류가 아닌이상은 좀 많이 힘들듯합니다. 참고로 석궁이 100~200쥴, 아퀴버스가 1100~1300쥴, 머스켓이 2300~2500쥴이라더군요....

  • 07.11.13 05:25

    편전의 관통력은 일반활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충분히 뚫고도 남음이 있을정도로요

  • 07.11.13 10:51

    편전의 경우 아직 편전발사방식도 완전하게는 알지 못하고 ?혀진게 완전치 못하지만.. 통아에 화살을 넣고 쏘아 사거리를 높이고 정확도를 높이지 관통력과 위력을 증가시키지는 못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편전,즉 애기살은 대략 조선초엔 24cm정도 후기엔 32cm정도의 작은 화살을 통아에 넣어 쏘았는데 작고 공기저항이 적기에 날아가는 속도가 향상되고 사거리역시 대폭확장됩니다. 속도가 빠르고 공기저항이 적기에 바람의 영향을 덜받아서 정확도 역시 상승하죠. 하지만 배우기가 일반활보다 어렵고 작고 가벼워서 관통력과 살상력이 좀 떨어졌다는군요. 해서 독을 묻혀 사용하기도 했지요

  • 07.11.13 15:24

    편전의 발사 방식의 경우 조선의 보안정책 때문인지 현재에는 정확하게 어떻게 발사했는지 기록도 없고, 전수도 되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발사방법은 현재 약 8개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편전이 일반 유엽전에 비해 관통력이 강력하다 아니다라는 문제는 조금 달리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어차피 같은 탄성력을 가진 활로 발사되기 때문이지요. 유효사거리와 최대사거리는 서로 다르고 그로인해 관통력이 유지되는 구간이 다르다고 보는편이 옳겠지요. 단지 편전에서 플러스 알파가 되는 것은 무게따위가 아닌 짧은 길이로 인해 유엽전과는 달리 비행시 신축운동이 없어서 즉 흔들림이 적어서 탄도가 안정이 되고 에너지 손실이

  • 07.11.13 15:24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양궁 사격을 발사시점에서 근거리 초고속 카메라로 잡은 모습을 보면, 상하좌우로 매우 요동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대전의 대포도 강선을 파는 이유가 탄도의 안정이 목적입지요. (여담이지만, APFSDS에서 강선포가 아닌 활강포를 통해 발사를 하는것은 강선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고 탄도의 안정을 텅스텐이나 열화우라늄 말뚝에 붙은 날개로 대신 안정을 시킵니다.)

  • 07.11.13 15:24

    즉 유엽전의 경우 근거리에서는 편전과 같은 관통력을 보여주지만, 무거운 무게로 인해 편전에 비해 짧은 사거리를 가지며, 거리에 따른 관통력의 하강곡선이 크고, 편전의 경우도 근거리에서 유엽전과 같은 관통력을 가지지만, 보다 멀리 날아가며, 탄도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통력의 하강곡선이 완만하다고 봅니다. 즉 편전의 잇점은 멀리 날아갈 뿐만 아니라, 관통력의 손실도 적고, 보다 높은 명중률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만... 관통력크기 절대치의 증감은 없다고 보는것이 옳겠지요...

  • 07.11.12 16:01

    총이란 병기의 화력과 사거리, 명중률적인 측면에서 '숙련된' 병사의 무기로서의 효용성은 활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당시 17세기 ~ 18세기 총이란 무기가 각광받게 된 측면은 화력이란 면 보다 소모품인 병사로서의 충당이 숙련된 궁수를 만드는데 수년이 필요한데 비해 총이란 무기는 현저하게 짧은 시간만을 요구하였다는데 더 의미가 있다고들 하였습니다. 3년이 걸리는 복합궁 궁수와 한달이면 운용이 가능한 화승총병은, 대규모접전에서 명중률보다 숫적인 문제가 중요시 되는 전장에서 이미 가용성에 엄청난 차이점이 있었다는것이죠, 설령 농부라도 잡아와서 총기 훈련 며칠만 시키면 쏠수는 있게 되지만 활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 07.11.13 10:38

    좀 다른이야긴데...17세기 동양의 총은 어디까지나 아퀴버스의 일종이죠. 그에 반해 서양은 머스켓과 아퀴버스를 혼용해 쓰다가 머스켓을 주로 쓰게 되지요. 17세기 아퀴버스는 숙련된 사수의 경우 분당 2발을 쏠수있었던데 비해 머스켓은 잘해야 1분당 1발정도 였다네요. 보통은 숙련된 사수도 1.5분당 1발정도.. 머스켓의 장점은 위력인데 대략 스페인 스탠다드 머스켓의 유효사거리가 210m정도이고 독일 스탠다드 머스켓의 유효사거리가 200m정도..아퀴버스는 90m정도 였다는군요. 머스켓이나 아퀴버스나 40m밖이면 대략 명중률은 5%정도....

  • 07.11.13 10:38

    명중률이 극악하긴하지만 위력이 강해서 맞은놈은 갑옷을 입건 안입건 부상,즉사였고 집단적으로 뭉쳐 일제사격의 경우 직선적인 화망을 구성함으로써 그 위력은 무시못하지요. 집단적인 일제사격의 경우 조준했던 적군을 못맞추어도 그 옆에 놈이 맞을수도있고 총알이 위로 치솟지 않는이상은 적군중 누군가는 맞았으니 말이죠. 화살처럼 맞아도 방패나 갑주에 막히는일없이 관통했으니.. 뭐..그래도 문제라면 워낙 명중률이 극악이라 집단 사격에서도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하강하거나 좌우로 퍼져나가거나 하는 총알이 많다라는게 문제랄까요. 집단사격에서의 살샹률은 대략 5~15%정도였습니다.

  • 07.11.13 14:44

    사실 조선이 전술에서 삽질을 좀 해서 그렇지, 매우 높은 비율로 화약무기를 비롯한 원거리 투사무기를 장비하고 있었습죠. 특기할만점은 활을 매우 사랑하는 민족이라서 화약무기도 신기전, 대장군전, 총통용세전같이 꼭 화살(미사일?)형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었지요. 재미있는것은 당시 개인화기의 타임레그를 극복하기 위해서 각국은 3단철포같은 순차사격 '전술'로 매꾸고 있는 와중에 조선은 아예 '전술무기'의 개발로 극복하려 했었다는것입니다. 고려말,조선전기부터 후기까지 화차가 만들어져 왔었는데, 임진왜란후에 등장하는 융원필비식조총탑재형 화차의 경우 마치 현대의 자동화기와 비슷한 역활을 할 수 있도록 순차사격방식으로

  • 07.11.13 14:45

    발사가 가능했었습죠. 뭐 그 이전의 (유성룡이 개발한 승자총통탑재형화차나 화포식언해의 주자총통탑재형화차등) 총통탑재형화차의 경우에도 한틀에 50개의 총통이 들어가고 그 총통 하나에 세전이 4발씩 들어가서리... 연발산탄총?에 가까운 아주 무식한 놈이었습니다. 별 기상천외한 무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현대의 탱크와도 닮은 형태를 한 판옥위에 화포 1개가 올려진 형태의 신경준 화차라는 것도 기록에 있었습지요... 뭐 임진왜란때도 이순신장군이 왜구 잡을때 쓰였던 총통등에 현대식 장약 시스템을 적용하는등 조선이 원래 화약무기에 일가견이 있었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