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시에 출발하니, 5분 전에 착석 완료해주시기 바랍니다. (07:30 고속터미널 8-2번 출구, 07:50 죽전정류장 하행)
2. 명찰을 필히 착용해 주세요!
3. 내일 아침 간식은 멥쌀 팥시루떡입니다.
4. 점심은 반달이 부페 (041.363.5257)에서 먹을 예정입니다. (오후 2시반 전후)
5. 내일 합덕 날씨입니다. (최저 -3도, 최고 8도, 풍속 1~2m/s), 전날 비가 온 후, 맑은 날씨입니다. 바람도 잔잔한 편입니다.
6. 내일 동선입니다.
신리성지→무명순교자의묘→원시장.원시보 우물터→합덕제 중수비→합덕성당→합덕제 →솔뫼성지 (평지길 13.5km, 10:00~14:30 예정)
* 상황에 따라 변동되거나, 복잡한 구간은 버스로 점프할 수도 있어요! ^^
7. 화장실 : 신리성지, 합덕성당, 합덕터미널, 솔모성지
8. 미리 읽어두세요. (사람 많고 걷느라 제대로 못 볼 수도 있어요. ^^)
* 버그내순례길
https://m.blog.naver.com/dsys11/222919538181
* 버그내순례길 (충남도청)
https://e-chungnam.tistory.com/8092
* 신리성지
https://m.blog.naver.com/agalbaw/222920905734
① 솔뫼성지 :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자리이다.
솔뫼성지는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 할아버진 김진후 비오 (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동한 안드레아 (1816년 대구에서 순교),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 (1839년 서울 서소문 밖 순교),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1846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이곳은 김 안드레아 신부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 튼 장소이다. 1821년 8월 21일 태어나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받았으며, 1846년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925년 복자품에,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② 합덕제 : 세계관개시설물로 등재된 합덕제
합덕평야에 농업용수를 조달하던 저수지로, 연꽃이 만발해 연지(蓮池)라고도 불리웠다. 지금은 저수지가 논으로 변하여, 제방만이 남아있다.
제방은 평지로부터 높이 7~8m, 전체길이 1,771m에 이르는 큰 방죽으로, 흙을 쌓아 만들었으나 후에 돌을 이용하여 보수한 부분도 보인다. 서쪽 끝에는 보수할 때의 기록을 적어둔 중수비가 5기 남아있다.
제방이 만들어진 정확한 여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후기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축조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김제 벽골제의 제방이 일직선인데 비해, 이곳의 제방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특이히다. 이러한 제방의 특성을 인정받아 2017년 국제관개배수위원회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③ 합덕성당 :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 1929년 건축된 고딕 양식의 천주교 성당이다.
구 합덕성당의 전신은 1890년 (고종 27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림된 양촌성당으로 1899년 초대 본당주임 퀴를리에 신부가 현 위이에 한옥성당을 건축하여 이전, 합덕성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뒤 7대 주임 패랭 신부가 1929년 현재 건물인 벽돌로 된 고딕양식 성당을 새로 지웠다.
④ 합덕제 중수비 : 제방 서쪽 보수할 때의 기록을 적어둔 중수비
합덕읍 합덕리 즉 성동리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8기의 합덕방죽과 관련된 비석이 서있다.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후백제 견훤이 왕건과의 전투를 위해 군마용으로 우물을 파놓았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 산천조에 나오는 벽골지가 합덕지라는 것으로 삼한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⑤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 福者 元시장 (베드로), 元시보 (야고보) 丼
성동리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샘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출신인 원시장 베드로는 내포지역의 첫번째 순교자이다. 사촌형제 원시보 야교보는 청주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므로 우물은 이땅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마셔온 생명의 샘이요, 영혼의 쉼터이다.
⑥ 무명 순교자의 묘 : 성 손자선 (토마스)과 순교자, 교유 묘역
원래 마을 어귀의 언덕에 산재했던 무덤들은 1972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파묘.이장되었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며 두상이 없는 유골들이 많았고, 썩어 부서진 묵주와 십자가가 무덤마다 출토되었다고 한다. 가서 직접 보면 무덤들이 조그맣다.
⑦ 신리성지 :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고,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여,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로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또한 신리는, 조선에서 가장 큰 교유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디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 (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고 있다.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꼼꼼한 정보,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