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에 얽힌 사랑 이야기
백화 문상희 (소설)
(1부) 역전의 용사들
오늘은 홀아비 이정호의 생일이다.
육십 대 중반까지 살아왔지만
마누라 죽고 나서 서러워 미역국을 먹어본 적도 없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묵은 김치에 달랑 밑반찬 몇 가지
어제 끓여둔 콩나물 국에 대충 한숫깔 챙겨 먹는다.
반겨줄 사람도, 축하해 줄 사람도 없이 마냥 서러워
빈 가방 둘러메고 무작정 나선 길
사가정역 집 앞에서 전철에 오른다.
7호선을 타고 군자역에 내려 5호선으로 갈아타고
종로3가역에 내려 탑골공원으로 간다.
오늘도 장기판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온 탑골공원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또한 수많은 세월 동안 다녔어도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정호는 친구하나 없다.
새벽에 비가 온 탓인지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어
공원 한 바퀴를 휘익 둘러봐도 재미가 없어
구석지 빈자리에 앉아 하늘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흘러가는 구름에 번지는 먼저 간 마눌님 얼굴이
생일인 오늘따라 더욱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저씨 ~! 뭐 하세요?"
하는 소리에 정호는 화들짝 놀랐다.
머뭇머뭇 고개를 돌려 옷깃으로 눈물을 훔친다.
"아~ 그냥이요!"
"아저씨 박카스 한병 드실래요?"
아저씨 참 멋있게도 늙어가시네요!
제가 말친구 해드릴까요?"
하며 다가오는 여인네가 있었다.
허락할 이유도, 권리도 없지만
여인네가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저는 서대문에 사는 이은주라고 해요!''
"무슨 슬픈 일이 있나 봐요?"
하며 접근을 시도한다.
"아니요!"
그냥 하늘을 보니 살아온 날들
회한에 눈물이 나더이다!"
"아이구요 아저씨 무지하게 감성적이네요!"
ㆍㆍㆍㆍㆍ
정호는 이에 묵묵부답 먼 하늘에 시선이 고정이다.
"아이구 호호호
난 감성적인 사람이 좋더라!
제가 말동무해 드릴 테니 박카스 한병 팔아주세요
삼천 원이면 돼요!"
그제서야 운을 떼는 정호,
"아주머니는 곱게도 생겼는데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아이구요 아저씨 저도 사연이 있답니다!"
서방이 비명횡사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이 나이에 여자가 뭘 해서 먹고 산답니까?"
"소문에 듣자 하니 파고다 공원에 가면
친구도 만나고 또 돈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 전부터 쑥스럽지만 이렇게 박카스를
팔고 있답니다 "
정호는 마지못해 주머니를 부스럭부스럭 뒤져
오천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든다.
"잔돈은 그냥 놔두시구려!"
"아이고 호호호..."
멋쟁이 아저씨는 역시나 뭔가가 틀려요!"
하며 뚜껑을 따서 입가에 들이민다.
박카스 한 병을 마시는 동안에도
주절주절 아주머니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이 짓을 하고 있지만 저도 사람입니다!
양심도 있고 정도 있는 그런 사람이지요!
자주 만나서 정들면 제 이야기도 해 드릴게요!
그나저나 아저씨는 날마다 여기에 오시나요?"
"네에~!
가끔씩 무료해서 나온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도 토요일 일요일은 여기에 온답니다!
그러니 이 근처 자리에서 또 뵙도록 할게요!"
하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든다.
"아저씨,
오늘 제가 오천원 값어치는 했지요?"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성함은 알아야 이 근처에 와서
아저씨 이름을 불러 찾을 수가 있지요~!"
"네, 저는 정호, 이정호라고 합니다"
"이왕 이름도 알았으니 전화번호도 알려주세요!
해꽂이는 안하는 사람이니 걱정마세요!"
"오래전에 만든 것이라 꼬질꼬질하지만
제 명함 여기 있습니다!"
정호가 그렇게 말하자 명함을 유심히 쳐다보며
악수를 청한다.
박카스 아주머니는 정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손을 꼭 쥐고 흔들며
"정호 아저씨!
이다음에 또 만나기로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정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여인네가
손을 놓고 촘촘히 시야에서 사라진다.
몇 년 만에 잡아본 여인네 손길!
체온이 사라질까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정호는 또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임자 미안하구려!
임자 떠나고 처음으로 잡은 여인네 손이
꼬옥, 당신 손을 잡은 듯이 따뜻했소!"
정호는 허망한 마음으로 하늘에 넋을 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정호,
아직도 여인네의 체온이 남아있는 듯
눈을 감아도 떠도 여인네와 죽은 마누라의
얼굴이 교차해서 떠오른다
물론 상업적으로 접근한 여인네이지만
예전의 박카스 아줌마와는 여러 가지로 달랐다.
우선 젖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말투에
나와 같이 말 못 할 무슨 사연이 있는 듯,
수다 속에서도 눈동자에 비애가 담긴 모습이었다
박카스 한 병과 오천원을 맞바꾼 대화지만
마누라 떠난 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일주일 내내 여인네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정호는 후다닥 전화를 받는다.
혹시나 박카스 파는 그 여인네일까 하고 말이다.
"어이, 정호 요즘 뭐 하며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를 했네!"
"어, 그래 명수 오랜만일세!"
그냥 집에 있는 게 무료해서 종로에 간다네
자네도 심심하면 같이 가 보세나
자네는 집이 천호동이니까 군자에서 만나면 된다네"
"그래?
난 말로만 들었지 탑골공원에 가본 지가
수십 년이 넘었다네!"
"그래?
그렇다면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같이 가볼까?
그러면 점심 일찍 먹고 1시쯤에 군자역 안쪽
가판대에서 만나세!"
내성적인 성격에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유일하게 전화를 주고받는 고향 친구인 최명수다.
군자역 의자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는 정호,
그때, 등뒤에서 명수가 등짝을 툭툭 친다.
"정호, 오랜만일세!"
"아이고 반갑네 명수!"
"그래 자네 덕에 탑골공원 구경이나 해봄세!"
전철을 자주 이용한 덕분에
정호는 자리가 헐렁한 곳으로 안내를 한다.
자리에 앉으며 명수가 하는 말,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길잡이 전문가이구먼 그래!"
"허허 나야뭐 하릴없이 돌아다니니까 그렇지!"
"그렇구먼 그래!
나는 맨날 집 앞 공원이나 나가서 길을 모른다네!"
"맞아, 자네는 옛날에도 길치였었지 허허허"
"오랜만에 만났으니 막걸리 한잔 대접하겠네!"
종로 3가에 내려 골목으로 들어가니 낮시간이지만
포장마차 노점엔 웅성웅성 벌써 만원이다.
"저기 구석지에 자리가 하나 비었구먼,
저리로 가세나 명수!"
"그래, 정호 자네 덕분에 막걸리 한잔 해보세!"
"아주머니 여기요!
이 집에서 잘하는 골뱅이무침 2인분 하고
우선 막걸리부터 한병주 세요!"
"네, 알겠습니다"
"캬~!
자네하고 술잔 부딪는 게 언제인가 모르겠구먼"
말수가 적은 정호도 명수를 만나면 말문이 트인다.
술잔을 몇 배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명수가 게걸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친구야~!
야외 포장마차에 먹어보는 낮술도 맛이 기가 막히구먼 그래!
이 골뱅이 무침도 참 오랜만에 먹어보는데
자네 덕분에 오늘 내 입이 호강을 하네 그려!"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일세!"
사람들이 계속 밀려와서 민망한 마음에
일인 일병씩 마시고 안주도 설거지하듯
깨끗이 비우고 뒷사람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주머니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이다음에도 꼭 오세요 ~!"
"여기가 탑골공원 후문일세 한 바퀴 휙 돌아보세나!"
눈이 휘둥그레진 명수,
"야~! 사람이 이렇게 많아?
나도 이제 노인축에 들지만 대단하구먼 그래!"
"그렇다네, 여기에 있는 분들이 춥고 배고픈 시절
중동에서 월남에서 총을 들고 또 삽자루 들고
피땀 흘리며 배곯아가면서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이나라 부강국가를 만든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그래, 그렇지!
자네와 나도 그중에 한 명이 아닌가!"
정호는 자주 와서 정이 든 그 자리로 안내를 한다.
"명수, 자네는 바둑이나 장기를 잘 두는가?"
"아닐세, 그저 심심할 때 배워둔 초보 실력이지"
"저기 저쪽에 돈내기 바둑과 장기 두는 사람이
전문 타짜라네!
행여, 저기서 절대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지 말게나!
져주는척 하며, 질질 끌다가 판이 끝날때쯤 이겨서
저 노인네들 주머니 돈 긇어서 먹고산다네~!"
"저기 구석지에 앉아 예기나 하세!"
이것저것 안부와 고향예기 등 한참을 하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늘은 안 오시나 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이번에 마지막이다 하며 다시 돌아와 봤지요!"
"아, 네~!
그러시군요 여기로 앉으세요!"
"어이 명수, 인사하게나
여기 말동무해 주는 박카스 아주머니 이은주씨네"
"네~안녕하세요!
"정호와 같은 고향 친구인 최명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은주입니다!"
하고 서로의 첫인사가 오가고 정호가 운을 뗀다.
"오늘은 둘이니 박카스 두병 주세요!"
하고 정호는 주머니에서 만원권 지폐를 건넨다.
"아저씨 오늘은 두병에 오천원 만 받을게요,
저번에 오천원 주셨으니 저도 양심은 있답니다!
"네~! 그러시군요
그나저나 오늘은 박카스 많이 파셨나요?"
"아니요!
경제가 안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저씨 둘 포함해서 이제 다섯 개 팔았답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불쑥 명수가 나서서 한마디를 건넨다.
"아주머니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일이 일요일인데 춘천 여행이나 가볼까요?
춘천에 친구가 닭갈비 가게를 한답니다!"
정호야 자네도 알지!
옛날 윗동네 살던 골통 이주성이 말일세!"
"그래, 주성이가 닭갈비집 한다고 그랬었지!"
"아주머니 어때요?
하루 박카스 파는 돈은 드릴게요!
오늘은 술과 박카스 까지 정호 이 친구에게
얻어먹었으니 이다음엔 제가 한턱 쏠게요!"
하며 군인 연금 많이 받는 자랑에다 너스레를 떤다.
"그 대신 우리가 둘이니 아주머니도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오셔야합니다!"
"한참을 뜸을 들이다 아주머니가 대답을 한다
"네~! 그래보지요?
친구에게 전화 좀 해볼게요!"
하며, 조금 떨어져서 한참 전화를 한 후 되돌아온다.
"친구가 나오겠다고 대답을 했어요!
솔직히 생계가 달린 문제라 장사를 접고 가야 하니
그냥 따라갈 수도 없고
어차피 저는 하루에 박카스 열병정도는 팔아요
또 그 친구도 일용직 파출부로 먹고 산답니다!
그러니 염치없지만 용돈 삼 만원씩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OK 대답에 신명이 난 명수의 이어진 말
"그럼, 내일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이번에는 길을 잘 아는 정호가 나선다.
"어차피 춘천을 갈려면 청량리역으로 가야 해요!
너무 이른 시간도 그러니 열 시쯤 만날까요?"
"네~! 좋습니다!"
하고 이은주 씨가 대답을 한다.
그렇게 합의를 보고 일어나서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명수와 정호는 전철로 향한다.
*2부는 내일 올라갑니다*
첫댓글 책 출판기념...낙 카페에서 즐겁게 보았습니다.ㅎㅎ
네,반갑습니다 소란 작가님
졸작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편까지 연속으로 올려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박카스 아줌마.
기대됩니다.
5편 끝나고 나서
소란님이랑 종3에서 만나
막걸리나 한잔 하시자구요^^
안녕하십니까 삿가스 선생님
막걸리 좋지요! 말씀만 들어도
곡차 향기에 취하는 듯 합니다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저는 황반변성 안칠환으로 긴글을 보면 눈에 병이 생기니...양해바랍니다~
아이구요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낙도 김형태 사진작가님, 봄철에
미세먼지 황사도 많은데 건강 관리
잘 하시고 늘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