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책이 어렵다. 70년대 전반기에 국민 학교를 졸업했을 나이인지라 좀더 솔직히 말하면 필자가 초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전체 과목에 ‘수’와 ‘우’가 하나 없다. 물론 국어과목도 그러하다. 다른 책을 읽으면서 정확히 이해 못하는 현상은 별로 없다. 그러나 개역개정판 성경(한국의 일반적 통용성경)은 수십 년을 여러 회 읽었는데도 아직도 낯설고 이해를 못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표준새번역, 공동번역(천주교성경), 현대인. 현대어, 우리성경(유치부용) 쉬운성경(중등부용), 킹제임스성경, 한자성경 등을 이해 될 때까지 다 찾아봅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스테판 원어성경을 보며 원어사전 번호를 찾아 읽어 봅니다. 머리가 나쁘며 공부 못하며 도올 수준인 필자가 살아 남기위한 생존의 방법이지요. 필자가 생존의 방법 이라면 이상할 정도의 웃음으로 오버한다고 독자님이 이야기 할줄 모르겠으나 필자는 정확한 용어를 구사 했다고 생각 합니다. 적어도 대한의 기독인 중에서 성경을 대강대강 교훈집정도로 읽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는 종교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지 그가 성도라면 왜? 꿀 송이보다 달고 알고싶음에 강한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지 아니하겠는가? 성도가 아니라면 당연하 귀결인 상황을 성도에게 억지로 맞추지 마시라는 말씀 입니다. 필자는 성경을 읽다가 아니 고민하다가 이해가 되었을 때는 반드시 쉬운 용어나 쉬운 비유를 찾아 정리를 한답니다. 물론 성경책에 기록을 해둡니다. 집에서 보는 성경은 여러 권이고 들고 다니는 성경은 한권 이지요? 필자의 성경과 찬송가는 분리된 2권의 책입니다. 성경과 찬송가가 합쳐진 지퍼달린 성경책을 보면 왠지 마음이 씁쓸합니다. 들고 다니기는 편한데 볼 때는 불편하던데 들고 다니기 위한 성경과 찬송가보다 보는 성경이 되기를 기대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는 어느 목회자 주기도문 1 (마6장1-6) 그들에게 보이려고 사람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너희들은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들안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6장1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의를 행하는 것보다도 주의 하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Prosevcete(프로세케테) 인데 첫 단어를 대문자를 사용했습니다, 헬라어는 중요한 단어가 그 절의 맨 앞에 나옵니다, 거기에 첫 글씨가 대문자로 나올 때는 더욱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Prosevcete 의 뜻은 주의하다, 조심하다, 유의하다, 주목하다, 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의를 행할 때에 사람 앞에서 행치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왜냐, 여기 너희들은 5:48절에 있는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들도 온전하라고 하신 너희들입니다 그래서 온전하게 되었다면 속성이 주님과 같아진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라고 나오는데 단어가 알렌드역은 dikaiosuvnh(디카이오쉬네) 인데 거룩한, 의로운, 그런 의미 이며 스테판역은 ejlehmosuvnh(엘레모쉬네)죠, 그래서 동정, 구제, 자비, 긍휼, 입니다, 그러니까 의를 행하던지, 긍휼을 베풀던지, 간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죠, 왜냐? 그렇게 해야만 하늘들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들의 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했지만 그게 아닙니다,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하늘이 복수라서 하늘들 안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고 “얻지” 못하느리라도 “얻지” 라는 단어는 없고 e[cw (에코)라는 현제 동사 앞에 oujk < 가 있어서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상”이죠
그러면 상은 무엇입니까? 하늘들안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죠, 그래서 상은 죽어서 천국 가서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늘들안에(너희들안에) 계신 아버지가 하늘들이 된 너희들의 상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지 절대로 사람과의 관계성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성은 어떤 수단이고 사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고 중요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앙의 목적과 핵심은 하나님과 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신앙의 이탈은 언제 듣지 사람 쪽으로 흘러가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6장은 바로 그것을 경고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2절에서는 구제 문제가 나옵니다,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기서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라고 했는데 그 너희라는 단어가 sou,(쑤)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아니고 너죠,
그리고 “앞에” 라는 단어는 emprosqen(엠프로스덴) 인데 이것도 두 단어 합성어입니다 ejn+prov"(엔,프로스) 인데 prov"(프로스) 가 소유격 일 때는 ~~을 유리하게, ~~을 좋게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앞이 아니라 네게 좋게, 네게 유리하게입니다, 그래서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는 말은 너에게 유리 하게, 네게 좋게, 말라는 말이죠, 육의 속성은 자기의 뭔가를 나타내려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좋게 자기에게 유리하게 꾸미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그래야만 아버지가 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가 ajpevcw(아페코)인데 두 단어 합성어이면서 현제 능동태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나팔을 부는 것 자체가 자기상을 자기가 현제 확실하게 소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상이 되실 수가 없죠,
그다음 3- 4절에서는 너는 구제 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니라 뒷부분만 원어로 보겠습니다,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은 우리말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가 갚아주시는데 무엇을 주신다는 말이 우리말 성경에는 없는데 스테판역에는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soi ejn< tw/' fanerw/'.(소이 엔토 파네로)입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는 바로 당신자신이고, 당신자신을 soi(소이)너에게, 어떻게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단순하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ejn< tw/' fanerw/'.(엔 토 파네로) 로 주시는데 fanerw (파네로)/의 뜻이 분명한, 명백한, 그런 의미고 그리고 ejn< tw/'(엔 토)는 그 안이라는 뜻이므로 당신자신을 내 안에 분명하게 주신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ajpodwvsei(아포도세이)인데 두 단어 합성어죠 divdwmi(디도미)= 주다, 에 ajpov(아포) 전치사가 붙어서 완벽하게 주신다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 자신을 우리 안에다가 분명하고 완벽하게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상이 당신 자신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가 분깃이고 신약에서는 말씀상속입니다,
그 다음에 5절에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외식하는 자가 나오는데 uJpokrithv"(쉬포,크리테스)두 단어 합성어죠 uJpo +krivnw(쉬포,크리노)= uJpo(슈포)는 아래고 krivnw(크리노) 는 심판, 판결, 입니다, 그래서 외식이 아니라 심판아래 있는 겁니다,
이들이 누구냐?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외식하는 자들의 상은 심판아래 있는 것이 그들의 상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죠, 그러니까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좋아한다는 단어가 filevw(필레오)인데 사랑한다, 즐겨한다 그런 의미 입니다
회당은 오늘날 예배당이죠, 큰 거리 어귀는 유대나라는 유대교가 국교가 되어있으니까 그때 당시 사람들의 풍습이 큰 거리나 어귀에서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9절부터 보면 그때 당시 바리새인의 기도가 얼마나 가증스러웠던가를 말씀을 통해서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8:11절을 보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 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하고 나오는데 앞부분만 원문으로 보겠습니다,
따로 서서가 staqei;" pro;" eJauto;n(스타 데이스 프로스 헤 아우톤)로 나오는데 이것은 따로 서서 그런 개념이 아니고 eJauto;n pro;" 자기 자신을 향하여 서서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바로 오 하나님이여 나는 하고 나오죠, 나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나를 주님과 같게 해 주심을 감사 하나이다, 바로 새 언약이 성취된 그것을 시인 하는 감사가 나와야 되죠,,
그런데 12절에 보면 또 나는 이레에 두 번씩기도 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바로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하심을 받고 내려갔다고 기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어떻게 자기를 낮출 수 있고 어떻게 자기를 높일 수 있습니까? 기준이 누구냐에 따라서 높아지고 낮아집니다, 기준이 하나님일 때 자동적으로 낮아지고 기준이 자기 일 때는 높아지게 되죠,
바리새인은 기준을 자기한테 두었고 세리는 기준을 하나님께 둔 차이입니다 스스로 내가 낮아져야지, 내가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지 사지로 끌려가는 양처럼 살아야지 해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이 의인 인겁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 정의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분과 하나 된 것을 의인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기도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가증스러운 기도는 결코 하나님께서는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중요 한 것은 그때 당시, 예수님은 평민보고 책망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전부 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 들어가기 전에 조심할 것은 사람 앞에서 행하는 외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할 때 filevw(필레오)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좋아 한다는 의미 보다는 사랑 한다, 즐겨 한다, 그런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니까 그러기를 즐겨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말은 faivnw(파이노) 들어내다 나타내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다 그 말이죠, 그다음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amhn legw umin,(아멘 레고 휴민) 인데 복음서에는 아멘이 한번 나오고
요한복음에서는 amhn amhn legw umin,(아멘 아멘 레고 휴민)아멘이 두 번 나옵니다, 그런데 아멘이 나오면 이것은 사실로 이뤄진다는 말입니다 mh;n(멘) 앞에 a(알파)가 붙은 것이 아멘인데 이 a 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의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연합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입에서 아멘 하신 것은 부정이던 연합이든 간에 반듯이 사실화 됩니다,
그러니까 amhn amhn legw umin, 하고 나오는 말씀은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가짜라는 겁니다, 여기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루노니(아멘 레고 휴민)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했는데 원문에는 이미, 라는 말은 없고 ajpevcousin(아페퀴신)인데 두 단어 합성어이면서 현제 동사입니다
ecw(에코)에 apo(아포)가 붙어서 이미 받았다는 개념이 아니고 완전히 소유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자기상을~~~ 그러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확실한 자기상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6절에서 너는 기도 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여기서 너는 골방에 들어가, 골방이라는 단어가 to;< tamiei'ovn< sou (토 타미에이온 쑤)인데 보통 말하는 골방이 아니라 to; 관사가 붙은 너의 그 골방인데 의미가 너의 그 밀실이라는 뜻이죠, 다시 말해서 신혼부부가 함께 있는 침실 입니다,
즉, 정결한 처녀가 한남편인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상태를 말하죠, 그 상태에서 네 문을 닫고 , 땅 적인 것,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을 다 내려놓습니다, 신랑신부가 같이 있는데 신랑이 다른 여자 생각하고 신부가 다른 남자 생각한다면 그건 있을 수없는 일이겠죠? 그러므로 세상이 보이질 않도록 네 문을 닫으라고 한 겁니다,
문제는 골방에서 말씀이신 주님과 얼마큼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입니다, 그래서 신17:18-19에서는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하셨고 잠4:20-22절에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 이 상태가 되어진 너희들은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중언부언이 battologevw(945,밧톨로게오) 인데 두 단어 합성어입니다 bato"(942)+logo"(3056) 인데 bavto"(바토스)는 찔레나, 가시 덤풀입니다, 그리고 logo"(로고스)는 말, 진술, 연설이죠, 그래서 찔레 같은 말, 가시덤풀같은 말로 기도하는 것이 중언부언입니다 그러면 가시덤풀같고 질레 같은 말의 기도가 뭐냐? 주님은 관심도 없는 세상 적이고 땅 적이고 육적인 기도를 하는 것이죠,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같은 어역인 945번의 바트라코스(bavtraco")가 개구리 인데, 개구리처럼 개골개골, 말 많은 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말이 많은 쓸모없는 가시덤풀 같은 기도를 하게 되죠? 세상과 야합하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을 구하다 보니까 개골개골 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도가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벧전2: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셨습니다, 왜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벧2:9)
그러기 때문에 나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이냐? 아니면 중언부언 기도하는 이방인이냐? 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인 그의 소유된 백성들인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기도가 주기도문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나의 상태에서 나오는 나의 신앙고백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