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이사 11,1-10; 루카 10,21-24 / 대림 제1주간 화요일; 2022.11.29.; 이기우 신부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내다본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예언자적 상상력은 메시아께서 겪으실 고난을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로 그려내어 승화시켰습니다(이사 42,1-9; 49,1-7; 50,4-11; 52,13-53,12 참조).
오늘 독서의 본문만 하더라도,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으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이사11,1-2) 하는 예언은 이사야 사후 5백 년 만에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인한 잉태와 동정녀 출산이라는 창조에 버금가는 신비(마태 1,18-25; 루카 2,1-7)와 나자렛 회당에서 천명하신 메시아 선언(루카 4,16-30)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이사 11,3) 하는 예언은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바리사이 유다인들이 간음 혐의를 뒤집어 씌어 끌고 와서는 사형 판결을 강요했던 한 여인에 대한 판결에서 실현되었는데, 그 무도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하신 말씀에 꼼짝 못하고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이사 11,4) 하는 예언은 갈릴래아 지방 카파르나움 평원에서 발하신 평지설교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에서(루카 6,20-26) 실현되었는데, 이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굶주리고 슬픔에 잠겨 울고 있던 가난한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리라고 선언하셨지만 배부르고 웃으며 살던 부유한 자들에게서는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버리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갈 곳은 무덤뿐입니다.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이사 11,5)는 예언은 예수님의 인격과 신앙에 살아 있었으며, 이를 기억하고 계승하려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받자 큰 능력을 발휘하던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빵을 나누며 가진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가난한 이들도 자신들의 공동체에 초대해서 함께 나누는 공동생활의 기적(사도 2,42-47; 4,32-37)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이사 11,6-8)는 초현실적인 예언은 놀랍게도 초대교회 이후 로마제국이 신앙을 공인할 때까지 3백 년 동안 끔찍한 박해 상황 속에서도 실현되었습니다. 즉, 유다인들 안에서도 박해자였던 사울이 사도요 선교사가 되어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고 그의 제자들로 이어진 복음선포 활동으로 이어진 덕분에, 예수님 당시까지만 해도 서로 적대적이었던 유다인, 그리스인, 로마인이 함께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어 공동생활을 영위했으며(사도 2,10; 로마 10,12; 에페 2,19), 야만적으로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끝내 그리스도교화시킨 일도 실제로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예언이 실현되기까지는 로마의 밀라노 칙령 이후에도 천 년도 넘게 기다려야 했으니, 서양의 선교사들이 학식과 교양으로 무장하고 아시아에 도착한 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서양의 진리보다는 문물을 더 탐냈고 일본에서는 무기만 탐냈으나, 조선에서는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여 2천 년 교회역사상 처음으로 선교사 없이 자생적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진리의 도래 과정은 사나운 파도처럼 피어린 박해를 수반했으나 끝내 진리는 박해를 이기고 보란 듯이 자리를 잡았으니 이것이 한국교회, 특히 가톨릭교회의 면모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하신 말씀이(루카 10,21) 박해시대 교우촌 안에서, 특히 천민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권력에서 밀려났던 양반 신자들의 치열한 생애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즉,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처했던 사대부들에게는 진리를 감추신 하느님께서 조선 사회가 천주학쟁이라고 경멸하며 내다버린 이들 안에서 세계사와 민족사 안에서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공동체 문명을 실현하셨습니다.
이제 이 한없이 긴 너울처럼 천 년을 넘나드는 역사의 파도 속에서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함”을 느끼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사이의 뿌리이신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나고 마침내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서,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 미래가 머지않아 다가오겠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그리고 이 땅에서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신자들의 마음에 찾아오시어 눈을 밝혀 주시고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되는 그날을 하느님께서 앞당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꽃피어 만발한 정의와 평화를 마치 공기와 물처럼 마음껏 숨쉬며 마시는 가운데 드디어 사랑의 열매가 열리기를 축원합니다.